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 제목부터 불경스러워서 예전같으면 빌려올 엄두도 내지 못했을텐데 가져와서 재밌게 읽었다.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하게 삶을 들여다 본다는 점이 좋았다.

모든 정신병리의 시작은 자기기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 모습보다 과장된 자기 모습, 이상화된 자기 모습을 더 사랑하면서

헤어나올 수 없는 간극에 붙잡혀 있을 때 사람은 정신의 건강함과 진정한 행복으로부터 멀어진다고.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솔직한 선구자들이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나누는 이야기들은, 얼마나 솔직하고 행복한지.

멋지다.

 

 


 

p.6

​오늘의 질문: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이 있나요?

친애하는 누군가가 내 페이스북에 이 질문을 남겼고, 나는 모두가 볼 수 있게 대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간단하게 대답하자면, 다행히도 '아니요'다.

 더 길게 대답하자면, 나는 어머니가 되는 문제에 관해서 세상에는 세 부류의 여성들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어머니의 운명을 타고난 여자, 이모의 운명을 타고난 여자, 아이로부터 반경 3미터 내에 있어서는 안 되는 여자. 진정한 본성을 고려했을 때 잘못된 범주에 속한다면 이는 (개인적으로나, 가족에게나, 더 크게 보면 지역사회 전체에) 비극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를 갈망하지만 가지지 못하는 여자들은 우리도 알다시피 굉장한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적절하지 않은,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또한 굉장히 고통받는다. (스스로 충족시킬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는 책임감에 갇힌 그 어머니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모로 타고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우리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와 즐겁게 있을 줄 알지만, 내 자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알고 있다. 역사상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 그런 생각은 절대적으로 괜찮은 것이다. 자, 보자. 내 앞에 아기가 놓여 있을 때면 안심해도 좋다. 나는 그 아기를 잘 어르고 놀아주며 사랑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아이를 사랑해 주면서도 나는 가슴으로 알 수 있다. 이건 내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결코 운명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이것이 진심임을 알기에 나는 묘한 환희를 느낀다.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만큼이나 내가 무엇이 될 수 없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엄마는 아니다.

- 엘리자베스 길버트


도대체 어머니의 운명을 타고나는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 회음부절개를 비롯하여 출산 굴욕3종세트를 모두 정확히 알고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는 여성의 비율이 과연 몇프로나 될까?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여성은 이모의 운명을 타고나는 것 아닌가? 정부와 교회와 각종 권위적인 단체들이 입을 모아 '출산의 신성함과 당위성'을 압박하고 있고 성욕이라는 생물학적 기제도 한 몫 하는 덕분에, 인류가 출산률 저하로 멸종할거란 걱정은 하지 않고 있지만..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에 가지는 이 수많은 여성들의 죄책감은 어떻게 해야할까 싶었다. 그런 점에서 숨을 탁 틔워주는 구구절절이다.

p.9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는 어떤 선택도 판단하지 않는다. 이 책은 그저 60년대에 성인이 되어 이제 모두 60대가 된 여성들에게 앞으로 나와서 개인적인 경험, 구체적으로는 선택한 것이든 아니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든 아이 없는 삶을 살게 된 원인을 공유해 달라고 내가 부탁한 결과다.


실제로 예전같았으면 제목부터가 불경해서(?) 읽을 생각도 못했을 책인데 이 책은 어떤 선택을 강요하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때, 여자들이 출산으로 인해 가지게 되는 기회비용이 점점 어마어마해지는 사회에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꽤 정당해 보인다. 생명의 존엄함과 가치를 비용과 효율로 산출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아이에게는 성장과 삶이 그 부모에게는 수많은 비용과 생명을 갈아넣는 것임을 감안할 때.. 저자들이 자신의 선택에 더 "확신"을 가지고 "추천"하지 못하는 모습이 의아하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아무래도 60년대를 지나온 60대 여성들이라서 그런걸까? 어쨋거나 어르신들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조국의 지인들보다도 진보적이고, 그럴듯하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깊다.


p.23

 나는 스물한살에 젊은 군인과 결혼했다. 결혼하기 무섭게 부모님과 친구들은 첫 아이를 언제 볼 것인지, 아이는 몇 명 낳을 계획인지 물었다. 그리고 내가 전업주부가 되겠다는 확답을 하길 원했다. 대체로 내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에서는 드러나게든 암묵적으로든, 순결, 결혼, 엄마 노릇(성 삼위 일체)이 어떤 여자에게든 허락된, 지상낙원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믿었다. ...

 우리 사이는 절대 안정되지 않았다. 내게는 결혼이 사람들 말처럼 좋지 않았다. 순결, 결혼, 아이라는 삼위 일체 속에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들은 나로서는 불량품을 속아서 산 기분, 사탕발림에 넘어간 기분이었다. 아이를 가지자는 말에 계속 '아니요'를 내세우면서 9년이 흘렀고, 남편은 이혼을 청구했다. 나는 우리 둘을 영원히 이어줄 아이가 없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아이가 있으면 결혼생활이 단단해지고 부부사이가 좋아진다는 말도안되는 얘기는 더이상 사람들이 많이 믿지 않는 것 같은데 (이 정도 조차도 내 생각이지만), 어쨋거나 생명 자체를 도구화 하는 것이 너무너무 싫음에도 삶이라는 것이 내 생각처럼만 딱딱 떨어지는것은 아니니까. 이런 모든 사실들을 감안하고서라도 불행한 결혼생활을 지탱해줄 끈으로,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하다. 오히려 부부관계가 불행하다면, '아이가 없으니 다행' 일텐데?


p.36

 1960년대 초에 혼전임신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치욕적이었는지를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 설명할 길은 없다. 피임약을 구하기 쉬워진 6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성의 혁명'이 일어났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 전까지 혼외임신을 해결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결혼이었다. 열여섯 살에 임신한 친구에게도 이것이 해결책이었다. 흔히 그럿듯이, 이런 경우에는 발표하기 몇 개월 전에 이미 결혼을 비밀스럽게 진행한 것처럼 꾸몄다. 하짐나 이렇게 허울 좋게 해놔도 예비엄마는 다른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다. 물론 인기 많은 미식축구선수인 예비아빠가 전학을 가서 연승기록이 깨지는 일은 없었다.


p.38

우리 부모님은 나를 능력에 한계가 없으며 마음 먹은 것은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도록 키우셨다. 나는 어릴 때 주로 여성에 관한 책을 탐독했다. 마리 퀴리, 나이팅게일, 잔다르크, 클레오파트라... 감탄을 자아ㅐ는 이 모든 이야기들은 내게 독립심을 불어넣어 남들이 덜 밟은 길을 따르고 싶게끔 했다. 그리고 그 길에는 아이가 없었다.


p.60

"젠장, 아이 낳는 걸 깜빡했네!"


진정한 힙스터


p.66

아이 낳지 않은 걸 후회하느냐고?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가끔은 성인 자녀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쨋든, 내가 아흔다섯 살 어머니를 돌봐드리듯이 나를 돌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아이가 있다고 나를 돌봐줄 사람이 확실히 보장되는 건 아니다. 선천적으로 큰 결함이 있을수도 있고, 마약중독자일 수도 있으며, 외국 전쟁에 나갔다가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내가 늙으나 마나 신경쓰지 않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놈일 수도 있으니까.


메디아의 마지막 코러스들의 대사가 생각났다. 코러스들은 신을 원망한다. 신은 여성으로 하여금 아이를 낳고 기르게 하지만, 결국 그 아이를 행복하게, 내 마음대로 기를 수도 없다는 푸념들. 결국 자식을 수단화 하는 것도 못마땅한데, 한걸음 물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키우는 것조차도 너무너무 어려운게 세상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참 머리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결정하여 자녀를 낳고 기른다는게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ㅋㅋ


p.94

나는 신의와 영원함이라는 전통을 원하면서도 내 앞길을 막지 않으려는 남자를 찾아낸 것이다. 프레드는 내 꿈을 존경했고, 우리가 있을 시간을 빼앗아가는 대외활동도 지지해줬다. 그리고 믿고 있는 대의에 강박적으로 헌신하려는 내 모습도 받아들였다.

 

내 소개인줄 ㅋㅋ


p.95

"너랑 프레드가 왜 그렇게 행복한 지 알 것 같아. 너희 부부는 아이가 없잖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여러 프로젝트를 하고, 여행을 다니고, 책을 읽은 후 공유하고, 우리 뿐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요리를 해 주고, 대의를 지지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아이 있는 삶이 아닌 서로와의 관계로 정의된다.


p.165

"많을수록 좋다. 선택도, 시간도, 자유도, 그리고 독립도"

 

 

posted by sergeant

빨강머리 앤이 하는말 - 2017.03.23

독서/기타 2018. 6. 18. 18:21

 

아무래도 전자책은 쉽게 읽히는 책들을 고르게 되고, 그만큼 후루룩 넘겨 읽게 된다.

차분히 숨고르기 하는 기분으로, 오후를 함께 보낼 좋은 친구같았던 책.

빨강머리 앤이 스웨덴 작가의 소설인데 일본인들이 애니메이션화 했다는 말 덕분에

오후에는 급 생각난 하울의 움직이는 성까지 다시 찾아서 보게 되었고..ㅎㅎ

이렇게 작품은 작품을 낳고 연결 되고

또 마음의 평온함과 따뜻함을 찾아 준다.


마지막 부분에 "앤의 말이 다 맞는건 아니야"라고 하신 작가님, 하하

책들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은데

나도 조각조각 부스러져있는 나의 내적 세계를 구축해서 짠하게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냥 ...이 역시도 너무 에너지 드는 일이며.. '내 세계에 대한 심각하게 받아들임'은 이정도에서 멈추자 싶다.

 

 


 

전자책

p.22

 희망이란 말은 희망 속에 있지 않다는 걸.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걸. 그 꽃에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일 거라고.


p.35

"인간의 행동 중 일부는 감정 없이, 의식적인 목적 없이, 자아와 목표 사이의 진정한 동화 없이 그저 습관처럼 이루어진다. 의미 없는 행동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진심을 갖고 행동할 때 행복을 경험하고, 감각을 깨울 수 있다."

이런 저런 행복학 관련 책들을 읽다가 내가 느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나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직업적 성공, 발전적 진화, 자아 성장에 과도하게 관심이 큰 탓에, 나 이외에 다른 사람과의 진정한 관계에 투자하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심지어 잠 역시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대다수의 사람은 '내'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공감'을 구축해 낸 사람들이다.


p.38

(노인들의) 시간 시야가 좁아진다는건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은 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과거와 미래에서 자유로워지면, 자신에게 주어진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된다.


그러나 역시 이러한 말들은 젊은이들에게만 완벽하게 적용되기 어려운 구문이란게 아쉬웠다. 여전히 의미는 있다. 게으른 내가 요즘 실천하는 모토이기도 하다.


p.53

사실 쾌락주의는 절제를 통해 그것을 깊게 체험하라는 말과 같다. 꿀을 좋아하는 곰돌이 푸우가 가장 행복해 하는 시간은 사실 '꿀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꿀을 기대하는 시간'이다. 꽃은 활짝 피기 전이, 꿀은 먹기 전이 가장 달콤하다.

 우리는 너무 즉각적인 만족의 세계에 사는 건 아닐까? 기다림은 우리에게 결과를 떠나 과정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히려 만끽이라는 말은 이 설렘 뒤에만 따라오는 충만일지도 모른다.


p.82

부당함에 대응해 화를 낸다는게 요즘 같은 세상에서 얼마나 어려운가. 화를 내지 않는 게 매너를 넘어 약자들에게만 요구되는 부당한 감정 노동이 된 세상이다. 별것도 아닌 것에 참았던 화가 폭발하는 '분노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제대로 화를 낼 수 없는 세상이 만든 부작용이다.


이젠 개인을 넘어서 사회 구조를 볼 수 있는 통찰들이 좋다.


p.86

"체 게바라의 혁명 정신도 스타벅스의 카페라테처럼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시대에 혁명이란 몸사이즈가 66에서 44로 줄어들거나, 키가 160에서 170으로 늘어나는 일 뿐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없다고 친구가 얘기했는데, 말과 뇌가 일치하는 사람도 보기 힘든 세상이다.


p.89

 요즘같이 외모가 중요한 시대에 겉모습은 상관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건 사실도 아니고, 솔직한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 같은 사람에게 스타일에 대해 묻는다면, 가장 쉬운 방법을 말해주고 싶긴 하다.

"그냥 계속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그걸'입으세요. 가장 중요한 건 '자주'보다 조금 더 '자주' 입어서 마치 '매일' 입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p.91

나는 한 때, 미인이 되는 건 예쁜 꽃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중요한 건 할미꽃이든 호박꽃이든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p.106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는 말은, 같이 있음을 전제하기에 가능한 말이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도 해봄직하다. 우리에겐 대체 몇 명의 진짜 친구가 필요한 걸까? 흥미롭게도 마지막 질문에 숫자로 대답한 살마이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진화생물학 교수인 로빈 던바는 진짜 친구의 수는 최대 150명이라고 여러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던바의 수'다.


...예상보다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ㅋ


p.108

사랑을 가장한 욕망, 우정으로 포장된 필요가 아니라 진짜 감정 말이다. 나는 종종 그런 관계를 꿈꾼다. 모든 곳에 있고, 어디에도 없는 관계. 그리하여 우리 각자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관계를.


p.178

"데제생트는 짐 16개와 하인 2명을 거느리고 네덜란드 자체를 여행했을 때보다 박물관에서 골라놓은 네덜란드의 이미지들을 볼 때 네덜란드 안에 더 깊이 들어가 있다."


내게 있어 여행이란 끝없이 집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끝없이 집으로 되돌아오는 일이다. 내게 떠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되돌아오는 일이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이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집에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라면,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일.


p.202

누군가의 성공담에는 교훈이 있지만 위안은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실패에서 위로받는다.


역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는 민족다운 구절이라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보편적인 현상이려니.


p.210

돈을 버는 이유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 시니컬한 후배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그녀에게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사는 건 100퍼센트의 삶이 아니며, 또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인생의 목표를 행복에 맞추면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해지기 힘들다는걸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바꾸셔서 반가웠다.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나 지향점은 아닐테니까. 그다시 시니컬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후배 생각이랑 내 생각이 너무 비슷해서 그런가........어쨋거나 우리사회는 피로도가 높은 사회다.


p.428

이제 나는 종종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가 아니라, '해야 하지만 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 말하게 된다. 앤과 함께 3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 온 나는 이제 '결핍'을 채우는 일 보다 더 중요한 건, 어쩌면 '과잉'을 덜어내는 쪽이 아닐까란 생각도 한다.


그래, 우리 세대는 아무래도 과잉의 세대이다. 그리고 그 과잉은 쓸데없는 것들의 과잉이기 때문에 진정한 결핍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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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rgeant

이번주는 길이가 짧고 무게가 가벼운 책들로 준비해 보았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용까지 깊이가 없거나 지나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 책은 성평등교육이 가장 잘 이루어졌다고 여겨지는 스웨덴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필독서로 일컬어지는데,

막상 스웨덴에서는 페미니즘의 기치를 교육받고 자란 학생들에게 내용 자체가 좀 구식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한 칼럼니스트가 가벼운 불평을 했다는 얘기도 참 흥미로웠다.


남자만 혹은 여자만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좀 더 나아져야 한다'는 그녀.

따뜻한 시각으로 자신의 이야기기와 생각을 쉽고 담담하게 풀어가는 아디치에는 분명 매력적인 작가이다.

 

 


 

p.13

그는 내게 사람들이 내 소설을 두고 페미니즘적이라고 수군거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충고하기를,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슬픈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요, 나더러 절대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란 남편을 얻지 못해서 불행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이지리아 여성인 웬 학자가 나더러 페미니즘은 나이지리아 문화가 아닌 비아프리카적인 것이며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서구의 책에 영향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지적은 퍽 흥미로웠는데, 왜냐하면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 대부분이 분명 반페미니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열여섯까지 나는 당시 출간되었던 밀스앤분의 로맨스 소설을 아마 한권도 안 빼고 다 읽었을 걸요. 그리고 페미니즘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시도할 때마다 따분해져서 끝까지 읽으려면 안간힘을 써야만 했습니다.)

 아무튼 페미니즘이 비아프리카적이라고 하니까, 나는 이제 스스로를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 하나가 나더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이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더 나중에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남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농담이었지만, 이것만 보아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깔려 있는가, 그것도 부정적인 함의가 깔려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브래지어도 싫어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싫어하고, 늘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고, 유머감각이 없고, 심지어 데오도란트도 안 쓴다는 거지요.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루어진 세상..오늘도 뉴스를 보며 역시,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며, 명불허전..!!


p.20

남자와 여자는 다릅니다. 호르몬이 다르고, 성기가 다르고, 생물학적 능력이 다릅니다. 여자는 아기를 낳을 수 있지만 남자는 못 낳습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테스토스테론을 더 많이 갖고 있고 일반적으로 여자보다 육체적으로 더 강합니다. 세상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약간 더 많습니다. 세계 인구의 52퍼센트가 여성입니다. 하지만 권력과 명예가 따르는 지위의 대부분은 남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작고한 케냐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는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묘사했지요. "높이 올라갈수록 여자가 적어진다." 

... 남자들은 말 그대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합리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에는요. 당시에는 육체적 힘이 생존에 가장 중요한 자질이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남자가 육체적으로 더 강합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혀 다릅니다. 오늘날 지도자가 되기에 알맞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더 강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더 지적이고, 더 많이 알고, 더 창의적이고 더 혁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질들을 좌우하는 호르몬은 없습니다. 남자 못지 않게 여자도 지적일 수 있고, 혁신적일 수 있고,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요즘 육사든 어디든 여자들이 휩쓸고 있는걸 보면........ 오히려 에스트로겐이 자질을 좌우하는 호르몬인거 아닐까... 아무말...


p.23

 얼마 전에 나는 라고스에서 젊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관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 하나가 그 글을 읽고는 성난 글이었다며, 그렇게 성난 투로 이야기해서는 안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성이 나니까요. 오늘날 젠더가 기능하는 방식은 대단히 불공평합니다. 나는 화가 납니다. 우리는 모두 화내야 합니다. 분노는 예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노에 더해 내게는 희망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더 나은 자신으로 변하는 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p.30

 우리는 아이들의 인간성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남성성을 대단히 협소한 의미로만 정의합니다. 남성성은 좁고 딱딱한 우리와 같고, 우리는 그 속에 남자아이들을 밀어넣습니다.

 우리는 남자아이들에게 두려움, 나약함, 결점을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칩니다.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감추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남자아이는, 나이지리아 표현으로, 단단한 남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중학생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함께 외출하면, 둘 다 십대라서 용돈이 몇푼 없는 것은 똑같지만 늘 남자아이가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돈을 다 내야 한다고들 여깁니다. (그러고서는 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부모의 돈을 슬쩍하는 경우가 더 많을까 의아해하지요.)

 만일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남성서오가 돈을 연결 짓지 않도록 배운다면 어떨까요? "원래 남자애가 내는 거야" 대신 "남자든 여자든 돈이 더 있는 사람이 내는거야"라는 태도를 취한다면 어떨까요? 물론, 지금까지 누려온 이점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실제로 돈이 더 많은 사람은 대체로 남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부터 아이들을 다르게 키운다면, 앞으로 오십년 혹은 백년 뒤에는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물질적 수단으로 증명해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더는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사실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또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대단히 몹쓸 짓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 요령껏 맞춰주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자신을 움추리라고, 자신을 위축시키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망을 품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크게 품으면 안 돼. 성공을 목표로 삼아도 괜찮지만 너무 성공해서는 안 돼. 그러면 남자들이 위협을 느낄 테니까. 설령 남자와의 관계에서 네가 가장 노릇을 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는 특히 그렇지 않은 척 해야 해. 안 그러면 남자가 기가 죽을 테니까.


p.33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여성이라서, 사람들은 늘 내가 결혼을 갈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삶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서 행동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은 물론 좋을 수 있습니다. 결혼은 즐거움, 사랑, 서로에 대한 지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는 결혼을 갈구하도록 가르치면서 남자아이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요?

 내가 아는 한 나이지리아 여성은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할지도 모르는 남자의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갖고 있던 집을 팔았습니다.


p.35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어"라는 말은 남자든 여자든 공히 자주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그 말을 할 때는 보통 어차피 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포기한 경우입니다. 남자들은 짐짓 부아가 난 척하면서, 사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 우리 마누라가 매일 밤 클럽에 가는건 안 된다고 하잖아. 그래서 이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주말에만 가기로 했어."

 반면에 여자들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말할때는 보통 직장이나 경력이나 꿈을 포기한 경우입니다.

 우리는 여자들에게 남녀 관계에서는 원래 여자가 더 많이 타협하는 거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도록 가르칩니다. 일자리나 성취에 대한 경쟁이라면 좋을 수도 있다고 보지만, 그게 아니라 남자들의 관심을 놓고 경쟁하도록 가르칩니다.


,,,전 세계 남자들이 다 이런거였구나..


p.43

젠더는 대화하기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주제를 불편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짜증스럽게 여깁니다. 남자도 여자도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리며, 혹은 젠더 문제를 성급히 부정해버리려고 합니다. 현 상태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란 늘 불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p.44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되나요?" 왜 안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p.45

 또 어떤 남자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좋아요, 이건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는 젠더를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고요." 어쩌면 정말 의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문제의 일부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젠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거나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내 친구 루이스처럼, 옛날에는 상황이 나빴을지 몰라도 지금은 다 좋아졌다고 말한다는 점 말입니다. 그리고 많은 남자들이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만일 당신이 남자인데 식당에 갔더니 웨이터가 당신에게만 인사를 건넨다면, 웨이터에게 "왜 이 여자분에게는 인사를 안 합니까?" 라고 물어볼 생각이 들까요? 이렇듯 겉보기에는 사소한 상황들에서, 남자들이 나서서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문화를 만듭니다. 만일 여자도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우리 문화에 없던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문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p.90

 나는 요즘 나이지리아를 휩쓰는 오순절주의를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 ㅇ낳습니다. 나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는데, 내가 어렸을 때는 대부분의 나이지리아인들이 온화하고 중도적인 기독교인이었지요. 영국성공회 교회에 나가거나 가톨릭 성당에 나가거나 둘 중 하나였지요. 요즘은 어디에나 극단주의가 만연해 삶의 모든 측면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극단주의에는 미신이 어느정도 뒤따르기 때문에, 그들과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정신을 둔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이 오순절주의는 몹시 자기 중심적이고, 물질적 풍요에 집중합니다. 이 새로운 종교를 믿는 사람은 세상 무엇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종교는 전통지식에 적대적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전통 지식을 파괴하고 있어요. 그들이 파괴한 지식, 우리가 기독교 이전에 어떤 사람들이었나 하는 지식은 우리가 되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posted by sergeant

절망너머 희망으로 - 2017. 03. 16

독서/여성주의 2018. 6. 18. 18:17

 

원제, Half the Sky, 절망 너머 희망으로는 페미니즘 서적의 고전 반열에 들어가는 책으로 알고 있다.

친구는 제목을 듣더니 탄핵 당하신 그분의 자서전 제목이 너무 떠오르신다고...

그러나 유쾌하지 않은 연관성을 제하고, 제목 자체가 갖는 의미가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책의 내용은 말그대로 절망스럽고 충격적이다.

문체는 쉽고 직관적으로 다가오고,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거시적이지만은 않았지만

담고 있는 내용 자체가 너무나 끔찍하고 참담해서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았다.

세계 각지에서 겪고 있는 인구 절반의 고통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책을 읽는 중간에 내내

'도대체 희망은 언제 나오는걸까' 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미국에서 흑인노예제 폐지 운동이 진행되었던 것처럼,

인구의 절반이 노예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기후 변화에 대한 걱정 보다도 더 적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여성들이 온전하게 기능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다.


저자는 희망을 '교육'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범대학에서 20대의 절반 이상을 보냈고 누구보다 교육의 가치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내 삶의 틀에만 교육을 가두게 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다시 초심을 일깨워 주는 책이었다.

 

 


 

 

p.7

서문- 여성효과


여성들이 없으면 남성들은 어떻게 될까? 곤궁, 아주 곤궁해진다. -마크 트웨인


p.8

위험을 무릅쓰고 온정을 베푸는 캄보디아 시골 소녀의 모습. 그것이 라스의 매력이자 인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을 잘 믿고 매사를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그녀의 천성은 오히려 위험을 불러왔다. 열 다섯살에 가족이 무일푼이 되자, 라스는 빚에 찌든 부모님을 돕기 위해 타이에서 설거지 일이라도 찾기로 마음먹었다. 라스의 부모는 딸의 안전이 염려되었지만, 딸의 친구들이 네 명이나 같은 타이 식당에서 일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그러나 라스에게 일을 주선한 브로커는 소녀들을 타이의 낯선 지방으로 데려가슨 ㄴ인신매매단에게 넘겼고, 인신매매단은 소녀들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데려갔다. 라스는 그때까지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타워를 비롯해 눈부신 고층건물들과 말끔한 거리에 현혹되어 모든 것이 안전하고 별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인신매매단 일당이 라스와 다른 두 소녀를 매춘을 일삼는 술집에 감금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

 스스로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깨닫고 라스는 큰 충격을 받았다. 대장은 라스를 손님으로 온 남자의 방에 몰아넣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게 했다. 완강히 저항하는 라스에게 남자는 화를 내며 욕을 해댔다. "대장이 제게 화를 내며 주먹으로 얼굴을 내리쳤어요. ..." 라스는 자신을 때리는 대장에게 더 이상 반항하지는 않았지만, 흐느껴 울며 그의 말을 따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장은 자신들이 이른바 '해피 드럭'(happy drug, 비아그라와 같은 발기부전제)이라 불리는 약을 라스에게 강제로 먹였다. 정확히 무슨 약인지도 모른 채 그 약을 먹은 라스는 대략 한 시간 동안 머리가 띵하고 몸에 힘이 빠지면서 마음이 편해졌고 대장의 말에 복종하게 되었다. ...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너무 끔찍해서 체크해 두었는데 이게 시작에 불과했다는게 더 끔찍했다.

동남아를 다니며 성매매를 일삼는, 아 그것도 주로 미성년 성매매를 일삼는 벌레같은 인간들에게 더 혐오감을 가지게 되었다.


p.13

유명한 재야인사가 중국에서 체포당했다. 우리는 신문 1면을 그 기사로 장식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소녀들과 여성들이 납치되어 사창가로 팔려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기사로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기자들은 대개 특별하고 새로운 기사를 다루기를 좋아하는 반면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과 같이 흔히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성차별이 위험한 수준에 있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1억명 이상의 여성이 사라지고 있다." 센은 1990년 <뉴욕 서평> 기고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센은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오래 살기 때문에, 거의 모든 곳에서 여성의 수가 남성의 수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 그러나 남녀 불평등이 상당히 심각한 지역에서 이런 비율은 사라진다. 중국에서는 여성 100명당 남성 107명의 인구비율을 보이며, 이러한 격차는 신생아 성비에서 더욱 벌어진다. 여성 100명당 남성 비율은 인도의 경우 108명, 파키스탄은 111명을 차지한다. 이런 성비 불균형은 생태학적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 사실, 인도에서 여성 교육 수준과 남성평등 수준이 가장 높은 남서부의 케랄라 주는 미국과 같은 남녀 성비를 보인다.

 센 교수는 오늘날의 남녀 성비를 근거로 여성 1억 700만 명가량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서구 세계에도 나름의 성차별 문제가 퍼져 있지만, 이 부유한 세상에서 성차별이란 주로 임금 차이나 스포츠 팀의 지원 차이, 직장 상사의 성희롱 등을 의미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은 굉장히 치명적이다. 예컨대 인도에서 여아들은 남아들에 비해 예방접종을 제대로 받지 못할 뿐더러(예방 접종을 제대로 받지 못해 사망하는 여아들의 수는 인도의 '사라지는 여성들' 중 5분의 1을 차지한다), 대부분 아파도 병원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다.  ... 가장 이해하기 쉬운 수치를 제시하자면, 인도에서는 성차별로 4분마다 한 명씩 여아가 죽는다.


p.15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학대받는 수준을 수치로 나타낸 결과는 실로 우리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지난 50년 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어간 이들의 수가 20세기에 인종 간, 지역 간 갈등으로 벌어진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남성들을 모두 합친 수보다 많았다. 10년간의 수치를 봐도 일상적인 젠더사이드로 희생당한 여성들의 수가 20세기에 '인종학살'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모두 합한 수를 넘어섰다.


p.16

 19세기에는 노예제도, 20세기에는 전체주의를 타파하는 것이 주요한 도덕적 목표였지만, 현시대에 가장 우선시해야 할 도덕적 목표는 전 세계에 양성평등을 실현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p.23

명예 살인, 여성 인신매매, 여성 성기 절제 등은 현재의 서방세계 사람들에게 비극적인 일로 보이겠지만, 이는 먼 과거에 서방세계에서도 자행되던 일이다. ... 수천년 동안 인류는 노예제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1780년대에 윌리엄 윌버포스를 위시한 브리튼 사람들이 노예제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노예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들은 뜻대로 노예제를 폐지했다. 오늘날에도 해야 할 일이 있다. 학대받는 여성들과 소녀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범세계적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p.31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인도, 파키스탄, 이란과 같이 엄격하고 성적으로 보수적인 사회에서 상당히 많은 여성들이 매춘에 강제로 동원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젊은 남성들이 애인과 잠자리를 거의 갖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매춘을 통해 성적 욕구를 해소한다. (이게 뭔 씨발스러운 내용이지)

 젊은 남성들이 매춘을 통해 욕구를 해소하는 것과 달리 상류층 여성들은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암묵적인 인식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으며, 집장촌에서는 대개 네팔이나 방글라데시, 인도의 가난한 마을에서 팔려온 여성들이 몸을 팔고 있다. 그런 여성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하층계급 출신인 경우 사회는 그런 여성들의 고통을 외면한다. 미국에서 남북전쟁 전에 사람들이 노예들을 자신들과는 다른 부류로 취급하여 노예제 폐지에 무관심했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p.36

여러 해 동안 미나와 같은 여성들을 인터뷰하면서 우리는 다른 관점으로 성매매를 바라보게 되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중국과 일본에서 생활한 우리는 매춘을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이나 경제적 고통에 못 이겨 뛰어드는 일쯤으로 여겼다. ... 미국, 중국, 일본에서 활동하는 매춘부들이 대부분 자발적으로 매춘을 하고 있기에 우리는 매춘부들이 노예나 다름없이 강제로 매춘에 동원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노예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노예제도가 횡행했던 19세기와 달리 오늘날에는 많은 매춘부들이 에이즈에 감염되어 20대 후반에 사망한다.) 이런 일을 흔히 '성매매'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성도 매춘도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p.57

노예 제도가 아주 대단한 것이라고 증명하는 책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지만, 직접 노예가 되어 노예제도의 혜택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 에이브라함 링컨


p.58

"주로 테러리스트들의 동태를 감시합니다." 인도인 관리는 트럭이 연달아 지나간 이후로 주위를 전혀 감시하지 않았다. "9.11 사태 이후로 이 곳 감시를 강화했습니다. 밀입국이나 밀수에 대해서도 감시하고 있습니다. 밀수품을 발견하면 즉시 압수합니다."

"윤락가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어떻게 하나요?" 닉이 물었다. "성매매단의 동태도 감시하고 있나요? 엄청나게 많은 여성들이 팔려가고 있습니다."

"그럼요 많은 여성들이 팔려가고 있죠. 하지만 그들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손을 쓸 방법도 없습니다."

"글쎄요, 당신들은 성매매단을 체포할 수 있습니다. 납치당하는 여성들이 밀수되는 DVD보다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닉이 물었다.

"매춘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인도 관리가 낄낄거렸다. "어느 나라에서든 언제나 매춘이 성행합니다. 그러면 18살이 된 남자가 30살에 결혼할 때까지 욕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어디서 존나 많이 듣던 소리를 여기서도...)

"그렇다면, 네팔 여성들을 납치해서 인도의 윤락가에 팔아넘기는 행위가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말씀인가요?" 닉이 반문했다.

인도 관리는 잠시 말을 잃었지만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불행한 일이죠. 하지만 그런 여성들이 희생함으로써 사회가 잘 돌아가고, 선량한 여성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잖아요."

"윤락가로 팔려가는 여성 대부분은 선량합니다."

"아, 그래요.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빈농 출신입니다. 글도 읽지 못합니다. 대부분 촌구석에 처박혀 있던 여성들이에요. 선량한 중간 계급 여성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를 부득부득 갈던 닉이 폭발했다. "무슨말인지 알겠소! 당신이 알다시피 미국 사회도 수많은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습니다. 인도 중간 계급 여성들을 납치해서 미국의 윤락가에 팔아넘겨야겠어요! 그러면 미국의 젊은 남성들이 재미를 보겠죠, 그렇죠? 미국 사회가 참 잘 돌아갈 겁니다!"

 불길한 침묵이 흘렀지만 이내 인도 관리가 폭소를 터뜨렸다. "농담도 잘 하시는군요! 우스워 죽겠어요!"


2백년 전 사람들이 흑인들을 거리낌 없이 사고팔았듯이, 오늘날 사람들은 빈농 출신의 여성들을 사고판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사고파는 목적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팔려가는 여성들의 인권은 철저하게 짓밟힌다. 미국이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려고 애쓴다는 사실을 알기에 인도 정부는 정보부 관리를 파견하여 밀수를 감시하고 있다. 서구 세계가 밀수되는 DVD만큼 성 노예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안다면 인도 정부는 당장에 인신매매를 단속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p.73

'숫처녀 성매매'에 대해서는 특히 더 강경한 단속을 펼쳐야 한다. 특히 아시아에서 인신매매단은 미성년자를 납치하여 성매매를 시킴으로써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 그리고 일단 강간당한 소녀들은 대개 삶을 포기한 채 평생을 매춘부로 살아간다. 대개 부유한 아시아 사람들, 특히 해외에 나간 중국 사람들이 그런 파렴치한 짓을 많이 저지른다. (이봐요 저자님, 최근 보고서들에 따르면 수요자 1위는 한국남자들이라구요. 저희 중국사람들 아닙니다. 설마 저희나라를 중국으로 퉁쳐서 얘기하시는건 아니죠?.. 적다보니 더 열받네) 그들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 즉, 그들을 엄정히 처벌해야 숫처녀 성매매가 일시에 줄어들어 거래 가격도 떨어질 것이고, 결국 인신매매단이 위험부담이 적으면서 수익이 나는 유형의 일을 찾을 것이다.  


p.93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춘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계를 자신에게 맞추기 위해 애쓴다. 그러므로 모든 진보는 비합리적인 사람에게 달려 있다. - 조지 버나드 쇼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납치당하고 팔려가고 강간당하거나 학대당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들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성들이 저항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데에 있다. 세계 각지에서 여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순종해야 한다고, 특히 남성들의 말에 잘 따라야 한다고 세뇌당하며 자란다. 그래서 대개는 배운 대로, 심지어 하루에 스무 번 강간을 당하더라도 웃어야 한다고 배웠다면, 그대로 행한다.

 그런 여성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뜻은 없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하기보다는 학대를 순순히 용인하는 이유를 문화적 측면에서 찾아보고 그에 대한 실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과 어린 소녀들이 폭력에 굴복하고 시키는 대로 매춘을 하는 한, 결코 학대를 이겨낼 수 없다. 더 많은 여성들이 소리치고 저항해야, 그리고 더욱 많은 여성들이 사창가에서 탈출해야 인신매매와 성매매를 뿌리 뽑을 수 있다. 인신매매단은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주로 시골 여성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시골 여성들이 말을 잘 듣고 자신들의 운명에 순응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흑인 인권 운동을 벌인 마틴 루터 킹이 남긴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우리의 등을 똑바로 펴고 자유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네 등을 구부리지 않는 한 아무도 네 등 위에 올라타지 못한다."


p.118

 레이펙스의 탄생은 개발도상국에서 강간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강간 희생자가 전쟁 희생자들보다 많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전 세계 여성들 중 3분의 1가량이 가정 폭력을 경험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또 15세에서 40세 사이의 여성들이 암, 말라리아, 교통사고, 전쟁보다 남성의 폭력으로 인해 더 많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WHO는 대다수의 국가에서 여성들이 30~60%가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육체적 또는 성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전 WHO사무총장 이종욱은 이런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여성들이 건강을 헤치는 주요 요인은 남편이나 남자친구의 폭행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고도 수치심에 강간당한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그래서 성폭행 관련 범죄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근거들을 통해 성폭행 범죄가 급속히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나 여성들의 21%가 강간을 당하면서 첫 성 경험을 하고, 나이지리아 여성들의 17%는 19살에 강간이나 강간 미술ㄹ 견뎌냈다고 말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여성들의 21%는 15살에 강간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여성들은 온갖 유형의 테러를 당하며 지금도 학대당하고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염산 테러는 1967년 방글라데시에서 최초로 발생했다. 지금도 동남아시아에서는 남성들이 자신들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들이나 소녀들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는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염산은 살을 태우고 뼛속 깊이 파고들어 눈에 들어가면 실명하고 만다. 여성을 혐오하는 세계에서 염산테러는 기술적 혁신으로 통한다.

 그런 악행을 자행하는 것은 주로 여성을 억압하고 굴복시키기 위해서이다. 케냐에서 여성 선거 후보자들에게는 24시간 내내 선거 사무실의 보안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치적 적들에게 성폭행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여성 후보자들이 수치심을 느끼고 명성에 손상을 입도록 폭력단은 여성후보자들을 강간하려 한다. 급기야 케냐의 여성 후보자들은 이런 위험에 대비하고 위험에 처했을 경우 시간을 벌기 위해 옷을 몇 겹으로 껴입고 칼을 품고 다닌다.


p.126

 전 세계에 걸쳐 성폭행, 가정 폭력 등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학대의 배후에는 성적 충동과 성적 타락보다 훨씬 사악한 것이 깔려있다. 이른바 성차별주의와 여성혐오증이다.

 왜 유독 마법사들보다 마녀들이 훨씬 많이 화형을 당했을까? 왜 유독 여성들만이 염산 태러를 당하고 있는가? 왜 유독 여성들이 더 많이 발가벗겨진 채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고 있는가?


p.130

 요컨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여성들도 스스로 여성 혐오적인 관념을 체득하고 물려준다. 이런 문제는 폭압을 휘두르는 남성들과 흿애당하는 여성들이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남성들과 여성들이 똑같이 고수하는 가혹한 사회적 악습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법의 도움을 받을 순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사고의 틀을 반드시 전환시켜야만 한다. 그런 악습을 철폐하는데 교육만큼 훌륭한 수단은 없다. 그런 이로한으로 여러 구호단체들이 시골 지역에 학교를 세우고 있다.


p.132

"강간 당한 여성들이 수치심에 못 이겨 대부분 자살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죠." 이후에 무크타르가 우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혔다. "무기는 사용할 필요도 없어요. 강간이 곧 살인이니까요."


p.150

 세상은 유난히 처녀성을 숭배한다. 성서에도 신부가 처녀라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 신부를 돌로 쳐 죽이라는 말이 나오며, 중국 송나라 시대에 발달한 성리학에서는 "여자가 굶어 죽는것은 극히 작은 일이고, 절개를 잃는 것은 극히 큰일이다."고 말한다.

 이런 가혹한 관념은 이제 세상에서 거의 사라졌으나 중동에서는 여전히 존재하며, 특히 오늘날 이러한 관념은 여성ㅇ르 학대하는 ㅈ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정조 관념은, 성폭행의 형태로 변질되기도 하는데, 적대 가문을 응징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그 가문의 딸을 강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152

 간단히 말해서 강간은 보수적인 사회에서 전쟁의 도구가 되는데, 이는 정확히 여성의 순결을 신성시하는 관념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순결을 중요시하는 정조 관념 아래에서 표면적으로 여성들이 보호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정조 관념으로 인해 조직적으로 여성들에게 불명예를 덮어씌우려는 환경이 조성된다.


p.163

 아프리카에서 미국 여성들, 특히 금발을 가진 여성들이 원치 않는 시선에 당황할 때도 많지만, 이는 위험이나 위협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여성들은 대개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생각외로 안전하가도 느끼게 된다. 아프리카 현지 남성들은 서구 여성들을 섣불리 건드렸다간 큰코다친다는 사실을 알기에 서구 여성들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역시, 학대는 권력의 문제이다.




p.171

 이 책을 읽는 이들 중에 다이나의 몸 안으로 꼬챙이를 쑤셔넣은 민병대의 가학적인 잔인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덜하지만 무관심이라는 잔혹함이 우리 사회에 널리 확산되었다. 다잉나처럼 피스툴라로 고통을 겪는 3백만의 여성들에 대한 세계적인 무관심이 바로 그것이다. ... 피스툴라에 걸린 여성들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고 출산으로 인한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그다지 중요치 않은 일로 바라보는 인식 탓이다.


p.179

 WHO는 2005년에 임신이나 출산 중 사망한 여성들이 53만 6000명이라고 발표했다. 이 사망률은 30년 동안 거의 변함이 없었다. 임신이나 분만 사망률이 감소하고 수명이 늘었지만, 1분에 여성 한 명이 출산 중에 사망하고 있듯, 출산은 예나 지금이나 아주 위험스러운 일로 취급된다.


p.187

 의료 시술만이 최선의 대안은 아니다. 이를테면, 여학생들에게 교복만 지원해도 여학생들의 이신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여학생들을 학교에 묶어두게 되고 결국 좀 더 안전하게 아기를 낳을 나이가 될 때까지 결혼을 늦추거나 임신을 하지 ㅇ낳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남부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18개월마다 여학생들에게 6달러짜리 교복을 지원했더니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학생들이 늘어났고...


p.197

그저 생식기능을 다하다가 죽어가는 이들이 남성들이라면, 세상은 그들의 고통을 지켜만 볼까? - 아사 로즈 미기로, 유엔 사무부총장


p.209

 대다수의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산고를 겪어야만 하는 이유를 신화 또는 신학에 입각해 설명함으로써 안전하게 출산하려는 노력을 불식시킨다. 마취를 개발한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여성들은 통상적으로 마취를 하지 않고 출산을 했다. 출산에는 당연히 고통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소수종족 후이촐족은 이와는 반대의 관점을 가진 대표적인 사회집단으로 꼽힌다. 후이촐족은 산모가 겪는 산고는 분담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남편의 고환에 매단 실을 아내가 출산 중에 부여잡게 했다. 산모는 질이 수축되어 고통이 올 때마다 그 줄을 홱 잡아당겼다. 그렇게 남성들도 출산의 고통을 분담했다. 이런 풍속이 널리 확산되었다면 세상도 여성들의 출산으로 입는 상처에 더욱 많은 관심을 쏟았을 것이다.


p.233

식인종들이 아사 직전에 처할 때면 하느님은 항상 무한한 자비심을 베풀어 그들에게 포동포동 살이 찐 선교사를 보내주신다. - 오스카 와일드


p.241

지난 30년간 에이즈는 무관심 속에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무관심은 도덕적 결백을 강조하는 태도에서 불거져 나왔다. 에이즈를 두고 침례교 목사 제리 파웰은 '난잡한 성행위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 표현했고, 상원의원 제시 헬름스는 '의도적이고 여겹고 혐오스러운 행위'라고 규정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를 마칠 때까지 '에이즈'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 독선적인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확산되는 에이즈에 냉담했다. (마치 율법주의자들이 나병환자들을 신의 저주에 걸렸다는 이유로 핍박했던 일화가 떠오른다)

 오늘날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이 동정심을 회복하고 에이즈 퇴치에 탁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콘돔에 대한 이들의 의심은 에이즈 퇴치에 여전히 크나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보수주의자드은 대개 성행위를 안전하게 하는 법을 논의하고 알려나가면 오히려 에이즈가 더 확산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만, 콘돔은 명백히 생명을 구하는 도구이다. 오늘날 콘돔은 개당 2센트 꼴로 아주 저렴하고 에이즈 감염을 줄이는 데에도 비용 대비 효율이 상당히 높다. 캘리포니아 대학이 조사한 결과, 콘돔을 배급하여 1년간 에이즈 감염을 방지하는데 드는 비용은 3달러 50센트에 불과하지만, 에이즈를 치료하는데 드는 비용은 천달러 33센트나 된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콘돔 배급에 백만 달러를 투자하면 에이즈와 관련된 비용을 4억 6600만 달러나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피임약 광고는 판을 치지만 콘돔광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조국의 현실에 눈물을 흘리기 보단 깊은 빡침을 느낀다. 아, 요즘 피임약 광고들은 심지어 임신에 대한 성화까지 보여주던데.... 엄마가 되는 것은 중요하지만 미룬다는 둥.... 꼭 그렇게 모성 찬양을 안하고는 못 참는 걸까? 그냥 차라리 피임 계속 열심히 하라고 얘기해 새끼들아..

콘돔이 그렇게 비용 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배급은 너무도 인색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 언젠가 사람들은 지금을 되돌아 보며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의아해 할 것이다.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은 콘돔의 결함을 과장해 말하면서 콘돔의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애쓴다. .. 보수적 기독교주의자들 중 며몇은 에이즈 바이러스가 지름 10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데 콘돔에 지름 10마이크로미터인 구멍이 뚫려있다는 엉터리 과학을 퍼뜨리기도 한다. 이는 명백히 거짓이며, 에이즈 양성반응자와 음성반응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금욕보다야 못하겠지만 콘돔이 에이즈 감염을 방지하는 데 꽤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도 나왔다.

 엘살바도르에서는 콘돔이 에이즈 감염을 막지 못한다는 경고 문구를 콘돔 포장에 삽입하도록 가톨릭교회가 법안 상정을 부추겼다. 법안을 상정하기 전까지 엘살바도르 여성들 중 첫 성경험을 할 때 콘돔을 사용한 여성은 4%도 되지 않았다.

 바티칸 교황청은 부부 중 한 명이 에이즈에 감염되었을 때 콘돔을 사용하는 것도 비난했다. 이에 한 케냐 출신의 국회의원은 가톨릭교회를 가리켜 '에이즈를 퇴치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표현했다. 브라지 소재 에이즈 관련 언론사의 편집장이자 가톨릭 신자인 어떤 이는 우리를 붙잡고 한탄했다. "가톨릭교회가 전 세계에 에이즈를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잘모 된 일입니다. 신이 그것을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p.245

 여하튼 여성들에게 치명적인 위험 요인은 대개 난잡한 성행위가 아니라 결혼이다. 대체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성들은 결혼하기 전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다가 결혼 후 남편에게서 에이즈에 감염된다. ...??...


p.253

 사회적 약자를 챙기는 사람들은 종교와 관계가 있든 없든 공동의 전선을 수립해야 한다. 2백년 전에 일어난 노예제 폐지 운동이 훌륭한 본보기이다. 당시 자유주의적 이신론자들과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힘을 합쳐 노예제를 철폐했다.


p.270

 성을 둘러싼 문제들과 관련해서 무함마드는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제2대 칼리프 오마르와 같은 무함마드의 후계자들은 남성 우월적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 그들이 강인한 여성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게 된 데에는 무함마드의 가장 어린 애첩이자 이슬람 최초의 페미니스트였던 아이샤와 성격 충돌을 일으킨 이유도 있었다.


p.272

 신학자 알티르미디는 '후리'가 월경을 하지 않고 대소변을 보지도 않으며 축 쳐지지 않은 큰 가슴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살 폭탄 테러범들은 모두 자신드이 천국에서 후리들과 결혼하리라는 기대를 글로 적었고, 무함마드 아타는 9.11 테러 전날에 테러범들에게 후리들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확신을 주기도 했다.

 천국에 도차갛ㄴ 테러범들은 충격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아랍어는 본래 코란에서만 사용한 문어체이고 문장 또한 상당히 복잡하다. 학자들은 학문적 엄격함 속에서 코란의 초기 사본을 분석하고 있는데, 이처럼 복잡한 아랍어가 시리아어나 아람어에서 유래했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나왔다. 신변의 위험을 우려해 크리스토프 룩센버그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한 학자는 '후리'가 '하얀 포도'를 뜻하는 아람어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코란에서는 후리를 진주와 크리스털에 비유했고, 천국에 관해서는 아낌없이 주는 과일, 특히 피로를 풀어주는 포도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천국의 문' 앞에 도착한 순교자들이 받는 게 고작 하얀 포도 한 바구니라면, 자살 테러를 시도할 사람은 과연 얼마나 생길까?


p.278

 특히, 젊은 층에서 남성 인구가 여성 인구보다 많은 사회는 대개 폭력과 범죄가 얼룩진 양상을 보인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커트라이트는 유럽과 비교해 미국에서 폭력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것도 대대로 남성의 수가 많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은 불균형적으로 남성 인구가 여성 인구보다 많았고, 그래서 미국 사회가 폭력과 공격성,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얼룩져 여전히 높은 살인 사건 발생률을 기록하고 잇따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이러한 분석은 남성 중심 문화가 지배하는 모슬렘 사회가 왜 자기신뢰, 명예, 용기, 폭력을 중요시하게 되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p.281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다스리는 정부는 결국 모든 대중을 억압한다는 사실이 여러 근거에서 드러난다. 종교학자 스티븐 피시는 논문에서 "서구인들이 주요한 원인으로 보는 종교 제도나 정치보다는, 여성들의 지위가 이슬람 민주주의의 결핍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 환겨이 정치 시스템에ㅗ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p.293

배움이 돈만 들어가는 일이라 생각한다면, 무지해져 보라 - 데릭 복


이런 글도 본적이 있다.

당신이 죽어 있는 장례식에서, 당신은 그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슬퍼할겁니다.

당신이 멍청해도 마찬가지입니다.


 p.351

 성매매, 여성할례, 명예 살인 등의 악습은 불가피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 ㄴ악습을 철폐하려는 노력은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의견도 여전히 제기된다.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악습을 없애려는 우리의 선의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답을 말하자면 바로 '중국'이다. 한 세기 전이라면 중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느니 죽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전족, 조혼, 축첩, 여아 살해가 전통 문화로 사회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에 시골 지역에서 태어난 여성들은 실제 이름도 가지지 못하고 '두번째누이' 또는 '네번째 누이'와 같은 식으로 불리기도 했다.  ...  지금의 중동에서처럼 중국에서도 여성의 권리를 위한 싸움은 치열하게 벌어졌고, 잔인한 방해 공작도 있었다. 중국의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은 남자들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에 분개했다. 1920년대 말에는 흉악범들이 짧은 머리를 한 여성을 사로잡아서 머리카락을 다 뽑아버리거나 가슴을 잘라버리기도 했다. 흉악범들의 잔인산 대사가 소름을 끼치게 한다. "남자처럼 보이고 싶다면 이렇게 해주지."

 1949년 중국 혁명 이후 중국의 공산주의는 그 잔인한 속성을 드러냈다. 수천만 명이 기근에 시달리고 핍박을 받다가 죽어간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 남아있는 바람직한 유산이 있었다. 여성의 지위 향상이었다. 권력을 쥔 마오는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여성들을 기용했고, 조혼, 매춘, 축첩과 같은 악습을 철폐했다. 마오는 선언했다. "여성들은 세상의 반을 차지합니다."


p.393

 수십년 동안 미국인들은 인종차별의 부당함을 느끼며 살아왔지만, 인종차별은 남부의 문화와 역사에 깊이 뿌리박혀 잇는 복합적 문제로 보이며, 대다수 정의로운 사람들도 그런 부당함에 맞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때 로자 파크스와 마틴 루터 킹, '자유의 기수들'이 나타났고, 하워드 그리핀이 <블랙 라이크 미>을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어느새 불평등은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으며, 동시에 경제가 발전하면서 흑인 차별 정책의 토대는 부괴되어 갔다. 이어서 시민 권리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 서로 결집했고 인종 차별의 실상을 조명했으며 선량한 사람들로 하여금 인종차별을 묵인하게 했던 '눈가리개'를 찢어버렸다.

 마찬가지로 20세기 내내 대기가 오염되고 강물이 기름으로 얼룩지고 동물들이 멸종되었지만, 우리는 환경오염을 막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고 방관자의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 우리는 슬픈 일이지만 필연적인 대가를 치루고 있는 셈이다. 1962년에 레이첼 칼슨이 <침묵의 봄>을 발표하면서 환경 운동에 불이 붙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사창가에 갇힌 여성들과 피스툴라에 걸려 외딴 움막에서 웅크리고 지니는 십 대 소녀들에게 세상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성차별 철폐 운동이 일어나고 빈곤국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기를 고대한다.


도대체 왜 여성은 대기오염보다도 다음순위로 밀려나게 된것인가


p.395

역사를 돌이켜 보면 노예제는 부당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제도로 인식되었다. 걸출한 문학가와 철학자가 많이 탄생했듯, 아테네 사람들은 철학적 사유를 실천하면서도 노예제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토론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를 인정했다. 유대교와 이슬람 신학자들은 노예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노예제 자체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p.396

1790년대에 이르자 노예제 폐지론자들을 경제의 중대성을 모르거나 프랑스의 위협과 같은 지정학적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적 도덕주의자로 보는 시각은 사라졌다. 오늘날에도 대체로 테러나 경제 문제를 '심각한 문제로 바라보듯, 성 노예 문제는 1790년대의 노예제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몇 십년이 흐른 뒤에 사람들은 오늘날을 되돌아 보고 사회가 '성 노예'의 매매를 왜 그리 묵인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21세기에 벌어지는 성매매가 19세기에 성행한 노예무역보다 규모 면에서도 훨씬 심각한 문제였음을 인식하고 잇는데도 말이다. 또 장래에 사람들은 모성 보건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아서 해마다 여성 50만명이 출산 중에 사망하는 사실 앞에서 무척 당황할 것이다.


p.401

국가 인적 자원의 절반이 방치되고 있다면 손실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해 보라.

p.407

여성 해방운동은 다음 네가지 원칙을 따라야 한다.

​1. 진보와 보수를 떠나 광범위한 연대를 구축하라. 이는 좀 더 빠르게 실질적 결과를 얻는 방법이다.

2. 과대 선전을 하지 말라. 인권 단체들은 과장된 예측으로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기자들은 구호단체들이 지난 세번의 기근을 열번이나 예측했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또한 정의와 성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여성에 관한 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고 연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결론을 내는 경향이 있다. 신중하게 조사하고 연구하라. 과장된 예측으로 얻을건 하나도 없다.

3. 남성들을 배제하지 말라. 우리 모두 남성들과 함께 에이즈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에이즈 확산을 막고 남성이 상대 여성에게 에이즈를 전염시킬 가능성이 줄어든다.

4. 여권 운동가들은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 성차별을 금지하는 Title IX법은 체육 활동과 스포츠에서 남녀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성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리라 기대했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체육 수업에서 성차별 금지가 성 형평성의 달성을 의미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성 노예'문제를 다룰 때, 이런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이 방면에서 많은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여권운동가들은 아프리카 임산부들의 목숨과 태아의 목숨을 동시에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요컨대 넓은 시야를 가지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성차별과 폭력을 인지해야 한다.

 

 여기에 다섯번째 원칙을 덧붙이자면, 네가지 원칙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느 유형의 운동에도 유연성이 필요하다.


p.416

"대개 다른 이들을 돕고자 할 때 자기 계발이 된다". 최근 들어 사회심리학자들이 행복에 관한 연구에 집중적으로 몰두했는데, 사람들이 행복이라 생각하는 것들이 행복이 아니라는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 행복 수준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받아서가 아니라 타고나는 것처럼 보인다. ... 한편 헤이트 교수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행복 수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요인을 소개했다. 그 하나는 대의나 인도적 목적과 같이 '큰 의미가 있는 무언가'와 연관이 있다.' 대체로 이런 요인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나 종교 단체를 찾지만, 여성 해방 운동이나 인권운동은 목적의식을 고취하여 행복 지수를 상승시킨다.



<이 책을 읽고 10분간 해야 할 네가지 일>

1. www. womensenews.org나 www.worldpulse.com에 접속해 이메일 등록. 두 사이트 모두 여성 인권 침해 사례와 대처방안 소개한다.

2. www.globalgiving.org이나 www.kiva.org에 접속해 계정을 만들라. 사이트를 둘러보며 단체 활동이나 운영 방식을 파악한 후 기부 대상을 정해 기부를 하라.

3.  Women for Women International, Plan International, World Vision, American Jewish World Service를 통해 빈곤 지역의 소녀들을 후원하라.

4. 빈곤 지역 여성들의 교육을 확대하고 모성 사망을 줄이는 정책을 세울 것을 정부 당국과 국회의원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라. 앞서 이야기 했듯,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여성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지는 않는 실정이지만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하면 태도를 바꿀 것이다. 정부는 국가적 이익이 걸려 있는 ㅇ리에 관심을 보이지만, 지나온 역사가 증명하듯, 가치가 걸려 있는 일에는 항상 이 책의 독자들이라 할 수 있는 일반 시민들이 앞장섰다.



<부록> 중


American Assistance for Cambodia- www.cambodiaschools.com

인신매매를 종식시키기 위한 활동을 벌였으며 현재 빈곤지역 소녀들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 장학금 지원 프로그램 운영


BRAC - www.brac.net

방글라데시 속한 구호단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활도을 확대하고 있다. 뉴욕에 지부가 있고 인턴 환영


Center for Development and Population Activities - www.cedpa.org

여성 교육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ECPAT- www. ecpat.net

동남아시아에서 아동 매춘 퇴치 활동을 벌이는 구호단체 네트워크


Equality Now  www.equalitynow.org

전 세계 성매매와 성별 억압을 종식하기 위한 활동을 벌인다.

Girls Helping Grils- www.empoweragirl.org

2007​년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15세 소녀 세잘 하티가 설립.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구축하고  15개국에서 교육 및 보건프로그램 운영


International Justice Mission - www.ijm.org

성매매 퇴치 활동 벌이는 기독교 단체​


Women's Learning Partnership- www.learningpartnership.org

개발도상국 여성들의 지위 향상과 리더십 증진에 힘쓴다.

posted by sergeant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2017.03.06

독서/여성주의 2018. 6. 18. 18:14

 

맙소사, 글을 날려먹어서 주옥같은 구구절절을 다 포스팅 할 순 없겠지만... 할수 없고.


이 책은 표지부터 컨셉, 서문까지 모두 다 마음에 들어서 집어들었고 재미있게 읽었다. 평범한 독일 남성이 일년간 여장남자로 살면서 겪은 일과 생각들을 적어둔 책이다. 여러 장면들에서 영화 '대니쉬걸'이 떠올랐으나, 작가는 트랜스젠더가 아니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남자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 꽤 중요한 포인트이다. 아무래도 '평범한 남자의 실험'이라고 보기에는 평범과 거리가 멀지만.. 평범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상인지 아는 사람으로서 그러려니..ㅎㅎ. 다만 중요하고 의미있는 실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


 우선,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아래)에서는 잘 드러나 있지만, 본문에서는 여성으로서 살면서 느끼는 위협과 불편감들이 (작가가 여장을 하고 공원에서 성폭행 위협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였다면 이런 방식의 위협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했다. 성정체성이 남성인 이가, 여성으로 산다는 실험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작가의 '여성성에 대한 찬사'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힘이, 실제 체험 과정에서는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의 색채를 바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남자로 사는 동안 '남성으로서 완수해야 하는 기대와 압박'들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이러한 압박들이 남성들의 감수성을 거세시킨다고 느꼈다. 그러나 여자로서의 삶을 통해 압박들로부터 자유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장남자로서의 삶에 대단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여자들은 남성으로서의 완벽주의(약해지지 말라!)로 부터 자유로워 지면서 누군가가 나의 짐을 받아주고 에스코트를 통해 보호받는 대신, 책에서 보여지는 바처럼 '성적 대상화'되고, 나아가서는 동일 임금, 동일 급여가 보장되지 못하고,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이 당연한 것이 되며, 24시간 가사노동의 정당성을 부여받고.. 좀 더 나아가서는 성폭행 및 살해 위협으로 부터 안전하지 못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너무 많아..). 이들은 결코 같은 가치로 교환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여성으로서의 완벽주의도 존재하니까.

 더불어 이러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이분법은 그 메시지가 아무리 긍정적인 것이라고 해도 온정적 성차별주의에 불과하다. 작가 역시, 체험기간 동안 많은 감정과 자기 검열과 주변의 불편함을 소화해 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도한 과제들은 우리의 고정관념과 차별주의적인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중요하다고 느껴졌던 이유는, 성차별주의적 사회에서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도 꽤 피해자라는 사실을 남자로서 고백했다는 점에 있다. 나는 이 부분이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매매 하는 보통 남성'의 입장을 지지해줄 마음은 없으나, 차별주의가 두 성별 모두를 좀먹는다고 믿는다.(2018년인 지금은 비록 이 생각이 달라졌지만, 이 글을 적던 당시에는 그랬다.) 그런 점에서 나도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경직된 역할 기대의 모순으로부터, 한걸음에 완전히 자유로워 질 수는 없겠지만.. 오랜 시간 동안 무비판적으로 받아왔던 모든 차별적인 시선들에 대해서 오늘도 조금 더 나를 정화시키고 싶다.

 

 


<책발췌>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 중,


여자로 살아보기 체험을 통해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남자와 여자에 대해 무척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성별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나는 처음 여자의 눈으로 여자의 삶을 보았고, 여자를 대하는 남자들의 태도를 경험했다. 여자의 눈에 비친 남자들의 태도는 결코 멋지지 않았다. 처음엔 좋은 남자처럼 보였더라도 순식간에 나쁜 남자로 전락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일까'라는 질문에 몰두하게 되었다.

"당신의 경험이 다른 나라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믿으세요? 아니면 유럽에만 해당된다고 보세요?"

여자로 사는 동안 가장 자주 받은 질문 중 하나이다. ...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본질적인 반응은 어디나 비슷하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사는 실제 우리의 삶은 현대 사회가 내세우는 평등과 크게 모순된다. 나는 이 책에서 그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남자와 여자가 '공존'하는 세상 한 복판에서, 남자와 여자가 내면에 모두 '공존'하는 한 사람으로서.


p.21

사람들은 우주를 서랍에 나누어 넣으려 한다. 아내는 '허영'과 '변태'를 얘기했다. 어떤 행동을 하자마자 나는 규범에서 벗어났고 그 즉시 나를 분류해 넣을 서랍이 마련되었다. 규범으로 가득한 서랍은 무인도나 마찬가지다. 활기도 생기도 없다. 서랍과 서랍은 아무 접촉도 하지 않는다. 인간은 서랍에 적힌 글귀에 따라 깔끔하게 분류된다. 서랍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회 전체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위험에 처한다.


p.34

나는 우리 사회의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대해 점점 더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남자 역할이 더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훨씬 인위적이다. 남자 역할에는 능력과 인정 욕구가 주입되어 있다. 거의 강압에 가까웠다. 반면 여자들은 그런 내적인 강압에서 자유로워 보였다. 여자의 삶이 더 의미 있고 여유로워 보였다. 여자의 세계는 생기 넘치는 신비한 천국 같았다.


 p.35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억압받는 건 아닐까. 모두가 여성해방을 얘기한다. 그렇다면 남성해방은 필요 없을까. 남자들이 고장관념의 억압에서 벗어나면 여자들도 좋지 않을까. (좋죠!) 남녀의 갈등과 양극서이 사라지면 성역할도 기능을 잃게 될까. 어떤 사람은 하이힐을 신고 어떤 사람은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또 어떤 사람은 치마를 입고 이사회에 등장한다면(당연히 남자가), 회의 분위기가 어떨까? 복장 때문에 이사회가 쓸데없는 수다 모임으로 바뀔까?


p.48

"트렌스베스타잇(여성의 옷을 입음으로써 성적 만족을 느끼는 남성)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네요."

"고객 중에 트랜스베스타잇은 거의 없어요. 혹시 트랜스베스타잇이세요?"

"아니요."

"트랜스베스타잇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요. 대부분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죠. 의사, 회사원, 리무진을 타고 다니는 기업 간부, 기계 기술자 등등. 도축업자와 제빵사도 있어요."

"멀쩡한 사람들이 이런 걸 왜 산대요?"

"크리스티안 씨는 왜 사세요?"

"내 안의 여자를 알고 싶어서요. 그리고 여자 옷을 입으면 마음이 여유로워져요. 그런 기분을 더 많이 느끼고 싶어서요. 한 번쯤 남자가 아니어도 되는 해방감 같은 걸 거예요."

"바로 그거예요! 다른 손님들도 그런 여유로움을 갈망하는 거예요. 잠깐만요, 가발이 있어야 겠어요. 이거 어때요? 정말 예쁘죠!"


p.51

나는 성전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내가 남자라고 느낀다. 다만, 남자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싫을 뿐.


p. 94

 고도로 발달한 우리의 문화와 자유가 끊임없이 남녀평등을 위해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고리타분한 옛날 규칙에 따른 남녀차이는 그대로인 것 같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에게, 혹은 여자가 남자에게 바라는 경직된 역할 기대는 모순에 부딪혔다. 내게 투사되었거나 내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 모든 성역할은,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인정할만한 가치도 없고 삶에 필요하지도 않다. 그것은 가상세계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기대를 채울 수도 없다.

 짧은 기간이지만 여자로 살아보니, 남자로 살기가 더 싫어졌다. 남자들은 옛날 부족사회의 남성성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갇혀 신선한 바람을 쐬지 못한 채, 작은 우물에서 물장구만 치는 것 같았다. 반면 여자들은 오래전에 벽을 허물고 주어진 한계를 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낡은 이미지에 갇혀 멍하니 굳어 있지 않았다. 남자들과 얘기를 해보면, 그들은 '해방'이라는 단어를 남자에게 적용하기를 거부한다. 남성해방이란 말이 우스꽝스럽다는 반응이었다. ...

남성성에는 어떤 불가침성이 내포되어 있다. 불운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부터 남자들의 이런 자기이해가 거부할 수 없는 암묵적 규칙이 된 것 같다. 소위 강한 남자! 사나이의 맹세와 끈기! 모든 걸 손에 쥐고 모든 걸 이루고 모든걸 해결하고 언제나 이겨야 한다. 이것은 내게 오만을 넘어 사이비 종교의 광신처럼 느껴졌다.  ...

 남자들의 나르시시즘은 이렇게 구호를 외친다. 남자는 감수성을 보이지 않는다! 스타킹을 신지 않는다(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그들은 스타킹을 신었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는다! 게다가 빨간색은 말도 안된다! 그런데 오늘날, 고정관념과는 다른 남성성이 자라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문제 없음'이다. "나는 남자로서 아무 문제없다. 문제가 생긴다면 남자처럼 보이지 ㅇ낳을 것이다." 그러니까 남자는 반드시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한다. 문제가 생겨선 안 된다.


p.178

 남자는 그냥 살기만 해선 안 되었다. 남자는 늘 뭔가를 성취해야만 했다. 심지어 하느님 앞에서도 뭔가 성과를 보여야 했다. 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반듸 한 여자와!), 아이를 낳고(많이!) 나무를 심어야 한다(제대로!).

 어쩌면 그래서 남자들은 탈선을 하고, 바람을 피우고, 거짓말을 하고, 갑자기 우울해하고, 여자들에게서 도망치고, 우스꽝스러운 모험여행을 떠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이 너무 과하기 때문에. 그들 앞에 놓인 장벽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들 중 대부분이 여자들을 섹스, 사랑, 부부, 관계 혹은 노동의 대상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남자로서 인정을 받고자 했다. 특히 여자들에게. ... 

 

posted by sergeant

게으를 수 있는 권리 - 2017.03.03

독서/기타 2018. 6. 18. 18:11

 

2011년 6월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두었던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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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김안중 선생님의 ‘신과 인간과 여가’라는 글에서 제시되었던 ‘여가’의 개념을 사용해 이야기하고 싶다. 글에서 김안중 선생님은 교육의 목표를 매우 분명하고 간단하게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여가’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여가’란 인간과 대비되는 신들의 고유한 특성이다. 경쟁하고 생산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끊임없이 충족하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은 여가를 통해 한층 더 우아하고 여유롭게 만들어 질 수 있다. 여가가 없는 인간들의 모습은 만족을 모른채 끝없이 파멸로 자신을 몰아넣는 피곤한 모습일 뿐이다.

그러나 ‘여가’라는 내용 자체를 배울 수는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다른 특정한 ‘내용’을 가르치게 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때, 이 내용들이 모종의 생산을 위한 수단이 되는 내용들이 아니다. 이런 도구적 내용들은 ‘노예의 기술’이라고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노예의 기술과 반대되는 것이 바로 ‘자유인의 기술’로서 모종의 외재적 목적을 위해 가르쳐 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목적으로 가치 있는 학문들을 말한다.

위의 교육목적을 살펴 볼 때, 과연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 대답을 이러한 여가가 ‘잘 가르쳐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 본다. 제우스신이 보편적인 ‘인간’들에게 가지기를 원했던 자질. 그것은 끊임없이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을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가를 즐길 줄 아는 능력이었다. 본인은 ‘여가’라는 단어를 ‘행복’이라는 단어로 해석할 때 우리가 더 손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가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상태이며 ‘일’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생산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행복이라는 단어는 이 상태를 매우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행복은 어떠한 도구적인 수단이 아니며 그 자체로 어떤 것을 생산해 내기 위함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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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써두었던 글에서도 지금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이 글과 많은 교육들이 나로 하여금 현재의 모습이 되도록 이끌었던 것일지, 반대로 DNA 속에 내장된 특정한 성향들이 교육 내용들에 반응을 하고 큰 울림을 받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쨋거나 오늘 (한주 간 기회를 엿보던) 슈크림라떼를 마시며  단숨에 읽어내린 '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서도 게으름에 대한 찬사, 자유인의 모습을 충실히 반영한 여가에 대한 찬양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미 최근 나온 다양한 책들에서도, 자신이 하는 일과 자기 존재감 자체를 동일시 하는 현세태의 고통에 대해 지적하는 책들이 많은데

무려 마르크스의 사위라는 분께서... 100년 전에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주창하셨다니 참 낭만적이고 고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하게 된 후에, '학교에선 도대체 왜 이런 것들을 안가르쳐 줬을까' '학교는 우리를 잘 못 길러냈다' 등의 원망 섞인 생각을 종종 하곤 했었는데, 그 생각을 다시금 부끄러워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자유인의 기술들을 열심히 배웠다. 생각할 수 있는 힘과 질문 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연대의 가치. 자유롭고 인격을 가진 인간의 존엄성을 날마다 더 체감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솔직히 그러면서도 동시에 사회와 문화에 길들여져서 생산되어 지는 인간의 지성에 대해, 나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해 왔던 것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많은 욕구와 바람은 누군가의 욕망을 모방했거나 주입받은 것일 가능성이 높을테니까. 본문에서도 언급하듯이, 노동자들은 '와' 달려가길 좋아하고 내가 감탄해 마지않는 촘스키에 따르면, 언론은 항상 권력의 앞잡이여왔었으니까.

 결국 사유하는 것과 창조성을 지키는 것에서의 게으름 만큼은 피해야 할 것 같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 조차도 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참 모순적이고 재밌다.


 

 

옮긴이 서문

p.9

이솝 우화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부터 스티븐 코비라는 사람의 성공학에 이르기까지 게으름과 나태함은 한결같이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다. 그런데도 다름 아닌 마르크스의 사위이자 사회주의 운동의 투사인 라파르그가, 그것도 감옥 안에서 '노동할 권리'가 아니라 '게으를 수 있는 권리(le droit a la paresse)'를 주창하고 나선 것은 아무래도 기이해 보인다. 더욱 신기하게도 이 책은 첫 출간된 100년 전 뿐만 아니라 몇 년 전에도 프랑스에서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로 기록되었다.

p.10

라파르그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일에 중독되어 있고, 일부 유한계급은 강요된 여가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한 노동 중독은 아편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과 하등 다를 바 없으나 기독교가 노동을 신성시하고, 부르주아의 실용주의 철학이 이를 정당화 한다. 따라서 마약 중독자가 사회적 범죄로 단죄되고 알코올 중독자가 사회적으로 격리되는 데 반해 노동 중독자는 경제 발전의 견인차로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마치 아이들의 공부 중독이 출세라는 미명 하에 끊임없이 미화되듯이 아버지들의 노동 중독은 가족과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하에 부단히 찬미된다. 이처럼 신성화된 노동 찬가는 리바이어던처럼 사회 전체를 옥죄면서 인간의 영육을 철저하게 지배해나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산업혁명'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인간이 손으로 처리하는데 24시간이나 걸리던 일을 기계가 한 시간 만에 해치우는데도 하루 노동 시간은 여전히 10여 시간이 넘는데다 어린아이고 부인이고 가릴 것 없이 사회 전체가 총력 노동 체제로 돌입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바 있다. 그러한 역설은 컴퓨터와 스마트 폰에 24시간 매달려 있다시피 한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p.16

'무식 과격한' 자본주의에서 '세련되고 정치한'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이러한 '성숙'에 맞추어 과거에는 국가나 관료가 강압적인 힘으로 자본을 주도해나갔으나 이제는 역으로 자본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주도해나가는 형국으로 바뀌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문 중

p.22

부르주아 계급은 사상의 자유와 무신론의 깃발을 높이 들어올렸다. 하지만 일단 승리하자 어투와 태도를 바꾸어, 오늘날에는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지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있다. 15세기와 16세기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이도교들의 전통을 흡수하고, 기독교가 비난하는 육체와 육체의 열정을 찬미했다. 하지만 막상 현대에 들어와서는 자신들은 온갖 상품과 환락으로 배가 터질 지경이면서, 라블레나 디드로와 같은 자신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사상가들의 가르침을 부정하면서까지 임금 노동자들에게 금욕을 설교한다. 기독교 윤리를 비루하게 모방하고 있는 자본주의 윤리는 노동자의 육체를 저주한다. 그리고 생산자에게는 가능한 최소한의 필수품만 주고, 그들의 즐거움과 온갖 열정을 억누르며, 휴식이나 감사의 인사도 없이 계속해서 돌고 도는 기계의 일부로 남아 있는 저주받은 운명을 살도록 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p.32

(누가복음12:27) 수염도 제대로 깍지 않고, 무슨 일을 할 때면 화를 내곤 했던 여호와는 숭배자들에게 이상적인 게으름의 최고의 본보기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는 딱 6일만 일하고 영원히 휴식을 취했던 것이다.


ㅋㅋㅋ


p.38

우리 시대는 노동의 세기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통, 불행, 부패의 세기이다.


p.45

소음에 귀먹어 머리까지 멍청해져버린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응답한다. "일하고 또 일하라. 잘 살려면 그렇게 하라." 기독교적인 순종을 내세운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인 타운센드 목사는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일하라, 일하라, 밤낮으로 일하라. 일하면 더 가난해지고 가난해지면 우리는 법의 힘으로 일을 강요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으리라." 법의 힘을 빌린 노동의 강요는 "너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너무 많은 폭력을 요구하고, 너무 많은 소움을 만들어 낸다. 이와 반대로 굶주림은 평화롭고 조용하고 끊임없는 압력일 뿐만 아니라, 일과 산업의 가장 자연스러운 동기이고, 또한 가장 강력한 노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프롤레타리아들이여, 일하고 또 일하라. 사회적 부와 너 자신의 개인적 가난을 증대시키기 위해, 일하고 또 일하라. 더 가난해 지기 위해. 일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으니 일하라. 그러면 그만큼 더 비참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생산의 헤어나올 길 없는 법칙이다.


누군가 당신의 구원자가 되길 원한다면, 그 전에 당신을 망가뜨리기를 원할 것이다.

잊지 말라, 당신을 후려치길 원하는 인간은 당신의 값을 땅에 떨어트린 후 헐값에 당신을 주워먹으려는 자이다.



p.46

맹목적인 노동숭배 때문에 야수가 되어버린 프롤레타리아들은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한 과잉 노동이 자신들에게 해를 입히고 현재의 비참함을 만들어낸 원인이라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도 못한 채, 말 창고로 달려가지는 않고 울기만 한다.


p.51

원기 왕성한 힘을 실제로 보여주려면 프롤레타리아는 기독교 융ㄴ리, 경제 윤리와 자유사상가들의 윤리에 내포되어 잇는 온갖 편견을 짓밟아 뭉개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들은 자연의 본능으로 돌아가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들은 매우 형이상학저인 법률가들이 꾸며낸 부르주아 혁명기의 인권선언보다 천 배는 더 고귀하고 신성한 이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선언해야만 한다. 하루에 세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낮과 밤 시간은 한가로움과 축제를 위해 남겨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p.57

 대개는 소박하게 세상 만사를 있는 그대로 굳게 믿는 성향을 가진 노동자 계급은 이런 식으로 세뇌받는다. 또 본래 성급한 노동자 계급은 아무 생각 없이 노동과 금욕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본가 계급은 나태함, ㄱ아제적인 향유, 비생산, 과소비를 평생 동안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리하여 노동자들이 과잉 노동으로 몸이 멍들고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다른 한켠에서 자본가들은 남의 고통 속에서 풍요로움을 맛보는 것이다.


p.58

자본주의 생산이 막 시작되던 1,2세기 전만 해도 자본가는 합리적이고 온화한 습관을 지닌 착실한 사람이었다. 부인에다 그저 그런 환경이면 만족했다. 갈증이 날 때만 마셨고, 배고플 때만 먹었다. 그는 호화 방탕함이나 무절제는 궁중의 귀족들이나 주인마나님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로 여겼다. 하지만 오늘날 벼락부자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마치 수은 고아산 노동자의 고역을 합리화 하기라도 하듯 오직 수은으로만 치료할 수 있는 병(성병-옮긴이)을 기르는 것을 일종의 의무처럼 여기고 있다. 자본가들은 토종 가축 사육자들과 보르도 지방의 농민들을 격려라도 하듯, 최고급 송로버섯과 최상품 포도주로 조리한 최고급 닭요리로 온몸에 살을 피둥피둥 찌우느라 정신이 없다.


ㅋㅋ 현대에 쓰신줄.....


p.63

 현대의 군대의 역할에 대해 환상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음은 불문가지이다. 이들은 '내부의 적'을 진압하기 위해서 영원히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파리와 리옹의 요새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건설된 것이다. 만약 의문의 여지가 없는 예가 필요하다면, 자본주의의 천국인 벨기에를 보자. 유럽 열강들이 벨기에의 중립성을 보장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군대는 인구에 비하면 유럽 최강이다.


p.67

(과거) 이 옷은 정확히 선량들이 유권자들에게 하는 약속만큼의 내구성을 갖고 있었다. 리옹에서는 비단을 자연 그대로의 순수하고 유연한 상태로 놔두는 대신에 광물성 염을 입혔다. 그리하여 섬유의 무게는 늘어났지만 부서지기 쉽고 내구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장사하기 좋게 모든 생산물에 다른 물질을 섞지만, 그 결과 수명이 단축되어 버렸다. 인류 최초의 시대를 생산 도구의 특징에 따라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라고 부르듯이, 우리 시대를 '불순품(adultera-tion)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순진한 사람들은 위선적인 제조업자들을 사기꾼으로 고발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 제조업자들은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에게 일거리를 마련해줄까 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노동자들은 단 하루도 팔짱을 끼고는 살아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도주의적인 마음 씀씀이에서 우러나온 이러한 불순품은 제조업자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준다. 상품의 질을 참혹하게 저하시키고, 인간 노동을 엄청나게 낭비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p.68

 하지만 상품의 과잉 생산과 제조 과정에서의 질의 저하에도 불구하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노동자들이 일을 달라! 일을 달라!고 애원하며 시장을 가득 메웠다. 이처럼 일손이 엄청나게 남아났기 때문에 이들은 열정을 억제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갑작스런 폭발이 빈발하게 되었다. 즉 일단 일할 기회가 생기면 모두 와 하고 그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일이 아니라 돈을 달라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구구절절이다.


p.69

왜 1년만에 할 일을 반년 만에 해 치우나? 왜 12달 동안 동일하게 분배하지 않고, 또 왜 6개월동안 하루 12시간 일하느라 소화 불량에 걸리는 대신 1년 내내 5~6시간씩만 일하도록 하지 않나? 일단 하루 할 일의 양이 정해지면 노동자들은 더이상 서로 시기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사람의 손에서 일자리를 빼앗고 다른 사람의 입에서 빵을 빼앗기 위해 싸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 몸과 마음도 지치지 않을 것이며, 게으름의 미덕을 실천할 것이다.

 이처럼 병적인 노동 숭배 때문에 거의 야수화된 노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할 정도로 성장할 수가 없었다. 즉 모든 사람이 곧바로 일자리를 얻으려면 조난당한 배에서 식수를 나누듯이 일을 똑같이 할당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p.72

(노동자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힘까지 소진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또 결국 온 힘을 다 써버려, 결국에는 죽기 오래 전부터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리라는 사실도, 노동이라는 천하의 악덕에 빨려들어가고 야수화되어, 자신이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파편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또 온갖 뛰어난 재능을 죽여버리고, 노동에 대한 격정적인 열정 말고는 살아 생동하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는 사실도 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이상향이었던 아르카디아의 앵무새들처럼 이들은 경제학자들의 강의를 그대로 반복한다. "일하게 해주시오. 국가의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 일하게 해주시오." 오, 바보 같으니. 산업 시설이 느리게 발전하는 것은 바로 당신들이 너무 많이 일하기 때문이다. 제발 그런 식으로 시끄럽게 울지 말고, 한 경제학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다행히 몇 달전에 죽은 레이보의 말을 경청해 보자. "노동 방법의 혁신은 일반적으로 수작업 노동의 조건에 의해 제한된다. 낮은 가격에 제공되는 한 아낌없이 수작업 노동을 쓸 수 있지만, 일단 가격이 오르면 비용을 줄이기 위한 온갖 시도가 나타나게 된다."


p.73

증거가 필요하다고? 수백개의 증거가 있다. 방적업에서는 스스로 작동하는 뮬 방적기가 발명되어 맨체스터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방적공들이 전처럼 긴 시간 동안 일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기계는 버터 제조부터 밀밭의 잡초 제거에 이르기까지 농업 생산의 모든 분야로 파고들고 있다. 왜냐고? 자유롭고 한가로운 미국인들은 수천 번이라도 프랑스 농부의 소 같은 삶보다는 죽음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영광스러운 프랑스에서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사람의 몸을 망치기까지 하는 밭갈이가 미국 서부에서는 앉아서 태연히 담배를 피며 즐기는 기분 좋은 야외 소풍 같은 것이다.


 노동 중독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큰 일침이 될 수 있겠고, 뒤로 갈수록 더 흥미로운 내용들이 다루어진다.


p.89

 병적인 노동 숭배 때문에 야수가 되다시피 한 프롤레타리아들이여, 지금까지 혹시라도 당신들이 들을까봐 노심초사 당신들에게는 은폐되어왔던 이들 철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돈 때문에 노동하는 시민은 스스로를 노예로 전락시키며, 수년의 징역을 살아 마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기독교의 위선과 자본가들의 실용주의도 이 고대 공화국의 철학자들의 판단을 왜곡할 수는 없다. 자유인을 옹호하기 위해 이들은 각자의 생각을 꾸밈없이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실로 지적인 거인들로, 이들과 비교해 후일의 철학자들은 피그미에 불과하다(ㅋㅋㅋ) 이들은 자신들이 구상한 이상적 공화국의 시민들이 완전한 여가를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크세노폰이 지적하듯이 "노동이 모든 시간을 빼앗아가며, 따라서 그로 인해 공화국이나 친구들을 위해 전혀 여가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p.90

... 우리의 기독교와 자본주의 도덕가들은 이에 대해 "이 사상가들과 철학자들은 노예 제도를 찬양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나도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당시의 경제적, 정치적 조건 속에서 과연 어떻게 그와 달리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고대 사회는 거의 언제나 전쟁 상태에 있었다. 따라서 자유인들은 국사와 국가 방위를 논하는 데 모든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하지만 오늘날의 자본주의 도덕가들과 경제학자들은 임금 노동자, 즉 현대의 노예제를 찬양하지 않는가? 그리고 자본주의 노예제는 어떤 사람들에게 여가를 제공해주고 있는가?


그 밖에 여러 필자들의 글


p.139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자유인과 노예 모두 약 115일의 공휴일을 지켰다. 이집트에서는 나일 강의 순환기가 있어 반년은 거의 일을 하지 않았다. 중세 초기에는 약 80여개의 성인 축일(Saint day)에다 고대 이스라엘의 안식일이 합쳐져 로마 시대의 휴일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일부만을 단축시켰었다. 노동일은 겨울에는 짧고 여름에는 길었다. ... 식사 시간을 뺀 평균적인 하루 노동 시간은 약 9시간 정도였으며, 노동 강도 또한 20세기의 공장들보다 훨씬 떨어졌던 것처럼 보인다.


p.148

태어나서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이윤 추구의 기회라고는 전혀 가져볼 수 없는 우리가 애써 겨우 얻어낸 한 줌의 자유시간 마저도 엄청난 이윤을 챙기는 산업의 토대가 되고 만다. 1972년 9월 18일자 비즈니스 위크지는 거대 복합 기업들이 예상 외의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레져 산업을 대대적으로 인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소득이 1퍼센트만 증가하면 레저 상품이나 용역에 대한 수요는 2퍼센트 이상 증가한다"고 결론지은 바 있다. ... 어떤 문화 속에서 살고 있건 모든 젊은이들은 여가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어 있는데, 미국의 젊은이들은 이를 위해 돈을 내거나 사용료를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능력이 없는 젊인이는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한 채 빈둥거리거나 여자 친구의 얼굴만 시무룩하게 쳐다보고 있게 된다.


p.153

 자본주의적 시장 메커니즘은 이런 결과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처럼 술수를 부리지만, 실제로 이런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의 시간과 재화를 모두 빨아먹는다. 우리의 문화 체제는, 우리 스스로 우리를 착취할 고용주를 찾아다니고 우리를 지배할 정치가를 선출하여, 이들이 마음대로 조직하는 살므이 양식을 자유라고 느끼며 살아가도록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소비에트 세계의 동료 노동자들과는 달리 일이 끝난 후에도 정치 집회에 참석할 필요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p.170

 오늘날에는 여가 자체가 극히 소외된 노동의 거울상이 되었다. 따라서 여가가 철저하게 산업화되고 관료화된 강제적 소비주의에 물들어 죽음을 초래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각종 기구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치명적인 속도 숭배 문화에 종속되어 있는 한, 임금 노예 제도 자체를 없애지 않는 모든 해결책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노동 운동이 정말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으려면 초현실주의자들의 유명한 슬로건인 "노동 타도!"가 핵심 슬로건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이 슬로건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것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일시적인 저항 행동이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p.172

약 40여전 전에 제임스가 지적한 대로 '인간이 노역의 열매가 아니라 노역 자체에 대해 질문할 때에만 비로소 마르크스적 의미의 인간 활동의 철학은 현실화 될 수 있다.;

 여가에 대한 공허한 철학적 논의를 일삼거나, 일본인이나 한국인들의 경쟁력에 대해 괜히 당치않은 헛소리나 하면서 몇시간이나 며칠의 시간을 놓고 흥정하거나, 1~2년 더 은퇴 시기를 앞당기는 문제를 둘러싸고 떠들어보아야 아무 소용 없다. 그 대신 노동의 폐지를 일정에 올리지 않으면 안된다. ... 이를 다른 식으로 표현해보자. 세계의 노동자들은 반인간적인 노동 체계, 즉 개인의 자유와 자연적 창조성을 말살시키는 사회 과정 전체에 대항하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 여가에 맞선 사주들의 투쟁은 노동에 맞선 노동자들과의 전재에서 패배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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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rgeant

학력파괴자들 - 2017.01.26

독서/기타 2018. 6. 18. 18:09

 

 

SNS에서 추천받아서 읽게 된 학력파괴자들, 창의성이 죽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다시금 생각해 볼 내용들이 풍성하였으나,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세상은 역시 우리의 예상만큼 핑크빛이거나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

 


 

 

p.182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중략) 다른 사람의 말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말을 하려는 사람입니다. 삶의 궁극적인 동력은 결국 나를 표현함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침해하는 어떤 것에도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거칠어 보일 수도 있겠으나 나의 주체성, 나의 존재성, 나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에는 거침없이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진석 '나는 누구인가'

여러분은 얼마나 당신의 말과 생각을 표현하며 살았는가? 우리는 학교에서 정답을 마음껏 섭취하라고는 배웠어도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라고 배운 적은 없다. 세스 고딘은 순종에서 벗어나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아티스트가 되라고 강조하는 저서 '이카루스 이야기'에서 사회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주입시키고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말한다.
- 소란을 피우지 마라
- 지도자를 따라라
- 그대로 있어라
- 아이들에게 복종을 가르쳐라
- 모난 돌이 정 맞는다
- 사회가 지켜줄 것이라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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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상식사전 - 2017.01.09

독서/기타 2018. 6. 18. 18:08

 

커피 진짜 너무너무 좋아하고,

사무실에서도 매일 커피 내려 마시고, 학교 안에 카페에서 한잔 이상씩 꼭 사마셨었고..

집에 있으면서는 네스프레소 기계로 2잔 이상은 꼭 마시는 요즘..

또 주말에는 모카포트로 카푸치노 만들어 먹는게 주중행사인 나같은 사람이

오늘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 이불 속에서 읽기 좋은 책.


난 모카포트가 에스프레소 내려주는 기계로만 알고있었는데, 커피를 좋아하는 것에 비해 참 무지한 축이었고..

결과적으로 에스프레소는 담당 머신으로밖에 내릴 수 없다는게 좀 아쉽긴 하지만

정말 재밌었습니다 :) 좋아하는 카페 가서 갈색 크레마가 컵의 반쯤 차지하는 아메리카노 한잔 하고 싶다..

에스프레소 아름다운 크레마는 역시 그렇게 쉽게 얻어질 수 있는것이 아니었군. 숭배하고 싶어진다...

 


 

 

전자책p.32

커피는 정신을 맑게 해 대화와 토론을 활성화 시켰다.

1674년 무명의 한 영국 시인은 커피를 일컬어

"아픈 속을 낫게 하고, 천재를 더욱 기민하게 하며,

기억을 돕고, 슬픈 이를 되살리며, 기운을 북돋는,

그러나 취하지는 않는, 엄숙하고 건전한 술"이라고 칭송했다.

이것이 영국에서 커피하우스가 유행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이다.


p.36

"커피 하우스에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정해진 자리가 없으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면 누구나 의자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다. 평등이라는 이러한 위대한 특권은 인류의 황금시대와 커피하우스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다."

: 아 물론 여기서 사람은 여자를 제외한 사람이었다는 부분이 매우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으나 ..하하 그랬구나. 재밌었다.


p.37

영국 국왕 찰스 2세(1660-1685)는 런던의 커피하우스 곳곳에 스파이를 심어두기도 했고, 1675년에는 커피하우스 폐쇄령을 선포하기까지 했다. 찰스 2세는 사람들이 커피하우스 때문에 "마땅한 직분과 의무를 잊고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고 주장했는데, 커피하우스 운영자와 정치인들이 합심해 반발한 탓에 결국 폐쇄령은 통과되지 못했다.

p.67

이탈리아 외의 도시에 에스프레소 바가 문을 연 것은, 1950년대로, 런던, 멜버른, 웰링턴,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이런 에스프레소 바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겉멋만 잔뜩 든 과시적인 장소로 비치기도 했다. 1957년 사회학자 리처드 호바트는 런던의 한 에스프레소 바를 일컬어 "썩어 빠진 정신머리로 가득 찬, 우유 끓는 내가 진동하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에스프레소 바를 찾는 것은 주로 젊은 층이었는데, 어른들의 눈에는 에스프레소 바를 채운 젊은이들이 제멋대로이고 문란하며 무책임한 이들로 ㅣ쳤다. 사실 위 세대가 아래 세대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 ㅋㅋㅋㅋㅋㅋ현대 한국의 '스타벅스 된장녀' 비판이 왜 오버랩 되는걸까..역시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p.38

 아이작 뉴턴이 처음으로 중력 이론에 대해 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rincipia)>는 1687년에 출간되었는데, 이 위대한 저작이 탄생한 데는 사과의 낙하보다 케임브리지 커피하우스의 공이 더 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스코틀랜드 출신 학자인 애덤 스미스는 런던의 브리티시 커피숍에서 경제학 분야에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저서로 꼽히는 국부론의 상당 부분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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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 2016. 11. 14

독서/기타 2018. 6. 18. 18:06

 

그의 과한 순수성의 추구 역시 너무나도 어지럽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나 또한 참으로 기성세대이자 참으로 속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 부적응자의 한 사람으로서, 반갑다. 모든 암살자들의 바이블!



아래: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어떤 작품인가-------
현실세계와 타협하지 않는 방법은, 또는 저항의 상징적 제스처는, 미치거나 아니면 미치는 척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적절하게도 『호밀밭의 파수꾼』은 홀든이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요양소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야기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홀든은 이상적인 반항아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부적응자이기도 하다.

posted by sergeant

상실의 시대 2016. 11. 07

독서/기타 2018. 6. 18. 18:05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

세상의 천재들 대부분이 자신의 삶에 잠재된 죽음의 능력을 극대화 시키기에, 우리는 그들의 빛을 강렬하지만 짧게 목도할 수 밖에 없다. 마치 불꽃처럼. 그렇지만 와타나베처럼 철저하고 끈질기게 죽음과의 대결에서 다른 길을 선택하는 이들 덕에, 우리는 그들의 빛을 조금이나마 더 구경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좋다는걸 다시금 일깨워준 책. 커피한잔과 책 한권을 이렇게 평생 나누어가며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배우자가 나한테 바란다는 그 소소한 행복이 이런것인가보다.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