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2/2020] Privileged vs. Entitled

생각 2020. 9. 3. 04:55


미국에 와서 공부 할 수 있는 기회가 행운이라고 느끼는 순간들을 많다. 한 두가지라고 꼽아서 강조 할 수 있으면 간단하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 중 하나는 S같은 ‘잘 배운’ 사람들이 하나같이 보여주는 Social Justice에 대한 높은 지각이다. 물론 이 문장을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보면, 미국 교육도 일반 시민 양성에 크게 성공했다고 단정 할 수만은 없다. 안티 백신 주의자들, 안티 기후론자들이나 지구 평평론자들..(그만 세자)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niversity Bubble 안에서 만나는 배운 사람들의 공감 능력과 사회 공공선에 대한 감각, 그리고 부끄러워 할 줄 아는 태도는 놀랍고, 일관성이 있어서. 이것이 바로 잘 된 미국 교육의 산물이구나 싶어진다.
.
내가 받았던 한국 (학부) 교육이 십년이 지난 지금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때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과 교수님들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너희는 앞으로 이 사회에 리더가 될 것 (왜냐하면 너희는 성적이 좋으니까)” “너희는 뛰어난 아이들이고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인재들 (왜냐하면 너희는 성적이 좋으니깐)” 그런식의 이야기들을 수업시간에 종종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불편하고 우습다고 느낀 총명한 친구들이 당시에도 있었겠지만, 나는 이 메시지들을 그냥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나는 성적이...&₩;&(&@
.
10년전의 문제라고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은 최근 “공부를 잘 하는” 특정 이익집단의 주장을 듣고 읽고 이해해 보려고 한 후이다. Privileged, 즉 다른이들이 말하는 혜택과 특권이 내게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았을지라도, 실제로 내가 ‘어느정도의 성취’를 이룰 수 있게 도와 주었던 사회경제적, 인적, 물적 자원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논외로 쳐버리고 나는 이 성취를 해냈으니 사회에 이 정도는 요구해도 된다는 태도 (왜냐하면 나는 공부를 잘 했으니까?) 가 전혀 이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이런 태도를 entitled라고 한다), 대학에서 만나는 미국식 교육을 받은 내 주변 젊은 사람들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논의의 온도차가 너무 달라 아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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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겨울

생각 2020. 1. 3. 16:39

공공 도서관에 가서 마음껏 한국 작가들의 책을 빌릴 수 있는 것, 독립 영화를 큰 화면의 영화관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방학의 큰 기쁨이다. 지난 해 한국 여성 감독들과 작가들의 활약이 특히 어마무시했다. 그래서 짧은 한달의 겨울 방학 동안 지워야 할 리스트가 아주 길었다. 행복한 부담감이었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요즘은 더욱이 독립영화의 상영관 확보가 쉽지 않은 일이라, 대학가 근처에 더 자주 오게 된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어떤 것들이 친숙하면서도 생경하다. 그리고 오고가는 대학생들의 대화들 속에서 혈기만 넘치던, 부끄러운, 20대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싸움과 욕심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우리의 어린 시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린 시절에 부모나 형제나 친구와 싸웠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시간이 지나 그 때의 기록들을 보면 어리둥절해지는 경우를 만난다. 일기 같은 것에 써 있는 스스로의 생각이 잘 이해가 안 되고, 뭘 그런 사소한 것 때문에 섭섭해하고 분노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어린 아이가 인지한 좁은 세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었다. -강국진>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 지금과 나중을 가늠해 보게 된다. 지금의 내 좁은 세계는 얼마나 더 확장 되고 바뀔 수 있을까. 아니, 이미 쪼그라들고 있은지 오래인 것은 아닐까. 확장 되는 것만이 좋은 것일까. 어쨌거나 부끄러운 과거를 마주하는 것만큼 싫은 일도 없는데, 최근에는 그마저도 그러려니 해야지 마음먹게 되었다. 부끄럽다는 것은 그 전보다, 그 때보다 나아졌다는 신호일 것이라고. 그 세계에 멈춰있지 않았다는, 그 때보다 나아졌다는 증거라고 다독이게 된다.
좋은 작품의 힘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삶으로 걸어 들어가,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여성 감독들과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읽으며, 애초에 절대 이해할 수 없던 인물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삶을 당연히 이해하고 나의 한조각을 발견하는 동시에 그 주변의 짜증나는 타인들을 미워하고 증오하지만은 않을 수 있는 경험을 한다.
그렇게 이번 겨울, 내 세계도 조금이나마 더 넓어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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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t-corners

생각 2019. 12. 2. 10:29

좋아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오랫동안 동업을 해 온 건축업자와 부동산 사장이 있었다.

둘은 아주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 했는데, 건축업자가 은퇴를 결심했다.

은퇴를 결심한 건축업자에게, 부동산 사장이 마지막으로 한번만 니가 원하는 가장 멋진 집을 만들어 달라고, 재료값이나 시공비는 자유롭게 쓸 수 있겠다고 부탁/사정을 했다.

건축업자는 부동산 사장이 원하는대로 집을 만들었지만, 자재를 빈약하게 쓰고 모퉁이를 깎아 자신의 이익을 챙겼다 (cut-corners를 한 것이다).

지루했던 공사가 끝나고, 부동산 업자에게 일의 마감을 알린 건축업자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자신이 모퉁이를 깎아 이익을 만들었던 그 집이 사실은 부동산 업자가 건축업자를 위해 마련한 마지막 선물이었다고.

원하던 집이 생겼으니 이제 그 곳에 들어가 살기만 하면 된다고, 열쇠를 쥐어준 것이다.

 

이 이야기는 모퉁이를 깎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기꾼들에게,

결국은 자신이 깎은 모퉁이 만큼 그 손해를 받게 된다는 교훈을 전해 준다.

현실이 동화처럼 권선징악적이거나 납작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위안이 된다.

 

시키는 대로 모두 제대로 다 해내고 싶은 assigned readings, RA works, 그리고 맡겨진 업무들 가운데에서

"뭘 그렇게 까지 하냐." "적당히 해라."라는 메시지가 많았던 이전의 한국사회, 그리고

심지어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 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신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빠르게든, 느리게든 간에 사람들은 서로의 됨됨이를 너무나도 잘 알게 될 수 밖에 없다는 또 하나의 신념과,

모퉁이를 깎는 이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고 존경하고 싶거나 따르고 싶은 성실한 학자들과 가까이 하고 싶어서,

결국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맞물려서.. 오늘도 리딩을 하고 있네.

 

 

수업 시간에 discussion을 하다보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옹호를 해야 할 때가있다.

그럴 때면, 내가 한국에서 상담을 배워서 좀 다른건가 싶긴 한데.

막상 논문들을 읽고 나면, 그리 다르지도 않았어서..

결국 작은 사실이든 (ex. 그 이론에서 단계 순서가 그게 아닌데?)

큰 토론이었든 (ex. 상담사로 training을 받을 때 한국에선 personal therapy가 의무인 곳도 있어. 미국은 이게 완전 이상한 얘기처럼 받아들여 진다고?)

즉시 검증이 되든, 시간이 지나고 나서든 간에 책에서 논문에서 다 평이하게 뒷받침 되는 나의 의견들..

 

제발 책 좀 읽고 오라고 말을 해 줄 수도 없고...

 

여자로서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아무튼간에 나는 좀 더 의견에 자신감을 가지고

또 authoritative information과 citation을 많이 모아야 겠다고,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그런 점에서 오늘 리딩 하다 발견한 공감되는 말들 적어두기.

 

Psychotherapy works (Miller, Hubble, Chow, & Seidel, 2013).

 

Some therapists are more (or less) helpful than others (Miller, Hubble, & Duncan, 2007)

 

What does reliably improve is therapists' confidence in their abilities (Miller et al., 2007).

 

Taking each in order, although nearly 80% of practitioners cite a personal therapy as key to becoming a better therapist-second only to supervision (Orlinksy & Ronnestad, 2005). 

 

In sum, expertise is not inherited nor does it directly follow from mere time spent in a given field or profession. Instead, top performers are made, a result of their "life-long... deliberate effort to improve". 

Erisson and colleagues (1993) found that the best work harder and smarter at improving their craft than the less capable players. Specifically, those at the top spent significantly more time- three times as much- than those at the bottom engaged in solitary activities specifically designed to better their performance. The best were more dedicated in every way. They devoted less time to leisure and more time to music-related activities. Additionally, they knew when they were slacking off, unlike the other subjects in the study who tended to underestimate time spent in recreation and relaxation. 

Since the publication of this initial research, similar results have been found in sports, chess, business, computer programming, teaching, medicine, and surgery. Ericsson et al. (1993) introduced the term deliberate practice to refer to the universal process associated with the development and maintenance of expertise across a variety of pursu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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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2019] 우리는 섬과 같은 존재들이다.

생각 2019. 10. 24. 10:23

어제는 감사한 기회가 있어서 한국에서 열린 기독교 페미니즘 강좌 녹화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공부도 안했다 하하)

그런데 얼굴은 나오지 않았지만, 마지막 부분에 사촌 동생이 질문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질문의 내용인 즉, 교회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낙인이 생겨 버려

무슨 이야기만 해도 그렇게 해석 되고, 지치게 된다는 요지였다.

들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아서.

 

불과 몇달 전에 내가 썼던 글들에도, 그런 말들이 있다.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건가.]

여기는 기독교이고, 뭘은 기독교 페미니즘을 가리키며, 있는건가는 의미가 있냐는 질문이었는데.

 

요즘 통 사촌동생한테 신경도 못 써서

강좌 디브리핑이나 같이 하자 싶어서 연락했서 안부를 물으니

동생이 거의 비슷한 말을 한다.

삽질 하는 것 같다고.

노답 중에 노답인데, 여기서 괜히 힘 빼고 있는 것 같다고.

 

맞는말이기도 한데,

삽질도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도 의미 있고.

힘 빼는 것도 과정 이고,

또 그게 결과값이 0에 수렴하는 아무것도 아닌 일만은 아니다.

 

동생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교수님께서는

지지 자원들을 찾으라고 하셨는데, 공감가는 말이었고 감사했다.

지치지 않으려면 지지 기반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섬과 같은 존재들이다.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들은

주체적 개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기 힘든 환경에 있어왔고,

그렇기에 여성으로서 연결될 수 없었고

당연히 서로의 여성으로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는 한 개인이 페미니스트로서의 인식을 발달시킨 이 후라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 

우리의 주체성은 매 순간 위협 받고,

여성으로서 여성을 위하고자 하는 이들과 연결 되기란 쉽지가 않고,

그래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나 또한 여성주의자로서, 내 뇌를 씻어주는 사람.

통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을 가졌었지만, 오래지 않아 잃었다.

 

그렇지만 절망하지만은 않는 것이,

그들이 지금 비록 나와 연결 될 수 없더라도

어딘가에서 내 흔적을 만나고, 나와 같은 생각, 혹은 다른 생각을 하고,

우리가 했던 대화들을 생각하며

그렇게 가끔은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차 안에서, 혼자 만의 방에서 피식 웃고 있겠지. 그런 생각 때문에.

 

우리는 떨어져 있는 섬과 같은 존재들이지만,

그게 결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이기 때문에

더 이상 절망하지만은 않는 것 같다.

 

다만 그리울 뿐이고,

그래서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함께 디브리핑 하는 것 정도.

함께 이야기하고, 분석해 통찰을 나누고, 

그리고 그녀의 선택들에 단단한 지지를 보내는 것 정도.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것들 중 하나겠지, 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누군가가 그렇게 해 주었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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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2019. 10. 23. 11:53

명문이다.

"배신을 일삼는 조폭들이 유난히 의리를 강조하거나, 사랑과 정의를 말하는 교회가 혐오와 불의의 공간이 된 것처럼 누군가 혹은 어느 집단이 특정한 단어를 자주 부르짖는다면, 도리어 그것의 결핍을 의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마치 시대정신인 것처럼 곳곳에 덕지덕지 난무하는 ‘공정’이라는 가치도, 분열된 ‘개혁’도, 광화문광장을 점령한 ‘자유 민주주의’도 결핍의 징후일 수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는 이런 개념들이 부족하기보다는 애초에 그게 무엇인지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각자의 정의를 칼처럼 휘두르며 치킨 게임을 하는 것이다. 이 게임은 언제 끝나며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 오수경 자유 기고가 

 

과잉 자의식이 짜증 나는 것도, 

아마 그 것들이 지금 혹은 과거의 내 일부이기 때문이겠지 싶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fade out 될 것들에 마음을 쓰지 말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감기 기운이 있는데, 내 몸 관리나 잘 해야지.

 

그나저나

오늘은 온라인으로 16회 콜로키움을 들었다.

가까운 사람이 아닌 남한테 잘 징징대지 않는데,

어쩌다 불쑥 말해버린 '교회를 떠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문장에

그러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잡아주는 공동체가 있어서

정서적으로 감사했었고,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열매 맺게 된 오늘의 시간들에 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역시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교회에서 설 자리가 없는걸까, 라는

개인적인 궁금함을 뒤로 하고서라도

요즘은 간사 시절을 다시 떠올리곤 한다.

함께 불렀던 찬양들이 환기되는 것과 맞물려서,

Reflection paper를 적으면서 느꼈던 것들 때문에.

 

상담에 가서 왜 교회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했었는데,

아직도 배신감에 부들거리다가도,

그래도 요즘은 제법 그 때 좋았던 기억들도 떠오른다.

하나님, 제가 또 이렇게 행복한 순간들을 가질 수 있을까요, 라고 묻던 시기들.

진심으로 서로를 위하고 대하고 사랑하는 공동체를 섬겼던 순간들이, 생각이 난다.

예전보다 많이 회복 한 것 같다.

 

 

이번주부터 프로젝트 데이터 분석 시작인데, 사명감 가지고 열심히 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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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영면하여 평안하기를,

생각 2019. 10. 17. 10:46

시애틀 학회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는데, 하루는 새벽에 친구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또 한명의 여성이 떠났다고.

한국 사회는,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여성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어떤 이의 추모가 너무 사무쳐 눈물이 났다. 

 

한국에서 가끔 버스 중앙차선에 서서 신호를 기다릴 때면,

삶과 죽음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아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다행 혹은 행복과 불행의 거리도 너무나 가까워서 섬뜻하다.

 

사람들과 안부를 전한다.

잘 지내냐고. 우리 죽지말고 잘 살자고. 행복 하자고.

이 말들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친구들이, 그리운 사람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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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것, 본능, 그리고 여성성

생각 2019. 7. 3. 17:48

얼마전, 레즈비언인 지인과 크게 논쟁이 있었다.

지인은 자주 '너와 대화하는 것이 항상 너무 좋다.'고 표현하던 사람이었는데,

글세, 나와의 대화라는 것이... 절대 유쾌하기만 할 수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건이 터졌다.

 

여성성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신의 여성적인 모습, 즉 수동적이고 섬세하고 이타적인 감각,이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이며

억지로 바꾸지 않고 싶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레즈비언 커뮤니티 내에서

이성애 성역할 답습(부치-펨)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 마다

그 인식을 바로잡고 싶다는 류의 주장이었다.

 

나는 그 주장에,

원래부터 그런 것이란 없으며

설령 내 자신이 본래 수동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일지라도

페미니스트로서 공론장에서

이성애 성역할 답습 비판의 목소리에 맞서

공론을 후퇴시키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아무래도 논쟁의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원래 이래."라는 말처럼

상대방을 무력하게 만드는 말은 없다.

원래 그렇다는 말은

발전, 변화, 그리고 심지어는 대화와 사유의 가능성까지 모두를 차단한다.

 

최근 유명 아이스크림 브랜드 광고의 아동 성적 대상화 논란 때문에 말이 많다.

일각에서는 크게 비판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예쁘기만 한데 뭐 어떠냐"라는 주장도 보인다.

 

원래부터 예뻐보이는 것은 없다.

미의 기준 또한 사회적 산물임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의 미의 기준이 어디까지 후퇴해 있는지를

오히려 잘 반증하는 반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건강과 신체의 기능을 무시하는 과도한 다이어트

연약하고 어리게보이는 것이 기준이 된 한국의 미인상,

그리고 남성의 기를 죽이지 않는 수동성(반대.적극성)과

나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미덕인 여성성.

이것이 여성의 본능인가?

게다가 이제는 어린여아들에게 까지 다소곳하고 성인의 미의 기준으로 눈에 보기 좋기만을 요구하니..

 

원래 그런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그래도 되는 (자신을 가꾸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자신을 먼저 생각해도 되는) 사람과

그래서는 안 되는 (나이가 들어도 자기관리라는 이름 하에 자신을 꾸미고, 나대지 않으며, 타인을 배려해야만 그것이 미덕인)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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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2019. 6. 28. 10:30

https://ppss.kr/archives/197847?fbclid=IwAR3eK0EwZOsKJz_SF0THXA4-pmQB8aSUiKC1VvA7WToEXhKKdSSNi1JLuNg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은 집안의 죄인이 되고, 아이를 낳은 여성은 사회의 죄인이 된다

아이 옷에 녹음기를 달아 유치원에 보낸 한 여성의 이야기가 논란이 된 듯하다. 우연히 관련 기사를 보았는데, 댓글의 대부분은 아이의 엄마를 비난했다. 일단 불법적인 행위이기도 하고, 유치원 교사의 인권이나 기분은 어떻겠냐는 말들은 대체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장 공감을 많이 받은 댓글 중 '그러니 맘충소리 듣지.' '이러니 맘충이라는 비속어가 생기고, 노키즈존 생기는 거 아니냐.'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만약 녹음기를 달게 한 게 아빠였

ppss.kr

 

 최근 배우자의 외도로 고통받던 사려 깊은 남성 지인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결국 자신은 배우자를 용서하고 싶으니, 그 대가로 자신이 원했던 셋째 아이를 가지자고 해볼까 싶다는. 이것은 아내에게 주는 복수나 형벌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증표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며 그를 말렸고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비록 그는 친절한 페미니스트였으나 나는 더 이상 그를 똑바로 볼 수 없어졌다. 비위가 상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진실의 입'이 열린 현장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자신을 여성주의자라 생각하는 남성이라도, 어쩌면 그 자신이 여성의 삶을 너무나도 잘 아는 여성해방운동 지지자이기 때문에 그는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 마음에, 인생과 경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 않는 일이지만,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자신의 배우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사실 더 정확하게는 잘 모른다고 두 눈을 감고 싶을지도 모른다. 내 배를 찢고 내 경력을 단절시켜야 하는 일은 아니니까. 사람이니 그럴수도 있다. 그런데 그 무관심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의 무관심이야 그렇다 쳐도, 왜 여성들은 관심이 없는건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자신의 몸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적 지위 및 경력 단절까지도, 왜 "이럴 줄 몰랐다"고 말하는 걸까. 수많은 여성들이 말하는 증언을 왜 듣지 않는건가. 그동안 남성 중심주의 시각에 너무나도 동화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모든 어려움이 "직접적인 내 일은 아니"라는 그 시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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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 2019.06.27

생각 2019. 6. 28. 10:16

누군가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준다면
그것은 내가 '좋고 괜찮은 사람'이라서 라기 보다는
나를 좋게 봐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어서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만남을 통해 항상 다시금 깨닫는다.

배려가 깃들어 있는 사려 깊은 우정은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고
얼굴 보고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은
서로가 서로에게 줄 수 잇는 가장 큰 선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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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2019] 나를 시험에 들게 하시옵는

생각 2019. 6. 26. 22:12

예전에 처음 기독교 여성주의 역사를 읽었을 때 Mary Daly는 내게 매우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급진적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라 정의하는 사람이었으며, 보스턴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여성주의 기초과정(introductory)에선 남학생들의 출입을 허용했으나 advanced 과정에서 여학생들만을 수강 허용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의 학술적인 활동들은 기독교 여성주의 신학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정작 그는 이 후에 기독교가 “가망없게 가부장적(hopelessly patriarchal)”이라며 신학을 포기하고 남은 학술 활동을 여성주의 철학에 헌신했다.

가부장제내에서 여성들만의 공간은 여성들의 안전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 여성의 공간에 남성이 단 한명만 있어도, 일부 여성은 자신의 발언을 검열하고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털어놓기 어려워 하게 된다. 과거 의식고양 집단이 여성들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거기서 숱한 성폭력과 억압의 사례들을 밝혀냄을 통해 여성주의 물결이 일어났음을 돌이켜볼 때, 이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간파하고 고급 여성학 수업 시간을 여성들만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녀를 나는 매우 존경했다.

그녀에 대한 존경심은 나의 현재의 고민과도 이어진다. 과연 기독교는 근본적인 여성주의를 끌어안고 갈 수 있을까? 내가 처음으로 기독교 여성주의에 대한 세미나를 참석했을 때, 마이크를 잡은 남성 질문자는 강사를 가르치려 했고 토론하던 여성 패널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여성혐오적 발언을 했다. 그 여성 패널의 발언에 다른 남성 질문자가 ‘진짜로 여성의 적은 여성이냐’는 질문을 하고 있는 꼴을 보고 나는 부들부들 떨며 “내가 여성주의 세미나에 와서 이런 여성혐오적 발언을 들을거라고 상상도 못했었다.”고 거의 토를하며 왜 그 발언이 여성혐오적인지를 설명하고 나왔던 쓴 기억이 있다.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고, 나는 기독교내 훌륭한 젊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과 예술가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는 떠나고 일부는 여전히 힘겨워하는 그들을 보며, 다시금 질문하게 된다. “과연 기독교는 이론이 아닌 현실의 급진 페미니스트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을까?” 오래 전 Mary Daly가 백기를 들고 기독교를 떠났던 것처럼,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기독교를 떠나게 될까. 예수까지 져버리게 될까? 내가 아는 예수가 더 이상 예전의 그 예수가 아닐때조차도, 여전히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나는 비록 괄목할만한 학문적인 업적과 영향력은 없지만, 그동안 내가 해 왔던 고민들이 모두 쓸모없는 것은 아닐텐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의 끝은 정해져 있는걸까. 도대체 나는 왜 여기 이러고 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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