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뇌, 영혼, 신 - 2018.03.

독서/종교 2018. 6. 18. 17:41

 

 

수 많은 흥미로운 질문들을 품고있는 이 책은, 답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책이라기 보다는 작은 질문들을 이것저것 던져주는 도움서와도 같은 느낌이다. (사실 좀 답답했다는 뜻..ㅋㅋ)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상담사로서, 이런 질문들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책이 있다는 것. 참 충분하고도 좋은 일이다. 독서모임에서 읽었는데, 그래서 정리하는게 더 많이 늦어졌다. 곳곳에 나중에라도 한번 들춰 볼 만한, 생각해 볼 만한 중요한 지점들이 있고. 가이드가 되어 줄 수 있는 주옥같은 구절들도, 그리고 도저히 수긍할 수 없어서 꼭 후에 연구를 다시 해보고 싶은 부분들도 있다.

 


<책발췌>

 

p. 37
 오늘날은 문제가 더 복잡하다. 영어 성경 번역본만 수십 종이 있고, 같은 구절에 대해 각기 다른 단어를 쓰고 있거든. 과거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만들려 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어. 그렇게만 해도 불필요한 불안과 염려를 많이 덜 수 있을 거다. '마음'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란다. 과거에는 '마음'(mind)과 '영혼'(soul) 두 단어를 서로 바꿔 쓸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단어의 깔끔한 의미"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수 있지. (...) 그러니 '마음'이라는 말이 나올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렴. 대략적인 지침은 될 거야. 첫째, 여기서 '마음'은 인지적 신경과학자들이 쓰는 것처럼 "정신생물학적 통일체의 심리적 측면"을 줄여서 쓴 과학 용어인가? 둘째, (성경의 많은 문맥에서 그렇듯) 하나의 태도 또는 공유된 태도와 신념의 집합(예를 들어, 빌 2:5; 롬 12:2)을 말하는가? 네 질문에 대한 답은 거의 언제나 '아니다'일 거야. 과학과 성경에서 말하는 '마음'은 그 뜻이 같지 않아.
석사를 시작하기 전에, 학부 수업시간에 만난 지도교수님께 수업이 끝나고 질문을 했다. 교수님은 심리학과 기독교 신앙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나는 조금 두렵다고. 교수님이 답해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본인은 이 학문을 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그 때는 그 말이 무엇인지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도 온전한 의미를 잘 모르겠다. 내가 의미를 더하고 더하는, 그런 의미의 답변이신건지, 아니면 정말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하셨던 것인지. 다시 뵙고 기회가 되면, 한번쯤 더 여쭤보고 싶다.

p.46
이런 연구 사례들이 보여 주는 교훈은 과학의 어떤 모델을 은유로 사용할 때 자신의 신학적 신념 내지 과학과 무관한 다른 신념이 과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주지 말라는 거야. 과학은 본질상 변하는 학문이거든.

p.50
한 가지는 분명해. 모든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은 인간이 심리생물학적 통일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거야. 질병이나 사고로 생물학적 측면이 손상되어 이 통일체가 깨질 수도 있고, 심리학적 측면이 생물학적 측면을 수정할 수도 있어.
이 사실을 깨닫게 되고 많은 해방감을 느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우리가 배우는 지식과 신앙을 조화롭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p.52
인지 과정은 뇌에 새겨져 있지만 택시 운전사들의 경우처럼 뇌를 변화시킬 능력도 갖고 있다는 것을 함께 기억해야 해. 이 정도가 오늘날 대체로 합의된 내용이야.

p.70
 유전적 차이가 나타나는 방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환경적 맥락(이 경우에는 유전형을 아우르는 가족의 종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야. 종교가 없는 가정이라는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는 유전적 결함이 쉽게 표출된 반면, 종교적인 가정에서는 달랐지. 동일한 유전적 결함이 있어도 그렇게 쉽게 표출되진 않았어.

p.73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떤 선택을 내릴 때 경험이 더 큰 기능을 담당하게 되고, 그 선택들은 어느 정도는 우리 안에 유전적인 영향을 받아서 구축된 성향, 능력, 관심사를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요약된 결과를 보면 종교성이 특징적인 패턴을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종교적 태도, 행동, 신념 등에 관해 내리는 선택은 개인의 성향 및 능력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유전적인 영향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p.98
 제임스 바(James Barr)는 지금까지 제시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다섯 가지 해석을 유용하게 정리해 놓았어. 첫째,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가진 불멸의 영혼을 말한다. 둘째,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이성적 추론을 말한다(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가 주장했고 루터와 많은 종교개혁가들이 받아들인 입장). 셋째, 두 발로 걷기 같은 인간의 신체적 특징을 말한다. 넷째, 바가 '기능성'이라 이름 붙인 것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인간의 소명을 말한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감당하도록 부름받은 일'이지. 다섯째는 하나님 및 피조물들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부분을 강조한 사람이 칼 바르트야. 그에게 하나님의 형상은 관계를 맺을 능력 뿐 아니라 관계 자체지.

p.106
여러 성실한 성경학자들의 도움으로 이해하게 된 것들을 자신만만하게 여기면서 우리가 신앙의 선조들보다 앞서 있다고 오만해지기는 너무나 쉽지. 지난 일을 돌아보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보니 자칫하면 신앙의 선조들을 혹독하고 부당하게 비판하게 되겠구나. 그분들은 어떤 성경 말씀들에 대해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확신했고 거기엔 나름의 합당한 이유들이 있었지. 현대 과학 이전의 시대였기 때문에 일부 본문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경향도 종종 있었고 말이다.
지난 며칠간 사실 너무 힘들었다.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너무 많은 논쟁을 했다. 그리고 논쟁의 한 쪽, 내가 많이 지지했던 분들이 결과적으로는 나에 대해서 한계가 있다고, 내가 속해있는 자리는 여기가 아니라, 다른 쪽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끊임없이 새겨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루어 온 성과들까지도 철저하게 도마 위에 올랐다. 정말 철저하게 다 까발려진 기분이다. 아무래도 이 문제, 정말 핵심적이고 중요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내 문제가 되니까 바로 보기가 힘들구나.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아서 노력했는데. 그나마 빨리 생각을 돌이킬 수 있었던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혹독한 비판들 가운데서, 이런 생각들도 조금은 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쨋거나 유리한 입장에 있구나. 그리고 비판적인 내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비판과 포용, 두가지 모두가 필요하다. 한계를 인식하는 것과 함께 적정하게 가지고 나가고 싶다. 앞서 지나간 사람들이 쌓아놓은 탑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 긴 계주에서. 중간 지점에 있는 사람으로서. 더 많이 달려가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이미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한계가 있더라도.

p.126
다른 연구들에 따르면,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묘사하는 환상은 각 사람이 속한 문화에 따라 내용이 다르단다. (...) 뇌의 특정 부위가 작용한 결과 박생하는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은 우리가 속한 전통, 우리가 이미 받아들인 신념에 많이 의존한다는 거야.

p.131
중요한 것은 역사가 진행되면서 같은 본문을 가지고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지. 새로울 것이 없는 사실이야. 종교개혁 시대에는 이런 식의 해석의 변화로 엄청난 결과가 따라왔지.

p.137
탁월한 수학자이자 사상가이며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블레즈 파스칼은 1659년에 이렇게 썼어. "사람에게 그의 위대함을 보여주지 않은 채 짐승을 많이 닮았다는 점만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위험하다. 그의 저속함을 드러내지 않고 그의 위대함만 또렷이 보게 하는 것도 위험하다. 위대함과 저속함을 둘다 모르는 상태로 사람을 내버려 두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진화 심리학은 그런 무지를 줄이는 데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어.
종종 우리는 이러한 유혹에 빠진다. 중립은 얼마나 어려운것인지. 내가 과연 중립을 원하기는 하는건지.

p.167
'로이드 모건의 준칙'
"심리학적 척도에서 낮은 수준의 심적 능력의 산물로 설명이 가능한 행동을 더 높은 수준의 심적 능력의 산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사실상 가끔은 환원주의에 합당한 자리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 거지.
수많은 논쟁들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도 들었다 ㅋ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참 상대방을 입체적으로 보는구나. 사실 나도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뭔가 더 있겠지, 그래도 이유가 있겠지. 이런 관점들이 물론 상담을 할 때는 도움이 되지만... 일상 생활에서 많은 경우에 인간은 납작하다. 그 사실을 자꾸 잊으려고 해서 계속해서 반추한다. 너무 과잉이해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 인지적 자원을 그렇게 쓰지 말아요. 모르겠다,  마음이 아프다.

p.168
이타주의와 상호 협력이 비인간 영장류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도, 이타적 행동 범위에서 인간과 다른 영장류가 중요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제될 것은 없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비인간 영장류의 이타주의는 혈연과 호혜적 상대에게 강하게 쏠려 있다는 것이지. 그들의 이타주의가 낯선 대상을 향해 표현되는 경우는 없어. 이 대목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최우선적인 의무가 떠오르는구나. 차이점은 또 있어. 인간과 달리, 비인간 영장류는 가용 자원을 자기들만 유리하도록 불공평하게 분배하는 데 어떤 거부감도 없단다. 다시 말해, 이기심을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아. 이것은 기독교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돼.
앞에 있던 얘기랑 너무 반대되는 말 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는 것. 역시 기독교는 나를 갈아 넣어야 해. (농담입니다 농담)

p.172
"돕는 행동의 성별 차이에 대한 메타 분석적 검토 결과,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많이 돕고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도움을 많이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진짜 말도 안 됨 ㅋㅋㅋㅋㅋㅋㅋ
Lindon Eaves, "Genetic and Social Influences on Religion and Values", in from Cells to Souls-and Beyond, ed. Malcolm Jeeves(Grand Rapids: Eerdmans, 2004):102-122.
도움을 주고 받는 것과 도움의 중요성, 그리고 성격 사이에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또 다른 연구진은 전 세계 여섯 국가에서 자료를 모았어. 그 연구의 한가지 결론은 이거야. "성별은 이타주의를 측정하는 한 가지 척도가 되는데,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더 이타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좀 어이없다 ㅋ 저 연구 좀 살펴봐야겠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자신이 많이 돕는다"고 얘기하거나,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거나, "기회"가 더 많았던게 아니라? 심리학은 너무 남성중심적인 학문이다. 한계를 느낀다.

p.177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당장 별다른 이들이 생기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드러낸다는 데 주목한 거지. 다른 영장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클라우스는 이렇게 말해. "원칙적으로, 인간이 내는 소리를 다 낼 법한 침팬지가 소리를 내지 않는 이유는 그 방향으로 진화의 압력이 없었기 때문이고, 침팬지가 할 말이 없는 이유는 얘기하는 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출처: 개인이메일..당황....
이것도 너무 재밌어서 연구 reference 찾아보려고 했는데 개인 메일이었다...당황.......ㅋㅋㅋ 그래도 흥미로운 얘기다. 나같은 말많은 사람은 더 공감가는 얘기랄까.

p.238
정직한 질문은 더 깊은 믿음으로 가는 성경적인 길이야.  (...) 어린 시절 나는 교만한 사람만이 감히 주님께 질문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때로는 질문을 하는 것이 겸손한 일임을 배웠다. 질문 안에는 내게 답이 없고 하나님께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진실한 질문은 하나님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고, 그분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린다.
정직하게 질문하고 싶다.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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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리학 카페 - 16.08.25

독서/심리 2018. 6. 18. 16:06

 

의외로 수퍼비전이나 심리교육을 가도, 본인이 배웠던 마음의 원리와 전혀 다른 식의 조언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ex. 화를 좀 잘 참아야죠.)

 그러나 파리의 심리학 카페에서는 마음의 매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고 얻어진 깊은 통찰을 재밌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따뜻한 작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내담자들과 좀 더 심리교육을 꼭꼭 다지고 싶을 때, 주로 추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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