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6.2019] 나를 시험에 들게 하시옵는

생각 2019. 6. 26. 22:12

예전에 처음 기독교 여성주의 역사를 읽었을 때 Mary Daly는 내게 매우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급진적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라 정의하는 사람이었으며, 보스턴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여성주의 기초과정(introductory)에선 남학생들의 출입을 허용했으나 advanced 과정에서 여학생들만을 수강 허용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의 학술적인 활동들은 기독교 여성주의 신학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정작 그는 이 후에 기독교가 “가망없게 가부장적(hopelessly patriarchal)”이라며 신학을 포기하고 남은 학술 활동을 여성주의 철학에 헌신했다.

가부장제내에서 여성들만의 공간은 여성들의 안전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 여성의 공간에 남성이 단 한명만 있어도, 일부 여성은 자신의 발언을 검열하고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털어놓기 어려워 하게 된다. 과거 의식고양 집단이 여성들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거기서 숱한 성폭력과 억압의 사례들을 밝혀냄을 통해 여성주의 물결이 일어났음을 돌이켜볼 때, 이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간파하고 고급 여성학 수업 시간을 여성들만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녀를 나는 매우 존경했다.

그녀에 대한 존경심은 나의 현재의 고민과도 이어진다. 과연 기독교는 근본적인 여성주의를 끌어안고 갈 수 있을까? 내가 처음으로 기독교 여성주의에 대한 세미나를 참석했을 때, 마이크를 잡은 남성 질문자는 강사를 가르치려 했고 토론하던 여성 패널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여성혐오적 발언을 했다. 그 여성 패널의 발언에 다른 남성 질문자가 ‘진짜로 여성의 적은 여성이냐’는 질문을 하고 있는 꼴을 보고 나는 부들부들 떨며 “내가 여성주의 세미나에 와서 이런 여성혐오적 발언을 들을거라고 상상도 못했었다.”고 거의 토를하며 왜 그 발언이 여성혐오적인지를 설명하고 나왔던 쓴 기억이 있다.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고, 나는 기독교내 훌륭한 젊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과 예술가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는 떠나고 일부는 여전히 힘겨워하는 그들을 보며, 다시금 질문하게 된다. “과연 기독교는 이론이 아닌 현실의 급진 페미니스트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을까?” 오래 전 Mary Daly가 백기를 들고 기독교를 떠났던 것처럼,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기독교를 떠나게 될까. 예수까지 져버리게 될까? 내가 아는 예수가 더 이상 예전의 그 예수가 아닐때조차도, 여전히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나는 비록 괄목할만한 학문적인 업적과 영향력은 없지만, 그동안 내가 해 왔던 고민들이 모두 쓸모없는 것은 아닐텐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의 끝은 정해져 있는걸까. 도대체 나는 왜 여기 이러고 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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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