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입니다 - 04/12/2020

독서/여성주의 2020. 4. 13. 07:48

부활절 오후, 뭘 하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서점에서 금방 산 책을 찍어 보냈다. 책을 본 친구가 그 책은 몇 챕터 읽다 너무 힘들어서 내려 놓았다고 했다. 나는, 읽다 힘들어 집 구석에 쳐박아 둘 지언정 구매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책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지만 중요하니까.

한 챕터, 한 챕터를 꾹꾹 눌러가며 읽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고발 되기 전, 그남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희미해 지던 기억을 되살리게 해 준다. 그렇게 우리가 어떤 개쌍놈에게 투표 할 뻔 했는지도, 안희정 자신이 여성주의자라고 인터뷰 한 잡지 내용을 읽으며 느끼던 감정들과 그 순간의 기억들도 생생해져 괴로웠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때 하나의 움직임은, 여성후보가 없으면 투표지에 빨간 볼펜으로 “여성후보”라고 적고 나오자는 운동이었다. 서울시에는 신지예 후보가 있었지만 내가 속한 지역구에는 없었다. 이 운동에 대해 일부 안티페미들의 조롱은 뜨거웠다. 사표를 양성해 보았자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 메시지를 누가 알아 줄 것 같느냐는 아주 타당해 보이는 지적들. 그렇게 하면 결국 최악인 X당 누구가 당선 될 것이라는 익숙한 윽박들.

그렇지만 그 “여성후보” 요구 운동은 선택이 아니었음도 기억나게 되었다. 적어도 여성후보는 앞에서 페미니스트임을 내세우며 비서를 성폭행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다 못해 X당 유명한 원내대표가 ‘안희정 하겠냐.’는 말이, 정치철학적으로 그럴듯하고 타당해 보이는 여성후보 요구 운동에 대한 비판들 보다, 여성인 내게는 백만배 더 타당했으니까. 그리고 그 날 밤에 “여성후보” 요구 운동이 지상파 뉴스와 언론에 보도 되었을 때의 기분도, 다시 떠올랐다.

기록은 다시 기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나는 기억하고 싶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대한민국이 김지은씨에게 어떤 빚을 지고 있는지도.

posted by sergeant

82년생 김지영 - 2019. 11. 05

독서/여성주의 2019. 11. 6. 12:16

개인적으로 육아와 출산에 대한 여성주의 담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게 페미니스트로서 시급한 문제는 동일임금/동일노동이나 성폭력 근절과도 같은 것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비 선호가 육아와 출산에 대한 담론을 의미 없게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다못해 비출산/비혼 결심을 하려면 결혼, 육아, 출산이 어떤건지 알고 결심해야 할 것 아닌가.


아무튼간에 개인적인 선호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작품을 딱히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 매력적인 작품이 아니고, 희미한(힘 없는) 주인공들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그러나 조남주 작가의 문체가 평이하고 읽기 쉽다는 점은 다른 작품을 통해 접한 터였다.
굳이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를 떠올려 보자면,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주변 지인들의 반응이 둘로 나뉘는 것이 흥미롭기는 했었다.
어떤 여성들은 김지영이 운이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하고, 어떤 여성들은 그 불행이 너무 안 됐다고..
그 간극 차의 흥미로움.

 

그런데 얼마전 이런 말을 들었다.
"82년생 김지영이 이 정도의 파급력을 가질 만한 작품은 아니지."
한국 남성이 한 말이 아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여성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 계기를 통해 다시금,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여성의 업적이 얼마나 평가 절하 되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읽고 생각해 보고 싶다고 느끼게 되었다.

 

소설의 영화화로 인해 다시금 핫해진 작품.
이 책을 읽었다는 인증만으로도 메갈 낙인이 찍혀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

그러나 이 소설은, 엄청난 통찰력을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주인공의 희미함과 개성없음, 보편적이고 매력없는 그 특성 때문에
너무나도 평범하고 평이하기 때문에 
그 익숙함이 가지는 어마어마한 울림과 파급력 때문에 오히려 문제적이 되어버리는 소설이다.
이 글의 장르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글이 소설인가? 사실 르포르타주에 가깝지 않나?
주변에 김지영이라는 사람을 찾으면,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문체는 드라이하다.
읽기 전 내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신파 소설이라고 생각해서 였기 때문이다.
소설을 둘러싼 너무나도 많고 과장된 남성들의 반응 때문에,
질척이는 신파 소설일 거라 예상했다.
아니다. 조곤조곤 현실의 통계자료들을 인용한다.
이 부분이 그분들의 마음을 심히 불편하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듀나님의 조언 때문에도 읽고 봐야겠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말 그대로 적확한 조언이었다.
왜냐하면, 소설 속의 김지영은 살아 움직이는 한명의 캐릭터가 아니다.
얼굴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김지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보편성은 실제 통계자료를 통해 뒷받침 된다.

영화에 나타난 정유미라는 배우가 그려낸 김지영을 보기 전에,
얼굴 없는 김지영을 만나고 싶었다.


이 작품은 사회학을 전공했다는 작가가 그려 낼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담을 전공하고 나서, 사회학을 전공했어야 하나 가끔 돌이켜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한 개인의 특별함과 스토리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닌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그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보통의 인간을 참 잘 그려냈다.

음악과 미술을 전공하는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며,
과연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누구에 의해 정해질 수 있는지를 계속 도전했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대중이라는 말은 가끔 멸칭으로 쓰이고, 가끔은 모든 것이 된다는 점이다.
이는 소설에서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설은 독자를 염두에 두고 적는 글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나는 이 소설의 평이함,
즉 대중에게 가지는 이 잔잔한 호소력,이 이 소설의 가치를 훼손하는 이유로 쓰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변화에 대한 희망을 주지도 않고,
결국 '다음 직원은 미혼으로 뽑겠다'로 끝내버리는 고구마 백개 먹은 소설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그저 과평가된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 끝마저 메타적으로 이 소설을 읽고 다시금 여성혐오 사회에 갇혀버리는 독자들에 대한 풍자를 잘 그려내 준다.

 

시간이 지나고, 교육자로서 정체성을 더욱 가지게 되면서,
내 서비스를 받을 학생을 생각하는 점이 더욱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이만큼 훌륭한 페미니즘 소설,
즉 대중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여성주의적 작품,을 다시 가질 수 있을지.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페미니즘 소설이 별건가?
싸우고 때려부수는 여주인공이 나와 모두를 계도해야 하는 것만이 페미니즘은 아니다.
여성의 삶에 대한 르포식 보고.
그남들이 발작하는 이유를 더욱 깨달았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햇볕의 힘이 더욱 강력하듯이,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바꾸겠다고 소리치지 않아도
위험하고 불순한 급진여성주의자가 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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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rgeant

현남오빠에게 - 2019. 7

독서/여성주의 2019. 6. 28. 13:12

여성들끼리 있는 자리에서 과거 성폭행 경험을 듣게 되는 일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얼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경험을 털어놓으신 분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김지영씨의 일생이 꽤 기구하다고 느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정확히 들은 것인지, 혹시 반대로 의미를 이해한 것은 아닌지 한번 더 묻고 싶었지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싶어 그냥 넘어 간다.

 

82년생 김지영, 논란이 아주 많았던 책이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연예인들이 '메갈' 낙인을 받아야 했으니까.

우습게도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는데, 일단 나는 신파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여성의 불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는 소문(?)이 있는 소설은, 그리 입맛에 당기지 않았다.

근데 실상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었다는 지인들 중에서는 "사실 김지영은 그정도로 나쁜 삶은 아니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쪽이 진짜일지 궁금해서, 그리고 책을 읽고나서 아주 약하게나마 각성하는 여성들과 대화를 좀 더 잘 진행하고 싶어서 회사 도서관을 뒤적여 봤는데, 우습게도 책이 없었다.

분명 예전에 있었던 것 같은데.... 없앤건가?

게다가 이런 베스트 셀러가 도서관에 없다니.. 대한민국 참 투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에 조남주 작가의 이름을 쳐서 찾은 책은 "현남 오빠에게"라는 책이었다.

몇장 읽지 않고도 조작가님의 문체가 느껴지는게...

82년생 김지영의 색깔도 이런 색깔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힘없는 여성, 피해를 당했으나 그게 피해인지 아닌지도 잘 몰랐던 여성이 조금씩 변화하는 그런 모습?

나는 분노도 많고, 힘도 많은 사람이라 아무래도 이런 등장인물과 문체들이
조금 답답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답답한 인물들이 틀을 깨는 모습들도 웃음이 나고.

 

지은이(화자의 페미친구. 지은이라는 이름, 왠지 작가라는 뜻인것 같아 재밌다)가 교환학생을 갔을 때 저는 오빠 몰래 이메일 계정을 하나 더 만들어 지은이와 계속 메일을 주고받았어요. 방학 때는 제가 캐나다에 가서 보름 동안 함께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네, 이모네 간다고 했던 그 때요. 저는 캐나다에 이모도 사촌도 없습니다. 사진 속의 여학생은 사촌언니가 아니라 지은이의 룸메이트였어요. 저와 똑 닮았다고 했죠? 중국인입니다.

 

 

오빠가 권유한 대로 오빠 회사와 가까운 이 동네에 집을 얻은 건 참 잘한 것 같아요. 오빠는 퇴근 시간이 늦어서 데이트하기 부담스러운 날이 많았잖아요. 저한테는 어차피 집에 오는 길이니까 오빠 회사에 들러서 만나기도 편하고, 저희 동네니까 오빠가 저를 굳이 데려다줄 필요도 없고요. 가끔 오빠 야근하는 날은 제 집에서 자기도 했죠. 쓰고 보니 저보다 오빠한테 더 좋았던 것 같지만 뭐 저도 그 때는 신혼부부가 된 것 같고 괜찮았어요. (...) 참, 오빠 저 오늘 이사합니다.

 

 

책에는 현남이가 화자에게 했던 가스라이팅이 적나라하게 나와서, 처음에는 좀 비위가 많이 상했다.

확실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결국 화자가 내가 가장 갖고 싶어하는 비출산 동지가 되어(!!)

 

"저는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유를 물어본다면 너무 많아 여기에 다 적을 수도 없을 정도인데, 무엇보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제 일이 단절되는 것을 원치않아요. 여기까지 오는 게 많이 힘들었습니다.
(...) 오빠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해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습니다. 오빠의 질문은 '아이를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가 아니라 '아이를 몇명이나 낳는게 좋다고 생각해?'였고 '네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가 아니라 '네가 아이를 몇 년 쯤 직접 키울수 있을까?'였으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해본 적 없다고 대답을 피하곤 했고 오빠는 왜 그렇게 계획 없이 사느냐고 저를 한심해했습니다. 하지만 오빠, 오빠가 아이를 직접 낳을 것도 키울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그런 계획을 혼자 세우죠? 한심한 건 제가 아니라 오빠예요"
 

 

라고 말하는 모습은 그 답답함을 많이 씻어주었다. 이런걸 카타르시스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어서, 82년생 김지영도 도서관에 신청 해놔야겠다.

이런 베스트셀러를 아직도 안 읽었다니. 안 될 일이다. 

 

자전거 여행 외에는 뭐 특별히 기억에남는 일은 없네요. 평소에는 그냥 그런 데이트들이었죠. 밥 먹고, 영화 보고, 맥주 마시고, 섹스하고. 나랑섹스하려고 만나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오빠가 뭐 잘 하는 것도아니고...

 

(...)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지만 청혼은 거절합니다. 저는 더 이상 '강현남의 여자'로 살지 않을거예요. 오빠는 그럴듯한 프로포즈가 없어서 제가 망설이는 줄 알지만 아닙니다. 아니라는데 왜 자꾸 그렇렇게말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제 인생을 살고 싶고 너랑 혼하기 싫은겁니다. 본격적으로 결혼 얘기가 나오고서야 꺼림칙하던 모든 게 분명해졌어. 그동안 오빠가 나를 한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애정을 빙자해 나를 가두고 제한하고  무시해 왔다는 것. 그래서 나를 무능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모르는 나를 돌봐줬던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그래, 아무래도 이게. 카타르시스. 

 

다른 작품들도 여성들의 현실이 처참하긴 마찬가지라 마냥 즐기고 이성을 깨워준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만, 그래 눈을 똑바로 뜨고 봐야지. 대중에게 추천하고 이야기 나누기 좋은책. 이런 서적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posted by sergeant

 

소설 책이 읽고 싶어서 집었는데, 하이퍼 리얼리즘 소설이다.

그런데 이 책은 모두가 봐야 한다. 왜냐하면 너무 웃기기 때문에 ㅋ

 

'임신 중단 전면 합법화!'

'내가 바로 생명이다!'

저 여자들이 혹시 말로만 듣던 '메갈'인가?

(...)

그녀였다!

사 년 전에 공항에서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했던 그녀.

내 연애 역사상 최대치의 치명적인 상처와 잊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줬던 그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 사실상의 첫사랑.

그녀가 '메갈'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나는 페미니스트 여친의 행보가 너무 당연하고 이해가 됐었는데,
이 책은 한국남성시점으로 쓰여있다. 그래서 페미니즘에 관심없는 여자, 그리고 일반 남성들은 주인공의 시점에 많이 몰입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작가가 의도한 독자들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이었을테지만.

 

아무튼 간에 참 재미있어서 지인들에게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깨알같이 웃기고 구체적이고, 공기와 같은 생활 속 여성혐오가 잘 묘사되어 있다. 

 

posted by sergeant

[05/30/2019] 여자는 인질이다

독서/여성주의 2019. 5. 30. 14:52

한국에 와서 가장 즐거운 것 중 하나는, 큰 도서관의 책 들이 모두 다 내 것처럼 느껴진다는 감각이다.
사촌 동생네 대학 도서관도, 서울 공공 도서관도, 심지어는 길거리 교보 문고에서 살 수 있는 책들이 모두 진짜로 내 것처럼 느껴지고 최근에 핫한 책들을 얼른 구매해서 사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참 크다. 언어의 힘이란.

이 책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담론을 친절하게 담아낸 책으로 보인다. 최근 활발하게 논의 되는 비혼, 탈혼, 코르셋 등의 한국 래디컬 페미니즘 담론들이 녹아져있다. 1990년대 쓰인 책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 책의 내용 중 '여성들의 역사는 지워져 왔기 때문에, 항상 여성해방 운동가들은 자신이 처음 해방운동을 시작한다는 고립감을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우리에게도 계보가, 역사가, 선배와 동지들이 있다는 사실은 나와 일부 동료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과 역사의 큰 물줄기에서 최대한 이 계주를 당겨놓자는 마음가짐을 다잡게 만든다.

------------------------------본문 중

p.28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수천 년의 시간 동안 남자들이 조직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여자들을 때리고 강간하고 살해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 대다수가 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가 하는 언뜻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적인 현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남자들의 폭력과 이성애는 서로의 존재를 상호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들의 폭력으로부터 한 순간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여자들은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남자 계급의 시각에 동화되고 자신을 보호해 줄 남자를 찾아 그에게 의지하고자 하게 된다. 여자에게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는 신사적인 남자라 할지라도, 그는 분명 다른 남자가 여자에게 행하는 성폭력으로부터 이득을 본다. 여자들이 남자의 보호를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종속적인 이성애 관계 안으로 들어가 남자에게 감정적, 성적, 가사적 무보수 노동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폭력을 저지르고 한편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면, 가부장제는 기름칠 잘 한 기계처럼 남자 계급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게 되어 있다. 여자 계급이 피억압 계급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지배 계급의 시각에 동화되게 되므로 집단적 저항의 가능성이 매우 효과적으로 차단되는 셈이다.
가부장제는 여자들이 자신이 피지배 계급에 속한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이것을 깨닫더라도 집단적인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사회제도와 문화를 구성해 왔다. 19세기에 여자들의 집단적인 저항이 시작되기 전에는 여자들이 공적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차단하여 아버지나 남편이 지배하는 가정을 벗어날 수 ㅇ벗도록 하였고, 여자들의 목숨을 건 투쟁으로 인해 여자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 및 사회에 진출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하자 사적인 영역에서 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종속적인 수행을 하도록 하기 위한 프로파간다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여자들이 남자 계급의 시각에 따라 자신의 몸을 통제하고 꾸며서 섹시해 보여야 한다는 사회적 강요가 강화된 것이다. 

p. 36
이제 여정을 떠날 시간이다. 여정의 목적지부터 설명하겠다. 우리는 현재 시점에서 여자 전반의 심리를 이해하려면 남자가 여자에게 가하는 폭력과 그 폭력의 효과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남자의 폭력은 여자의 마음속에 상존하는 공포를 심는다. 이 공포는 공기처럼 존재하기에 좀처럼 인식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어떤' 여자라도 '어떤' 남자든지 자신을 강간할 수 있다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뭘 잘못해서 '어떤' 남자든지 남자를 화나게 할까 봐 무서워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는 여자 전반의 현재 심리는 감금 상황의 심리라고, 즉 여자는 남자가 여여자에게 가하는 폭력으로 인해 공포 상황에 처해있다고 주장하려 한다. (실제로 여자가 처한 상황은 노예처럼 예속된 상황이기도 하다.) 우리는 또 안전하고 자유로운 상황에서 여자의 심리가 어떠할지 인류는 아는 바가 없다고도 본다. 우리는 감금 상황- 또는 예속 상황-인 여자의 심리는 유전적, 생물학적인 의미로 전혀 '자연'스럽거나 고유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이는 감금된 야생동물의 심리를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교육을 받고, 남학생들보다 -그것이 운동이든, 수학이든, 리더십이든간에- 여학생이 더 뛰어난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던 청소년기, 적어도 대학시절까지를 생각해 보았을 때 여성이 한번도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다는 역사에 대한 환기는 너무나도 새롭다. 나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시민이라고 배우고, 믿고, 생각하고 길러졌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눈 뜨게 된 것은 내게 아주 큰 자산이다.

p.37
 우리는 역설적이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느끼는 유대감은 물론 여자의 여성성과 이성애도 남자가 여자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한 반응이라고 주장한다. 인질범이 원하는 바를 얻으려면 적어도 인질 몇 명은 죽거나 다치게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남자도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즉 여자의 성적, 감정적, 가정적, 생식적 서비스를 계속 누리기 위해 여자에게 공포를 심는다. 인질이 인질범에게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 인질범을 살살 달래려고 노력하듯, 여자도 남자를 분 좋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 노력에서 여자의 여성성이 생겨난다. 여성성은 지배 계급, 즉 남자가 기분 좋아하는 행동 조합을 말한다. 여자는 여성성을 통해 자신은 종속적 위치를 받아들인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따라서 여성적인 행동은 생존 전략이다. 
 인질범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인질처럼 여자는 살아남기 위해서 남자에게 유대감을 느낀다. 여자가 남자와 연결되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도, 여자의 남자 사랑도 전부 생존 때문이다. 우리는 남자가 다시는- 여자의 기억 속에서조차- 여자를 공포로 밀어 넣지 않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여자의 남자 사랑과 이성애가 스톡홀름 증후군적 생존 법칙에 불과한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여자의 현재 심리를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Societal Stockholm Syndrome 이론이라 부르려 한다.
 이 이론을 읽는 것만으로도 감정적으로 힘겨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은 서로 분리된 듯 보이는 여러 현상 간의 관계를 폭로함으로써 세상을 더 잘 이해하는 틀이 된다.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 이론은 왜 평등권 수정안 운동에 반대하는 여자가 그렇게 많은지, 왜 여자 대부분이 여자의 시각을 옹호하고 여자의 권리를 확대하려는 이론인 페미니즘을 거부하는지,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는 다른 여자들에게서 충족하는게 더 쉬운데도 여자는 왜 남자와 연결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지, 왜 많은 여자가 '사랑 중독'에 걸리는지,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는지 같이 우리가 궁금해했던 문제를 설명해 준다.

p.41
지배나 복종이 아닌 상호성에 기반을 둔 관계만 존재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그런 세상을 상상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인질이나 노예에게 상상은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행위다.

p.54 - 스톡홀름 증후군 
이 후 인터뷰에서 비르기타(인질)은 '올손(인질범)은 내게 경찰이 가기만 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했어요. 저는 당시 올손에 동의했어요. 제가 아이들을 볼 수 없게 막고 있는 건 경찰이라고 생각했죠'라고 설명했다.

p.73
경찰서 인질극의 '비서'사례에서 보듯 인지 왜곡은 스톡홀름 증후군을 떠받치는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바데르스는 인지 왜곡이 흔들리고 깨지자 유대감도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를 볼 때 특정 사건을 이용하면 인질이 인질범에게 갖는 긍정적 유대감을 파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적절한지, 그 이유는 엇인지에 관해서는 추가적인 관찰과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p.82
소스키스와 옥버그의 책은 스톡홀름 증후군이 인질이 구속되고 무력한 상태에서만 발현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기서 착안해 인질의 무의식이 스톡홀름 증후군을을 발달시키는 데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목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희망의 원천이 인질범이기 때문에 인질은 인질범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p.93
주관적 생존 위협
사람들은 대부분 신체적 폭력을 정신적 폭력보다 더 심각한 범죄라고 생각하지만, 파트너 구타에 시달린리는 여성 피해자나 전쟁 포로를 다룬 연구를 보면 실제 신체 폭력보다 폭력을 가하겠다는 협박이 심리적으로 더 큰 가해다. 많은 피피해자가 불구로 만들거나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처럼 감정적인 학대에 노출되었을 때 신체적 생존이 위협당한다고 느낀다. 이런 이유로 정신적 폭력은 신체적 폭력만큼이나, 혹은 신체적 폭력보다도 더 스톡홀름 증후군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논리적으로도 이해가 간다.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인간은 방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걸고, 집 앞 도로에 나타나고, 모퉁이에서 불쑥 고갤개를 내밀기도 하할 것이다. 실제로 총에 맞기 전까지 모든 순간이 공포로 가득 찬 셈이다. 반면 일단 총에 맞고 나면 언제 어떻게 총알이 발사되었는지, 내가 얼마나 다쳤는지, 총상을 치료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게 되었기에 긴장을 풀 수 있다. 

p.95
주관적 친절
생존에 위협을 받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친절은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는 사람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신변이 안전한 상황에서는 무심코 지나칠 사소한 친절도 신변이 위협받거나 심신이 약해졌을 때는 크게 느껴진다. 앤절라 브라운의 책에 따르면 파트너의 구타에 시달리는 여자 중에서 파트너가 폭력을 중지하는 것을 친절하다고 받아들이는 경욷우도 있었다. 

p.99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은 피해자는 보살핌과 보호가 필요하며, 피해자가 립된 이상 보살핌과 보호를 줄 수 있는 사람은 가해자뿐이다. 피해자에게는 보살핌을 받으려는 갈망과 생존하려는 의지가 있고, 또 계속되는 공포에서 달리 탈출할 방법이 없어 보이기에, 결국 피해자는 적극적으로 가해자에게서 친절과 공감, 애정 표현을 구하게 된다.

p.100
피해자는 무의식적으로 가해자처럼 세상을 보려고 노력한다. 가해자의 시각을 가져야만 어떻게 가해자를 만족시키고 가해자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게 할 수 있을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p.103
인질극이 끝나고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피해자가 갛가해자에게 의리를 지키는 건 가해자가 자신을 '잡으러' 다시 돌아올 것이고, 이번에는 가해자가 자신을 가만 놔두지 않을 거라고(살려주지 않을 거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p.106
인지 왜곡 대부분은 피해자의 공포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인지 왜곡을 유지하려면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므로, 공포를 낮추기 위해 여러 인지 왜곡을 동원하는 상황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이는 공포 감소가 피해자의 생존에 중요할 뿐 아니라 학대가 벌어지는 순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공포를 줄이는 기능이 없는 인지 왜곡도 생존 전략인 것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사랑을 쟁취행해야 한다는는 인질의 믿음은 실제로 생존에 도움을 준다. 

p.109
정리해보자면 자기 탓하기라는 인지 왜곡은 인질이 거의 아무런 통제력이 없는 상황에서 통제력을 느끼려고 노력할 때 발생한다. 나는 피해자가 실제로 통제력이 없으면 없을수록, 통제력 없음의 결과가 참혹하면 참혹할수록(즉 폭력이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피해자가 자기 탓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주장하고 싶다. 자기 탓하기는 피해자가 피해자라는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아주 유용한 인지 왜곡이다. (...) 트라우마 반응으로서 자기 탓하기에 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면 재노프-불먼의 연구, D.T. 밀러와 포터의 연구, 손턴 등의 연구, 워트먼의 연구를 참고하길 바란다. (Janoff-Bulman 1979, D.T. Miller and Porter 1983, Thornton et al, 1988, Wortman 1976).

p.114
사람들은 그저 운이 나빠 피해자가 된 사람들을 보며 뭔가 잘못을 해서 저렇게 됐다며 사고를 피해자 탓으로 돌리거나, 보인과 피해자가 어떻게 다른지 강조하면서 피해자와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피해자를 탓하는 경향을 방어적 귀인이라고도 한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편향적으로 타인의 행동에서 원인을 찾는다는 말이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방어적 귀인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조건이 있었다. 피햊해자가 (혹은 타인이) 겪어 내야 하는 결과가 참혹할수록, 피해자가 사회적으로 존경할 만한 위치에 있을수록(파렴치하고 기만적인 사람이 아니라 성공적이며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겨질수록), 그리고 피해자를 지켜보는 사람이 자신이 잠재적 피해자이며 피해자와 비슷하다고 느낄수록 사람들은 피해자 탓에 몰두한다. 

p.118
피해자에게 친절을 보이는 특정 인물이 가해자와 유사하면 유사할수록, 피해자는 그 인물이 가해자인 것처럼 (그래서 학대를 멈춰줄 수도 있을 것처럼) 반응하며 유대감을 느낄 것이고 유대감도 더 강할 가능성이 크다. 그레이엄의 이론과 자극 일반화 법칙에 따르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피해자를 폭력으로 위협했던 가해자와 유사하면 유사할수록, 그 개인이나 집단의 친절한 행위가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에게서 스톡홀름 증후군 일반화를 끌어내게 된다.
(...) 남자가 여자의 목숨을 위협하고, (성별 외에는 모든 측면에서 유사한) 여자와 남자가 즉시, 동시에 친절을 보였다면 피해자는 친절을 보인 여자보다는 친절을 보인 남자에게 더 강한 유대감을 느낄 것이다. 친절을 보인 남자가 (남성) 가해자와 (성별 관점에서) 신체적으로 더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예시는 피해자가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 성별을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는다고 가정하고 있으며, 친절을 보인 남자와 여자가 다른 측면에서는 가해자와 유사성을 띠는 정도가 비슷하다고 가정한다.)

p.129
스톡홀름 증후군 일반화를 겪는 사람의 생존 전략은 정신 의학계에서 경계선 성격 특성(BPC)으로 일컫는 것과 유사하다. 이는 건강하지 못한 개인 간 관계에 놓인 피해자가 생존하기 위해 보이는 반응을 병리화해 버리는 정신 의학계의 경향을 보여준다.

p.133
우리가 더는 숨지 않고, 우리를 마비시키는 방어 태세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여자가 겪는 성폭력 및 억압의 본모습과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이를 이해해야만, 직면해야만 우리가 이 억압에서 벗어날 길을 그릴 수 있다.

p.135
스톡홀름 증후군의 4대 선행 조건 중 3개 (생존 위협, 탈출 불가능성, 친절)는 피해자를 둘러싼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피해자의 주관적인 인식이 결정한다. 피해자가 객관적 조건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영향을 받지도 않을 것이며 사고와 행동도 변하지 않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가 자기 생존을 위협한다고 인식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스톡홀름 증후군을 보이는 피해자들은 본인이 처한 상황의 위험성과 본인의 학대 사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눈에는 학대로만 비치는 사건을 털언어놓으면서도 말이다.

p.136 특정 문화권의 여자가 남자와의 관계에서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을 겪을 가능성을 평가하는 기준

p.141
아빠가 엄마를 구타하는 광경을 보는 아이가 신체적 위협을 느끼듯이, 남자가 가하는 폭력을 보는 여자 또한 신체적인 위협을 느낀다. 사람들은 타인끼리 주고받는 폭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체적 폭력을 두려하게 며, 이는 감정적 폭력에 해당한다. 남성 폭력에 대한 우리(여자)의 두려움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 유대인부터 흑인 노예까지, 위에서 언급한 살해당한 집단의 절반가량은 여자였지만 그들을 죽인 건 거의 남자였다. (...) 블라인더는 배우자 살인을 다룬 책에서 "미국에서 살해 현장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고속도로, 그 다음이 침실"이라고까지 말한다(p.144).

p.149
강간범 절대 다수는 남자이며, 대부분의 강간 피해자는 여자다. 러셀의 1984년 저서에는 무작위적으로 선정된 930명의 18세 이상 여성성을 대상으로 한 강간 경험 빈도 조사가 실려있다. 이에 따르면 표본 집단에 속한 여성 중 44%는 강간 혹은 강간 미수 피해 경험이 있었다. (이 중 8%만 경찰에 신고했다고 답했다.) 강간 경험이 있는 여자 중 50%는 강간 경험이 1회 이상이었다. 

p.151
허먼과 허시먼의 연구 결과 친족 성폭력에 종지부를 찍는 건 아버지가 아니라 딸이었다. 주로 딸이 도망치거나, 일찍 결혼하거나, 어린 나이에 임신하면서 성폭력이 끝났다. 그러나 한번 친족 성폭력이 벌어진 이상 피해자는 다시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똑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공포를 안고 살아가며, 학대에서 안전하다는 기분을 결코 느끼지 못한다.

p.152
모든 아동은 생존을 위해 모부에게 완전히 기댈 수 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모부의 인질이라고 볼 수 있다. 모부가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쳐낼 수 없을 때, 모부가 실제 신체적 폭력을 쓰거나 폭력을 쓰겠다고 위협할 때 아동은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직접적 친족 성폭력이 벌어지는 가정의 약 50%에서는 아버지가 신체적 폭력도 쓴다. 따라서 아동은 사실상 아버지의 직접적인 성적 학대에 순순히 응할 수 밖에 없다. 

p.154
성추행은 여자와의 교류, 소통을 성애화해 우리가 아무리 날고 기어봐도 남자의 성적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이 있다. 

p.160
많은, 어쩌면 대다수의 여자가 경험하는 빈곤 및 노숙의 위협은 그 자체로 폭력이며, 여자들은 실제 빈곤의 나락 속에 살면서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보다도 덜 알려진 폭력이 바로 고용 차별로 인한 폭력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여자는 심리적으로 어떤 타격을 입는가? 비슷한 스펙을 갖고 비슷한 성과를 내도 남자보다 받는 돈이 적을 때는 어떠한가? 남자의 소득 없이는 본인도 아이도 제대로 된 생활이 불가할 때는? 사회가 본인보다 남자를 귀하게 여기고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일상적으로 상기해야 할 때는? 이런 구조적이고 만연한 차별 역시 여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임이 분명하다. 

p.165
아무리 일부 여자들이 "전 남자한테 위협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 폭력도 한번도 경험한 적 없어요."라고 주장한들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앤드리아 드워킨도 인터뷰에서 명쾌하게 지적한다. "이 나라 미국에서 여자아이 3명 중 1명이 18살이 되기 전 친족 성폭력을 겪지만, 당신은 아니었겠죠. 3분에 한번 꼴로 강간이 발생하지만, 당신은 겪지 않았겠죠. 18초에 한 번 꼴로 여자가 구타당하지만, 당신은 그런 적이 없겠죠." 이 세상이 여아와 여자를 공포에 떨게 하고, 우리의 신체적 심리적 생존을 위협한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어야 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일상적으로 폭력을 가하지만, 본인이 그런 폭력을 겪어야 한다고 하면 공포에 질리는 듯 보인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군내 동성애자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폈을 때 언론인인 앨렌 굿맨에게 쏟아진 독자 편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굿맨이 받은 편지 중 약 90%가 남자가 보낸 편지였다. 남자들의 편지에서는 앞으로는 남자 동성애자와 샤워를 같이 하고 생활관에서 함께 잠을 자야한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가 묻어났다. (몰랐을 뿐이지 동성애자 군인은 항상 함께였는데도 말이다.) 남자들은 다른 남자에게 자기가 여자를 보는 눈으로 보이는 걸 참을 수 없어 하는게 분명했다. 

p.167
강간, 구타, 친족 성폭력의 마수를 피간 여자는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덜 노골적인 형태의 폭력 때문에 반복적으로 심리적 타격을 입은 적이 없는 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형태의 폭력이 사소하다고 한다면 우리가 숨 쉬는 공기도 사소하고, 우리가 먹는 음식도 사소할 따름이다. 여자에게 매일 이렇게 '사소한' 방식으로 독약을 챙겨 먹인다면, 우리는 심리적 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심리 체계 전반에 손상을 입지 않을 수 없다. 
(...) 남성 폭력과 너무도 오래 함께하다 보니 이제는 그 존재를 볼 수 없게 된 여자들도 있다. 우리는 남성 폭력이 없는 삶을, 안전한 세상에서의 삶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고 느끼기까지 한다. 

p.173
우리는 타인에게 자주, 여러 방식으로 우리의 성별을 드러낼 것을 강요받는다. 여남 상호작용이 서로의 성별을 중심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가지 예로 우리는 남자와 분되는 옷을 입어 여남의 성적 차이를 강조해야 한다. 영어의 경우 사람의 성별을 모호하게 둘 수 없게 한다. 동물까지도 성별을 알아야만 자연스럽게 칭할 수 있다. 타인을 만나면 제일 먼저 알려주는 우리 이름에섣서도 성별이 드러난다.  이에 더해 우리의 접촉에는 사회적 규범이 강력하게 작용해서, 본인이나 타인을 탈 성애화 하려고 하는 사람은 비웃음을 사거나 누군각가가 바로 잡아주려고 하거나 무리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이 아이의 성별을 모를 때 아이와 접촉하는 걸 불편해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지도 모른다. 

p.176
강간범의 1%만이 체포되며, 체포된 강간범의 1%만이 유죄 판결을 받는다. (Russell 1984)

p.180
우리의 역사는 남성형이다. 여자의 삶은 공식적 기록에서 지워지거나, 남자의 시각에서 재편집되었다. 이 문에 남성 지배와 맞서 싸우는 여자들은 매 세대 본인이 첫번째 세대라고 믿게 된다. 사회에서 여자에게 '어울리는' 역할이 있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신이 뭔가 잘못된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만약 여자의 저항이 인류 역사에 걸쳐 계속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의 노력이 여성 투쟁의 발판이 될 것을 깨닫게 된다면 여자들이 얼마나 강한 목적의식과 뿌듯함, 자부심, 방향성을 품게 될지 상상해 보라.

p.181
(전장에서 이어서) 여자는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챙겨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며 딸이 아닌 아들, 손녀가 아닌 손자를 원하고 아들과 손자를 더 잘 돌봐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이런 의무감 때문에 여는 평생에 걸쳐 남자로 둘러싸여 살아가게 된다. 여자가 본인을 돌보려고 노력력하면 이기적이라고 여겨지거나, 남편 호혹은 남자 친인척을 배신하는 일로 비친다. 남자는 이런 의무감이 없다. 자신을 돌보는 남자는 이기적이라는 얘기를 듣는 대신 자기 앞가림을 할 줄 아는 사람, 그런 대우를 받아 마땅한 사사람, '1등 신랑감'이라는 말을 듣는다.
 여자는 작고 마른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정의된다. 즉 신체적으로 나약한 사람이 매력적으로 여겨진다. 옷차림도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옷차림(하이힐 착용 등)을 할 때 더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회적 분위는 여자보다는 남자가 스포츠 등을 통해 몸을 강인하게 하할 것을 장려한다. 이런 분위기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강화된다. 남자 스포츠는 투자와 지원금을 훨씬 많이 받으며, 대중의 관심 속에 치러진다. (...) 남자가 근육을 단련할 때와 여자가 근육을 단련할 때도 반응이 서로 다르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근육을 발달시켜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훨씬 크다. 

p.188
성역할이 반전된 문장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남자를 둘러싸고 분주히 움직이며 온갖 일을 대신 해주는 여자와 예의를 지키려고 그 자리에 그저 서 있는 남자가 떠오른다. 예의 바른 여자의 행동을 남자가 하는 광경을 그려보면, 예의 바른 여자에게 적용되는 사회적 규범은 주로 남자의 행동을 기다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여자는 수동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은 잘 눈에 띄지 않는 또 다른 규범과 연관되어 있다. 바로 여자는 남자의 감정을 살펴야 한다는 규범이다. 반면 예의 바른 남자의 행동을 여자가 하는 광경을 그려보면, 사회가 남자에게 예의라는 이름으로 활동성을 부추기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남자에게는 여자와의 모든 상호작용을 '리드'하는 역할이 맡겨진다. (...) 사회적 규범상 여자는 남들에게 예의 바르다고 비치기 위해 수동적으로 될 수 밖에 없다면, 이런 규범이 여자의 심리적 건강에 어떤 해악을 끼칠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행동력과 예의가 서로 상충하는 이상 여자에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실질적인 선택권도 없고, 심리적으로 건강한 선택도 불가능하다.

p.197
성관계는 상급자와 하급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명령을 내리는 사람과 복종하는 사람, 정복자와 피정복민이 맺는 관계와 일맥상통한다고 여겨졌다. 이는 성행위에서 본질적이고 영예롭고 누가 봐도 정당성을 갖춘 역할이 하나뿐이었다는 뜻이 된다. 바로 주도하는 자, 지배하는 자, 삽입하는 자, 본인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자만이 성행위의 승자였다.

p.198
남자들이 함께 모여 여자를 어떻떻게 '따먹고' '박아볼까' 이야기를 하고 '진도'를 운운할 때, 이들은 성관계는 여자랑 하긴 해도 남자끼리의 감정적 유대감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남성 동지들에게 "나랑 자는 여자보다 너희들이 더 중요해"라고 전하는 것이다. (이게 많은 남자가 어떤 여자랑 성관계를 갖는지에는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또한한 여기에는 여자와의 성관계는 착취가 목적이라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p.201
노예소유 가 친절을 베풀면 수하의 노예들은 노예제의 멍에가 견딜만하겠지만, 노예 제도의 극악무도함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또한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 남자는 언제나 태도가 돌변해 친절과 사랑을 끊을 수 있다. 따라서 친절과 사랑이 언제든 끊길 수 있다는 위협이 여자를 통제하는 도구로 작용해, 여자가 계속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하게 하고 남자의 친절함이 중단되지 않도록 노력하게 만든다. 남자가 여자에게 보일 수 있는 진정한 친절이 있다면 그건 남성 지배에 맞서는 우리의 투쟁에 참여하고 지지를 보내는 것뿐이다.

우리  사회는 모든 남자가 이번 꼭지에서 다룰 '친절'을 베베풀 것을 강권한다. 물론 모든 여자에게 베풀라는 말은 아니며, 가부장적 체제에서 친절을 받을 자격이 있는 여자에게만 해당한다. 그러나 그런 사실만으로도 이런 친절을 종합적으로 뜯어볼 필요가 있다. 가부장제 문화를 특징짓는 요소가 여자에게 가해지는 남성 폭력인데, 같은 문화가 남자가 여자에게 친절을 베풀도록 강요한다. 그 속셈을 짚어내야 한다. 여자에게  그런 친절이 필요하게끔 만든 사회적 환경과 가부장제 내에서 그런 친절이 갖는 기능을 살펴보면, 남자 집단이 여자에게 보이게 되어 있는 친절이 가부장제를 강화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p.203
어떤 여자가 남자- 그리고 아이-의 생각과 의견, 태도와 감정, 욕구에만 노출되어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여자의 생각과 의견, 태도와 감정, 욕구에 전혀 접촉할 수 없다면, 이 여자는 이념적으로 고립된 상태라 할 수 있다. 여자가 남성적 시각이 아닌 여자의 시각을 옹호하는 타인에게 접근할 수 없을 때 이념적 고립이 발생한한다. 여자가 모이더라도 남자가 한 명 이상 끼어 있으면 여자는 이념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여자 대부분이 남자의 눈치를를 보고 신경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자는 혼성 집단을 이끄는 역할을 맡을 때가 많으며,해당 집단의 여성 일원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p.207
여남을 일대일로 짝짓는 문화는 여자끼리 남자의 관심을 두고 경쟁하게 만들어 여자들이 힘을 합치기 어렵게 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인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남자는 사회적 권력에 직접 접근할 수 있으므로, 남자 편에 서려는 여자의 노력은 여자가 서로와 맺는 가장 친밀하고 성애적인 관계까지 영향을미친다. 

p.219
그러나 맥캔, 색하임, 에이브러햄슨의 논문이 지적하듯, "최근 들어 트라우마적 사건 중 일부는 인간의 일상적인 경험 내에 있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 이 논문은 PTSD 증상을 다섯 가지로 나눠 나열한다. 먼저 감정적 증상에는 두려움, 불안, 우울증, 낮은 자존감, 분노(피해자가 분노 표출시 보복이 있을 수 있다고 두려워하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음), 죄책감, ㅜ치심이 있다. ...

p.222
심리 치료사인 캐럴린 코워치에 따르면 남편이 크로스 드레서나 트랜스섹슈얼인 여자들이 와서 남편은 겁이 없어서 밤에 여자 옷을 입고 나갈 때도 전혀 조심하지 않는다고 호소할 때가 많다고 한다. 즉 남자는 남자로 자라왔기 때문에 여자로 사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모른다. 그래서 이들은 여자처럼 차려입더라도 겁을 내지도 않고, 밤에 혼자 길거리를 걷지 않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행동을 하지도 않는 것이다.

p.226
성별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은 질환은 '조증 삽화'와 '인지 장애'였다. 남자가 주로 겪는 질환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이기적으로 본인만 챙기고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거나 (반사회적 인격 장애), 계속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고 본인의 행동을 책임지지 않고자 하는 (알코올 및 약물의 남용/의존) 사람이 그려진다. 남자에게 특화된 질환은 피지배 집단보다는 지배 집단의 특징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여자가 주로 겪는 질환의 이미지를 떠올려봄보면 우울하고 공포에 질려있지만 공포의 근원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광장 공포증, 단순 공포증, 공황 장애), 본인에게조차 불행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거나(신체화 장애),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강박 장애) 사람이 그려진다. 여자에게 특화된 질환은 이렇게 피지배층의 특징을 담고 있다.

p.229
거식증 환자는 (문화적 기준상) "완벽하게" 보이려는 욕망과 관련된 인지 왜곡도 겪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거식증과 식욕 부진을 더 많이 겪는다는는 건 여자가 실제로 자기 몸에 양가감정을 느끼고, 몸을 돌보는데 어려움을 겪고, 몸에 대한한 통제권을 상실한 것처럼 느끼는 경향이 남자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p.242
이성애적 사랑은 강압적인 환경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여자에게 퇴행적인 성격을 지닌다. 여자는 동등한 관계에서 남자를 사랑할 자유가 없기에 아동이 모부와 관계를 맺듯 남성 파트너와 관계를 맺는다. 그러니 사회가 여자를 애 취급하는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여자가 남성 파트너와 맺는 관계는 '모부화'된 아동이 모부와 맺는관계와 유사 할 때도 있다. 모부화된 아동이란 가정 내에서 모부의 역할까지 맡는 '애어른'을 말한다. 여남 관계에서 여자는 모부의 역할을 맡지만 실제 통제권은 남자가 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단행동으로 어질 수 없다면 단기적으로는 이성애적 사랑이 다른 어떤 대안보다 여자에게 안전한 생존 전략일 수 있다. 여기서 집단 행동이란 (최근 페미니즘 운동을 해온 것처럼) 여자들이함께 성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는 것을 말한다.

p.247
여자들은 본인과 친밀한 사이인 남자의 위험성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여자에게 신체적 폭력을 가할 가능성이 큰 집단인데도 말이다. 실제로 여자들은 남성 파트너를 '사랑이 넘치는' 사람, '자상한' 사람으로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공포는 낯선 남자에게, 우리가 느끼는 분노는 우리 자신, 다른 여자, 어린아이처럼 안전한 과녁에 전치하는 경향이 있다.

p.257
여자가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 남자에 대한 공격성을 억제한다면, 여자의 분노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혹실드에 따르면 여자는 분노 반응으로 울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을 꼽았다. 이는 남자가 분노로 인해 흔히 표출하는 공격성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여자는 화가 났을 때 타인을 다치게 하기 보다는 본인을 다치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p.264
우리는 남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성격을 바꿀 뿐 아니라 우리의 신체도 바꾼다. 여자가 그나마 인지하고 있는 것도 격적 변화보다는 신체적 변화일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신체를 얻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노력을 하는지 한번 떠올려보라. 우리는 식이를 조절하고, 운동하며, 변비약을 먹어 장을 비운다. 피부를 보기 좋게 태우기 위해 일광욕을 하거나 태닝 부스에 눕고, (항상 성적 흥분 상탱태인 것처럼 보이도록) 화장을 하고, 눈썹을 뽑으며, 머리에 헤어롤을 만 채 잠자리에 든다. 코 수술을 받고, 가슴 확대 기구를 쓰고, 가슴 축소/확대 수술을 받고 흉터 치료 연고를 바르고, 지방 흡입과 주름 제거 수술, 위 절제 수술, 허벅지, 엉덩이 셀룰라이트 제거 수술을 받는다. (참담해서 다 못 씀)... 남자가 위의 행위를를 하는 여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남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우리 몸을 바꾸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여자의 의지를 전달하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는 여자가 스스로 자기 몸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에 끌리는 것은 아닐까? 앞에서 지적했듯, 남성 지배가 성립되고 유지되는 건 남근이 여근보다 우월하고, 여자의 몸은 '거세'되어 열등하다는 시각을 남자가 여자에게 심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미용 행위와 이 사실을 엮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남자에게 매력적인 여자가 되기 위해 신체 변형까지 감수하는 현상은 네 가지 사실을 반영한다. (1) 여자는 남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2) 여자는 남자들과의 연결고리를 갖기 해 노력을 기울인다. (3) 여자는 남자들의 애정과 승인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 (4) 여자는 '있는 그대로'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채로는) 남자들의 애정과 승인을 받을수  없다고 느낀다.
 여자에게 생존 욕구가 가장 기본이 되는 욕구임을 고려할 때, 남자를 만족시킨다는 목표와 관련 없는 다른 모든 욕구는 뒷순위로 밀리게 된다. 뒷순위의 욕구가 남자를 만족시키는 능력을 줄이기라도 한다면 여자는 그 욕구를 부정해버린다.

p.274
이 논문에 따르면 "여자는 현재 체중에서 4.5kg을 빼야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몸무게라고 응답했지만, 남자는 1.4kg을 빼면 이상적인 몸무게라고 답했다." 이런 결과는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 이론에도 부합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큰 몸집이 권력과 결부되기 때문에, 지배 집단은 몸집이 커 보이기를 원한다. 피지배 집단은 지배 집단을 위협하지 않고, 배 집단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최대한 몸집이 작아 보이기를 원한다. 지배 집단에게 매력적으로 비쳐야 그들과 유대감을 형성할 가능성이 커진다.

p.276
여자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성공한 남자보다 우리 자신을 낮게 평가한다. 우리의 성공을 실력이 아닌 운 때문으로 돌리는 경향도 남자보다 강하다. 남자는 좀만 하면 성공하겠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미치도록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성공해야만'한다고 느끼는 경향은 남자보다도 강하다. 게다가 남자와 비슷한 성과를 거둬도 우리는 우리의 성과를 더 낮게 평가한다.

p.277
여러 연구자가 이미 피지배 집단이 지배 집단의 시각을 받아들이는 경향을 지적한 바 있다. 이런 현상 전반을 일컫는 말이 바로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이다. 여자가 남자에 의해 억압당하는 맥락에서는 이를 '남성 동일시male-identification'라고 부른다. '목소리 상실not having a voice'이라는 용어도 쓰인다.

p.278
피지배 집단의 일원이 본인의 시각을 갖기 시작하는 과정을 '의식 고양raised consciousness'이라고들 한다. 그중에서도 자가 본인의 시각을 갖게 되는것이 '여성 동일시woman-identified'이다. 남자는는 여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기 때문에, 남자의 시각을 받아들인 여자는 대부분 본인을 자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 여자가 본인의 시각을 찾고, 다른 여자가 본인의 시각을 찾도록 돕는 과정에서, 여자가 남성 시각을 체화하는 것을 허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참작할 만한 생존 략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p.279
 페미니즘은 여자의 권리를 찾고 여자를 해방하기 위해 여자가 주도하는, 여자에 관한 이론이자 운동이다. 여자가 페미니즘을 거부한다는 건 본인의 권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영원히 노예로 살고 싶어하는 노예와 다를 바가 없다. 

p.280
코르만의 논문에 따르면 미국 남동부의 한 대형 대학교의 결혼하지 않은 여자 학부생 중 1/3 전통적 가치관을, 1/3은 페미니즘즘적 가치관을, 1/3은 중도적 가치관을 가졌다. 그러나 페미니즘적 가치관을 가진 여자 학부생 중 35%만이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간주했다. 코르만은 여자가 "개인 간 관계, 특히 여남 관계에서 껄끄러워질까봐" "페미니즘 운동을 대놓고 옹호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석했다. 

p.296
여자가 여성적 수단을 이용할 때는 그 어떤 공격성으로도 얻을 수 없는 충성심을 끌어낼 수 있다. 여자는 경험상 남자가 종종 휘두르는 폭력이 무섭고 고압적이긴 해도 자연이 주신 여성적 수단을 활용하면 가장 막강한 남자와도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 본인이 겪는 굴욕을 영광스러운 정체성으로 삼기로는 여성성만 한 게 없다.

 

p.298
인지왜곡은 스톡홀름 증후군과 상관성을 지닐 뿐 아니라 스톡홀름 증후군을 낳거나 스톡홀름 증후군이 생길 수 있는 판을 깔아준다고까지 할 수 있다.

p.305
9개 연구 중 78%에서 여자가 사회적 바람직성을 걱정하는 정도는 남자보다 높게 나타났다. 역시 남자가 사회적 바람직성성을 훨씬 많이 걱정한다고 나타난 연구는 단 하나도 없었다.

p.306
사람들이 이타성과 자기희생의 중요성을 논할 때는 근본적으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다...이해관계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권력력을 적게 쥔 쪽에게 이타성을 발휘하라는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면에서 이타성과 자기희생은 '여성적 덕목'으로 겨진다. '여성성'은 남성 지배 아래 여자가 복종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광경으로 만드는 개념이다.

p.309
여성성이 피지배 집단으로서 갖는 심리이며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의 징후인 이상, ㅘ연 자가 '여성적 자질'을 떠받드는 문화에동조해야만 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런 짓을하는지 알면서도 생존하기 위해 ㅇ여성적으로 행동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여성성을 여자됨의 증거로 예찬하는 건 다른 층위의 문제다.

p.310

여자는 대부분 본인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성을 타고 났다고생 각하거나 ("여자애가 게 뭐니"라고 타이르던 엄마 말은 억의 저편으로 라진 상태다), 본인은 남자들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든 말든 화장을 하고 고데기로 머리를 고 하이힐을 신기로 선택할거라고믿기도 한다. ...

P.314
 "여자라는 계급의 가장 뼈 아픈 특징은 본인의 비참한 처지를 알면서도 난 그래도 우리 가해자를 '사랑'한다고 고집하는 것이다."

P.322
끌림을 좌우하는 건불평등이다.. 불평등이 무너지면 궁합과 끌림도 같이 너진다. 여자가 남자와 결합할할 수 있는 건 자가 여자일 때만이다. 즉 피지배 계급으로서 존재할 때만이다.

 

 

 

 

 

 

 

 

posted by sergeant

[03/20/2019] Feminist Therapy

독서/여성주의 2019. 3. 21. 09:11

A therapist who has always lived in financially comfortable circumstance gives a book on self-care to her working-class client, who has always lived in financially precarious circumstances. The therapist suggests that she try some of the strategies in the book for homework. The therapist, who has read the book, thinks that the examples of self-care, such as getting oneself a massage, going out for a nice dinner, or taking a weekend retreat to a lovely setting, all seem like wonderful ideas, and she has been pushing her client to engage in more self-care. Her client returns the book the following week, never commenting on the fact that each of these suggestions are financially beyond her means, something the therapist has never taken into account because of a failure to explore her social class privilege. She tells her therapist that the book was “interesting.” Soon thereafter, the client leaves therapy by simply not showing up again and not responding to communications from the therapist. Several years later, when she is again struggling, she seeks out therapy and carefully searches for someone who grew up poor. “That other therapist had no idea of the value of a dollar,” she tells her subsequent therapist. Privilege unexamined can lead to failures of empathy and loss of relationship


From [ Feminist Therapy, Brown 2018 ]


주옥같은 구절이 너무 많아서, 책이 온통 형광줄이 그어져있다.

사실 위에 본문은 feminist therapy 자체와 관련이 있다기 보다는, 내가 한창 관심있는 다른 큰 주제인 privilege study가 feminist therapy에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책에 소개된다는 사실이 신기해서...ㅎㅎㅎ 역시 파다보면 관심사는 한곳으로 모이는건가 싶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들이다.



posted by sergeant

 

 어린 시절부터 운동에 관심이 많아 검도 유단자가 되었고, 바디토크를 많이 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랄 수 있던 것이 돌이켜보니 큰 행운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책. 페미니스트로서 다시 나의 삶에 대해 돌이켜보면, 나를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대해주었던,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배려와 사회적 자원들을 다시금 느낀다. 그리고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현재의 문화와 행태들에 책임감을 느낀다.
SNS가 발전하고, 교묘한 여성혐오와 백래시가 밀려오는 이 시대에 반드시 읽고 생각하고 밑줄 그어야 할 책. 최근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이끌어낸 '탈코르셋 운동'의 바이블격


- 우리는 많은 여성이 외모 강박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여성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아름다움이라고 강요하는 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들이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표준을 주입했다. 동시에 아름다움에 관해 걱정하는 여성을 속물이라고 비난하고 그녀들의 걱정을 싸잡아 무시하고는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라고 책망했다. 나는 여성과 아름다움을 향한 메시지 공해를 극복할 방법을 제시하고자 이 책을 썼다. 오늘날의 여성과 그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움의 역할을 정직하고도 도전적으로 평가할 자격이 있다.

- 소녀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 어른들이 흔히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그리고 그들의 다채로운 대답을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선생님이요. 과학자요. 우주 비행사요. 수의사요. 화가요. 대통령이요. 그러나 소녀들이 어떤 삶을 꿈꾸든 저 너머에는 정말 되고 싶은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날씬해지는 것과 예뻐지는 것이다.

- 외모 강박은 여성이 거울에 비친 모습에 너무 ㅁ낳은 정서적 에너지를 쏟을 때 생긴다. 거울 속의 모습은 인생의 다른 측면을 바라볼 때보다 그녀를 더 힘들게 한다. 외모 강박은 놀라우리만큼 이른 나이에 시작된다. 소녀는 다른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기본적인 법칙이라고 배운다. 외모 강박이라고 하면 젊은 여성을 떠올리지만 사실 모든 연령의 여성이 외모 강박을 갖고 있다.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굳은 의지와 인내를 가져야 떨쳐낼 수 있는 것이다.

- 여성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여성의 외모에만 초점을 맞추는 문화가 외모 강박을 키운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이미지, 자신이나 다른 여성을 묘사하는 언어를 통해 강화된다. 또한 여성에게 외모로 모욕을 주는 사람들이 외모 강박을 부추긴다. 물론 능력이 아닌 외모로만 칭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외모 강박은 공식적인 병이 아니다. 엑스레이를 찍어도, 피검사를 해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여러 질병과 마찬가지로 파괴적인 증상을 보인다. 급증하는 섭식 장애와 성형수술 등 명백한 증상이 있다. 그리고 조금 미묘한 증상도 있다. 예를 들어 SNS에 올릴 완벽한 셀카를 만드는 데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 같은 것이다.

- 오늘날 젊은 여성은 당혹스러운 모순과 마주한다. 그녀들은 바비 인형이 되길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비 인형처럼 보여야 한다고 느낀다. 수많은 여성이 미디어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에 분노하지만 바로 그 미디어를 게걸스레 소비한다.

-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가 "케이틀린, 당신이 남자였을 때 우린 당신의 스포츠맨 정신에 관해 이야기했죠. 그러나 이제 당신은 여자예요. 즉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건 당신의 얼굴밖에 없다는 거죠." 라고 이야기 했듯이 말이다.

- 오랫동안 심리학은 여남 간의 차이를 오해하고 과장해왔다. 나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유감스러운 은유를 선호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여남 간의 차이가 실제보다 더 크고 더 심각하게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모 강박의 문제에서 여남 간의 차이는 실질적이고 크다. 그리고 그 격차는 세계 각국의 문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 신체 경험에 대한 여남 차이는 단순한 만족이나 불만족 이상으로 확장된다. 영국 서식스대학교의 연구자들은 영국 여성과 남성 수십 명을 인터뷰한 결과 여성이 자신의 몸을 좀 더 파편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따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성은 자신의 각 신체 부위를 실망의 연속이라 표현했고 '나쁘지 않은 부위'는 아주 드물었다. 배는 너무 출렁거리고 허벅지는 지나치게 굵으며 피부는 얼룩덜룩하고 머릿결은 푸석거린다. 각 신체 부위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언제든 따로따로 분리할 수 있다.
 반면 남성은 자신의 몸에 대해 좀 더 전체론적인 접근법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남성은 신체적 능력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생각한다는 점이다.

- 언어에서조차 남성의 몸은 능동적이지만 여성의 몸은 수동적이다. 남성의 '아름다움'을 칭하는 잘생긴handsome이란 단어에는 '잘하는'handy 상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설명하듯 잘생긴이란 단어의 본래 의미는 적절한, 잘하는, 영리한 이다. 반면에 아름다운이란 단어의 정의는 감각을 즐겁게 해준다거나 장식용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분명 남성도 외모에 압력을 받고 있지만 이들은 외모보다 역량이 더 널리 인정받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남성은 특정 영역에서 성공하면 외모의 압박에서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그런 안전한 피난처가 없다. 한 여성이 얼마나 일을 잘하느냐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외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똑같은 일을 하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외모적으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대중 앞에 안경을 쓰고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 채 나타났다는 이유로 뉴스 미디어 전반에서 비난받았다. 힐러리 클린턴의 머리가 흐트러졌다는 사실은 전국적인 이야깃거리가 됐다.

- "네 젊음이나 미모를 너무 자랑하지 마라. 그건 네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고 아무리 노력해도 간직할 수 없는거란다." (중략)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이 주는 권력은 불안정한 토대에 서 있다. 이 권력은 다른 사람들이 인지해주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이를 좌지우지하는 누군가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오로지 당신만의 권력도 아니다. 심지어 놀라울 정도로 엄격한 소멸 기한이 주어진 권력이다. 젊은과 아름다움의 상관관계는 거의 불변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 오늘날 젊은 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자란다. 대학을 졸업한 여성의 수가 남성의 수를 추월한 지 30년이 넘었다. 이제 젊은 여성은 학교와 직장에서 당당하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예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 중 대다수는 자신의 외모가 지속적으로 시험에 들고 있다고 느끼면서 불안해하거나 우울해 한다.

-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미를 조장하는 '미디어'를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나 해결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 대상화는 당신이 생각과 느낌, 목표와 욕망을 지닌 진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대신, 당신은 그저 몸 또는 신체 부위의 총합으로 취급받는다. 심하게는 당신의 몸은 그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무언가로 취급받는다. 누군가 당신을 사물로 취급하는 경우 또는 당신이 외모로 누군가를 즐겁게 해줄 때만 쓸모 있는 사람으로 여겨질 경우 당신은 주체성을 잃는다. 주체성을 당신의 내면적 현실이라 생각해 보자. 자의식이라 생각해 보자. 그것이 지금 위기에 처한 것이다.

- 스물 두 살의 에린은 길거리 성희롱을 끝내기 위해 급진적인 방법을 택했다. 에린은 스스로 운명을 책임진다는 느낌을 되찾기 위해 과감한 방식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 방법은 머리를 모두 밀어버리는 것이었다. 완전한 민머리였다. 그리고 잔혹했던 어린 시절처럼 매일 큰 사이즈의 티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또한 모든 화장품을 버리면서 일종의 의식을 행했다. 나는 이 부분에 매혹됐다.
(중략)
그렇게 에린은 민머리와 민낯이 됐다. 그리고 그녀는 한동안 거울을 멀리 했다. 이런 선택은 에린의 인생을 기대하지 못한 방식으로 바꿔놓았다. 길거리 성희롱 횟수가 확연히 줄어든 것이다. 남성들은 더 이상 그녀를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에린에게 민머리는 의도적이고도 강력한 도발이 됐다.

- 남성이 듣기 싫은 여성의 말을 말로 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외모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여성을 인간이 아닌 대상으로 보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당연한 논리적 결과물이다.

-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스스로 떠올린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외모 강박적인 문화가 아니었으면 결코 생기지 ㅇ낳았을 생각인데 말이다.

- 시간이 갈수록 다른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외모를 평가하고 있다는 인식을 내면화한다. 결국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당신은 자신의 외모에 가장 밀접한 관찰자가 되고 가장 끈질긴 감시자가 된다. 이런 이유에서 자기 대상화는 신체 감시 또는 신체 모니터링이라 불리기도 한다.

- 이제 다른 종류의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올바른 결정을 내렸나? 오늘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내 기분이 어떻지? 지금 나에게 뭐가 필요하지?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뭐가 피요할까?

- 내가 스물 네 살의 대학원생 강사였던 시절 첫 교수 평가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 중에는 "교수님, 파란 스커트를 자주 입으세요. 예뻐 보여요."라는 코멘트가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따. 교수 평가는 익명으로 이뤄졌지만, 누가 썼는지 알아내기 위해 출석부를 계속 훑어보았다. 내가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잘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동안 내 다리만 생각했던 학생은 누구였을까? 심지어 그 수업은 '젠더 심리학'이었다. 그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 학생은 여전히 그런 식의 코멘트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략) 마치 이런 말처럼 들렸다. "저는 당신을 교수로서는 전혀 존경하지 않아요. 당신 수업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고 싶지 않을 정도예요. 그냥 저는 당신의 옷이랑 몸매에 대해서나 이야기할래요."

- 우리는 자신이 멀티테스킹의 강자이길 바라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의 관심이 외모로 움직이게 되면 다른 무언가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줄어든다.
 내가 무언가에 가장 넋을 놓고 헌신하고 있을 때, 지인은 당시 내가 하고 다니던 거지꼴을 보고 '목을 조르고 싶었다'고 말하던 그 때에 배우자를 만났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내게 참 의미 있는 일이다.

- 우리가 자신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면, 그 대상이 외모가 아닌 생각이나 기분, 욕망과 목표였으면 좋겠다. 여성의 외모보다 여성의 일에 초점을 맞추는 세상에서는 다양한 패션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 시간과 돈은 문제가 된다. 시간과 돈은 권력의 필수적인 원천이며 자유의 원천이기도 하다.

- 나는 기존의 '해야 할 일' 목록에 그 어떤 것도 추가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방식으로 내 외모를 감시하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부추기고 싶지 않았다.

- 여성의 외모에 대해 느끼는 압박을 고려하면 엄청난 돈이 여성의 지갑에서 흘러나와 미용 산업 분야로 향하는 것이 놀라울 일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여성은 미용 제품의 85퍼센트를 소비한다.

- 기업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외모 강박을 부추긴다. 그들은 우리가 계속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또한 자신들의 제품이 이상적인 미에 가까워지도록 도와준다는 믿음을 줘야 매출이 오른다.

- 좋은 남성과의 결혼이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느껴질 때, 그리고 미모가 남성을 만날 수 있는 기준일 때, 아름다움에 쏟는 돈은 당연한 투자로 여겨진다.
 제이미는 한국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지갑으로 취급하고 남자가 여자를 장식품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가끔 여남 간의 갈등이 발생한다고 했다. 즉 많은 여성이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마찬가지로 많은 남성이 마음대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평가하고 이야기 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 우리는 많은 비용을 외모에 투자하는 남성을 우습게 생각한다. 왜일까? 그 비용이 여성들에게는 평범한 수준인데 말이다.

- 다양성의 부재는 그녀의 내부 지각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문제의 초점은 그녀가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 미디어를 통해 소비하는 여성이 거의 모두 백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런 미디어 이미지로 자신을 비춰볼 수가 없었다.

- 이런 유형의 미디어를 더 많이 소비할수록 미디어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미를 내면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움의 표준을 흡수하는 것은 좌절감을 안길 뿐 아니라 섭식 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

- 인간의 이미지를 거꾸로 놓으면 구분이 어려워진다. 이를 역전 효과라고 부른다. 반면 집과 같은 사물의 이미지는 거꾸로 놓여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학술지 <심리 과학>은 여성과 남성의 성적인 사진을 실험 참여자들에게 보여줬다. 사진 속 인물은 모두 속옷이나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실험 참여자들은 거꾸로 된 남성의 이미지는 구분하는데 어려워하며 역전 효과를 증명했다. 그러나 여성의 성적인 이미지의 경우 역전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성의 이미지는 거꾸로 있든 똑바로 있든 쉽게 구분됐다. 성애화된 여성은 사물의 이미지와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화 되고 있는 것이다.

- 미디어상의 여성 이미지는 절대 홀로 제시되지 않으며 풍족한 삶과 연결되는 라이프스타일이나 제품과 짝을 이룬다.

- 외모 강박적인 문화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여성이 항상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를 세세하게 의식하게 하는 것이다.

- 54 또 다른 관점은 페미니스트적 태도를 지닌 여성이 미디어상의 이상화된 아름다운 여성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로 분류되는 여성은 미디어의 여성상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페미니즘이 외모 강박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좀 더 복잡했다. 수십 개의 관련 연구를 분석한 케니언대학 연구팀은 페미니즘이 미디어가 조정하는 이상적인 미를 내면화하는 경향을 감소시킨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페미니즘이 여성이 자신의 몸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Murnen SK, Smolak L. Are feminist women protected from body image problems? A meta-analytic review of relevant research. Sex Roles. 2009; 60(3-4): 186-197

- 시선과 칭찬은 여성을 자기 대상화의 덫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모순적이게도 스스로 덜 매력적이라 느끼게 했던 것이다.

- 말에는 무게와 의미가 있다. 때로 말은 우리의 상상보다 더 큰 힘을 가졌다. 당신의 말을 통해 여성을 대상이 아닌, 세계를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능력 있는 인간으로 보는 문화의 흐름을 만들자.

- 만약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면 그 누구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된다. 나는 아름다운 영혼이나 인격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러나 신체적 아름다움에는 동일한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 네 몸을 사랑해! 하지만 너무 사랑해선 안 돼. 자신감을 가져! 하지만 겸손해야 해. 마음 속으로 편안함을 느껴!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그걸 드러내서는 안 돼. 우리는 신체 자신감을 설파하면서도 자신의 외모를 좋아하는 여성을 거만하고 심지어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취급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 겉모습보다 기능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사실

-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보이는 지의 관점에서만 생각할 뿐,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몸을 장식적이고 수동적인 대상으로 생각할수록 기능에 대한 주관적인 감각은 떨어진다. 몸매에 너무 관심을 쏟다 보니 에너지나 스태미나와 같은 것에는 전혀 신경조차 쓰지 못하게 된다. '육체적 자원'으로서 자신의 몸을 존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 긍정적인 신체 이미지는 다양한 태도와 행동으로 표현된다. 우선 긍정적인 신체 이미지를 지닌 여성은 자신의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에이미처럼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들은 신체가 성취하는 모든 과업을 인식하고 이를 감사히 받아들인다. 결론적으로, 이 여성들은 몸을 지속적인 다이어트와 극단적인 운동, 또는 잔인한 말로 굴복시킬 대상이 아닌 잘 돌봐야 할 것으로 바라본다.

- 열심히 노력하는 것, 집중하는 것, 배려하는 것, 창조적인 것, 너그러운 것, 그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는지 알고 있다고 말하자.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다고 말하자. 그녀가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지 설명하다.

- 우리가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느낄수록, '아름다움'을 연기해야 하는 일이 적어질 것이다. 그리고 연기를 그만둬야 비로소 정신적 자원을 다른 과업에 자유로이 쓸 수 있다.

- 당신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결정하라. 당신이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정된 시간과 돈을 어떻게 쓰겠는가? 당신의 감정적 에너지를 어디에 투자하고 싶은가?

 

posted by sergeant

 

UCF 인터뷰를 끝내고 잠이 오지 않아서, 다음 인터뷰 준비하기 전 짧은 시간에 그 동안 미처 못 끝냈던 책들을 서재로 가져왔다.

성폭력 역고소 피해자 지원을 위한 안내서는, 책이라기 보다는 작은 소책자이다.
사단법인 한국 여성의 전화에서 기획하여 부설 연구소인 울림에서 제작했다. 제작과 동시에 이벤트를 해서, 선착순으로 지원하면 택배로 보내주시기에 잽싸게 신청했다.
pdf가 무료로 배포 된 줄 알았는데, 3,000원이라는 가격이 있나보다. 핵 이득!

성폭행 피해자 상담을 하면서 좀 더 내가 지식을 많이 알고 도와줄 수 있으면 좋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들었던 적이 있다. 해바라기 센터와 같은 전문 센터로 곧장 연결하고 할 수 있는 심리적 지원을 한다는 측면에서 할 일을 다 했었지만, 배경지식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의 큰 차이를 항상 느낀다. 잘 공부해서 나도 필요한 사람들과 지식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은 책자에 대한 안내이다.

<성폭력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자신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도록 협박하거나 더 이상의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는 수단으로 무고, 명예훼손 등의 각종 역고소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어난 유명연예인이나 직장내 성폭력 무고 고소들 역시 ‘성폭력 사실이 없었다’는 입증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피해자를 의심하기만 하면 무고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성폭력에 대한 통념은 ‘꽃뱀’ 의심으로, 그리고 너무 쉽게 역고소로 이어지곤 합니다. #무혐의는무고가아니다
이 안내서는 실제 성폭력 역고소 피해자들의 인터뷰와 판례들을 바탕으로 성폭력 가해자들이 ‘일단 하고 보는’ 역고소의 과정과 이를 어떻게 분별 있게 감지해야 하는지, 어떠한 역고소에 휘말리더라도 스스로가 당당한 피해자임을 잊지 말고 힘을 내자고 말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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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피해자 동의 없이 섹스했나요?'
-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질문하면 어떨까요?
'당신은 강간을 했습니까?'
-아니오.

위 글은 2017년 10월 31일 뉴욕타임즈 에디션 1면에 실린 "강간을 저지른 남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번역한 글로, 2017년 11월 13일 직썰, "성폭력 가해자들은 자신이 '나쁜 사람인지 모른다"에 실린 기사의 일부입니다.

p.12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 낮은 신고율
성폭력에 대한 역고소가 왜 논란이 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배경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낮은 신고율입니다. 여성가족부의 '2016년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신고율은 2.2%에 불과합니다. 어떤 범죄의 신고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범죄피해 사안이 경미하여 굳이 신고하지 않고도 피해회복에 문제가 없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성폭력은 중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신고율이 낮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짐작하다시피 성폭력의 신고율이 낮은 것은 범죄가 경미하거나 사건이 사소해서가 아니라 범죄 증명의 어려움, 가해자 처벌의 불확실성, 가해자와 친족 등 친밀한 관계, 이례적인 피해자 비난, 보복의 두려움, 수사기관의 비협조 등이 예견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성에게만 정조의 의무를 부과하고 비난해 온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영향으로 피해 여성 및 그 가족 등이 성폭력을 범죄피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감추고 은폐해야 할 부끄러운 일로 여기는 인식도 신고를 망설이게 합니다.

p.13
가해자에 대한 온정주의
성폭력은 다른 범죄와 달리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과하다는 범죄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가해자를 동정하고 감싸는 온정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도적으로도 이를 뒷받침하여, 2013년 6월 19일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되기 이전에는 피해자의 고소취소가 있으면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일도 가능했었지요.

p.16
성폭력의 무고를 보도하는 언론의 편파적 보도기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무혐의 용어의 사용에 관한 것입니다. 피의자가 된 피해자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판결을 강조하면서 마치 무혐의가 무죄인 양 대중들이 오독하게 하는 것이죠.

p.19
꽃뱀 낙인
한국사회는 성폭력 피해 호소를 소위 "꽃뱀"에 의한 허위신고, 그리고 '불쌍하고 억울한 남성'에 관련된 사건으로 보려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사건의 면모를 알아보려하기보다 '꽃뱀'사건으로 미리 단정해버리는 태도는 주로 피해자가 되는 여성에 대한 신뢰가 낮은 사회, 즉 여성의 말을 잘 믿지 않고, 신뢰할만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사회적 배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posted by sergeant

이갈리아의 딸들 -2017.12.03

독서/여성주의 2018. 6. 18. 18:32

 

2017년의 마지막달을 7년만의 감기몸살로 정신없이 시작하게 될 줄이야. 사람이 참 한치 앞을 못 내다본다. 어쨋거나 강제로 질병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올-스탑 한 채로 며칠을 집에서 누워지냄.
강철 체력이라 웬만해서는 아프지 않는데.. 너무 힘들었다. 오죽하면 밥을 잘 못먹고(!!) 좋아하는 지인이 상수동에 전시보고 같이 밥먹자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류의 데이트 코스) 연락 주셨는데도 거절했다.
밥도 거의 못먹고 옥수수스프나 포카리스웨트, 보리차 끓여마시다가 좀 상태 괜찮다 싶을땐 집 앞 본죽에서 사 온 새우죽 한 번 먹고.

그러는 와중에 부담없이 다시 읽게 된 '이갈리아의 딸들'
이 책은 아마 내가 초등학생 때 읽었던 책인 것 같은데, "페호"라는 남자 성기를 받치는 속옷의 개념이 너무 충격적이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브레지어 착용을 거부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의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 페호에 관한 글을 보고나서야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당시 어린 나에겐 생각의 전환을 하게 만든 엄청난 작품이었던 것 같다.

 1990년대는 페미니즘의 부흥이 한차례 일어났던 시기였지만, 다시금 잠잠해졌고 이제 또 다시 페미니즘에 관련된 서적이나 논쟁들이 많이 이루어 지고 있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2010년대 후반 지금 '메갈'이라고 불려지는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낙인찍기 시도와 밀접하게 관련있는 메갈리아 사이트의 이름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책이다.

메갈리아 사이트의 주된 운동 방법은 '미러링'이었는데, 혐오 행동이나 사상등을 똑같이 반영해서 비추어주는 전략을 말한다.
한국 남성들에게 미러링은 너무 어려운 전략이었다는 정희진님의 말처럼, 미러링은 쉽지 않은 전략이다. 잘 고안되지 않은 미러링은 여러 어려움을 수반한다. 그러나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으면, 잘 고안된 미러링이 얼마나 크고 강한 파급력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갈리아는 여성상위사회이다. 단어 하나하나부터 모두가 여성중심으로 다시 재편되어 있는 사회.

어린 시절 충격을 뒤로 하고 서른을 바라보는 지금 다시 읽어도 전혀 유치하거나 이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재밌게 읽게 되었다.
몸이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면서도 책을 읽으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다시금, 마음을 꾹꾹 다질 수 있었다.

전화영어를 시작하며 레벨테스트를 하는데, 인터뷰어가 "80년대 생이라는건 어떤의미야?"라고 하길래.. 나도 모르게 너무 훅 들어버린 생각이.. 어릴때부터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고 배워왔지만 사회에 나왔을때 전혀 그렇지 않다는걸 깨닫는 세대라고 대답하며 페미니즘 얘기까지 같이 나왔었는데 ㅎㅎㅎ

이 책을 처음 접하던 십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책이 비슷한 울림을 준다는 것이... 아직 한국 사회가 발전하지 못했다거나 혹은 퇴보하였음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성인이 되었고. 연대할 수 있는 많은 단체들과 도구들이 있다는, 그리고 진심을 나누고 공감하며 같이 전시도 보고 책도 읽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sergeant

괜찮지 않습니다- 2017.10.04

독서/여성주의 2018. 6. 18. 18:30

 

며칠 전, 책을 들자마자 근 2년간 발생했던 수많은 여성혐오 범죄들에 대한 목록을 차근차근 나열하고 자세하게 기술해 둔 초반부에 질색하며 화를 내고 있는 나를 보더니 배우자가 "지금쯤이면 우리가 그런 사건들 모아둔 책 읽을 시기는 지나지 않았냐."고 말했다. 그래, 따지고보면 이렇게 황당하고 빡치는 사건들을 보고 화를 낼 시기는 지난건지도 모르겠다. 이미 익숙해지고 무뎌질 것이었다면 담담해지고도 남았을 시간들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앞으로 몇십년이 지나더라도 전혀 담담하거나 화를 덜 내고나 무뎌지거나 익숙하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미친 사회현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는 한.
 사실 나 또한 책 제목을 보고 방심했었다. 괜찮지 않다고? 그래, 당연히 괜찮지 않지. 그러면서 책을 들고 괜찮게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아니. 전혀 괜찮지 않다. 매일매일 갱신되는 사건들, 범죄들. 10년 전에 비해 훨씬 후퇴한 여성인권. 엉망인 교실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이 사회. 
 언제쯤이면 이런 사건들을 나열하고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몇 권의 책이 나오거란 생각을 안 할 수 있을까. 삼개월만 지나도, 이 책에 적힌 최근 사건들이 업데이트 되지않고 올해의 대표적인 여성혐오 범죄들로 소개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절망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괜찮지 않다고 말 할 수 있어서. 그리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연대가 있어서. 나는 괜찮아질 수 있다. 지금은 괜찮지 않지만, 좀 더 괜찮아 질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특히 기자분이시기 때문에, 방송과 관련된 여성혐오쪽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셨다. 다양한 사건과 범죄들은 접했었지만 방송 깊숙히 스며들어있는 여성혐오들에 대해 정리하고 인식하기에 매우 좋은 책이었다. 어린 사촌동생이나 친구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페미니즘 입문서로.


 

"괜찮다는 종종 괜찮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저 난감한 상황을 넘기기 위한 말일 때가 많았다. 원치 않는 호의 앞에서, 무심과 무례 앞에서, 불편과 번거로움 앞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괜찮아요" 대답하곤 했다.
 사람들이 정말 괜찮은 일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내 뒤의 또 다른 여성이 그 괜찮지 않은 말과 행동을 견뎌야 했던 것은 아닐까. 마음이 무거워진다.
여학생, 여직원, 엄마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폭력과 조롱과 비하이 대해 그걸 웃으며 소비하는 대중문화에 대해,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국 남자들의 세상에 대해 이제 분명히 말하겠다. "괜찮지 않습니다."

p.18
10대 남성들의 성욕이 대해서는 온 사회가 "참느라 힘들지? 자식들, 힘내라!" 며 좋은 티슈라도 챙겨주려는 분위기라면, 10대 여성의 성욕은 어떤가. (...)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기 보다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P.34
가정, 학교, 직장, 사회는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고, 자신을 갈아 넣어 이 모든 것을 완수하는 '알파걸'과 '수퍼우먼'에게만 박수를 보냈다.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이 도전할 기회를 주고 있으니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단지 여자는 당연히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낳아야 하고, 상냥한 아내이면서 좋은 엄마이자 알뜰한 주부, 시어른에 대한 도리를 아는 며느리이기도 해야 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P.69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소설 "체체파리의 비법"은 이렇게 말한다. "한 남자가 아내를 죽이면 살인이라고 부르지만, 충분히 많은 수가 같은 행동을 하면 생활 방식이라고 부른다."

P.136
체중 관리부터 표정, 몸짓, 발언, 행동, 심지어 범죄 경력까지, 왜 우리는 이토록 남자에게 관대하고 여자애게 엄격한가. 여자 연예인이 무례한 일을 겪었을 때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조롱하고 비난하면서, 남자 연예인의 무례한 언행은 왜 그렇게 조용히 빠르게 잊어주는가.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