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 2019.01.31

독서/기타 2019. 2. 1. 06:42



흉터 많은 꽃잎들을 사방에 떨구기 시작한 자목련이 가로등 불빛에 빛난다. 가지들이 휘도록 흐드러진 꽃들의 육감, 으깨면 단 냄새가 날 것 같은 봄밤의 공기를 가로질러 그녀는 걷는다. 자신의 뺨에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이따금 두 손으로 얼굴을 닦아낸다.

문장에 흐드러지게 담겨있는 봄의 밤. 작가의 글이란 이런거구나.

침묵 속에서 어어, 우우, 하는 분절되지 않은 음성으로만 소통하던 인간이 처음 몇 개의 단어들을 만들어낸 뒤, 언어는 서서히 체계를 갖추어나갑니다. 체계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언어는 극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규칙들을 갖습니다. 고어를 배우기 어려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 정점에 이른 언어는 바로 그 순간부터, 더디고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좀 더 사용하기 편한 형태로 변화해갑니다. 어떤 의미에서 쇠퇴이고 타락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진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겁니다. ... 말하자면, 플라톤이 구사한 희랍어는 마치 막 떨어지려 하는 단단한 열매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세대 이후 고대 희랍어는 급격하게 저물어갑니다. 언어와 함께 희랍 국가들 역시 쇠망을 맞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플라톤은 언어 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 싼 모든 것의 석양 앞에 서 있었던 셈입니다.

언어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의미의 전달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이전에는 잘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다채롭고 풍성하며 의미있는 나의 세계들을 언어로 완전하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그리 소질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글을 쓰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노력 중이었다. 책을 읽으며 표현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한번쯤은 다시 묻게 된다. 이 마음을 모든 삶을 걸고 꼭 전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 꼭 완벽하게 표현해야만 하는 걸까? 사실 그것은 불가능한 목표인 것을.

무심히 강가를 산책하는 당신을 먼발치에서 볼 때마다 나는 라일락 냄새를 갑자기 들이마신 것처럼 멍해지곤 했습니다.


이 세계에는 악과 고통이 있고, 거기 희생되는 무고한 사람들이 있다.
신이 선하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그는 무능한 존재이다.
신이 선하지 않고 다만 전능하며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는 악한 존재이다.
신이 선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면 그를 신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선하고 전능한 신이란 성립 불가능한 오류다.

그렇다면 나의 신은 선하고 슬퍼하는 신이야. 그런 바보 같은 논증 따위에 매력을 느낀담다면, 어느날 갑자기 너 자신이 성립 불가능한 오류가 되어버리고 말걸.


나는 신에게 왜 그토록 어리석은 연인이었을까요. 당신에 대한 사랑은 어리석지 않았으나 내가 어리석었으므로, 그 어리석음이 사랑까지 어리석은 것으로 만든 걸까요. 나는 그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지만, 사랑의 어리석은 속성이 내 어리석음을 일깨워 마침내 모든 것을 부숴버린 걸까요.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한다는 중간태의 희랍어 문장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할 때, 진실 역시 어리석음에게서 영향을 받아 변화할까요. 마찬가지로 어리석음이 진실을 파괴할 때, 어리석음에도 균열이 생겨 함께 부섲서질까요. 내 어리석음이 사랑을 파괴했을 때, 그렇게 내 어리석음 역시 함께 부서졌다고 말하면 당신은 궤변이라고 마말하겠습니까. 목소리. 당신의 목소리. 지난 이십년 가까이 잊은 적 없는 목소리. 내가 아직 그 목소리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면, 당신은 다시 내 얼굴에 그 단단한 주먹을 날리겠습니까.


자라면서 그녀는 이 일화를 반복해 들었다. 하마터면 넌 못 태어날 뻔했지. 주문처럼 그 문장이 반복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잘 읽을 수 없을 만큼 어린 나이였지만, 그녀는 그 문장이 품고 있는 섬뜩한 차가움을 분명하게 느꼈다. 그녀는 태어나지 못할 뻔 했다. 세계는 그녀에게 당연스럽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사실, 건강이 걱정스러운 사람은 오히려 너야.

너는 불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지 않니. 무엇에든 몰두하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여서, 결국엔 병을 얻고 마는 사람이지 않니. 계집애 같은 오빠와 사내애 같은 여동생. 친척들은 늘 우릴 그렇게 비교했지. 넌 그런 말을 죽기보다 싫어했지. 나처럼 서랍을 정리하라는 말. 나처럼 책가방을 미리 챙겨두라는 말. 나처럼 글씨를 반듯하게 쓰라는 말. 나처럼 공손하게 어른의 얼굴을 올려다보라는 말. 기차 화통 같은 목소리로 너는 엄마에게 소리지르곤 했지. 그만 좀 해요. 열이 나서  살겠어. 냉장고에라두 뛰어들고 싶을 지경이라구.


이곳의 여름밤을 기억하니.

한낮의 무더위를 보상하는 듯 서늘하게 젖은 공기.


고대 희랍인들에게 덕이란, 선량함이나 고귀함이 아니라 어떤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하잖아. 생각해봐. 삶에 대한 사유를 가장 잘 할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언제 어느 곳에서든 죽음과 맞닥뜨릴 수 있는 사람... 덕분에 언제나, 필사적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러니까 나같은 사람이야 말로, 사유에 관한 한 최상의 아레테를 지니고 있는 거 아니겠니?


'아무래도 넌 문학을 하는게 좋겠어.' 그렇게 넌 까다로운 친구, 지지독히 까다로운 동갑내기 스승이었지.
그 스승이 나에게 충고했던 것이 아마도 옳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어. 문학 텍스트를를 읽는 시간이 견딜 수 없었어. 감각과 이미지, 감정과 사유가 허술하게 서로서로의 손에 깍지를 낀 채 흔들린리는 그 세계를, 결코 신뢰하고 싶지 않았어.


우리가 가진 가장 약하고 연하고 쓸쓸한 것, 바로 우리의 생명을 언젠가 물질의 세계에 반납할 때, 어떤 대가도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언젠가 그 순간이 나에게 찾아올 때, 내가 이끌고 온 모든 경험의 기억을 나는 결코 아름다웠다고 만은 기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렇게 남루한 맥락에서 나는 플라톤을 이해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라고. 그 역시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라고. 완전한 것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세상에는.


네가 나를 처음으로 껴안았을 때, 그 몸짓에 어린, 간간절한, 숨길수 없는 욕망을 느꼈을 때, 소름끼칠 만큼 명확하게 나는 깨달았던 것 같아. 인간의 몸은 슬픈 것이라는 걸. 오목한 곳, 부드러운 곳, 상처 입기 쉬운 곳으로 가득한 인간의 몸은, 팔뚝은, 겨드랑이는, 가슴은, 샅은, 누군가를 껴안도록, 껴안고 싶어지도록 태어난 그 몸은.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