김지은입니다 - 04/12/2020

독서/여성주의 2020. 4. 13. 07:48

부활절 오후, 뭘 하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서점에서 금방 산 책을 찍어 보냈다. 책을 본 친구가 그 책은 몇 챕터 읽다 너무 힘들어서 내려 놓았다고 했다. 나는, 읽다 힘들어 집 구석에 쳐박아 둘 지언정 구매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책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지만 중요하니까.

한 챕터, 한 챕터를 꾹꾹 눌러가며 읽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고발 되기 전, 그남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희미해 지던 기억을 되살리게 해 준다. 그렇게 우리가 어떤 개쌍놈에게 투표 할 뻔 했는지도, 안희정 자신이 여성주의자라고 인터뷰 한 잡지 내용을 읽으며 느끼던 감정들과 그 순간의 기억들도 생생해져 괴로웠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때 하나의 움직임은, 여성후보가 없으면 투표지에 빨간 볼펜으로 “여성후보”라고 적고 나오자는 운동이었다. 서울시에는 신지예 후보가 있었지만 내가 속한 지역구에는 없었다. 이 운동에 대해 일부 안티페미들의 조롱은 뜨거웠다. 사표를 양성해 보았자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 메시지를 누가 알아 줄 것 같느냐는 아주 타당해 보이는 지적들. 그렇게 하면 결국 최악인 X당 누구가 당선 될 것이라는 익숙한 윽박들.

그렇지만 그 “여성후보” 요구 운동은 선택이 아니었음도 기억나게 되었다. 적어도 여성후보는 앞에서 페미니스트임을 내세우며 비서를 성폭행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다 못해 X당 유명한 원내대표가 ‘안희정 하겠냐.’는 말이, 정치철학적으로 그럴듯하고 타당해 보이는 여성후보 요구 운동에 대한 비판들 보다, 여성인 내게는 백만배 더 타당했으니까. 그리고 그 날 밤에 “여성후보” 요구 운동이 지상파 뉴스와 언론에 보도 되었을 때의 기분도, 다시 떠올랐다.

기록은 다시 기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나는 기억하고 싶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대한민국이 김지은씨에게 어떤 빚을 지고 있는지도.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