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것, 본능, 그리고 여성성

생각 2019. 7. 3. 17:48

얼마전, 레즈비언인 지인과 크게 논쟁이 있었다.

지인은 자주 '너와 대화하는 것이 항상 너무 좋다.'고 표현하던 사람이었는데,

글세, 나와의 대화라는 것이... 절대 유쾌하기만 할 수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건이 터졌다.

 

여성성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신의 여성적인 모습, 즉 수동적이고 섬세하고 이타적인 감각,이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이며

억지로 바꾸지 않고 싶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레즈비언 커뮤니티 내에서

이성애 성역할 답습(부치-펨)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 마다

그 인식을 바로잡고 싶다는 류의 주장이었다.

 

나는 그 주장에,

원래부터 그런 것이란 없으며

설령 내 자신이 본래 수동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일지라도

페미니스트로서 공론장에서

이성애 성역할 답습 비판의 목소리에 맞서

공론을 후퇴시키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아무래도 논쟁의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원래 이래."라는 말처럼

상대방을 무력하게 만드는 말은 없다.

원래 그렇다는 말은

발전, 변화, 그리고 심지어는 대화와 사유의 가능성까지 모두를 차단한다.

 

최근 유명 아이스크림 브랜드 광고의 아동 성적 대상화 논란 때문에 말이 많다.

일각에서는 크게 비판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예쁘기만 한데 뭐 어떠냐"라는 주장도 보인다.

 

원래부터 예뻐보이는 것은 없다.

미의 기준 또한 사회적 산물임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의 미의 기준이 어디까지 후퇴해 있는지를

오히려 잘 반증하는 반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건강과 신체의 기능을 무시하는 과도한 다이어트

연약하고 어리게보이는 것이 기준이 된 한국의 미인상,

그리고 남성의 기를 죽이지 않는 수동성(반대.적극성)과

나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미덕인 여성성.

이것이 여성의 본능인가?

게다가 이제는 어린여아들에게 까지 다소곳하고 성인의 미의 기준으로 눈에 보기 좋기만을 요구하니..

 

원래 그런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그래도 되는 (자신을 가꾸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자신을 먼저 생각해도 되는) 사람과

그래서는 안 되는 (나이가 들어도 자기관리라는 이름 하에 자신을 꾸미고, 나대지 않으며, 타인을 배려해야만 그것이 미덕인)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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