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9/2020] 2019 올해의 문제적 소설

독서/기타 2020. 7. 29. 12:08

2020년 하반기인데,

이제서야 빌려두었던 2019 올해의 문제적 소설들을 다 읽었다.

2020년 버전이 대출중이라 못 빌렸기 때문에 가져온 것도 있고,

또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도 읽고 싶었기 때문에.

 

한국 고전 혹은 근대 소설들을 읽으며

내내 화자에 이입할 수 없고, 심하게 말하면 불쾌했던 경험들 때문에

(외국 고전들도 이에 대해서 자유롭기는 힘들다)

20대 후반까지는 한국 소설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비문학 서적들을 선호했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 소설이 좋다.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는 여성 작가분들께 감사하다.

 

불을 끄고 매미 소리를 들으며

차가운 커피 한잔을 마신다.

그리고 한국의 정서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절제된 표현들과 언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실주의적 시크함.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 오니까

하나 하나 더 귀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금방 져서 더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꽃들처럼.

오늘의 삶을 충만하게 채울 수 있을까.

지난주부터 이번주 상반기 나름 열심히 지냈는데,

어쩌면 조금 쉬는 시간도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주까지만 열심히 하고

다음주부터 좀 쉬어야지, 그런 계획들도 만지작 거리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빈둥거려 봐야겠어.

 

비가 좀 그만 왔으면 좋겠다.

서울을 더 마음껏 담고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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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입니다 - 04/12/2020

독서/여성주의 2020. 4. 13. 07:48

부활절 오후, 뭘 하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서점에서 금방 산 책을 찍어 보냈다. 책을 본 친구가 그 책은 몇 챕터 읽다 너무 힘들어서 내려 놓았다고 했다. 나는, 읽다 힘들어 집 구석에 쳐박아 둘 지언정 구매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책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지만 중요하니까.

한 챕터, 한 챕터를 꾹꾹 눌러가며 읽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고발 되기 전, 그남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희미해 지던 기억을 되살리게 해 준다. 그렇게 우리가 어떤 개쌍놈에게 투표 할 뻔 했는지도, 안희정 자신이 여성주의자라고 인터뷰 한 잡지 내용을 읽으며 느끼던 감정들과 그 순간의 기억들도 생생해져 괴로웠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때 하나의 움직임은, 여성후보가 없으면 투표지에 빨간 볼펜으로 “여성후보”라고 적고 나오자는 운동이었다. 서울시에는 신지예 후보가 있었지만 내가 속한 지역구에는 없었다. 이 운동에 대해 일부 안티페미들의 조롱은 뜨거웠다. 사표를 양성해 보았자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 메시지를 누가 알아 줄 것 같느냐는 아주 타당해 보이는 지적들. 그렇게 하면 결국 최악인 X당 누구가 당선 될 것이라는 익숙한 윽박들.

그렇지만 그 “여성후보” 요구 운동은 선택이 아니었음도 기억나게 되었다. 적어도 여성후보는 앞에서 페미니스트임을 내세우며 비서를 성폭행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다 못해 X당 유명한 원내대표가 ‘안희정 하겠냐.’는 말이, 정치철학적으로 그럴듯하고 타당해 보이는 여성후보 요구 운동에 대한 비판들 보다, 여성인 내게는 백만배 더 타당했으니까. 그리고 그 날 밤에 “여성후보” 요구 운동이 지상파 뉴스와 언론에 보도 되었을 때의 기분도, 다시 떠올랐다.

기록은 다시 기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나는 기억하고 싶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대한민국이 김지은씨에게 어떤 빚을 지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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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 2019.12.20

독서/기타 2020. 1. 3. 15:35

오랫동안 머리에 남는 장면들과 메시지.
긴 러닝타임이 무색한 영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 하던데, 그래서일까.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만 같은 은희와 영지쌤.

하이퍼리얼리즘의 역기능적 가족, 그리고 우리가 성장하던 그 때 그 시절.
트라우마, 그리고 그럼에도 지속되는 삶.
아니 우리 삶의 일부인 트라우마.

posted by sergeant

호재 - 2020. 01. 03

독서/기타 2020. 1. 3. 11:53

 

추천의 말

 무심히 죄를 지은 이는 평생 그 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기꺼이 무게를 나누려던 이는 삶 전체가 불행으로 말려든다. 그리고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던 아이가 있다. 아이의 이름은 '호재'. 행복과 기대가 담긴 거창한 이름을 붙여 준 어른들은 정작 자신의 운명에 허우적대느라 아이를 잊었다.

"호재"는 휘둘리고 뒤틀리느라 자라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 그리고 당신의 변명이고 진심이다. 커다란 몸 안에 웅크린 아이를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니 어떻게 이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한 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였으므로. 이제 그 아이의 눈을 피하는 어른이 되었으므로.

성실과 호의는 성과와 예의로 돌아오지 않고, 행운과 불운은 언제나 가장 부적절한 순간에 찾아온다. 누구에게나 삶은 첫 번째 경험이고 우리는 매 순간 무능하다. 태연한 얼굴로 일상을 살아 내는 평범한 당신, 사실은 가혹하고 냉정한 운명 앞에서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당신, 당신의 눈물과 한숨 끝에 이 소설을 놓아 주고 싶다. - 조남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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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중 특히 소설의 백미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삶에 흠뻑 들어가 결국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철딱서니 없는 인간들,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 때문에 망한다.'고 주구장창 말하고 다니는 내게, 담담한 어조로, 누구보다 어린이자 어른이었던 호재의 태도로, 사람들의 삶을 풀어내 준 작품. 그 누구도 혐오하고 증오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게 해 준 황현진 소설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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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 작가, 현재는 번역가, 미래는 작가라는 14년차 번역가 노지양님의 마음 번역 에세이라고.

 

글을 쓰고 싶다는 글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14년간 해 온 번역에 대한 깊은 애정이 뚝 뚝 묻어나는 책.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빛이 나는 법이다.

posted by sergeant

 

 

작가의 말

우리는 서로를 선택할 수 없었다.

태어나보니 제일 가까이에 복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몹시 너그럽고 다정하여서 나는 유년기 내내 실컷 웃고 울었다.

복희와의 시간은 내가 가장 오래 속해본 관계다. 이 사람과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라왔다. 대화의 교본이 되어준 복희. 그가 일군 작은 세계가 너무 따뜻해서 자꾸만 그에 대해 쓰고 그리게 되었다. 그와 내 역사의 공집합을 기억하며 만든 창작물 중 일부가 이 책에 묶였다.

(...) 나를 낳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오해로 쓰인 책이다.

(...) 그렇지만 엄마의 훌륭한 교본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님을 내내 기억하며 용기를 내어 책을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고를 수 없었던 인연 속에서 어떤 슬픔과 재미가 있었는지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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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어떤 글이나 말도, 깔끔하게 단정짓기가 어려워 지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나는 나의 모친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에게 우리 엄마란, 날 때부터 부모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태어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유년시절은 든든한 산과도 같은 부모 슬하에서 안정감 있게 자라났지만,

모든 일에 양면이 있듯이 내가 부모 또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 오랜 시간이 들었다.

사실은 아직까지도, 나는 부모 울타리 안에서 자라고 있는 자식의 역할이 익숙하다.

나는 부모가 되지 않기로 선택했으니, 아마 나는 영원히 부모됨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이해할 수 없음이 그리 아쉽지 않은 이유는

내가 설령 부모가 된다고 하더라도 내 부모의 마음을 백퍼센트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삶은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내고 이해하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너무 연민하지도 그렇다고 매정하지도 않은 사람이 되고 싶고,

나의 엄마와도 이번 여행에서는 아주 조금 더 친구처럼 지내게 되려나,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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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 2019. 11. 05

독서/여성주의 2019. 11. 6. 12:16

개인적으로 육아와 출산에 대한 여성주의 담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게 페미니스트로서 시급한 문제는 동일임금/동일노동이나 성폭력 근절과도 같은 것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비 선호가 육아와 출산에 대한 담론을 의미 없게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다못해 비출산/비혼 결심을 하려면 결혼, 육아, 출산이 어떤건지 알고 결심해야 할 것 아닌가.


아무튼간에 개인적인 선호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작품을 딱히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 매력적인 작품이 아니고, 희미한(힘 없는) 주인공들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그러나 조남주 작가의 문체가 평이하고 읽기 쉽다는 점은 다른 작품을 통해 접한 터였다.
굳이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를 떠올려 보자면,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주변 지인들의 반응이 둘로 나뉘는 것이 흥미롭기는 했었다.
어떤 여성들은 김지영이 운이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하고, 어떤 여성들은 그 불행이 너무 안 됐다고..
그 간극 차의 흥미로움.

 

그런데 얼마전 이런 말을 들었다.
"82년생 김지영이 이 정도의 파급력을 가질 만한 작품은 아니지."
한국 남성이 한 말이 아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여성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 계기를 통해 다시금,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여성의 업적이 얼마나 평가 절하 되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읽고 생각해 보고 싶다고 느끼게 되었다.

 

소설의 영화화로 인해 다시금 핫해진 작품.
이 책을 읽었다는 인증만으로도 메갈 낙인이 찍혀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

그러나 이 소설은, 엄청난 통찰력을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주인공의 희미함과 개성없음, 보편적이고 매력없는 그 특성 때문에
너무나도 평범하고 평이하기 때문에 
그 익숙함이 가지는 어마어마한 울림과 파급력 때문에 오히려 문제적이 되어버리는 소설이다.
이 글의 장르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글이 소설인가? 사실 르포르타주에 가깝지 않나?
주변에 김지영이라는 사람을 찾으면,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문체는 드라이하다.
읽기 전 내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신파 소설이라고 생각해서 였기 때문이다.
소설을 둘러싼 너무나도 많고 과장된 남성들의 반응 때문에,
질척이는 신파 소설일 거라 예상했다.
아니다. 조곤조곤 현실의 통계자료들을 인용한다.
이 부분이 그분들의 마음을 심히 불편하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듀나님의 조언 때문에도 읽고 봐야겠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말 그대로 적확한 조언이었다.
왜냐하면, 소설 속의 김지영은 살아 움직이는 한명의 캐릭터가 아니다.
얼굴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김지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보편성은 실제 통계자료를 통해 뒷받침 된다.

영화에 나타난 정유미라는 배우가 그려낸 김지영을 보기 전에,
얼굴 없는 김지영을 만나고 싶었다.


이 작품은 사회학을 전공했다는 작가가 그려 낼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담을 전공하고 나서, 사회학을 전공했어야 하나 가끔 돌이켜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한 개인의 특별함과 스토리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닌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그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보통의 인간을 참 잘 그려냈다.

음악과 미술을 전공하는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며,
과연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누구에 의해 정해질 수 있는지를 계속 도전했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대중이라는 말은 가끔 멸칭으로 쓰이고, 가끔은 모든 것이 된다는 점이다.
이는 소설에서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설은 독자를 염두에 두고 적는 글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나는 이 소설의 평이함,
즉 대중에게 가지는 이 잔잔한 호소력,이 이 소설의 가치를 훼손하는 이유로 쓰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변화에 대한 희망을 주지도 않고,
결국 '다음 직원은 미혼으로 뽑겠다'로 끝내버리는 고구마 백개 먹은 소설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그저 과평가된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 끝마저 메타적으로 이 소설을 읽고 다시금 여성혐오 사회에 갇혀버리는 독자들에 대한 풍자를 잘 그려내 준다.

 

시간이 지나고, 교육자로서 정체성을 더욱 가지게 되면서,
내 서비스를 받을 학생을 생각하는 점이 더욱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이만큼 훌륭한 페미니즘 소설,
즉 대중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여성주의적 작품,을 다시 가질 수 있을지.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페미니즘 소설이 별건가?
싸우고 때려부수는 여주인공이 나와 모두를 계도해야 하는 것만이 페미니즘은 아니다.
여성의 삶에 대한 르포식 보고.
그남들이 발작하는 이유를 더욱 깨달았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햇볕의 힘이 더욱 강력하듯이,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바꾸겠다고 소리치지 않아도
위험하고 불순한 급진여성주의자가 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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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2019.8

독서/심리 2019. 8. 8. 12:39



본 책은 저명한 심리상담가 메리 파이퍼가 젊은 심리치료사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였다. 2003년 출간되었지만 다시 개정되어 나온 책에서 전체의 큰 메시지들이 그리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말로 “심리치료는 항상 변화하지만 항상 똑같”은 가보다.

개인적으로는 서문이 가장 마음을 울렸고, 본문의 내용들에서는 저자가 가족주의적 가치관을 과하게 중요시한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아마 저자가 특별히 “가족”을 강조하고자 했다기 보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끊어지지 않을 밀접하고도 가까운 관계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신념이 그러한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생각이 든다.

심리치료의 가장 큰 치료요인이 특정한 기법이라기 보다는 내담자와 상담자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본 책 또한 특정한 내용에 감명을 받았다기 보다는.. 자신의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한 심리치료사가 쓴 젊은 치료사들을 향한 애정있는 편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따뜻하고 든든해지는 경험이었다.

아래에는 꼭꼭 씹어 남겨두고 싶었던 서문의 일부와, 가족을 중요시 여기나 동시에 페미니스트라는 저자의 글에 웃음이 났던 부분을 발췌해 두었다.

——



저는 인간의 고통을 주제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수많은 교훈적인 이야기를 들었고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할 수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어떤 실수들을 저지르면 안 되는지를 내담자들로부터 간접적으로 배웠습니다. 불륜이 어떤 파국을 낳는지 목격했습니다. 도박이나 마약을 직접 해보거나 남모를 사생활을 가져보지 않아도 이런 행동들이 궁극적으로 파괴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P.6

저는 이 일을 사랑합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하루 종일 다른 사람들의 문제만 듣고 있으면 우울하지 않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문제를 그저 듣고 있는게 아닙니다. 함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듣는거죠.” 일반적으로 내감자들은 변화를 만들고 싶을 때 상담실을 찾습니다. 내담자들은 돈을 내고 조언을 구하고 또 기꺼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삶에서 그렇듯이 심리치료에서도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심리치료사로서 저는 내담자들이 겪는 문제들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둡니다. 그 대신 내담자들이 받을 수 있는 보상에 더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런 보상은 내담자들마다 약간씩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 갘습니다. 저는 내담자들이 스스로 더 차분해지고, 더 친절해지고, 더 낙관주의자가 됐다고 느끼면서 상담실을 떠나기 바랍니다. 또한 그들이 더 계획적으로 삶의 선택들을 하고 돌 충동적으로 욕구를 만족시키기를 바랍니다. P.8

대개의 경우 인간이 겪는 문제에 대한 저의 해결책은 매우 단순합니다. 휴식을 더 취하세요. 운동을 열심히 하세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사랑할 사람들을 찾으세요. 물론 단순하다고 해서 이 제안들이 실천하기 쉽지도, 항상 백 퍼센트의 효과를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 심리치료는 내담자들에게 안전한 인간관계를 제공합니다. 이 관계 안에서 내담자들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색하고 외부세계에서 모험을 감행할지 고민해봅니다. P.12

학부에서 인류학을 전공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저는 정신건강의 문제를 더 넓은 환경과 연관 지어 생각합니다. 우울증, 불안장애, 가정폭력, 약물남용과 알코올남용, 과잉행동장애, 섭십장애 등의 문제들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우리의 문화에서 비롯됩니다. 아이들이 매춘부와 연쇄살인마가 나오는 영화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는 문화에서 그 누가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고, 명절에 직계가족을 만나지도 않고, 일요일 오후에 낮잠 잘 시간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P.14

우리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 지구, 나아가 다음 세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문화 속에서 깊은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아동, 난민, 노인, 빈곤 계층의 문제들을 못 본 척 하고 있습니다. 미지어는 우리에게 피상적으로 살라고 부추깁니다. 세계 평화나 정신적 욕구에 대해 고민하는 대신 창문을 어떻게 꾸밀지나 신경 쓰라고 떠듭니다. P. 15

<최악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서> p.139

결혼식을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마음 한 편에서는 이렇게 절규하죠. “정말 충분히 생각해 봤나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혼이 품고 있는 그 모든 연약함과 희망이 떠올라 왈칵 눈물이 쏟아집니다.
마크 트웨인은 “결혼은 신념이 경험을 이기는 경우다”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결혼식 당일에 대부분의 커플들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렇디만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모든 결혼생활은 심각한 위기들을 맞게 되고 결국 그 중 절반쯤은 이혼으로 끝이 납니다. (...)

지난 30년 동안 상담실에서 많은 커플들을 만났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떤 문제들은 다른 문제로 대체되었고, 어떤 문제들은 여전히 똑같이 남아 있습니다. 1969년대 미국 중서부에서 커플들은 성생활에 대해 논쟁을 벌였습니다. (...) 저는 그들에게 전희, 마사지, 자위행위에 대해 강의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장소에서 다양한 체위로 섹스를 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오, 이런, 1970년대... 당신 시대에게 당시의 성혁명을 제대로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네요.
1980년대 커플들은 돈에 대해 말다툼을 벌였고, 1990년대 커플들은 시간을 두고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커플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과거의 이 세가지 싸움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모두들 돈을 버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섹스를 할 시간이나 심지어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습니다.

posted by sergeant

골든아워 - 2019.07.07

독서/기타 2019. 7. 23. 13:20

이국종 교수님의 저작, 골든아워 1,2를 읽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주저없이 갈아넣는 영웅의 이야기인데, 수필집이라니.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이런 인물이 현 세대에 같이 공존하고 있다니 신기하다. 어느 시대에나 영웅은 있지만, 사실 영웅은 눈에 잘 보이지 않으니까. 이 교수님은 특별한 분인듯 하다.

본인의 글쓰기를 김훈의 <칼의 노래>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시는 것도 재밌다. 동의가 되면서도, 인간의 자의식이란 흥미로운 기제라는 생각이 든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얼마전 세상을 떠난 윤한덕 센터장에 대한 챕터였다. 난세의 영웅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지만, 동시에 처참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인생은, 사회는, 구조는 왜 이렇게 엉망진창인걸까 싶은 회의감이 짙게 생긴다. 모두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는 기만이라는 마음도.
그러한 기만과 진창 속에서 나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선택이라는 진실만이 남는다. 어느쪽을 선택하든 상관이 없어진 것은 최근이다. 고귀한 영혼들과는 다르게 나는 나이가 들며 비겁해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 또한 그리 비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친구의 죽음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외상이나 상담에 관심을 가지게 된 부분에 많은 기여를 한 친구의 죽음도, 교통사고 후 응급실을 전전하던, 이국종 교수가 말하는 예방 가능한 죽음 중 하나였다.

십년 정도가 지난 지금, 더 이상 감상에 젖지는 않지만
금번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 티비를 보다가 문득 아무렇지 않게 그 친구 이야기를 꺼내는 엄마를 보며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사실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이런 얘기들을 할 수 있구나.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생각보다 너무 가까운 죽음이 오히려 삶을 더 생생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모두 너무 진부한 클리셰이지만

진부함을 넘어설 수 없는 나도 그저 특별할 것 없는 나약한 인간인가보다.

posted by sergeant

현남오빠에게 - 2019. 7

독서/여성주의 2019. 6. 28. 13:12

여성들끼리 있는 자리에서 과거 성폭행 경험을 듣게 되는 일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얼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경험을 털어놓으신 분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김지영씨의 일생이 꽤 기구하다고 느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정확히 들은 것인지, 혹시 반대로 의미를 이해한 것은 아닌지 한번 더 묻고 싶었지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싶어 그냥 넘어 간다.

 

82년생 김지영, 논란이 아주 많았던 책이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연예인들이 '메갈' 낙인을 받아야 했으니까.

우습게도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는데, 일단 나는 신파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여성의 불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는 소문(?)이 있는 소설은, 그리 입맛에 당기지 않았다.

근데 실상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었다는 지인들 중에서는 "사실 김지영은 그정도로 나쁜 삶은 아니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쪽이 진짜일지 궁금해서, 그리고 책을 읽고나서 아주 약하게나마 각성하는 여성들과 대화를 좀 더 잘 진행하고 싶어서 회사 도서관을 뒤적여 봤는데, 우습게도 책이 없었다.

분명 예전에 있었던 것 같은데.... 없앤건가?

게다가 이런 베스트 셀러가 도서관에 없다니.. 대한민국 참 투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에 조남주 작가의 이름을 쳐서 찾은 책은 "현남 오빠에게"라는 책이었다.

몇장 읽지 않고도 조작가님의 문체가 느껴지는게...

82년생 김지영의 색깔도 이런 색깔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힘없는 여성, 피해를 당했으나 그게 피해인지 아닌지도 잘 몰랐던 여성이 조금씩 변화하는 그런 모습?

나는 분노도 많고, 힘도 많은 사람이라 아무래도 이런 등장인물과 문체들이
조금 답답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답답한 인물들이 틀을 깨는 모습들도 웃음이 나고.

 

지은이(화자의 페미친구. 지은이라는 이름, 왠지 작가라는 뜻인것 같아 재밌다)가 교환학생을 갔을 때 저는 오빠 몰래 이메일 계정을 하나 더 만들어 지은이와 계속 메일을 주고받았어요. 방학 때는 제가 캐나다에 가서 보름 동안 함께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네, 이모네 간다고 했던 그 때요. 저는 캐나다에 이모도 사촌도 없습니다. 사진 속의 여학생은 사촌언니가 아니라 지은이의 룸메이트였어요. 저와 똑 닮았다고 했죠? 중국인입니다.

 

 

오빠가 권유한 대로 오빠 회사와 가까운 이 동네에 집을 얻은 건 참 잘한 것 같아요. 오빠는 퇴근 시간이 늦어서 데이트하기 부담스러운 날이 많았잖아요. 저한테는 어차피 집에 오는 길이니까 오빠 회사에 들러서 만나기도 편하고, 저희 동네니까 오빠가 저를 굳이 데려다줄 필요도 없고요. 가끔 오빠 야근하는 날은 제 집에서 자기도 했죠. 쓰고 보니 저보다 오빠한테 더 좋았던 것 같지만 뭐 저도 그 때는 신혼부부가 된 것 같고 괜찮았어요. (...) 참, 오빠 저 오늘 이사합니다.

 

 

책에는 현남이가 화자에게 했던 가스라이팅이 적나라하게 나와서, 처음에는 좀 비위가 많이 상했다.

확실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결국 화자가 내가 가장 갖고 싶어하는 비출산 동지가 되어(!!)

 

"저는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유를 물어본다면 너무 많아 여기에 다 적을 수도 없을 정도인데, 무엇보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제 일이 단절되는 것을 원치않아요. 여기까지 오는 게 많이 힘들었습니다.
(...) 오빠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해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습니다. 오빠의 질문은 '아이를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가 아니라 '아이를 몇명이나 낳는게 좋다고 생각해?'였고 '네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가 아니라 '네가 아이를 몇 년 쯤 직접 키울수 있을까?'였으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해본 적 없다고 대답을 피하곤 했고 오빠는 왜 그렇게 계획 없이 사느냐고 저를 한심해했습니다. 하지만 오빠, 오빠가 아이를 직접 낳을 것도 키울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그런 계획을 혼자 세우죠? 한심한 건 제가 아니라 오빠예요"
 

 

라고 말하는 모습은 그 답답함을 많이 씻어주었다. 이런걸 카타르시스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어서, 82년생 김지영도 도서관에 신청 해놔야겠다.

이런 베스트셀러를 아직도 안 읽었다니. 안 될 일이다. 

 

자전거 여행 외에는 뭐 특별히 기억에남는 일은 없네요. 평소에는 그냥 그런 데이트들이었죠. 밥 먹고, 영화 보고, 맥주 마시고, 섹스하고. 나랑섹스하려고 만나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오빠가 뭐 잘 하는 것도아니고...

 

(...)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지만 청혼은 거절합니다. 저는 더 이상 '강현남의 여자'로 살지 않을거예요. 오빠는 그럴듯한 프로포즈가 없어서 제가 망설이는 줄 알지만 아닙니다. 아니라는데 왜 자꾸 그렇렇게말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제 인생을 살고 싶고 너랑 혼하기 싫은겁니다. 본격적으로 결혼 얘기가 나오고서야 꺼림칙하던 모든 게 분명해졌어. 그동안 오빠가 나를 한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애정을 빙자해 나를 가두고 제한하고  무시해 왔다는 것. 그래서 나를 무능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모르는 나를 돌봐줬던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그래, 아무래도 이게. 카타르시스. 

 

다른 작품들도 여성들의 현실이 처참하긴 마찬가지라 마냥 즐기고 이성을 깨워준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만, 그래 눈을 똑바로 뜨고 봐야지. 대중에게 추천하고 이야기 나누기 좋은책. 이런 서적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