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 16.07.21

독서/기타 2018. 6. 18. 17:58

 

오랜만에 읽은 한강의 소설책. 아무리 상을 받았다고 하지만 딱히 채식주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라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서점에서 무심코 3장정도 읽었다가 당장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다 읽고 난 후, 내 자신이 비문학(즉 심리학)에 몰두하면서, 문학의 힘을 너무 간과해 왔음을 다시금 느꼈다.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아름답고 세밀하고 파괴적인 고찰... 그리고 문학도, 심리학도 결국 사람에 대한 것이라는 놀라운 희열.. 

 


<책발췌>

 

 

 "이런 여러 탐색담은 대상을 찾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정상성을 벗어난 인물들을 찾아나선 '정상적'인 인물들은 스스로 감추었거나 잊었던 트라우마와 조우한다. 마치, 애초에 그들이 그토록 닿으려 했던 목적지가 그 깊은 상처였던 것 처럼" - 프롤로그



전자책p.404(아마에필로그)

햇빛과 바람과 물과 흙 등 외적인 조건에 자신을 맡긴 채 수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이 사실은 주변의 생태계를 포괄하는 역동적인 체계라는 점을 기억하자. 식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면 그것은 때로 냉정한 광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끔찍할 정도로 생생한 욕망에 달아오른 동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자신과 영혜를 식물의 형상으로 구성한 결과가 지독한 동물적 욕망으로 낙착된 것은 어쩌면 예고된 결말이었는지 모른다. (...) 그렇다. 우리는 동물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호모사피엔스라고 불리는 하나의 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꾸만 잊는다. (...) 사실 가족이라는 제도는 다양한 모순을 내장하고 있다. 서로 다른 씨족 혹은 부족에 속했던 자들이 모종의 계약과 교환을 거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되면 서로 아무런 문화적, 정서적 친밀감이 없다고 하더라도 친밀감을 연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전자책p.415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야수성을 감지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처벌의 한 형태로 '자기파괴'를 선택한다. 사람들은 농담처럼 '남의 살'이 맛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남의 살'을 베어먹고 물어뜨는ㄴ 식육의 행위가 지닌 파괴력에 전율한다. 그녀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다른 생명체를 먹는 것에 대한 모종의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자신의 세포 하나하나를 이루고 있을 '남의 살'을 몸피에서 덜어낸다. 과잉소비의 쾌락을 위해서 수많은 생명체를 공장 구조에서 '생산'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비판하는 행위가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시대에 말이다. 팽창의 시대에 축소를 택한 그녀에게 남은 일은 시대착오의 의미 그대로, 살아 있는 화석이 되는 것뿐이다. (...) 이런 여러 탐색담은 대상을 찾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정상성을 벗어난 인물들을 찾아나선 '정상적'인 인물들은 스스로 감추었거나 잊었던 트라우마와 조우한다. 마치, 애초에 그들이 그토록 닿으려 했던 목적지가 그 깊은 상처였던 것처럼.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