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연구해 보고 싶은 내용이 가득합니다. 후에 참고하고 싶어 발췌를 많이 해 두었습니다. 혹여나 문제가 생길시에 글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도덕과 정의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일까 자괴감이 들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정의는 그렇게 딱딱한 틀 안에 들어가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차츰 들게 되었구요.

저의 경직된 생각을 조금 더 부드럽게, 그리고 철학과 심리학을 통해 명쾌하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던 책입니다.

 

 

 


<책발췌>- 긴글 주의

 

P.10
의심의 대가들은 도덕을 끊임없이 탈신화화했고, 그 후로 선과 악은 뜨뜻미지근한 불가지론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악 관념을 별로 믿지 않는데도 허구한날 타인들이 아떤 존재인가, 타인들이 어떤 행위를 하는가를 판단하는데 골몰한다. 또 우리의 행동, 의견, 심지어 겉모습까지 매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는다. ...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과 악이 마치 산소와 수소처럼 결합해 이루는 좋은 생각의 바다와 같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그 바다에 잠겨든다.

P.12
사실 사회적 저항과 도덕적 봉기는 그렇게 단순한 얘기가 아니다. 권위를 아무리 존중하다 해도, 심지어 유해한 권위의 파괴적인 명령을 따르면서도 우리는 사회적 저항과 분노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활발한 소수집단만의 운동일지라도 그 운동에 당위와 일관성이 있다면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도 있다.

P.27
자의식은 타인의 심리와 정서 상태를 이해하기 위한 초석이다. ... 다트머스 대학 인지신경과학 교수인 마이클 가자니가와 토드 해더튼은 최소한의 자아는 곤충류, 조류, 어류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객관화된 자아'는 이보다 좀 더 발전된 의식 수준에서 나타나며, 이는 곧 자신의 정신 상태를 의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경우에는 자아가 개체의 관심 대상이 되기 쉽다.
...
자아의 최종 단계는 상징적 자아(혹은 서사적 자아)다. 이 단계에서는 언어를 통하여 시간 속에서의 나 자신을 표상할 수 있다.

P.30
나치 전범들에 대한 이야기와 확증편향

P.37
처음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이 도덕과 어떻게 관련된다는 것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타인의 시각과 정서를 고려하는 것이 우리가 본능적으로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위치와 무관할 수 있을까? 더 깊게 들어가자면, 우리는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자기 시각 자체가 문제시되면 부정적으로 반응하기 쉽다. 그래서 자기만족과 이미지 관리는 폭력의 보편적 요인이 된다.

P.40
자신을 과대평다하는 경향이 가장 두드러진 부류는 확실히 남들과 차별될까? 그렇다. 하지만 나쁜 방향으로 차별화된다. 한 연구에서 실험참가자들의 논리적 추론능력을 검사했다. 그 결과 성적이 가장 나쁜 부류와 자신의 추론능력을 가장 과대평가하는 부류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43
자의식을 느끼면 행동과 신념의 일관성에 대한 욕구가 증가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 그렇다면 위반 행동도 자의식 증대에 영향을 받을까? 이를 입증한 연구들이 있다. 필기시험에서 응시자들의 자의식을 자극하면 부정행위릉 저지를 확률이 낮아진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자의식을 일깨워주면 사소한 물건을 슬쩍하는 행위가 줄어든다.
 
p.48
실제로 사회집단은 인간 도덕성의 근원이자 목적이요, 그러한 도덕성이 실현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다. 이러한 생각은 지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전에 우선 인간은 긴밀한 감시 아래서만 도덕적일지도 모른다는 단순한 가설을 살펴보자.
 
p.53
이타적인 행동을 요청할 때에도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권할때, 사회적인 인맥을 고려하게 만들 때, 전화보다는 직접 얼굴을 보고 부탁할 때, 특히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부탁할 때 그 요청이 받아들여질 확률이 높다.
 
p.68
동물-악이라는 등식은 매우 오래되었다. 인류학자들은 이 등식이 보편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부도덕성은 인간적이지 않은 형태로 의인화될 수 있었다.
 
p.69
동물을 부도덕한 존재로 범주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특히 동물과 더불어 살아본 인간들의 의견은 전혀 다르다. ... 제인 구달은 수컷 침팬지들이 그들의 친구나 이웃과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이는 광경도 목격했다. 그녀는 묘한 씁쓸함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안타깝지만 그런 모습을 보자 침팬지들이 더욱 인간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p.70
몽테뉴는 인간은 '피상적이고 인위적인' 것을 탐하지만 동물은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행복만을 추구하므로 도덕적으로 인간보다 낫다고 했다. 동물이 오히려 인간의 귀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p.74
 자민족중심주의는 좀 더 미묘한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른 집단은 인간의 특수한 감정, 이를테면 수치심이나 행복감 같은 이차적 감정을 모르고 그저 두려움이나 쾌락 같은 원초적 감정만 좇는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이 같은 '인간성 말살', '인간 이하 취급'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유럽과 북미 여러 나라에서 연구된 바 있다. 이 현상에 따르면 자기가 속한 집단보다 위상이 낮은 집단 사람들은 자기만큼 이차적 감정, 미묘하고 숭고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여긴다. 또한 집단정체성이 강할수록(예를 들어 자국에 느끼는 자부심이 강할수록) 다른 집단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인간 이하 취급은 다른 집단을 가혹하게 다루는 태도를 정당화하는 구실을 한다. 엠마누엘 카스타노Emanuele Castano와 로저 자이너 솔라Roger Giner-Solla는 최근 연구에서 미국인들에게 인디언 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을 때 인디언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태도가 오히려 두드러진다고 했다. 이처럼 타인을 동물 취급함으로써 파괴적 행동을 사후에 정당화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러한 의식 구조가 먼저 자리 잡았기에 타인을 침해하는 행동이 나오기도 한다. 그 예를 살펴보자.
 
어떤 인간집단이 '동물화'될 때
...
 
그들과 우리의 경계
영장류 연구가 프란스 드 발Frantx de Waal은 침팬지에게도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우리/그들' 구분이 있으며 그래서 원래 알고 지냈던 개체들끼리도 어떤 부류와 어울리느냐, 어떤 구역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서로 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프란스 드 발은 우리가 적을 사람 취급하지 않듯이 침팬지도 다른 집단에 속한 침팬지를 자기와 같은 침팬지로 여기지 않는다고 보았다. ...
 '우리'와 '그들'의 경계는 도덕규칙이 적용될 수 있는 선, 다시 말해 우리와 같은 집단구성원에게 기대할 수 있거나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행동방식의 기준을 보여주는 듯하다. 역설적이고 놀랍게도, 이 규칙들은 그 집단 내에서는 대개 더욱 강화되지만 적대관계에 있는 집단에서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도덕의 경계에 관심이 많았던 프로이트는 "사랑으로 서로 결합하거나 더 맣은 사람을 포용하려면 공격할 만한 외부인이 있어야만 한다."라고 했다. 꼭 물질적 이해관계가 있어야만 삭막한 구분이 싹트는 것은 아니다.
 
p.81-
개인은 동물이라는 범주를 사용함으로써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배제하는 가치를 독차지한다. 특히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것을 자신의 자존감을 북돋우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p.86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이 자살론에서 주장했던 바는 반세기 동안 꾸준히 확증되었다. 타인과의 의미 있는 관계를 누리는 개인들은 평균수명보다 오래 살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훨씬 더 건강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정신적 위안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교류가 활발한 사람에 비해 심장질환이 생길 확률이 두 배나 더 높다. 또한 알제리의 라마단처럼 집단적 만남과 대인접촉이 잦은 상황에서는 자살률이 반으로 떨어진다. 정신과 의사 보리스 시륄니크Boris Cyrulnik는 강제수용소에서도 공산주의자나 여호와의 증인은 종교나 이념의 소속이 없는 사람보다 공포심을 더 잘 견디고 고통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안다는 놀라운 사실을 지적했다.
 최근 정신건강 관련 연구에서 사회적 결속력이 면역력을 강화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며 수술 후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발표했다. 역학 연구에 따르면 흡연은 사망률을 1.6배 높이지만 사회적 고립은 사망률을 2배나 높인다. 뇌혈관계 질환자 665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혼자 사는 환자는 사회적 관계를 활발하게 유지하는 환자에 비해 5년 내 재발률이 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타인의 조재가 가져다주는 이로운 효과는 고통과도 무관하지 않다. 극단적인 더위나 추위를 참아야 하는 실험연구 상황에서 여성들은 배우자의 손을 자버나 배우자의 사진을 보면 한결 인내심을 발휘했다. 고통을 느낄 때 누군가 있으면 그 사람과 고통을 나눈다는 의식이 생기는 걸까? 신경촬영을 해보면 바늘에 손을 찔리는 장면을 보는 사람은 마치 감각운동의 전염이라도 일어나는 양 손 근육이 위축되었다.
 
p.89
사회집단과의 심리적 유대는 구체적 처벌에 대한 두려움보다 중요하다. 그러한 유대는 법ㅇ르 존중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사회학자 트래비스 허쉬가 발전시킨 범죄 이론은 여러모로 확증된 바가 있다. 그의 저서인 '범죄의 원인'은 단순한 가설에서 출발해 여러가지 주장과 데이터를 제시한다. 그는 개인이 법과 사회의 지시를 준수하는 이유는 '사회통제'가 그런 것들을 위반하지 못하도록 심리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회통제는 순응의 압박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가까운 이들과의 정서적 애착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p.90
일단 손상된 평판은 되돌리기가 어렵다. 타인들은 우리의 도덕적 평판을 ㅇ지시킬 뿐만 아니라 이따금 좀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한 연구에서 실험참가자들에게 음식 값을 내지 않고 식당에서 나가버린 프랭크라는 인물을 묘사해 보았다. 그런 다음 참가자의 3분의 1에게는 플애크가 정직하지 못한 인물이라고 말했고, 다른 3분의 1에게는 원래는 정직한 사람인데 깜빡 잊고 그런 거라고 했고, 마지막 3분의 1에게는 아무런 부연설명도 하지 않았다. 일주일 후, 참가자들을 다시 불러 놓고 프랭크 이야기를 최대한 생각나는 대로 재구성해보라고 했다. 그 결과, 프랭크가 원래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접한 참가자들은 그가 지불하지 않은 음식 값을 실제보다 높게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람들의 평판은 사회적 교류에서 만들어진다. 작은 집단 내에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 거론되면,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은 두 번째로 나오는 발언으로 결정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처음에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얘기가 나왔는데 누가 그 얘기에 맞장구를 친다면 집단 전체는 그 사람을 나쁘게 볼 것이다. 반면에 두 번째로 말하는 사람이 그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맨 처음에 얘기를 꺼낸 사람의 부정적인 언급은 상당 부분 힘을 잃어버린다.
 
 p.92
영장류의 신피질 크기는 그들이 형성하는 집단의 규모에 비례한다. 집단구성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적 교류에 직접 관여하는) 신피질이 발달하는 것이다.
 
p.94
인간의 온기를 거부당한 사람은 정말로 체온이 떨어진다. 토론토대학의 두 연구자는 사람이 사회적 배척을 경험한 직후에는 자기가 있는 방 안의 온도를 실제보다 낮게 느끼고 따뜻한 음료나 음식을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반면에 사람들은 실내 온도가 17도일 때보다는 23도일때 서로를 더 가깝게 느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사회적 거부를 경험한 직후에 아이큐검사를 받은 사람들은 지능지수가 상당히 떨어지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또 사회적 거부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술이나 음식에 탐닉하는 경향이 있고, 남에게 너그럽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속임수를 쓰기 좋아했다.
... 배척이 이따금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이러한 설명은 완전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거부당한 사람은 자기가 배척받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그는 사회에 다시 편입되려고 노력하므로 타인들에게 좀 더 주의 깊고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게 마련이다. 일례로 배척의 경험을 떠올린 사람은 친해지고 싶다는 뜻을 담은 표정, 즉 미소를 좀 더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p.98
 애시의 연구는 17개 국가에서 133번이나 재연되었는데 그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개인의 정체성이 타자와 연결되어 발달하는, 소위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집단에 순응하는 비율이 개인주의 사회에서보다 더 높았다. ... 물론 개인적 요인도 개입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집단의 영향력을 덜 받지만, 권위적 성격의 소유자는 그런 영향력에 더 많이 휘둘린다.
 
p.102
신체적 기준을 바탕으로 지배관계를 파악하는 태도는 매우 일찍부터 나타난다. 생후 8~13개월의 아기들에게 키 큰 사람과 키 작은 사람이 서로 반대방향을 걸어오다가 중간에서 마주쳐 서로 길을 막아서고 잠시 후 한 사람이 비켜나며 길을 양보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연구자들은 이 아기들이 시선을 고정한 시간을 측정했다. (이 시기 아이들이 자기가 본 것에 놀랄수록 눈을 떼지 못하고 오래 바라본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 결과 10~13개월의 아기들은 키 큰 사람이 키 작은 사람에게 길을 양보하는 것을 더 놀랍게 여겼다. (생후 8개월 된 아기는 그렇지 않았다.) 이 아이들은 그러한 상황을 보고 평균 20초간 시선을 떼지 못했지만 반대로 키 작은 사람이 길을 양보하는 상황을 볼 때에는 12초만 시선을 고정했다.
 도덕규칙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된다. 거의 4000년 전의 바빌론 도덕규범집들조차도 귀족들은 특별대우를 받았음을 보여준다. 귀족이 손실을 입으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이 적용되지만 하층계급민이 손실을 입으면 벌금형을 요구하는데 그쳤다. 이러한 특별대우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반응에조차 존재한다. ...
 레너드 빅먼Leonard Bickman은 뉴욕 중앙역과 케네디 공항에서 실험을 해 보았다. 고급스러운 옷을 차려 입은 사람이 공중전화 부스에 동전을 두고 나갔다가 잠시 후 다른 사람이 전화를 걸 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조금 전에 여기다가 동전을 놓고 간 것 같아요. 혹시 동전 못 보셨나요?" 이 사람이 동전을 돌려받는 확률은 77퍼센트에 달했지만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같은 부탁을 했을 때에는 그 확률이 38퍼센트에 그쳤다.
 성금을 모으는 사람도 높은 지위를 나타내는 옷차림을 할 때에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심지어 좋은 옷을 입고 새치기하는 사람은 허름한 옷을 입고 새치기하는 사람에 비해 반발을 덜 산다. ...
 위반자가 집단 내에서 높은 위치에 있다면 집단이 나서서 그의 위반을 은폐하기도 한다. ..
 실험환경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파트너와의 협업 과제를 주고 관찰한 결과, 이들은 상대의 말을 중간에 끊거나 대놓고 수작을 걸며 부적절한 접촉을 시도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지 않으며 적대적이거나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태도를 취했다. 게다가 타인의 욕구와 태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도 권력과는 공존하기 어려운 것으로 밝혀졌다.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에게 이마에 E자를 써보라고 요구하는 절묘한 실험이 있었다. 이들이 이 문자를 보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시각에서 쓰는 빈도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세 배나 높았다. 하지만 권력은 타인에 대한 책임감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건설적인 행동방식을 낳을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p.106
오늘 날의 연구는 죄의식과 수치심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부끄러움은 사람들 앞에서 더욱 가중되지만 죄의식은 직접적인 사회 환겨에 민감한 감정이 아니다. 죄의식은 종종 회복을 추구하는 태도, 즉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는 행동과 연계된다. ... 죄의식을 자극받은 사람은 돈을 타인과 나누는 상황에서 타인에게 더 많은 돈을 내어준다는 연구도 있다. 주목할 점은 수치심은 죄의식과 달리 자기중심적인 감정과 타인에 대한 적의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어떤 실험은 참가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한쪽은 죄의식과 관련된 일화를, 다른 쪽은 수치와 관련된 일화를 떠올리게 했다. 첫번째 집단응ㄴ 타인의 문제에 더 관심을 보인 반면에 두번째 집단은 자기 문제에 집중하느라 남들은 안중에 없는 듯했다.
 
p.110
당혹감은 수치심이나 죄의식과는 다른 감정이다. 당혹감은 주로 관습적 규칙을 위반할 때 발생한다. 한창 회의가 진행 중인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남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났다고 상상해 보라... 당혹감은 우리의 사회적 이미지가 어긋날 때 비롯되며 일시적으로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 당혹감도 여타의 도덕적 감정들이 그렇듯 사회적 편입의 표식이다. 교수들은 질문에 곧바로 대답을 못하고 당황해하는 학생을 덜 공격적으로 본다. 당혹감을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은 그 사람이 어떤 사회적 규범을 어겼는지 의식하고 있음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기가 방금 저지른 일에 당황해 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일을 목격한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사과를 한다. ...
 
p.145
모방은 사회의 윤활제
- 인간의 거울 뉴런은 원숭이의 거울 뉴런보다 그 수가 훨씬 많다. 그래서 타인의 혐오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면 우리 뇌에서도 불쾌한 냄새를 맡았을 때에 관여하는 바로 그 영역(뇌섬엽)이 활성화 된다.
표정의 자동 모방은 모방된 표정이 가진 감정을 불러오기 쉽다. 19세기 말에 윌리엄 제임스는 그저 어떤 활동을 보고, 생각하고, 상상하기만 해도 그 활동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관념 운동성의 원리'를 주창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에게 숟가락으로 먹을 것을 떠먹이면서 아이가 입을 벌리면 우리도 따라서 입을 벌리곤 한다. 마찬가지로 성난 표정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인위적으로 표정ㅇ르 막아버리면 표정의 피드백 현상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톡스 주사를 눈썹 부위에 놓아서 분노의 표정에 이용되는 근육을 마비시키면 분노에 관여하는 뇌 영역에서 실제로 그 영향이 나타난다.

p.150
모방은 행동규범의 강력한 습득 기제다. 이러한 습득은 아이들의 기질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어떤 아이는 자기 주위 사람들을 주도면밀하게 모방하기 좋아하는 반면, 그러한 본보기에 다소 무딘 아이도 있다. 미네소타 대학의 연구자 데이비드 포먼은 엄마들에게 장난감을 정리하거나 물을 한 잔 가져다주는 간단한 일을 기꺼이 해 보이고 나서 아이도 똑같이 그 일을 따라 하게끔 유도하라고 했다. 아이들의 태도를 관찰하니 엄마를 유독 잘 따라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2년 후에 다시 그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엄마를 잘 따라 했던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던 아이들에 비해서 탁자 위의 장난감을 만지지 말라든가 어떤 상자를 열지 말라든가 하는 지시를 잘 지켰다. 또 이 아이들은 손을 대자마자 장난감이 망가진다든가 하는 (의도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책하고 미안해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었다.

사회 환경이 폭력의 무대가 되어버리면 폭력적 행동은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범죄학 자료 중에서 또래집단이 범죄 확산에 미치는 효과만큼 신뢰도가 노은 자료는 없다. ... 성인 범죄의 가장 믿을 만한 통계지표는 범죄행위에 가담하거나, 범죄를 계획한 바 있거나, 반사회적 태도를 보이거나, 소년범죄 전적이 잇는 친구들이 있는가에 달렸다. ... 부정적 행동의 모방만 고려할 수는 없을 것이다. 행동 모방 원칙은 건설적 행동에도 확실히 적용된다. 한 사람의 협력 행동이 전혀 교류가 없었던 다른 사람들에게로 확산되는 양상은 실험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타성도 가끔은 폭력 못지않게 맹목적이다.

실존하는 모데만이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마땅한 순리, 이를테면 남성의 본분과 여성의 본분 따위를 가르쳐주는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도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초등학생 권장도서 120권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아동문학 장르에 뚜렷이 나타나는 전형이 있음을 밝혀냈다. 아동물의 여성 등장인물은 모성의 역할을 구현하는 경우가 많고(40퍼센트)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적었다. 그녀들은 직업이 있더라도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받는 직업이 아니거나 몇가지 전형적인 직업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에 남성 등장인물은 주로 집 밖, 특히 공공장소에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남성은 활동적이고 용기가 필요한 역할을 맡고, 여성보다 훨씬 다양하고 높이 평가받는 직업에 종사했다.

p.154
조건화는 수많은 도덕적 기호를 결정한다. 실험을 수단으로 인간의 도덕적 기호를 개발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마땅한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으나 어쨋든 개인의 취향에 속하는 기호가 대단히 일찍 조건화된다는 사실은 입증할 수 있다. 소위 '평가적 조건화'에 대한 연구들은 누구라도 베이지색 볼펜보다 파란색 볼펜을 더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볼펜을 손에 쥐었을 때 기분 좋은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면 그 볼펜은 유쾌한 기분과 연결된다. 별 의미 없는 편지를 읽더라도 그 순간 얼음장 같은 찬물에 손을 담그고 있다면 그 편지는 불쾌한 기분과 연결된다. 같은 맥락에서 어떤 사람의 이름에 불쾌한 연상 작용을 개입시킴으로써 전혀 모르는 이들이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게 유도할 수도 있다. 반면에 자기 어머니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함부로 대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러하 평가적 조건화는 뿌리 깊게 각인되지 않은 대상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 원숭이들에게 뱀 공포증을 전염시키기는 쉽지만 원숭이들에게 꽃에 대한 두려움을 주입시킬 수는 없다. 집단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백인이 흑인을 무서워하게 하거나 흑인이 백인을 무서워하게 하기는 비교적 쉽다. 하지만 흑인 혹은 백인이 자기와 같은 집단에 속하는 구성원을 무서워하게 만들기는 훨씬 어렵다.

p.156
도덕규범을 학습하는 능력은 개인의 인성과 심리에 뿌리 내린 근본적 특성들에 의해 조정된다. 아이는 뭐든지 빨아들이는 압지도, 무슨 모양으로든 빋을 수 있는 반죽도 아니다. 아이의 도덕적 기질은 매우 일찍 발현되기도 하며, 부모의 사회화적 행동방식이나 그 효력에 대해서도 주체적인 힘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화는 쌍방향의 역동적인 방식으로 구상되어야 한다.

p.157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생물학적 반응성 지표들은 보상과 처벌의 수용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 아주 어릴 때 겁이 많고 민감했던 아이일수록 만 5세에 도덕적 의식을 더 강하게 표현한다.


p.163
 개인의 도덕적 발전이 인지능력, 언어능력의 증강으로 환원될 수는 없지만 개인이 선호하는 도덕적 추론과 지능지수 및 언어능력, 논리력 사이에는 실제로 상당한 관계가 있다. 타인의 시각과 욕망을 이해할 수 있느냐느 도덕적 발전의 결정적인 전제조건이다. 여기에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타인의 의도를 추정하는 능력도 보조를 같이 한다.

p.169
술을 마셨을 때에는 도덕적 추론이 단순해진다. 집단의 리더가 단순한 추론 방식을 채택한다면 그 집단의 구성원들도 그럴 확률이 높다.
p.170
콜버그 모형에서 높은 단계에 잇는 사람들은 유독 정직했다. 이들은 실험실에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아무도 모르게 부정행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도 꿋꿋이 그 기회를 못본 척 했다. 하지만 이들이 사회적 압력과 순응에도 그렇게 꿋꿋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예를 들어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상황에서 권위에 대한 복종은 모든 사람에게서 (즉, 도덕적 추론 단계와 무관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도덕적 추론은 행동과 연결되어 있으나 이 연결이 우리의 생각만큼 직접적이지는 않다고 하겠다.

p.171
사회적 관습 및 관례와 도덕규칙 사이의 구분은 어떻게 발달하는 것일까? 사회적 관습은 아이가 성장하는 사회집단 내에서 암묵적 지시들을 통해 알게 되지만 도덕규칙은 경험 그 자체, 특히 자기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결과를 관찰함으로써 논리적으로 도출된다. 피해자를 확인하거나 자기가 직접 피해를 당해보면 도덕과 관련된 규칙들을 형성하는 데 좋은 자극이 된다.

p.173
요컨대 인간은 규범이 여러 유형을 구분할 수 있고 이러한 능력은 아마시 공동체처럼 극단적으로 규정된 문화의 틀 안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p.176
펜실베이니아 대학 폴 로진 교수 팀의 연구는 접촉 공포와 같은 원초적 현상들이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었다. 특히 오염과 혐오에 관한 연구는 정신에 대한 생각과 체액에 대한 생각이 그리 동떨어져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고, 콜버그와 투리엘의 접근이 간과했던 측면을 제대로 조명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어떤 행동들은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고 개인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설명되지 않는데도 비열한 짓으로 간주되고 혐오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 비판은 콜버그와 투리엘 모두에게 유효하다. 왜냐하면 콜버그와 투리엘의 이론은 지문을 거친 추상적 판단의 우위를 전제하지만, 사실 개인이 감정에서 출발하여 판단의 방향을 정하고 그 후에 이 판단을 정당화하는 경우도 매우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따금 어떤 도덕적 문제에 대해 근거를 생각해보기도 전에 스스로도 놀랄 만큼 단호한 판단부터 내뱉는다.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문을 읽게 했다.
 "마르크와 쥘리는 남매 사이다. 남매는 여름에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남매는 바닷가 오두막에 단둘이 있게 됐고 둘이서 섹스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이 될 터였다. 쥘리는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마르크는 만약을 위해 콘돔을 사용했다. 두 사람은 만족스러운 섹스를 했지만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 일은 두 사람만의 비밀이 되었고 그들은 더욱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매가 그런 일을 한 것은 나빴을까?"
 실험참가자들은 대부분 마르크와 쥘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했지만 그러한 판단을 한 근거를 대면서 기묘한 어려움에 부딪혔다. "뭐라고 설명은 못하겠어요. 하지만 그건 잘못된 일인 것 같아요."와 같은 주장만 되풀이 했다. ... 이처럼 부도덕한 행위에 먼저 반감을 느끼고 그 후에 반감을 정당화하는 근거들을 차즌 경우가 있다. 그러한 근거들을 찾고자 하는 욕구는 가끔 '자기정당화'에 해당하는 논증을 낳기도 한다.

p.182
피니어스 게이지 말고도 뇌손상으로 과학적 연구에 빛을 던져준 환자가 최근에 한 명 더 등장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가 관찰한 엘리엇이라는 환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엘리엇은 성공적인 삶을 살던 30대 남성이었으나 뇌막종 때문에 전전두피질을 상당 부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은 성공했으나 엘리엇의 일상적 행동이 크게 변하면서 불행이 시작되었다. 엘리엇은 시간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게 되었고 무분별한 부동산 투기에 빠졌으며 두 번 이혼했다. 그러나 일련의 테스트 결과, 엘리엇의 지각능력, 단기기억과 장기기억, 이해력, 언어능력과 계산능력은 여전히 건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시오는 엘리엇의 도덕적 능력을 콜버그 모형에 따른 도덕적 추론 단계 측정도구를 사용하여 평가했다. 이 평가에서 엘리엇은 4단계에서 5단계(연령대 평균 수준을 웃도는 수준인) 사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엘리엇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그 후에 여러 연구들로 확인되었다. 고도의 도덕적 추론 능력을 지닌 사람도 얼마든지 개인적 삶에서 도덕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

p.183
폭주하는 전차의 딜레마
 탈선한 전차가 내리막길을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저쪽에서 일하고 있는 다섯명의 일꾼은 전차에 치여 죽고 말 것이다. 당신은 선로 변경 스위치를 눌러서 그 다섯 명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저쪽에서 길을 건너는 행인 한 명이 전차에 치여 죽고 만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응답자의 90퍼센트는 스위치를 눌러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대답은 전형적인 공리주의의 추론 방식에 입각해 있다. 다섯 사람의 목숨이 한 사람의 목숨보다 가치 있으니 그 한 사람이 희생당할 수도 있다느 논ㄴ리다. 이제 이 딜레마를 조금 다른 버전으로 만나보자.
 당신이 다리 위에서 철로를 내려다보는데 바로 옆에 뚱뚱하고 덩치가 좋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다리에서 철로로 밀어버리면 폭주하는 전차를 막을 수 있다. (당신은 체격이 빈약하기 때문에 스스로 뛰어내려봤자 전차를 막을 수 없다.) 이 경우에도 한 사람을 희생시켜 다섯 사람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전차의 딜레마를 이러한 버전으로 제시하면 응답자의 90퍼센트가 아무리 다수의 인명을 구하는 일이라지만 사람을 '수단'으로만 사용할 수 있느냐며 소위 '의무론적' 입장을 취한다. 두 버전 모두 한 사람만 죽으면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그런데 왜 응답자들은 딜레마가 어떤 식으로 제시되느냐에 따라 이처럼 상이한 태도를 보이는걸까?
 조슈아 그린과 그의 동료들은 신체적 접촉의 역할을 규명하는 연구를 실시했다. ... 연구팀은 '레버'나 '다리'같은 세부사항이 감정이 동원되는 수준의 차이를 만든다고 보았다. 신체적 접촉과 뚱보를 희생시킨다는 의도는 그 행동을 용인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다리에서 누군가를 밀어버린다고 할 때에는 감정의 프로세스를 관장하는 뇌영역이 활성화되지만, 선로변경 스위치를 누른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 영역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감정이 개입할 때에는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거대 원칙에 입각한 판단이 나오고, 감정이 개입하지 않을 때에는 "한 명보다는 다섯 명"이라는 공리주의적 판단이 우세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랫도안 철학자들은 도덕적 판단에서 감정이 담당하는 역할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 중에서도 흄과 칸트는 서로 대조적인 입장을 보였다. 흄은 인간의 판단에 감정이 항상 개입해 있으니 그 둘을 완전히 분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반면에 칸트는 순수이성을 동기로 삼지 않는 판단은 모두 의심스럽게 여겼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심리학에서도 판단해야 하는 딜레마의 내용과 무관하게 감정의 효과를 연구한 작업들이 있었다. 일례로 딜레마를 접하기 전의 개인의 감정 상태를 실험환경에서 조작한 결과, 도덕적 판단이 감정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다리 버전의 딜레마는 공리주의적 판단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린은 다리 버전의 딜레마를 제시하기 전에 실험참가자들에게 긍정적인 기분을 조성함으로써 그러한 부정적 효과를 완화할 수 있었다. 실험참가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쪽에만 유쾌한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 후로 두 집단은 똑같은 딜레마(다리 버전)을 접했지만 유쾌한 영화를 본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공리주의적 판단을 더 많이 내놓았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하고 그 효과를 살펴보았는데, 이때에도 감정적 차원을 덜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공리주의적 판단으로 기우는 양상이 나타났다.

p.186
우리는 별 수 없는 '판단기계'들이다. 인간은 새로운 정보나 대상을 접하는 순간마다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의식적인 분석이 시작되기도 전에, 무의식적인 정서적 정보들이 저절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접근(좋다) 혹은 회피(싫다)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그 후 정보들은 좀 더 완만한 추론 과정에 따라 재배치된다. 우리는 이 때에 비로소 논증을 검토하고, 기댈만한 증거를 찾고, 논리적 관계를 수립하는 '추론 단계'에 이른다. 이 단계가 언어적인 설득력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최초의 감정적 평가만큼 결정적이지는 않다고 볼만한 증거가 두 가지 있다.
 첫번째는 정서적 정보가 뇌에 먼저 도달한다는 것이다. 정서적 정보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나머지 과정 전체를 물들이고 이 최초의 평가에 부합하는 논증들을 불러오는데 공헌한다. 이 평가 단계들은 추론처럼 투명하지가 않다. 이 과정은 부분적으로 개인의 의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교정할 수 없다. ...
 추론이 판단의 키잡이가 아니라는 두번째 증거는 개인이 제시하는 이유들이 대개 진정한 행위의 동기와 무관한 귀납적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한 실험에서 학생들에게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평점을 매기게 했다. 학생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밖에서 기분 나쁜 전기톱 소리가 계속 났다. 나중에 학생들에게 불쾌한 소음이 그들의 평가에 영향을 주었는지 물어보자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음 없이 영화를 보고 평점을 매긴 학생 집단과 비교한 결과, 두 집단의 평가에는 아무 차이도 없었다.
 반대로 어떤 영향들은 굉장한 차이를 만드는데도 제대로 가늠하기가 어렵다. ... 우리는 시련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잘 판단하지 못하는 편이다.

p.190
혐오의 심리학

 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제 오랫동안 찬장에 처박아놓고 까맣게 잊어버린 잼 병을 열어보자. 뚜껑을 여는 순간, 우리 얼굴에는 전형적인 표정이 떠오를 것이다. 코를 찡그리고,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윗입술과 턱이 들려올라가고, 눈썹 안쪽이 살짝 처지는 바로 그 표정. 그게 바로 혐오의 표정이다. 음식물은 부패 여부를 떠나 자주 혐오의 원인이 된다. 그러한 혐오는 일종의 위험 신호, 우리가 아무거나 집어먹지 않게 하는 일종의 파수꾼 역할을 한다. 게다가 실제로 쉽게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질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고 한다. 혐오감을 관장하는 뇌 영역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 소위 클뤼버부시증후군 환자들은 먹어서는 안 될 것, 이를테면 구두약이나 배설물을 입에 가져가곤 한다.
 북미에서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혐오는 특히 9개 영역(음식, 신체분비물, 동물, 특정 성적 행위, 피부 및 신체 표면의 손상, 불결한 위생상태, 불쾌한 사람과의 접촉, 도덕적 과오)에서 일어나기 쉽다. 혐오감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신체적 혐오와 정신적 혐오는 굉장히 비슷하다. 우리는 혐오를 표정이나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내는데 이때의 표정이나 신체언어는 썩은 고기 냄새를 맡았을 때나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게 됐을 때의 반응과 매우 유사하다. 사회 혐오에 대한 한 연구는 미국의 네오나치주의 영화를 보고 나서 혐오감을 느낀 사람들이 실제로 그에 해당하는 신체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최근 신경영상학 연구는 신체적 혐오와 정신적 혐오가 전두엽과 측두엽, 전측뇌섬엽을 활성화시키는 부분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연구자들은 불의가 뇌에서 혐오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실험참가자들에게 게임을 제안했다. 이 게임에서 A(제안자)는 돈을 마음대로 분배할 권한을 갖고 B(반응자)는 그 제안을 수락할 권한만 있다. 대부분의 경우 A는 3분의 2는 자기가 갖고 3분의 1은 B에게 주겠다고 제안했다. B가 제안을 거부하면 A와 B는 둘 다 돈을 못 받는다. B가 제안을 수락하면 A가 분배한 대로 돈을 나눠 가질 수 있다. 이 게임을 하는 동안 B의 뇌영상을 찍어서 분석했는데 B가 A의 제안을 수락하든 수락하지 않든 그의 전측뇌섬엽이 활성화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달리 말해, 부당한 입장에 있다고 느끼는 인간의 뇌는 혐오를 느낄 때와 똑같이 반응한다는 얘기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형평성을 파악하는데 관여하는 뇌 영역을 전자파를 이용하여 일시적으로 교란시켰더니 B가 A의 제안을 거부하는 횟수가 훨씬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p.194
어떤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과거의 수치스러운 행동을 떠올리게 해싸. 그들의 일부는 이 단계를 마치고 물티슈르 손을 닦을 수 ㅇㅆ었지만 나머지는 그런 중간 과정 없이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다음 단계에서 그들은 어느 박사과정생을 위해서 보수 없이 실험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손을 씻고 온 사람들은 이 학생을 돕는 데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도덕적 차원에 덜 연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연구는 실험참가자들이 손을 씻고 나서 포르노그래피나 불륜에 대해 좀 더 엄격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p.195
우리 머릿속에서 더러움과 악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듯이 아름다움과 선도 훌륭한 한 쌍을 이룬다. 이것은 문학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된 주제다. ... 아름다운 얼굴이 주는 즐거움은 일상에서도 무의식적인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를 도와줄 때에도 우리의 이타적 행동은 상대의 매력에 휘둘린다. 매력적인 사람이 도움을 얻기 쉬운 이유는 우리가 매력적인 사람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 이러한 경향은 심지어 아무 검증을 거치지 않고 타인의 도덕적 자질을 판단하게 한다. 우리는 종종 신체적 매력이 뛰어난 사람은 특별히 정직하고 친절할 것처럼 생각하고, 못난 사람은 일탈자처럼 여긴다. ... '예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고에도 물론 예외는 있다. 예븐 사람은 경박하고 이기적이며 겸손함이 부족하다는 편견에 희생되기도 한다. 특히 여성이 지휘하는 입장에 설 때에는 미모가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p.201
어느날 저녁, 바다를 향해 말을 타고 가던 한 남자가 길가의 여인숙에 들렀다. 그는 말에서 내려서 여느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문 옆 나무에 말을 매어놓고 여인숙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이가 곤히 잠든 자정에 도둑이 이 여행자의 말을 훔치러 왔다. 남자는 다음 날 아침에야 말을 도둑맞을 줄 알았다. 그는 말이 사라진 데 한탄하며 도대체 누가 말을 훔쳐갈 생각을 했는지 참 안타깝다고 했다.
 여인숙에 묵고 있던 다른 손님들이 남자의 주위로 몰려들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첫번째 손님은 말을 마구간 밖에 매어놓다니 당신이 어리석었다고 했다. 두번째 손님은 말에 족쇄도 채워놓지 않았다니 어리석었다고 말했따. 세번째 손님도 말을 타고 바다에 가려 했다는 것 자체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다며 남자를 책망했다. 네번째 손님은 원래 게으르고 걸음이 느려터진 사람이나 말을 타고 다니는 거라며 비아냥거렸다.
 남자는 놀라고 기가 막혔다. 결국 그는 이렇게 역정을 내고 말았다. "이보시오, 내가 말을 도둑맞았다고 해서 모두들 내 흠을 들추기 바쁘구려! 하지만 어찌 이럴 수 있소? 내 말을 훔쳐간 그 놈을 책망하는 말은 한 마디도 없구려!" - 칼릴 지브란

- 역사를 훑어보면 '도덕적 위반이 신체에 나타난 결과'가 매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여서이 생리 중에 성관계를 하면 한센병, 뇌수종, 생식기기형을 앓는 아기를 낳는다고 했다.

우리는 괴로움을 싫어하지만 남들이 괴로워하는 것도 싫어한다.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아기도 다른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데 녹음기를 이용해서 아기에게 자기 울음소리를 들려주거나 다른 시끄러운 소리를 들려주면 그렇게까지 동요하지 않는다.

타인의 울음이나 괴로워하는 태도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감정이입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두드러진다.

p.202
자연계에는 어느 한 생명체가 괴로워할때 그 동족들이 힘을 합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넘쳐난다. 이러한 결속력은 집단의 규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프란스 드 발은 이 현상을 적자생존의 법칙과 대비시켜 '또 다른 다윈주의'라고 불렸다. (안타깝게도 적자생존은 다윈의 사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여기에는 오해가 있다) 프란스 드 발은 그의 저작에 동물들의 결속행위를 보여주는 수 많은 예들을 동원한다. ... 부상자와 약자에 대한 지원은 종종 매우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작용하는 행동규범이다. ... 그러나 이런일이 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유엔국제아동기구와 세계식량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매일 18000명의 아이가 굶어 죽어가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이 상황을 견디는 방법의 하나는 얼른 잊어버리는 것, 소위 '맹점scotoma'을 통하여 자신의 관심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맹점 기제에 대한 연구에서 학생들에게 '공정한 세계'에 관한 믿음을 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설문지를 배부했다. "학교의 성적 평가는 합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라든가 "죄 없는 사람이 감옥에 가는 일은 극히 드물다"와 같은 문항들로 이루어진 설문지였다. 그 후 학생들에게 앞으로 각자 정해진 이동경로에 따라 다른 장소로 옮겨달라는 공지사항을 전달했다. 학생들의 이동경로에는 세계의 빈곤과 기아 문제를 호소하는 전시물들이 걸려있었다. 설문이 끝난 후 학생들에게 이동하는 동안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학생들일수록 이 전시물들과 관련된 요소들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부당하게 굶주리는 타인들의 존재는 아마도 그들의 믿음에 위협이 되지 않았을까.
...
우리는 잘 모르는 피해자들이 불행을 자초했다 싶을 때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지나친 흡연 과음, 속도위반 때문에 폐암, 간경변, 불의의 장애를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도 크게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한 불행이 개인의 절제와 의식으로 피할 수 있는 일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 루소가 어느 편지에서 썼듯이 "우리는 대부분의 신체적 질병을 우리 탓으로 여긴다." 다양한 질환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병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환자는 훨씬 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 피해자에 대한 판단을 조율하는 요인들은 그 밖에도 많다. ... 하지만 왜 그토록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떨어졌을 뿐인데도 부정적인 판단의 대상이 될까? 그 이유는 설명을 찾고, 가급적이면 원흉을 지목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히려 피해자가 예상치 못한 뭇매를 맞는 것이다. 사고를 '당한' 운전자는 사고의 피해가 클수록 비난 받는다. 피해자는 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증거를 사후에 찾아 들추는 사람들 때문에 또다른 피해를 입는다. 성폭행 피해자의 상황 진술에서는 평소 아무 문제도 되지 않거나 오히려 좋게 받아들여질 법한 요소들도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어떤 피해자 집단이 부정적인 평가를 당하면 결국 그 집단 전체가 그런 생각에 동화될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가 된 것도 모자라, 비판을 내면화함으로써 붖어적인 감정들까지 떠안는 것이다. 피해자 집단에서 종종 나타나는 이러한 잠재적 거부는 2차 피해를 야기한다. 강간, 가정폭력, 질병, 자연재해, 대형 사고의 피해자들이 자책에 시달리는 경우는 매우 많다.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 자책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이 시련을 얼마나 잘 극복할 수 있는지 예측 가능하다. 자신이 한 행동을 자책하는 피해자가 자신의 전반적인 인격을 비난하는 피해자보다는 전망이 밝다.

p.212
 연구자들 역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위험한 성관계를 더 많이 고려하게 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반대로 죽음을 '떠오리는 것'은 규범을 더 잘 지키려는 역설적인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실험참가자들에게 죽음에 대한 연상을 유도했더니 오히려 규범체계가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실제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나면 자선 단체에 더 많은 돈을 기부하고, 집단의 규범을 잘 지키는 사람을 아낌없이 칭찬하며, 규범을 위반한 사람을 더욱 가혹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p.213
아주 어린 아이들은 부엌 찬장에서 몰래 잼을 꺼내려다가 컵 두개를 깨뜨린 아이보다 엄마를 도오주려다가 컵 여섯 개를 깨뜨린 아이가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도덕적 의도를 구분할 때 측두-두정집합이라고 하는 특정한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그런데 자성을 이용하여 이 부분의 활성화를 억제하면 의도적이지만 심각한 결과를 불러오지 않는 행위와 의도적이지 않았지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 행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p.215
워털루 대학의 멜빈 러너는 실험참가자들에게 반대편에서는 볼 수 없는 유리창을 통해서 두 사람이 함께 과제를 수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라고 했다. (이 두 사람은 배우들이었다.) 수행 과제는 에너그램(단어나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문자의 순서를 바꾸어 다른 단어나 문장을 만든 것)을 푸는 것이었고 두 사람의 공헌도는 서로 비슷했다. 실험참가자가 예산상의 이유로 두 사람 중 제비를 뽑아 당첨된 사람에게만 사례를 지급할 것이라고 말해두었다. 마지막으로 실험참가자들에게 그 사람들의 작업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실험 결과는 제비뽑기 결과가 공헌도에 대한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어느 쪽이든 간에 그 사람은 공헌도가 낮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 피해자를 업신여기는 태도가 실제로 정의를 표현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준 실험이 있었다. 실험참가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게 하려는 동기에서 고통을 참는 피해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공정성을 추구하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위협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피해자를 낮게 평가하는 태도는 이러한 상황에서 극대화되었다.
.. 이러한 현상을 '공정한 세상' 효과라고 부른다. 우리는 세상이 공정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판단도 '뿌린 대로 거둔다'는 생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왜곡시키고는 한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실험참가자들이 피해자를 업신여기지 않았다. 참가자들에게 피해자의 입장을 상상해봐고 하면서 감정이입을 유도한 경우가 그러했다. 피해자의 입장에 서보도록 유도하면 피해자를 경시하는 효과는 사라진다. 그렇지만 피해자와의 동일시가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피해자가 관찰자와 동이한 특징을 지닌다면 관찰자가 위기감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에 그러한 유사성이 없을 때보다 더 심하게 피해자를 업신여길 수 있다. 게다가 피해자가 가까운 사람일수록 감정이입은 두드러진다.

p.218

공정한 세상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개발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실험 상황에서 피해자를 업신여기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연구자들은 설문조사를 통하여 공정한 세상을 '믿는 자'들의 프로필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얻었고 그러한 믿음이 연령, 성별, 사회계급과 약간은 관련이 있지만 단순히 어떤 보수이데올로기나 종교적 세계관으로 싸잡아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공정한 세계에 대한 믿음은 에이즈 환자, 극빈층, 강간피해자와 노숙자, 실업자, 장애인, 노인에 대한 경멸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설문 측정의 흥미로운 변화 중 하나는 개인적 적용과 일반적 적용을 구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이 '나'에게 ㄱ옺어하고 믿는가와 세상이 '남'들에게 공정하다고 믿느냐는 별개다.
 개인적 적용- 세상이 나에게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거둔 긍정적 결과들과 관련이 있다.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이 투철한 사람일수록 삶에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이들은 비교적 행복한 삶을 누리며 부정적 감정이 적고 자신의 사회적 인간관계에 만족하는 편이다. 일례로 한 연구에서 이러한 사람들은 위협적인 정볼르 접해도 자존감이 실추되지 않으며, 힘든 상황을 잘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는 청소년들의 경우에도 세상이 자신에게 공정한 편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남들이 자신을 놀리는 상황에서 덜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일반적 적용- 세상이 남에게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법을 어긴 자에게 냉혹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로 이어진다. ...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그러한 믿음이 이타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대학생들에게 맹인을 위한 책 읽어주기 봉사를 부탁해보았다. 일부 대학생들은 시험이 없는 학기 중에 이러한 부탁을 받았고 또 다른 일부는 시험이 한창 진행 중인 학기 말에 부탁을 받았다. 결과를 종합하니 그러한 믿음이 투철한 학생일수록 힘들고 바쁜 학기말에도 봉사에 나서는 비율이 높았다. 다른 학생들은 여유가 잇는 학기 중에나 봉사를 하겠다고 했다. 왜 그럴까? 공정한 세상을 믿는 학생들은 좋은 일을 하면 결국 자기에게 보답이 돌아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p.221
감정이입은 그 정의상 타인이 느끼는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감정이입이 지나치게 고조되면 자기도 우쭐해지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동정심이 발휘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한 연구에서 5~13세 아동들에게 힘든 상황에 있는 아이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여주었다. 동영상 속의 아이가 괴로워할 수록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도 괴로움을 느꼈고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서 아이들은 감정에 몰입한 나머지 동영상 속의 아이보다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쉽게 감정이입을 하지만 감정 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실제로 감정이입을 유도당한 상황에서 타인을 잘 도와주지 않는다는 보고와도 부합한다.
 사회복지사, 의료인, 간병인이나 상담사 등이 그 직업에 오래 종사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냉혹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 바로 여기에 감정이입의 패러독스가 있다. 피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할수록 그를 도와줄 확률은 높다. 일례로 타인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심장박동이 빨라질수록 신속하게 도움을 제공하려 한다. 하지만 어느 선을 넘어버리면 관찰자는 괴로운 상황을 회피하고 피해자와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미 도움을 주기로 약속한 상황이거나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이라면, 관찰자의 감정 이입이 고조될수록 피해자를 도와야 겠다는 의욕의 수준도 높아진다.

누가 피해자를 비난하는가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의 핵심에는 타인의 어쩔 수 없는 불행을 설명하려는 욕구가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귀인이론에 입각한 정의의 수사학이 그저 자기정당화의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강간범이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인들은 아메리카인디언들의 인간적인 감정을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인디언 학살에 대한 책임의식을 자극하자 이러한 양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이같은 정당화의 욕구는 자기 이미지를 타인이나 자기 자신에게 항상 잘 유지하고 싶어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여러분이 어떤 실험에 참여하러 왔다고 상상해보자. 실험 과제의 성패에 따라 불쾌한 전기충격을 받을수도 있는데 그건 그냥 제비뽑기로 정해진다고 하자. 당신과 동시에 실험실에 도착한 다른 참가자도 있었다. 당신과 그 참가자가 차례로 제비를 뽑았다. 당신은 운 좋게 피드백을 면했지만 다른 참가자는 과제의 성패에 따라 전기충격을 받게 되었다. 물론 그 사람이 먼저 제비를 뽑고 당신이 나중에 제비를 뽑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제비뽑기의 순서에 따라 다른 참가자에 대한 당신의 평가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먼저 제비를 뽑았다면 상대의 불운에 어느정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를 낮게 평가할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정당화하려 노력한다. 스탠리 밀그램은 권위에 대한 복종을 연구하면서 파트너가 기억력 테스트에서 실수를 할 때마다 전기충격을 가했던 참가자들이 실험 후에 파트너를 낮게 평가하는 현상을 확인했다. 밀그램은 그 실험에 대해 이런 설명을 내놓았다. "책임은 실수를 범해서 처벌을 자초한 학생에게 떠넘겨진다. 그 학생은 이런 실험에 자원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당하고, 더 고약하게는 아둔하고 고집이 세다고 비난을 당한다. ..." 이때의 심리 기제는 명백하다. 그 학생은 '딱한 녀석'이지만 자업자득일 뿐이라는 것이다.
... 어떤 실험에 따르면, 자존감이 높을 수록 피해자를 업신여기기 쉽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때로는 '고통을 차단하는 막'이 되어 감정이입을 봉쇄해버리기도 한다. 이 탄탄한 막은 일종의 가면이기도 하다. 그 막은 기꺼이 완벽한 미덕의 귀감으로서 연추로딜 것이다. 이제 이 도덕극이 펼쳐지는 극장의 심리학적 분장실들을 찾아가보자.

p.228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은 상당 부분 타인의 판단에서 오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행동이 어떻게 해석될까에 그토록 연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의 평판이 곧 나의 진정한 사회적 표상이기 때문에 절대로 평판에 흠집 나는 일을 해선 안 된다. 도덕적 차원에서는 더욱 그렇다. 개인이 자신에게 부여하는 가치, 타인에게 부여받는 가치를 결정하는데에는 도덕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운동을 잘하고 머리가 좋고 손재주가 뛰어난 것도 사회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타인이 가장 중시하는 인격적 측면은 주로 도덕성과 관련이 있다. 실험참가자들에게 인간을 묘사할 수 있는 300가지 특징이 무엇인지 꼽아보라고 했다.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꼽은 특징은 '정직'이었고 다음으로 '신로', '다정함', '신의', '책임감' 등이 순서대로 나왔다. 37개 국가에서 실시된 이문화간 연구 결과를 종합한 결과, 파트너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상냥함'이었다.
 배신자나 배후조종자로 찍힌다는 것은 확실한 위협이다. 모두가 나를 피하거나 따돌릴 거라는 위협 말이다. 재화를 분배하는 게임에서 속임수를 쓴 사람이 그 다음 판에서 배제되거나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경제학적 연구들은 수없이 많다.

p.229
청렴한 사람은(그가 꼭 이러한 혜택을 의식하고 청렴하게 사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청렴함으로 인해 많은 혜택을 얻는다. 사회는 장기적 관계를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되는 도덕적 믿음들을 장려한다.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도 그중 하나다.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는 정직하게 보이는 사람이 사업에서도 더 큰 성공을 거둔다고 했다. 칭찬받을만한 행동은 남들에게 지각되어야 한다. 도덕성이 그 자체만으로 사회적 편입과 협동에 이롭다면 그러한 태도가 인간 상호작용의 무대에서 인정받는지를 왜 신경 쓰겠는가?
 사회적 존재는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그러한 존재로서 지각되는 것도 중요하고, 집단 속에서 형성된 자기 이미지를 끈지기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존재는 지각되는 것이다. (Esse est percepi, 주관적 관념론 철학자 조지 버클리가 한 말이다.) 우리가 협력하는 이 역할극이 반드시 의도적이고 의식적일 필요는 없다. 물론 심사숙고된 이중성, 계획적인 속임수, 음흉한 위장이 가능한 살마들도 있다. 게다가 연구자들은 이러한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의 심리를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인물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타인을 뻔뻔하게 조종하는 능력이다. 부동산 중개, 자동차 세일즈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설문조사에서 권모술수에 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경제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거짓말에 능하고,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많이 하며, 파트너를 배신하거나 착취하기 쉽다. 실험실에서의 연구는 이들이 속임수가 들통 났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능력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런 성향은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감지된다. 아동용 설문조사에서 권모술수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아이들은 이미 다른 아이들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조종할 줄 알았다. 한 실험에서 아이들에게 이상한 맛이 나는 과자를 다른 친구들이 먹게 해보라고 했다. 설문조사에서 권모술수가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아이들은 실제로 능청스러운 거짓말로 다른 아ㅣ들이 과자를 먹게 했다.
 위선자의 특징이 정해져 있어서 척 보기만 해도 사기꾼을 가려낼 수 있다면 참 편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 편리한 기능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게 여기는 심리적 특징들을 무조건 악한 것으로 몰아갈 위험이 있다. 우리는 왕자보다 어린 왕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우리가 흔히 위선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관계상의 병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의 결과로 봐야 한다. 이중성은 대개 당사자도 잘 알아차리지 못하며 오히려 그 사람을 지배한다. "가면은 오랫동안 피부에 달라붙는다. 위선은 결국 진심이 되어버린다." 여러 유럽 ㅓㄴ어에서 위선자hypocrite라는 단어는 원래 무대 위의 배우를 가리켰고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 역시 무대에서 쓰는 가면을 뜻했다. 우리는 이러한 어원들을 살펴보면서 역할극과 빌려 입는 의상이 도덕적 삶의 중요한 골조가 된다는 점을 깨닫는다. 위선의 문학적 표본 타르튀프는 어떤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신의와 겸양의 본을 보이면서 오르공이 자기 가족들을 외면하고 그에게 유산을 물려주게끔 일을 꿈니다. 그러면서도 타르튀프는 스스로 도덕적인 ㅇㄹ망에 불타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배우의 정신분열을 모른다. 그는 거짓 진심에 불탄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진심 어린 진심이다. 타르튀프는 연기를 하는게 아니다. 분장은 그의 피부가 되었고 가면은 얼굴에 찰싹 달라붙어 더 이상 떨어질 줄 모른다. 타르튀프형 인간은 자신의 미덕을 의심치 않는다."

p.234
 자기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그 잘못을 금기시하는 규범을 가볍게 여기게 되는 현상은 매우 일반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부도덕한 행동의 심각성을 낮추어보는 태도로도 나타난다.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사소한 폭력에서 시작해서 차츰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결국 극단적인 행동까지 저지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

도덕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유혹
사회라는 무대의 배우들은 조심성을 잃지 않는다. 비차별주의는 결코 위반해서는 안 될 중요한 도덕적 규범 중 하나다. 어떤 경우에는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느 염려가 역차별을 낳기도 한다. 그저 남들에게 지탄받으면 안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렇게까지 될 수 있다. 과거 미국의 한 조사는 특급 호텔에서 드레스코드를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가 살펴보았다. 호텔 식당에 커플이 등장했는데 남자 쪽이 전혀 격식을 차리지 않은 차림이라고 치자. 이 커플이 백인들이라면 흑인 커플일 경우보다 식당 이용을 거부당할 확률이 두 배나 더 높다. 호텔지배인은 격식을 갖추지 않은 손님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인종 차별주의자로 몰릴까봐 얼마든지 통용될 수 있는 규칙을 흑인 커플들에게는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것이다.
 스팬퍼드 대학의 브누아 모냉과 데일밀러도 최근 비슷한 현상을 연구한 바 있다. 실험 초반에 참가자들은 자신이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어필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직원을 선발하는 과제에서 훌륭한 이력을 제시한 흑인 지원자를 택했다. 그 다음에는 다소 인종 차별적이라는 평판이 있는 경찰 팀의 일원을 선발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러자 그들은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기존의 입장이 무색하게도 반드시 백인만 뽑았다. 동일한 모형을 이용한 또 달느 연구에서는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를 뽑았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사람들이 앞서 말한 경찰 팀 일원으로 백인을 선발하는 경향이 오히려 더 높았다.
 사회적 차별이 농후한 의견들을 내놓기 전에 자신은 차별을 분명히 반대한다고 먼저 밝히는 경우도 많다. "저는 인종 차별주의자는 아닙니다."라는 말에서 이미 인종주의를 짐작해도 좋을 지경이다. 이런 수사법이 때때로 통하기도 하지만, 다수에 속하기 싫어하는 살마들에게는 작위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p.240
 
원숭이가 높이 올라갈수록
 도덕성을 획득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일이 급격히 틀어질 수 있다. 가혹한 역설이지만 스스로 타의 모범이 될 만하다는 생각이 모범적일 수 없는 행동들을 낳는다. 어느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도덕성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유도했떠니 타인의 위반 행동에 엄격한 비난을 퍼붓거나 앙심을 품었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소니아 새치데바 연구팀은 실험참가자들에게 자신 혹은 타인과 관련하여 과거에 겪은 일을 글로 쓰되 그 안에 '공정한', '관대한', '친절한'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다. 두번째 ㅈ비단의 참가자들에게도 같은 주제로 글을 쓰되 '신의 없는', '탐욕스러운', '못된'(도덕적으로 부정적인 단어들)을 포함하라고 했다. 세번째 ㅈ비단에게는 '책',
'열쇠', '집'(중립적 단어들)을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그 다음 단계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자선 단체에 기부할 기회를 얻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도덕성을 확인한 참가자 집단이 가장 욕심을 부렸다. 첫번째 집단이 나머지 두 집단보다 훨씬 기부를 적게 했던 것이다.
... 실험참가자들에게 약간의 돈을 지급하고 그들이 뭔가 도덕적 행동을 했다고 상상해보라고 했다. 그들은 자신이 도덕적이라는 생각만으로도 훨씬 더 탐욕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같은 맥락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올 때보다 고해성사를 하러 갈 때 기꺼이 적선에 응한다.

p.244
개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뚜렷한 자기인식과 꼼꼼한 대처가 결심을 지키는데 훨씬 유용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섬 근처를 지나기 전에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단단히 붙들어 매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든 철저하게 무시하라고 했기 때문에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선약'은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막고 결심을 실천하게 하는 하나의 수법이다.


p.249
우리는 우리가 성자, 성녀가 아니라고 인정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우리는 착하다고, 나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카라바조, 나르키소스

괴물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에는 그들의 수가 너무 적다. 가장 위험한 것은 보통 사람들이다. - 프리모 레비

p.250
악의 평범성이라는 표현은 평범해졌다. 이 표현을 고찰한 책이나 논문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생각 없이 절대악에 결탁하는 군중을 가리키는 '보통 사람들'이라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이 표현은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가 나치 친위대 고위 장교였던 아이히만의 경우를 다루면서 제시한 것이다. 아이히만은 딱히 유대인을 증오하지 않았으면서도 조직적인 유대인학살을 주도했다.
 '악의 평범성'은 중요한 관점의 전복을 뜻한다. 이 개념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 주의를 돌리며 그러한 가해자들이 특별히 악한 인간이 아니라 평범한 수백만 인구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렌트가 생각한 악의 평범성은 "대규모로 자행되는 범죄 현상으로서 행위 주체의 특정한 악의, 어떤 병, 이데올로기적 신념으로 설명될 수 없다. ... 행위가 아무리 흉측할지라도 그 행위 주체는 괴물 같지도, 악마 같지도 않다." 는 것이다. 이 현상은 사람들이 체제에 맹목적으로 순응한 나머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잘 의식하지도 못한 채 악에 휘말리는 상황을 가리킨다. 단순한 명령의 하수인이 악의 집행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렌트느 1961년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아이히만 재판을 다루면서 나치의 고위 간부를 평범한 인간으로 보았다. 아이히만은 증오심이 넘치거나, 가학적인 사람,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심지어 꽤 양심적인 사람으로 볼 수 있었다. 비슷한 다른 예들이 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장본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에놀라 게이'의 조종사 폴 티베츠도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1968년 3월 16일 베트남 밀라이에서 노인, 여자, 어린이 500명의 학살을 주도했던 윌리엄 콜리도 그랬다. ...

권위에 대한 복종
- 상황적 압박의 파괴력을 가장 잘 보여준 과학적 시도는 아마 예일 대학의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일 것이다. 밀그램은 빼어난 연구들을 통하여 권위에 대한 복종을 다루었다. 그의 작업 덕분에 사회심리학은 복종에 대한 정치적, 철학적 성찰에 가시적인 성과를 얻었고 학술적 차원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었다. ..밀그램의 실험은 이제 진부할 정도로 유명해져 버렸다.
 스탠리 밀그램은 실험을 위해 20~50세 사이의 평범한 사람들을 선발했다. 참가자들은 기억과 학습에 대한 연구에 협조하는 대가로 몇달러 상당의 사례를 받았다. 그들은 실험실에서 30대 초반의 실험자와 47세의 남성을 만났고 제비뽑기를 해서 누가 교사 역할을 하고 누가 학생 역할을 할지 정했다. 교사는 학생에게 한 쌍의 단어를 기억하게 하고 학생이 오답을 말할 때마다 전기충격을 가해야 했다. 전기충격은 15볼트씩 단계적으로 높아져 최대 450볼트까지 이를 수 있었다. 교사역을 맡은 참가자는 전기충격의 단계에 대해서 미리 설명을 들었다. '가벼운 충격', '중간 단계의 충격', '강한 충격', '매우 강한 충격', '심한 충격', '극심한 충격', '위험', '심각한 위험' 그리고 맨 마지막 단계의 버튼들은 'XXX'라고만 표시되어 있었다.
 실험참가자들은 전기충격기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설명을 들었을 뿐 아니라 직접 45볼트 상당의 전기충격을 경험해보았다. 학생은 의자에 묶인채 오른쪽 손목에 전극을 붙이고 화상을 방지한다는 연고까지 발랐다. 물론 이 학생 역할의 공모자는 아무런 전기충격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교사 역할의 참가자가 전기충격을 가하면 정말로 아픈 것처럼 비명을 지르거나 울부짖는 연기를 했다. 실험자는 교사가 자신을 바라보며 난감한 기색을 보일 때마다 학생이 발을 구르며 몸부림치는 한이 있더라도 미리 정해놓은 대로 실험을 계속해달라는 말만 되풀이하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험 결과, 참가자들은 심한 스트레스 상태에서 평균 285볼트까지 전기충격을 가했으며 그중 65퍼센트는 최대 강도에 해당하는 450볼트 버튼을 눌렀다. 실험자가 계속 해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때에는 참가자의 80퍼센트가 120볼트 이하의 충격만을 가했다. 이 실험은 심리학 역사상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밀그램의 초기 연구들은 50년 후까지도 수많은 저작들에 영감을 주었는데, 그 이유는 그만큼 이 연구들이 인간 심리를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 그 밖에 여러 변화를 가미한 실험들이 있었다. 첫번째 실험자가 내린 지시를 두번째 실험자가 나타나 바박했을 때 혹은 다른 참가자들이 실험의 가학성을 문제 삼으며 반항할 때에는 맹목적 복종이 감소했다. 이 모든 결과들은 권위에 대한 복종이 그 상황에 따르는 여러 변수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p.260
성격이 권위에 대한 복종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나는 가짜 게임쇼 <익스트림 존>에 참여한 다양한 직업군의 남녀 참가자들 90퍼센트와 새로운 실험을 해볼 기회를 가졌다...
실험 결과, 참가자가 양심적일수록 피해자에게 가한 전기충격의 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가장 양심적이지 않다고 하는 3분의 1이 가한 전기충격은 평균 460볼트였다.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권위에 복종하기 쉽다는 이 결과는 아이히만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기술-진중하고 체계적인 공무원-과도 맞아떨어진다. 상냥한 성품을 지닌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한 결과를 볼 수 있다. 소위 친절하고 사근사근하다는 사람들이 (TV프로그램 진행자와 불쾌한 갈등을 겪고 싶지 않아서 그랬는지) 피해자에게 기꺼이 전기충격을 가한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관찰은 성격의 특정한 면들이 권위에 쉽게 복종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친절하고 순리대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들, 사회에 나무랄 데 없이 편입되어 있는 사람일수록 밀그램 모형과 가까운 상황 안에서 불복종을 꺼려했다. 우리는 이 두가지 특징이 공격성, 항정신성 약물 남용, 위험한 성적 행동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좋은 가장의 자질, 수혈이나 봉사에 적극적인 태도, 높은 학업수준과 야심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확인했다.
 주목할 만한 결과는 또 있었다. 여성들의 경우, 정치적 소신이 권위에 대한 복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남성들에게서도 이러한 영향은 관찰되었으나 통계적으로 그렇게 의미가 크지는 않았다.) 정치적으로 좌파인 여성이 피해자에게 가하는 전기충격은 평균보다 낮았다. 이 결과는 1972년 캘리포니아 대학의 앨런 엘름스가 확인한 바와 일치한다. 당시에도 우파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두드러지게 나타낸 사람들이 권위에 좀 더 잘 복종하는 것으로 나왔다. 서명운동, 불매운동, 집회 참여, 파업, 사무실 및 공장 점거 등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권위에 불복했다.
 따라서 우리의 성격은 권위에 대한 복종에 부정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고 하겠다. 우리의 경험들이 미래의 행동을 마련하는 것이다. ... 권위에 복종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상황적 변수들뿐만 아니라 개인의 과거 경험들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다소 극단적인 신념을 내세우는 집단에 참여한 경험이 유해한 상황을 타개하는 긍정적 효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집단에 대한 소속과 집단이 개인에게 부여하는 역할은 또 다른 맹목과 파괴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p.263
우리는 대상을 판단하는 입장의 변화 효과를 '악의 패러독스'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존재들은 곧잘 '낯선 것=나쁜 것'으로 생각한다. 적의와 낯설음이 비슷해질 때에 악의 이미지는 더욱 공고해진다.
...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집단 참여는 개인의 정체성이 약화되고 익명성이 커진다는 효과가 있다. 실험실에서의 여러 연구들이 우리가 집단에 소속감을 느낄 때 고립된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 더 커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을 두 군으로 나누어 한쪽은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고양하고 다른 쪽은 고립되었다는 느낌을 자극했다. 그 후, 실험자는 (일부러) 참가자들을 나무라고 모욕했다. 소속감을 자극받은 사람들은 고립감을 자극받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실험자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집단이 어떤 개인을 적으로 규정하면 집단 내에서 발생하는 상호 인력과 결속이 개인에 대한 폭력을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p.266
우리는 권위에 대한 복종을 다룬 연구들을 살펴보면서 곧잘 '나라면 이 실험참가자들처럼 행동하지 않았을텐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도덕성에 뭔가 결여된 점이 있었기 때문에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면섞지 권위에 복종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행동에 고의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경향은 한결같다. 시카고 대학의 에비 로셋의 연구는 우리가 화나는 일을 설명해야 할 때에 그 일을 우발적 사건으로 여기기보다는 어떤 사람에게 원인을 돌리기 쉽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상황적 원인보다 행위자의 의도를 더 따진다. 왜 그럴까? 한가지 이유를 꼽자면, 개인의 의지보다 행위를 둘러싼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지적으로 더 수고스럽기 때문이다. ... 따라서 화가 나는 일을 설명할 때에 누군가의 잘못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사유의 자연스러운 경향이다. 일찍이 괴테도 파우스트에서 악마는 이성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p.268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은 끔찍한 악행과 그 행위 주체의 멀쩡하고 정상적인 모습 사이의 깊은 심연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이 개념은 수많은 오해들을 낳기도 했다. 사이코패스를 척 보고 알 수 없다면, 나치의 얼굴에서 빈정대는 미소를 찾으려 해 봤자 소용없다면, 결국 악이란 예측할 수 없이 불쑥 튀어나와 누구든 덮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악이 역사적 조건들과 무관하게 아무나 맨 처음 걸리는 놈을 후려친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아렌트도, 밀그램도 결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간수들을 교화된 인물로 묘사하는 경향은 사실 그들이 보통사람들과 너무나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친절한 간수'인간형이 인기다. 조너선 리텔의 공쿠르상 수상작 착한여신들만 봐도 그렇다. ... 간수를 악의 화신처럼 묘사하는 것도, 반대로 비범한 교양인이자 음악애호가처럼 묘사하는 것도 역사적 자료에서 확인되는 현실과는 ㅗㅇ떨어져 있다. 나치들은 괴물들이 아니었지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들"이었다고 프리모 레비는 간단하게 말한다. 가끔은 전직 고문관이나 살인을 저질렀던 사람이 과거의 잘못을 세련되고 우아한 태도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끔찍한 짓거리가 점진적인 준비 단계 없이, 본인의 동의 없이, 자기 만족이나 병적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갑자기 툭 튀어나왔을 거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p.269
타인이 보는 내 모습이 어떨지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악에 대한 정의는 달라질 수 있다. 개인이나 집단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자기 행동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기 바쁘지만, 피해자는 상대를 악한 사람으로 몰아가고 자신의 책임을 모면할 근거를 찾기 바쁘다. 실험참가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상황의 피해자가 되었던 때와 가해자가 되었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들은 자기가 잘못한 경험을 진술하면서 비록 자신의 과오를 완전히 정당화하지는 않더라도 대개 그 과오를 해명하는 이유나 책임을 덜어줄만한 정황을 언급했다. 반면 피해자 입장에 섰을 때에는 상황에 대한 언급을 줄이고 가해자가 어떤 식으로 도발하고 위해를 가했는가를 자세히 진술했다. 이것이 1장에서 지적한 우리의 한량없는 자기애이다. 우리는 우리가 성자, 성녀는 아닐지언정 비교적 착하다고, 나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잔인한 독재자조차도 조금 힘이 들긴 하지만 얼마든지 자기사면을 할 수 있다.

p.284
자기조절능력이 소진되면-단순히 집중한 탓에 기분이 달라져서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다- 더 중대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실험참가자들은 자기조절을 요하는 작업을 마치고 나서 매력적인 이성의 사진을 더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또한 부적절한 상황에서 과음을 하게 되기도 한다.
... 이처럼 자기조절능력이 소진되면 이타심을 발휘하기도 어려워진다. 자기조절을 요하는 작업을 수행한 참가자들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음식이나 돈을 잘 나누어주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을 돕는데 소극적이었고, 기회가 주어지자 기꺼이 속임수를 썼다. 게다가 피곤에 지친 사람들일수록 타집단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 자기조절능력은 일반적으로 수면을 취하거나 포도당을 섭취함으로써 회복된다. 최근 암스테르담 대학의 매튜 게일리엇을 중심으로 한 연구진은 이러한 '정신에너지'의 ㅅ애물학적 토대를 밝혔다. 자기조절은 친구와 대화를 나누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는 활동들에 비해 포도당을 더 많이 소모한다. 그래서 자기조절이 필요한 과제를 수행한 실험참가자들에게 포도당을 보충해주었더니 자기조절능력이 소진되었을 때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 자기조절 활동 이후에 타인을 도와주는 행동이 감소하는 현상은 포도당 음료를 마시지 않은 참가자들에게서만 나타났다.
 사회적 고정관념에 대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자기조절 단계 이후에 고정관념을 드러낼 기회가 주어지자 포도당 음료를 마시지 않은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다른 흥미로운 현상도 관찰되었다. 포도당을 필요로 하는 활동을 자주 할수록 뇌의 포도당 비축분은 늘어났다. 이 때문에 자기조절 연습이 근육운동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리라. 이렇듯 자제력은 쓸수록 발달하는 능력이다.
 
p.299
죽음은 나의 일에서 묘사한 수용소 간수였던 루돌프랑은 끔찍한 구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의무의 인간'이었다. 이 같은 극단적 순응성, 지나친 경직성에서는 자기통제가 미덕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뿐만 아니라 규범에 집착하는 노모패스도 문제라는 얘기다.

p.303
생각해보라.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에 대한 공격을 유발하지 않는 도덕적 이상이 과연 존재할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부화뇌동하는 모방기계다. 우리는 늘 교제에 목말라 있고 타인의 욕구에 민감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인간사회의 심판관이자 집행인처럼 군다.
...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사회규칙에 대한 추상적 이해와 담론은 변해간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금세 '나한테 유리한 것'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옿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중요하고 가까운 이들의 생각을 반영하여 구성될 것이며, 이때야 비로소 그들의 생각에 대한 나의 동의가 결정적인 것이 될 것이다. 법과 질서에 대한 존중은 여러가지 개인적 경험, 특히 다양한 집단에 참여한 경험에 의해 더 넓은 시각으로 확장된다. 이때에는 법이 도덕의 최종 지평이 아니며, 창조적인 도덕성을 발휘하여 도덕적 이견을 제시할 수도 있다. ...
 나는 이 책에서 우리가 타인과 강력하게 연결되는 데 감정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강조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그러한 체계에 힘입어 살아간다. 인간의 근본적 사회성은 상호의존성을 낳고, 그래서 우리는 저 사람을 가까이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매 순간 타인을 평가한다. 생후 6개월 된 아기도 적의를 보잉는 사람들보다는 이타적인 사람들을 선호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의 연구가 지난 20년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그건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깨달음이었다. 내가 이 책에서 주장하고자 한 바는 인간의 선행과 악행, 그 모든 행동의 첫번째 동기를 인간의 사회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호모 모랄리스'의 진정한 동기이다. 게다가 그러한 행동이 인간에게 심리적 충족감을 준다는 점에서 도덕의식은 인간 진화의 산물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p.308
나는 도덕적 사유와 행동을 이해하는데 가장 유용하다고 여겨지는 개념들을 이 책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그 중 가장 지배적인 개념들에는 사회적 통제에 대한 민감성, 소속에 대한 욕구, 관찰에 의한 모방 기능과 학습능력, 정의와 공감이라는 차원에서의 반성적 능력 등이 포함된다. 나는 또한 도덕적 평가가 우리의 명증한 의식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으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정에 휘둘리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상황이 생각지도 못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도덕적 사유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도 어느정도 다루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 말을 덧붙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간의 지각과 행동에 관여하는 기제들을 선악의 표상과 관련된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 인간의 적극적 태도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제시는 "도덕적인 것/부도덕한 것"에 대한 사회적 이해,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어떤 면에서는 인간 행동과 사유를 바로잡는 데에도 기여한다. 일례로 위급한 상황에서 목격자가 너무 많으면 방관자가 되기 쉽다는 연구 결과를 접한 사람들에게서는 책임 확산 현상이 한결 적게 나타났다. 반대로 실험참가자들에게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원인에 의해 결정되기 쉽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전달했더니, 그들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 우리는 우리가 동질감을 느끼는 집단의 도덕적 척도에 따라 타인을 판단하고 평가함으로써 그 집단에 더욱 단단히 결속된다. 도덕적 성향은 사람들을 서로 가깝게 해주고 사회적 협력을 끌어내는 최고의 도구이자 대립의 요인이기도 하다. 우리가 도덕적 성향을 조건화하거나 고양하는 것을 규명하고자 노력할 때에 이 성향은 아마 더욱 예리하게 다듬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 도덕성이 전혀 상반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있다는 것을 알 때, 즉 '선'과 '악'이 가끔은 관점의 차이에서 나온 부실한 근거의 '선포'에 지나지 않으며 이기적인 의도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도덕성에 만족하고 자부심을 품기보다는 명철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그것을 바라볼 때 우리의 도덕성은 더욱 완전해질 것이다.
 니체는 말했다. "자신의 부도덕한 짓에 얼굴을 붉히는 것부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간다면 결국은 자신의 도덕성에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좀 더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지침을 제시하거나 인간의 선의 혹은 악의 그 자체에 대한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선악에 대한 표상과 연관된 우리의 판단이 행동방식에 미치는 사회심리적 영향들을 분석하고자 했다. 독자들의 타자를 향한 나름의 탐색에 이 책이 새로운 단초를 던져줄 수 있기를 바란다. 타자야말로 인간 도덕성의 근원이자 목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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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