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F 인터뷰를 끝내고 잠이 오지 않아서, 다음 인터뷰 준비하기 전 짧은 시간에 그 동안 미처 못 끝냈던 책들을 서재로 가져왔다.

성폭력 역고소 피해자 지원을 위한 안내서는, 책이라기 보다는 작은 소책자이다.
사단법인 한국 여성의 전화에서 기획하여 부설 연구소인 울림에서 제작했다. 제작과 동시에 이벤트를 해서, 선착순으로 지원하면 택배로 보내주시기에 잽싸게 신청했다.
pdf가 무료로 배포 된 줄 알았는데, 3,000원이라는 가격이 있나보다. 핵 이득!

성폭행 피해자 상담을 하면서 좀 더 내가 지식을 많이 알고 도와줄 수 있으면 좋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들었던 적이 있다. 해바라기 센터와 같은 전문 센터로 곧장 연결하고 할 수 있는 심리적 지원을 한다는 측면에서 할 일을 다 했었지만, 배경지식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의 큰 차이를 항상 느낀다. 잘 공부해서 나도 필요한 사람들과 지식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은 책자에 대한 안내이다.

<성폭력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자신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도록 협박하거나 더 이상의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는 수단으로 무고, 명예훼손 등의 각종 역고소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어난 유명연예인이나 직장내 성폭력 무고 고소들 역시 ‘성폭력 사실이 없었다’는 입증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피해자를 의심하기만 하면 무고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성폭력에 대한 통념은 ‘꽃뱀’ 의심으로, 그리고 너무 쉽게 역고소로 이어지곤 합니다. #무혐의는무고가아니다
이 안내서는 실제 성폭력 역고소 피해자들의 인터뷰와 판례들을 바탕으로 성폭력 가해자들이 ‘일단 하고 보는’ 역고소의 과정과 이를 어떻게 분별 있게 감지해야 하는지, 어떠한 역고소에 휘말리더라도 스스로가 당당한 피해자임을 잊지 말고 힘을 내자고 말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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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피해자 동의 없이 섹스했나요?'
-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질문하면 어떨까요?
'당신은 강간을 했습니까?'
-아니오.

위 글은 2017년 10월 31일 뉴욕타임즈 에디션 1면에 실린 "강간을 저지른 남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번역한 글로, 2017년 11월 13일 직썰, "성폭력 가해자들은 자신이 '나쁜 사람인지 모른다"에 실린 기사의 일부입니다.

p.12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 낮은 신고율
성폭력에 대한 역고소가 왜 논란이 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배경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낮은 신고율입니다. 여성가족부의 '2016년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신고율은 2.2%에 불과합니다. 어떤 범죄의 신고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범죄피해 사안이 경미하여 굳이 신고하지 않고도 피해회복에 문제가 없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성폭력은 중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신고율이 낮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짐작하다시피 성폭력의 신고율이 낮은 것은 범죄가 경미하거나 사건이 사소해서가 아니라 범죄 증명의 어려움, 가해자 처벌의 불확실성, 가해자와 친족 등 친밀한 관계, 이례적인 피해자 비난, 보복의 두려움, 수사기관의 비협조 등이 예견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성에게만 정조의 의무를 부과하고 비난해 온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영향으로 피해 여성 및 그 가족 등이 성폭력을 범죄피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감추고 은폐해야 할 부끄러운 일로 여기는 인식도 신고를 망설이게 합니다.

p.13
가해자에 대한 온정주의
성폭력은 다른 범죄와 달리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과하다는 범죄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가해자를 동정하고 감싸는 온정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도적으로도 이를 뒷받침하여, 2013년 6월 19일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되기 이전에는 피해자의 고소취소가 있으면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일도 가능했었지요.

p.16
성폭력의 무고를 보도하는 언론의 편파적 보도기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무혐의 용어의 사용에 관한 것입니다. 피의자가 된 피해자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판결을 강조하면서 마치 무혐의가 무죄인 양 대중들이 오독하게 하는 것이죠.

p.19
꽃뱀 낙인
한국사회는 성폭력 피해 호소를 소위 "꽃뱀"에 의한 허위신고, 그리고 '불쌍하고 억울한 남성'에 관련된 사건으로 보려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사건의 면모를 알아보려하기보다 '꽃뱀'사건으로 미리 단정해버리는 태도는 주로 피해자가 되는 여성에 대한 신뢰가 낮은 사회, 즉 여성의 말을 잘 믿지 않고, 신뢰할만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사회적 배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