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한달 전, 방한 기념회 때 참석해서 사인 받아온 책을 아끼고 아끼고 아껴서 읽다가

어제 시험 끝나고 후루룩 마저 읽은 후 포스팅:) 리베카 솔닛의 글은 분명하고 예리하며 통찰력으로 가득 넘친다.


그녀를 알게 해준 책 '맨스플레인'은 차근차근 다 정리하지 못했었지만

초두효과와 더불어.. 훨씬 더 강력하게 내게 영향을 주었었고,

그 때문에 투고할 논문에도 한 줄을 할애해서 적었었다.


앞으로도 여러가지 할 일들 많을테고, 그 과정에서 이 책 또한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인용해 정리해 둘까 싶다.

 



p.18

어떤 엄마들은 내게 말하기를, 자신은 그저 아이가 있다는 것 때문에 무시당해도 싼 아둔한 인간 취급을 당한다고 한다. (...) 많은 엄마들은 설령 일에서 성공하더라도 그렇다면 틀림없이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했을 거라는 말을 듣는다.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 우리가 습득해야 할 기술은 오히려 어떻게 그 질문을 거부할 것인가인지도 모른다.

p.19

내 인생의 목표 중 하나는 진실로 랍비처럼 문답할 줄 아는 자가 되는 것, 닫힌 질문에 열린 질문으로 답할 줄 아는 것, 내 내면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가짐으로써 다가오는 침입자에 맞서서 훌륭한 문지기가 되는 것, 최소한 "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 되물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p.25

사람들은 아이 없는 사람에게 그 동기를 캐묻고 그가 부모 역할에 수반되는 희생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하지만, 거꾸로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 밖의 세상에 베풀 사랑이 그만큼 적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종종 간과한다.

 >>많은 남성들이 우호적이든, 그렇지 않든간에 나의 딩크족 선언을 들으면 마치 '뭘 모르는 인간'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에 신물이 난다. 특히 방금 말한 그런 이들은 모두가 나보다 결혼을 1년 이상 늦게한 자들이라는 것도 우스운 포인트이다. 어쨋거나 그들이 나에게 들이대는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한 '귀한 논리와 포부'를 들어보면 딱히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재깍 지적들이 가능한 포인트들이 많다. ex1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최상의 경험인 부모가 되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 애는 무슨 죄..?? 나의 경험을 위해서 아이를 낳겠다는 건가.. ex2 "와이프가 아이를 낳아줬으니 어쩌면 내가 양육의 반은 부담해 줄 의향도 있어." 아니지. 와이프는 낳는 걸로 그가 할 책임을 다 했으니 니가 100% 양육을 책임지는건 어떨까..? 어쩌면 그들이 나에 대해 반발감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인지도 모르겠다.. 본래 맞는말만 하는 사람들은 미움을 산다.

 나는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이성적으로나 논리적인 우위를 통해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쨋거나 아이를 가지게 되면 아무리 이타적이었던 사람도, 자기 자신 혼자서는 이타적일 수 있지만 자신의 아이에게 만큼은 최선의 것을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될 터이다.  그리고 오히려 아이에게 이타적이라고 강요를 하는 것 자체도 모순적이고 아동학대적이다. 내가 들었던 최고의 아이를 가지겠다는 결심의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데, 아이와 함께 이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정도였다. 그 밖에 사람들이 아무리 자신이 논리적으로 뛰어나다고 포장하며 아이를 낳으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대더라도, 차라리 피임 실패였다는 대부분의 이유와 거의 수준이 비슷하다고 느껴졌을 뿐이라고 말하면, 너무 과한걸까..


p.36

지난 세기 동안 인간이 스트레스와 위험에 대처하는 반응은 "맞서거나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게 정설이었다. 그런데 2000년 UCLA의 심리학자들은 그런 연구가 대체로 수컷 쥐와 인간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심리학자들은 그래서 여성을 연구했고, 자주 채택되는 세번째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밝혔는데, 그것은 여럿이 한데 뭉쳐서 연대와 지지와 조언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3년에 석사과정에 입학했던 나는 여전히 fight or flight를 정설로 배우고 있었다는게 함정.


p.44

피해자를 믿는다는 건 곧 세상의 바탕에 깔린 가정들을 의심한다는 뜨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편한 일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편안함이 지켜져야 할 권리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 편안함이 남들의 고통과 침묵 위에 세워졌을 때 조차, 아니 그럴 때일수록 더욱 더.

p.46

여성이라는 범주는 길고 너른 대로이다. 계급, 인종, 가난과 부 등 다른 많은 길들이 이 길과 교차한다. 이 대로를 걷는다는 것은 그 다른 길들과 만난다는 뜻이다.

p.52

가부장제가 남자들에게 요구하는 첫번째 폭력 행위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니다. 그 대신 가부장제는 모든 남자에게 정신적 자기절단을 행할 것을, 자신의 감정적 부분을 도려낼 것을 요구한다. 만일 자신을 감정적으로 불구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남자가 있다면, 가부장제의 다른 남자들이 그의 자존감을 공격하는 힘의 의식을 틀림없이 거행해 준다. <Bell Hooks>

​(...)

남성성이란 거대한 포기다. 분홍색을 포기하는 건 사소한 일이지만, 성공적으로 남성화한 남자아이들과 남자들은 일상에서 감정, 표현력, 감수성, 그 밖의 온갖 가능성을 포기한다.

p.55

여성혐오와 동성애 혐오는 둘 다 가부장제가 아닌 것에 대한 혐오다.

p.57

감정이 죽여야만 하는 것이라면, 살해의 표적은 여성이 되기 쉽다. 상대적으로 덜 점잖은 남자들은 나약함을 적극적으로 사냥한다. 남자가 된다는 것이 나약함에 대한 혐오를 익히는 것이라면, 자기 내면의 나약함은 물론이고 자신을 대신해서 그 나약함을 품어주는 젠더의 나약함까지 ㅎ며오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자애 같다거나 계집애 같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남자아이나 성인 남자에게 모욕으로 쓰였고, 게이 같다거나 호모 같다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ㅏ신이 지배하고 삽입하는게 아닌 방식으로, 오히려 삽입을 당하고 동등해지고 개방된 방식으로 성애화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개방성을 강함이 아니라 약함으로 보는 시각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남성 호모포비아에 대해 생각을 할 때면, 연구결과에 기반한 추론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삽입공포, 강간공포가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자주했었다. 혐오란 본래 두려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근데 솔닛 언니가 이렇게 얘기해주니 또 괜히 반갑고 그렇더라.


p.59

만일 당신이 협동하고 타협하고 존중하고 유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당신과 동등한 존재이자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 존재로 여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당신은 사랑하는 일에 자격이 부족하다.

p.64

성폭행이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진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강간) 영상은 법 체계에서 유통될 때는 일탈적 범죄의 증거이지만, 범죄자의 동료 집단에서 유통 될 때는 범죄자가 남성성의 규범에 순응한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p.68

Dacid Morris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공개한 인상적인 책  '불길의 시간'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잠식하는 트라우마의 힘은 이야기를 파괴하는 능력에 일부 담겨있다. 글이든 말이든, 이야기는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엄청난 치유력을 발휘한다. 정상적이고 비트라우마적인 기억은 늘 현재진행형으로 씌어지는 자아의 이야기에 쉽게 포함되고 통합된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기억은 길들여진 동물과 같아, 자아가 거뜬히 통제하고 다룰 수 있다. 대조적으로 트라우마적 기억은 들개처럼 멀찍이 떨어진 채, 자아가 예측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납게 으르렁거린다."

모리스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강간이 트라우마의 가장 흔하고 심각한 형태인데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연구는 대부분 전쟁 트라우마와 퇴역 군인을 대상으로 수행된다. PTSD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 남자들을 연구해서 얻은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고통을 겪은 사람이 누구인가에 관한 침묵도 존재하고, 그 침묵이 여성을 더욱 침묵시킨다는 것이다. 침묵은 침묵 위에 건설되고, 침묵의 도시는 이야기들과 전쟁을 벌인다.


p.82

우리가 공손함이라고 부르는 것은 종종 자신보다 남들의 안락함을 더 중시하는 태도다. 어떤 상황에서도 남들의 안락함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면 잘못이라는 것이다.


p.84

개인과 사회는 입을 열어 증언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권력과 권력자에게 이바지 한다.

입을 열기를 거부하는 증인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권리, 주체성, 온전한 신체, 인생을 잃는 데 동의하는 셈이다. 침묵은 폭력을 보호한다. 온 사회가 침묵할 수도 있다. (..) 범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위험하거나 불법일 수도 있다. 작가 오르한 파묵은 교과서와 공식 기록에 뻔히 나와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범죄에 대해 말했다는 이유로 "터키의 국가성을 모욕했다"며 고발되었고, 해외로 피신해야 했다.


p.91

 여성을 공적이고 전문적인 삶으로부터 밀어내는 방법은 셀 수없이 많다. (...) 우쭐댄다는 표현이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쓰이는 것처럼, 날카롭다거나 나댄다는 표현은 대체로 여자들에게 쓰인다. 정치하는 여자는 너무 여성스러워서도 안 되고 너무 남자 같아서도 안 되는데, 왜냐하면 여성성은 지도력과 연관되는 속성이 아니고 남성성은 여자가 누릴 특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는 여자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차지하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잘못된 것이 되기 싫다면 불가능한 것이 되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여성이 된다는 것은 늘 잘못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결론밖에 못 내리겠다. 최소한 가부장제하에서는 그렇다.


p.113

침묵과 수치심은 전염된다. 그러나 용기와 발언도 전염된다.


p.125

세계보건기구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세계 여성 살인 피해자의 38퍼센트가 친밀한 파트너에게 살해된다.

p.130

여성에 대한 폭력을 논하는 공공의 대화가 변하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갑자기, 그런 폭력이 얼마나 흔하고 어떤 변명들이 거기에 뒤따르는지를 말함으로써 폭력을 해결하는 일보다 자기자신을 변명하는 일에 더 골몰하는 남자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억울해하는 남자들이 반복해서 읊는 표현인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진 않아"가 - 예를 들어 모든 "남자가 다 강간범은 아니야"처럼 쓰인다- 여자들은 다 겪는다로- 예를 들어 "여자들은 다 어떤 식으로든 강간에 대처해야 해"처럼 쓰인다- 변형되었다.

 많은 남자들은 이때-소셜미디어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여자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서 여자들이 오래 견뎌온 현실을 일생 처음 깨달았다.

p.139

수치심은 성폭행 피해를 당한 여자들을- 또는 남자들을- 침묵시키는 중대한 요소다. 수치심은 사람을 침묵시키고, 고립시키고, 범죄가 지속되게끔 만든다. 언론은 전통적으로 강간 피해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피해자 이름을 밝히지 않는데, 이 전통은 피해자가 당한 일이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암시하고 피해자를 사람들 눈에 안 보이게, 고립되게, 침묵하게 만드는 부수 효과가 있다.

p.161

요컨대, 강간 신고로는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기 어렵다. 그리고 강간 고발의 약 2퍼센트가 무고이겠지만, 전체 고발의 2퍼센ㄴ트가 좀 넘는 비율만이 유죄로 결론난다.( 3퍼센트까지 높게 잡는 계산도 있다.) 달리 말해, 세상에는 처벌받지 않은 강간범이 끔찍하게 ㅁ낳이 돌아다닌다. 그리고 대부분의 강간범은 고발이나 고소를 당했을 때 자신이 강간을 저질렀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세상에는 강간범인 동시에 거짓말쟁이인 사람들이 잔뜩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그러나 세상에 넘치는 거짓말은 어쩌면 강간당하지 않은 여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라 강간을 저지른 남자들의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얼마전 '꽃뱀'에 관련한 얘기가 나오는 프로에다가, 댓글 다는 남성들을 본 적이 있다. 주변 지인이 꽃뱀 때문에 누명을 쓰고 자살했으니 꽃뱀이 매우 흔하고, 많고, (어쩌면 성폭행 가해자 보다도) 나쁘다는 논지의 이야기였다. 실화인지 주작인지 그따위 것은 잘 모르겠고, 어쨋거나 하나 분명한 것은.. 그 댓글을 쓰고 있는 인간의 지인들은 운이 좋다는 생각 뿐이었다. 큰 수고 들이지 않고 투명한 한국남자 한명을 걸러낼 수 있을테니까.

p.163

무고한 사람이 유죄를 선고받는 것은 이렇듯 사법 체계의 부패와 직권 남용의 결과인 편이지, 한 사람의 고발자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예외는 있다. 나는 그런 예외는 드물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p.165

우리가 강관문화라는 용어로 표현하려는 뜻이 무엇인지 따져보자. 그것은 혐오다. 스포츠 팀이나 남학생 사교 모임이 저지르는 강간은 타인의 권리, 존엄, 육체를 침해하는 것이 멋진 일이라는 생각에 입각한다. 그런 집단 행동은 남성성을 포악한 포식자다운 것으로 보는 생각을 깔고 있다. 그런 생각에 찬동하지 않는 남자도 많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p.167

열두살에서 서른살 사이에 나는 날 괴롭히는 남자들로부터 그저 살아남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낯모르는 사람이나 가볍게 아는 사람이 내 젠더 때문에 내게 모욕과 피해를 가하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다는 것, 그런 불운을 피하려면 내가 한시도 빠짐없이 경계해야 한다는 것. 정말이지, 그건 내가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 중 하나였다.


p.178

모든 폭력에는 권리의식 혹은 권위주의가 있다. 우리는 살인자가 타인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말한다. 앗는다는 건 가로챈다는 뜻이다. 훔치는 것, 자신이 소유자인 양 특권을 행세하는 것, 타인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해버리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자기 것이라서 그래도 된다는 듯이. 하지만 그것은 결코 그의 것이 아니다.


p.188

"사람들이 여자들 말을 왜 그렇게 못 믿는지 모르겠어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남자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려면 여자가 두명은 있어야 한다죠. 그런데 여기서는 스물다섯명이나 필요하잖아요." <-인기 코미디언의 강간사실을 밝히기 위해 25명의 여자가 증언을 했어야 했던 것을 비꼬면서 한 말


p.206

가부장제는- 남성이 지배하는 구조와 부계에 집착하는 사회를 둘 다 뜻하는데, 이런 체제는 여성의 성을 엄격하게 통제해야 가능하다- 많은 시대와 장소에서 의존적이고 비생산적인 여성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냈다.


p.211

차별Discrimination이라는 단어에는 서로 모순된 두가지 뜻이 있다. 인식을 말할 때는 이 단어가 무언가를 똑똑히 구별하는 것, 세부를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 사회정치적 맥락에서는 무언가를 똑똑히 구별하기를 거부하는 것, 범주를 넘어 특수와 개체를 보는 데 실패하는 것을 뜻한다. (...)

집단이란 물 샐 틈 없는 범주이므로 그 속의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사고방식, 신념, 나아가 책임을 공유한다는 생각은 차별의 핵심적 요인이다. 이런 생각은 집단 처벌로 이어진다. 이 여자가 나를 배신했으면 저 여자를 비난해도 된다는 생각, 집 없는 사람들 중 일부가 범죄를 저질렀으면 모든 집 없는 사람을 처벌하거나 쫓아내도 되고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요즘 그 생각은 어린아이, 장애인, 노약자들을 향해 급속도로 퍼져있으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마치 그러한 생각이 합리적이고 경제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결과물인 양 포장된다.


p.215

 여자는 누구든 걸어다니는 여성 대표처럼 취급되기 쉬운데 비해- 우리 여자들은 정말로 모두 감정적이고, 앙큼하고, 수학을 싫어하나?- 남자들은 비교적 그런 판단에서 자유롭다. 백인을 일반화하는 말은 많이 들리지 않고, 루프나 찰스 맨슨은 제 인종이나 젠더의 수치로 여겨지지 않는다.

(...)

차별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개인의 장점으로만 평가받는 개인이 되도록 허락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종의 자유 때문에 중요한 데이터가 틈새로 빠져 누락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요즘의 총기 난사 사건들에 대해서 불과 최근까지만 해도 거의 이야기되지 않았던 한 사실은 그런 사건을 거의 전부 남자가 저지른다는 것, 그런 남자들 중 대부분은 백인이라는 것이다. 대신 그런 사건들은 불가사의하고 끔찍하게 놀라운 사건으로, 혹은 정신질환이나 그밖에 각각의 사건을 눈송이처럼 저마다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다른 구체성들로 설명된다.

예외는 있다. 이슬람 국가 출신의 사람이 저질렀을 때다. 그 때는 사람들이 총격을 테러로 부르고, 정치적 움직임과 겨랕ㄱ한 정치적 발언으로 간주한다.

p.219

이것은 피부색이 우리의 지위, 경험, 기회, 경찰의 총에 맞을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에서 우리가 색맹인 척 하고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주장하려는 것은, 우리는 범주를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기술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p.222

남자들 중 그 일부 부분집합은 심지어 #notallmen(모든 남자가 그렇진 않다)이라는 해시태그도 만들었다. 마치 이야기의 중심 주제는 이 땅에 창궐한 재앙이 아니라 그들, 그리고 그들의 안락과 평판이어야 한다는 것처럼.

p.234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내 독서 금지 영역에 포함된다. 모름지기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많은 것을 배운 사람이라면 동성애혐오자, 반유대주의자, 여성혐오자가 되어선 안 되고, 총으로 큰 동물을 죽이는 짓을 ㄴ마성성의 동의어로 여겨서도 안 되는 법이다. 총-남성 성기-죽음 어쩌고저쩌고 하는 짓은 꼴사나울뿐더러 서글프다. 게다가 간결하고 억제된 스타일의 문체는 헤밍웨이의 손에서는 딱딱하고 가식적이고 감상적인 문체가 된다. 남성적 감상주의는 최악의 감상주의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면에서 자신에 대한 망상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진솔하게 감정적이었던 찰스 디킨스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헤밍웨이가 F.스콧 피츠제럴드의 성기 크기에 대해서 했던 쓰레기 같은 소리는 딱할 뿐 아니라 그의 내면을 너무 투명하게 보여준다. 피츠제럴드가 헤밍웨이보다 훨씬 성공한 작가였던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지금도 피츠제럴드가 헤밍웨이보다 훨씬 낫다. 레고 블럭 같은 헤밍웨이의 문장에 비해 피츠제럴드의 문장은 실크처럼 나긋하며, 피츠제럴드는 남성 인물 뿐 아니라 데이지 뷰캐넌이나 니콜 드라이버 같은 여성 인물에게도 자유자재로 감정이입할 줄 안다(밤은 부드러워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근친상간과 아동학대가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탐구한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다).

>>얼마 전, 영페미님과의 대화에서 "헤밍웨이"를 좋아하신다기에 무슨 헤밍웨이냐고 그렇게 말려도 씨알도 안먹혔으나 오늘 비로소 신뢰로운 레퍼런스를 찾았다. 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이 마초남이 감히 내가 좋아하는 피츠제럴드까지 건드렸었다니.. 감히 내 위대한 개츠비를. 우리 데이지 뷰캐넌을 창조해 낸 작가를.. 너는 영영 빠이다... 노인과 바다는 잘 읽었었고 너의 자화상 사진은 멋있지만, 너는 진짜 이제 안녕이다!!

p.241

이 문제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 유달리 많이 겪는데, 왜냐하면 서구 사회가 오랫동안 거울을 들어 그들을 비춰주었고, 버지니아 울프가 지적했던 것처럼 고분고분한 여자들로 하여금 그런 남자를 실물의 두배 크기로 비추는 거울이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 역시..........백인헤테로남성.........

 

​p.249

스스로는 예술에 대한 변호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예술에 대한 공격에 해당하는 흔한 주장이 하나 있다. 예술이 삶에 충격을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예술은 위험하지 않고, 따라서 예술은 질책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예술에 대해서든 반대할 근거가 없고, 따라서 모든 반대는 검열이라는 것이다. (....)

사진, 에세이, 소설, 그밖의 것들은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 그것들은 위험하다. 예술은 세상을 만든다. ​

>>나는 이 대목에서 "좆같은 걸 만들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그 만들어진게 좆같다고 표현할 수 없는 한국의 좆같은 표현의 자유"를 깊이 묵상하였다.

 

​p.252

어떤 또다른 선한 진보 남성이 나타나서 말했다. "당신은 예술의 기본적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나는 한 무리의 여자들이 남자들을 마구 거세하고 다니는 소설이 있더라도 개의치 않을 겁니다. 그 작품이 훌륭하기만 하다면 읽고 싶을 겁니다. 그것도 한 번 이상." 세상에는 당연히 그런 문학작품은 없다. 그리고 만약 저 말을 했던 선한 진보 남성이 거세 장면이 잔뜩 나오는 책, 심지어 거세를 찬양하는 책을 또 읽고 또 읽었다면, 그 경험은 틀림없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매혹당한 사람들이 급 보고싶어 졌다. 물론 콜린 파렐은 거세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도, 아가씨의 하정우처럼 "자지는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아직 보지 않았으므로 확인할 길이 없네.


p.263

여자는 자기 자궁 속 태아보다 가치가 없다. 그 태아들의 절반쯤은 여자일 테고, 그 여자들은 자라서 다시 그 다음 세대의 잠재적 태아들에 비해 가치 없는 존재로 평가될 텐데도. 여자들은 가치 잇는 것을 담은 용기를 담은 용기를 담은 용기를 담은... 무가치한 용기인 모양이다. 이때 가치있는 것이란 물론 남자다. 남자 태아다. 어쩌면 태아도 성별이 여자로 확인되기 전까지만 가치 있는지도 모른다. 아, 모르겠다. 나는 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전혀 이해가 안 된다.

>>너무 맞는말 대잔치 나와서 빵 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p.269

CDC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지나친 알코올 섭취에게는 "지나친 알코올 소비Excessiv eAlcohol Consumption"라는 형제가 있고 그 역시 골칫덩어리이다. (...) 이 이야기에서는 EAC씨가 명백히 단독으로 범행을 저지른다. 이 문장에는 주어가 없다. 누구의 공격성인가? 누가 공격한단 말인가? CDC는 어서 추적에 나서서 남자들에 대한 경보를 발령해야 할지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제일 많이 일으키는 건 남자들이니까(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남성에 대한 폭력을 제일 많이 일으키는 것도 남자들이다). 이런 언어를 상상해보자. "남자를 사용하면 임신이나 부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남자 사용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위험이 없는지 모든 남자를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술 마신 남자 사용을 조심하십시오." 남자들에게 경고 딱지라도 붙여야 할까? 그러나 그 또한 남자들에게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면해주는 일일 테고, 나는 그런 면책을 그토록 자주 해주지 않는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일 거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sergeant

 

오우, 제목부터 불경스러워서 예전같으면 빌려올 엄두도 내지 못했을텐데 가져와서 재밌게 읽었다.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하게 삶을 들여다 본다는 점이 좋았다.

모든 정신병리의 시작은 자기기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 모습보다 과장된 자기 모습, 이상화된 자기 모습을 더 사랑하면서

헤어나올 수 없는 간극에 붙잡혀 있을 때 사람은 정신의 건강함과 진정한 행복으로부터 멀어진다고.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솔직한 선구자들이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나누는 이야기들은, 얼마나 솔직하고 행복한지.

멋지다.

 

 


 

p.6

​오늘의 질문: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이 있나요?

친애하는 누군가가 내 페이스북에 이 질문을 남겼고, 나는 모두가 볼 수 있게 대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간단하게 대답하자면, 다행히도 '아니요'다.

 더 길게 대답하자면, 나는 어머니가 되는 문제에 관해서 세상에는 세 부류의 여성들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어머니의 운명을 타고난 여자, 이모의 운명을 타고난 여자, 아이로부터 반경 3미터 내에 있어서는 안 되는 여자. 진정한 본성을 고려했을 때 잘못된 범주에 속한다면 이는 (개인적으로나, 가족에게나, 더 크게 보면 지역사회 전체에) 비극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를 갈망하지만 가지지 못하는 여자들은 우리도 알다시피 굉장한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적절하지 않은,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또한 굉장히 고통받는다. (스스로 충족시킬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는 책임감에 갇힌 그 어머니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모로 타고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우리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와 즐겁게 있을 줄 알지만, 내 자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알고 있다. 역사상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 그런 생각은 절대적으로 괜찮은 것이다. 자, 보자. 내 앞에 아기가 놓여 있을 때면 안심해도 좋다. 나는 그 아기를 잘 어르고 놀아주며 사랑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아이를 사랑해 주면서도 나는 가슴으로 알 수 있다. 이건 내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결코 운명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이것이 진심임을 알기에 나는 묘한 환희를 느낀다.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만큼이나 내가 무엇이 될 수 없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엄마는 아니다.

- 엘리자베스 길버트


도대체 어머니의 운명을 타고나는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 회음부절개를 비롯하여 출산 굴욕3종세트를 모두 정확히 알고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는 여성의 비율이 과연 몇프로나 될까?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여성은 이모의 운명을 타고나는 것 아닌가? 정부와 교회와 각종 권위적인 단체들이 입을 모아 '출산의 신성함과 당위성'을 압박하고 있고 성욕이라는 생물학적 기제도 한 몫 하는 덕분에, 인류가 출산률 저하로 멸종할거란 걱정은 하지 않고 있지만..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에 가지는 이 수많은 여성들의 죄책감은 어떻게 해야할까 싶었다. 그런 점에서 숨을 탁 틔워주는 구구절절이다.

p.9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는 어떤 선택도 판단하지 않는다. 이 책은 그저 60년대에 성인이 되어 이제 모두 60대가 된 여성들에게 앞으로 나와서 개인적인 경험, 구체적으로는 선택한 것이든 아니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든 아이 없는 삶을 살게 된 원인을 공유해 달라고 내가 부탁한 결과다.


실제로 예전같았으면 제목부터가 불경해서(?) 읽을 생각도 못했을 책인데 이 책은 어떤 선택을 강요하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때, 여자들이 출산으로 인해 가지게 되는 기회비용이 점점 어마어마해지는 사회에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꽤 정당해 보인다. 생명의 존엄함과 가치를 비용과 효율로 산출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아이에게는 성장과 삶이 그 부모에게는 수많은 비용과 생명을 갈아넣는 것임을 감안할 때.. 저자들이 자신의 선택에 더 "확신"을 가지고 "추천"하지 못하는 모습이 의아하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아무래도 60년대를 지나온 60대 여성들이라서 그런걸까? 어쨋거나 어르신들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조국의 지인들보다도 진보적이고, 그럴듯하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깊다.


p.23

 나는 스물한살에 젊은 군인과 결혼했다. 결혼하기 무섭게 부모님과 친구들은 첫 아이를 언제 볼 것인지, 아이는 몇 명 낳을 계획인지 물었다. 그리고 내가 전업주부가 되겠다는 확답을 하길 원했다. 대체로 내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에서는 드러나게든 암묵적으로든, 순결, 결혼, 엄마 노릇(성 삼위 일체)이 어떤 여자에게든 허락된, 지상낙원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믿었다. ...

 우리 사이는 절대 안정되지 않았다. 내게는 결혼이 사람들 말처럼 좋지 않았다. 순결, 결혼, 아이라는 삼위 일체 속에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들은 나로서는 불량품을 속아서 산 기분, 사탕발림에 넘어간 기분이었다. 아이를 가지자는 말에 계속 '아니요'를 내세우면서 9년이 흘렀고, 남편은 이혼을 청구했다. 나는 우리 둘을 영원히 이어줄 아이가 없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아이가 있으면 결혼생활이 단단해지고 부부사이가 좋아진다는 말도안되는 얘기는 더이상 사람들이 많이 믿지 않는 것 같은데 (이 정도 조차도 내 생각이지만), 어쨋거나 생명 자체를 도구화 하는 것이 너무너무 싫음에도 삶이라는 것이 내 생각처럼만 딱딱 떨어지는것은 아니니까. 이런 모든 사실들을 감안하고서라도 불행한 결혼생활을 지탱해줄 끈으로,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하다. 오히려 부부관계가 불행하다면, '아이가 없으니 다행' 일텐데?


p.36

 1960년대 초에 혼전임신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치욕적이었는지를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 설명할 길은 없다. 피임약을 구하기 쉬워진 6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성의 혁명'이 일어났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 전까지 혼외임신을 해결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결혼이었다. 열여섯 살에 임신한 친구에게도 이것이 해결책이었다. 흔히 그럿듯이, 이런 경우에는 발표하기 몇 개월 전에 이미 결혼을 비밀스럽게 진행한 것처럼 꾸몄다. 하짐나 이렇게 허울 좋게 해놔도 예비엄마는 다른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다. 물론 인기 많은 미식축구선수인 예비아빠가 전학을 가서 연승기록이 깨지는 일은 없었다.


p.38

우리 부모님은 나를 능력에 한계가 없으며 마음 먹은 것은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도록 키우셨다. 나는 어릴 때 주로 여성에 관한 책을 탐독했다. 마리 퀴리, 나이팅게일, 잔다르크, 클레오파트라... 감탄을 자아ㅐ는 이 모든 이야기들은 내게 독립심을 불어넣어 남들이 덜 밟은 길을 따르고 싶게끔 했다. 그리고 그 길에는 아이가 없었다.


p.60

"젠장, 아이 낳는 걸 깜빡했네!"


진정한 힙스터


p.66

아이 낳지 않은 걸 후회하느냐고?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가끔은 성인 자녀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쨋든, 내가 아흔다섯 살 어머니를 돌봐드리듯이 나를 돌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아이가 있다고 나를 돌봐줄 사람이 확실히 보장되는 건 아니다. 선천적으로 큰 결함이 있을수도 있고, 마약중독자일 수도 있으며, 외국 전쟁에 나갔다가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내가 늙으나 마나 신경쓰지 않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놈일 수도 있으니까.


메디아의 마지막 코러스들의 대사가 생각났다. 코러스들은 신을 원망한다. 신은 여성으로 하여금 아이를 낳고 기르게 하지만, 결국 그 아이를 행복하게, 내 마음대로 기를 수도 없다는 푸념들. 결국 자식을 수단화 하는 것도 못마땅한데, 한걸음 물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키우는 것조차도 너무너무 어려운게 세상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참 머리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결정하여 자녀를 낳고 기른다는게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ㅋㅋ


p.94

나는 신의와 영원함이라는 전통을 원하면서도 내 앞길을 막지 않으려는 남자를 찾아낸 것이다. 프레드는 내 꿈을 존경했고, 우리가 있을 시간을 빼앗아가는 대외활동도 지지해줬다. 그리고 믿고 있는 대의에 강박적으로 헌신하려는 내 모습도 받아들였다.

 

내 소개인줄 ㅋㅋ


p.95

"너랑 프레드가 왜 그렇게 행복한 지 알 것 같아. 너희 부부는 아이가 없잖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여러 프로젝트를 하고, 여행을 다니고, 책을 읽은 후 공유하고, 우리 뿐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요리를 해 주고, 대의를 지지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아이 있는 삶이 아닌 서로와의 관계로 정의된다.


p.165

"많을수록 좋다. 선택도, 시간도, 자유도, 그리고 독립도"

 

 

posted by sergeant

이번주는 길이가 짧고 무게가 가벼운 책들로 준비해 보았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용까지 깊이가 없거나 지나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 책은 성평등교육이 가장 잘 이루어졌다고 여겨지는 스웨덴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필독서로 일컬어지는데,

막상 스웨덴에서는 페미니즘의 기치를 교육받고 자란 학생들에게 내용 자체가 좀 구식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한 칼럼니스트가 가벼운 불평을 했다는 얘기도 참 흥미로웠다.


남자만 혹은 여자만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좀 더 나아져야 한다'는 그녀.

따뜻한 시각으로 자신의 이야기기와 생각을 쉽고 담담하게 풀어가는 아디치에는 분명 매력적인 작가이다.

 

 


 

p.13

그는 내게 사람들이 내 소설을 두고 페미니즘적이라고 수군거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충고하기를,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슬픈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요, 나더러 절대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란 남편을 얻지 못해서 불행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이지리아 여성인 웬 학자가 나더러 페미니즘은 나이지리아 문화가 아닌 비아프리카적인 것이며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서구의 책에 영향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지적은 퍽 흥미로웠는데, 왜냐하면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 대부분이 분명 반페미니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열여섯까지 나는 당시 출간되었던 밀스앤분의 로맨스 소설을 아마 한권도 안 빼고 다 읽었을 걸요. 그리고 페미니즘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시도할 때마다 따분해져서 끝까지 읽으려면 안간힘을 써야만 했습니다.)

 아무튼 페미니즘이 비아프리카적이라고 하니까, 나는 이제 스스로를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 하나가 나더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이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더 나중에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남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농담이었지만, 이것만 보아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깔려 있는가, 그것도 부정적인 함의가 깔려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브래지어도 싫어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싫어하고, 늘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고, 유머감각이 없고, 심지어 데오도란트도 안 쓴다는 거지요.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루어진 세상..오늘도 뉴스를 보며 역시,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며, 명불허전..!!


p.20

남자와 여자는 다릅니다. 호르몬이 다르고, 성기가 다르고, 생물학적 능력이 다릅니다. 여자는 아기를 낳을 수 있지만 남자는 못 낳습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테스토스테론을 더 많이 갖고 있고 일반적으로 여자보다 육체적으로 더 강합니다. 세상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약간 더 많습니다. 세계 인구의 52퍼센트가 여성입니다. 하지만 권력과 명예가 따르는 지위의 대부분은 남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작고한 케냐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는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묘사했지요. "높이 올라갈수록 여자가 적어진다." 

... 남자들은 말 그대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합리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에는요. 당시에는 육체적 힘이 생존에 가장 중요한 자질이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남자가 육체적으로 더 강합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혀 다릅니다. 오늘날 지도자가 되기에 알맞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더 강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더 지적이고, 더 많이 알고, 더 창의적이고 더 혁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질들을 좌우하는 호르몬은 없습니다. 남자 못지 않게 여자도 지적일 수 있고, 혁신적일 수 있고,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요즘 육사든 어디든 여자들이 휩쓸고 있는걸 보면........ 오히려 에스트로겐이 자질을 좌우하는 호르몬인거 아닐까... 아무말...


p.23

 얼마 전에 나는 라고스에서 젊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관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 하나가 그 글을 읽고는 성난 글이었다며, 그렇게 성난 투로 이야기해서는 안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성이 나니까요. 오늘날 젠더가 기능하는 방식은 대단히 불공평합니다. 나는 화가 납니다. 우리는 모두 화내야 합니다. 분노는 예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노에 더해 내게는 희망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더 나은 자신으로 변하는 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p.30

 우리는 아이들의 인간성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남성성을 대단히 협소한 의미로만 정의합니다. 남성성은 좁고 딱딱한 우리와 같고, 우리는 그 속에 남자아이들을 밀어넣습니다.

 우리는 남자아이들에게 두려움, 나약함, 결점을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칩니다.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감추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남자아이는, 나이지리아 표현으로, 단단한 남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중학생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함께 외출하면, 둘 다 십대라서 용돈이 몇푼 없는 것은 똑같지만 늘 남자아이가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돈을 다 내야 한다고들 여깁니다. (그러고서는 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부모의 돈을 슬쩍하는 경우가 더 많을까 의아해하지요.)

 만일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남성서오가 돈을 연결 짓지 않도록 배운다면 어떨까요? "원래 남자애가 내는 거야" 대신 "남자든 여자든 돈이 더 있는 사람이 내는거야"라는 태도를 취한다면 어떨까요? 물론, 지금까지 누려온 이점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실제로 돈이 더 많은 사람은 대체로 남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부터 아이들을 다르게 키운다면, 앞으로 오십년 혹은 백년 뒤에는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물질적 수단으로 증명해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더는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사실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또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대단히 몹쓸 짓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 요령껏 맞춰주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자신을 움추리라고, 자신을 위축시키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망을 품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크게 품으면 안 돼. 성공을 목표로 삼아도 괜찮지만 너무 성공해서는 안 돼. 그러면 남자들이 위협을 느낄 테니까. 설령 남자와의 관계에서 네가 가장 노릇을 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는 특히 그렇지 않은 척 해야 해. 안 그러면 남자가 기가 죽을 테니까.


p.33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여성이라서, 사람들은 늘 내가 결혼을 갈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삶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서 행동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은 물론 좋을 수 있습니다. 결혼은 즐거움, 사랑, 서로에 대한 지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는 결혼을 갈구하도록 가르치면서 남자아이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요?

 내가 아는 한 나이지리아 여성은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할지도 모르는 남자의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갖고 있던 집을 팔았습니다.


p.35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어"라는 말은 남자든 여자든 공히 자주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그 말을 할 때는 보통 어차피 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포기한 경우입니다. 남자들은 짐짓 부아가 난 척하면서, 사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 우리 마누라가 매일 밤 클럽에 가는건 안 된다고 하잖아. 그래서 이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주말에만 가기로 했어."

 반면에 여자들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말할때는 보통 직장이나 경력이나 꿈을 포기한 경우입니다.

 우리는 여자들에게 남녀 관계에서는 원래 여자가 더 많이 타협하는 거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도록 가르칩니다. 일자리나 성취에 대한 경쟁이라면 좋을 수도 있다고 보지만, 그게 아니라 남자들의 관심을 놓고 경쟁하도록 가르칩니다.


,,,전 세계 남자들이 다 이런거였구나..


p.43

젠더는 대화하기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주제를 불편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짜증스럽게 여깁니다. 남자도 여자도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리며, 혹은 젠더 문제를 성급히 부정해버리려고 합니다. 현 상태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란 늘 불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p.44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되나요?" 왜 안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p.45

 또 어떤 남자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좋아요, 이건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는 젠더를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고요." 어쩌면 정말 의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문제의 일부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젠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거나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내 친구 루이스처럼, 옛날에는 상황이 나빴을지 몰라도 지금은 다 좋아졌다고 말한다는 점 말입니다. 그리고 많은 남자들이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만일 당신이 남자인데 식당에 갔더니 웨이터가 당신에게만 인사를 건넨다면, 웨이터에게 "왜 이 여자분에게는 인사를 안 합니까?" 라고 물어볼 생각이 들까요? 이렇듯 겉보기에는 사소한 상황들에서, 남자들이 나서서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문화를 만듭니다. 만일 여자도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우리 문화에 없던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문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p.90

 나는 요즘 나이지리아를 휩쓰는 오순절주의를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 ㅇ낳습니다. 나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는데, 내가 어렸을 때는 대부분의 나이지리아인들이 온화하고 중도적인 기독교인이었지요. 영국성공회 교회에 나가거나 가톨릭 성당에 나가거나 둘 중 하나였지요. 요즘은 어디에나 극단주의가 만연해 삶의 모든 측면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극단주의에는 미신이 어느정도 뒤따르기 때문에, 그들과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정신을 둔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이 오순절주의는 몹시 자기 중심적이고, 물질적 풍요에 집중합니다. 이 새로운 종교를 믿는 사람은 세상 무엇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종교는 전통지식에 적대적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전통 지식을 파괴하고 있어요. 그들이 파괴한 지식, 우리가 기독교 이전에 어떤 사람들이었나 하는 지식은 우리가 되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posted by sergeant

절망너머 희망으로 - 2017. 03. 16

독서/여성주의 2018. 6. 18. 18:17

 

원제, Half the Sky, 절망 너머 희망으로는 페미니즘 서적의 고전 반열에 들어가는 책으로 알고 있다.

친구는 제목을 듣더니 탄핵 당하신 그분의 자서전 제목이 너무 떠오르신다고...

그러나 유쾌하지 않은 연관성을 제하고, 제목 자체가 갖는 의미가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책의 내용은 말그대로 절망스럽고 충격적이다.

문체는 쉽고 직관적으로 다가오고,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거시적이지만은 않았지만

담고 있는 내용 자체가 너무나 끔찍하고 참담해서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았다.

세계 각지에서 겪고 있는 인구 절반의 고통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책을 읽는 중간에 내내

'도대체 희망은 언제 나오는걸까' 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미국에서 흑인노예제 폐지 운동이 진행되었던 것처럼,

인구의 절반이 노예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기후 변화에 대한 걱정 보다도 더 적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여성들이 온전하게 기능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다.


저자는 희망을 '교육'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범대학에서 20대의 절반 이상을 보냈고 누구보다 교육의 가치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내 삶의 틀에만 교육을 가두게 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다시 초심을 일깨워 주는 책이었다.

 

 


 

 

p.7

서문- 여성효과


여성들이 없으면 남성들은 어떻게 될까? 곤궁, 아주 곤궁해진다. -마크 트웨인


p.8

위험을 무릅쓰고 온정을 베푸는 캄보디아 시골 소녀의 모습. 그것이 라스의 매력이자 인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을 잘 믿고 매사를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그녀의 천성은 오히려 위험을 불러왔다. 열 다섯살에 가족이 무일푼이 되자, 라스는 빚에 찌든 부모님을 돕기 위해 타이에서 설거지 일이라도 찾기로 마음먹었다. 라스의 부모는 딸의 안전이 염려되었지만, 딸의 친구들이 네 명이나 같은 타이 식당에서 일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그러나 라스에게 일을 주선한 브로커는 소녀들을 타이의 낯선 지방으로 데려가슨 ㄴ인신매매단에게 넘겼고, 인신매매단은 소녀들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데려갔다. 라스는 그때까지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타워를 비롯해 눈부신 고층건물들과 말끔한 거리에 현혹되어 모든 것이 안전하고 별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인신매매단 일당이 라스와 다른 두 소녀를 매춘을 일삼는 술집에 감금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

 스스로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깨닫고 라스는 큰 충격을 받았다. 대장은 라스를 손님으로 온 남자의 방에 몰아넣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게 했다. 완강히 저항하는 라스에게 남자는 화를 내며 욕을 해댔다. "대장이 제게 화를 내며 주먹으로 얼굴을 내리쳤어요. ..." 라스는 자신을 때리는 대장에게 더 이상 반항하지는 않았지만, 흐느껴 울며 그의 말을 따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장은 자신들이 이른바 '해피 드럭'(happy drug, 비아그라와 같은 발기부전제)이라 불리는 약을 라스에게 강제로 먹였다. 정확히 무슨 약인지도 모른 채 그 약을 먹은 라스는 대략 한 시간 동안 머리가 띵하고 몸에 힘이 빠지면서 마음이 편해졌고 대장의 말에 복종하게 되었다. ...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너무 끔찍해서 체크해 두었는데 이게 시작에 불과했다는게 더 끔찍했다.

동남아를 다니며 성매매를 일삼는, 아 그것도 주로 미성년 성매매를 일삼는 벌레같은 인간들에게 더 혐오감을 가지게 되었다.


p.13

유명한 재야인사가 중국에서 체포당했다. 우리는 신문 1면을 그 기사로 장식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소녀들과 여성들이 납치되어 사창가로 팔려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기사로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기자들은 대개 특별하고 새로운 기사를 다루기를 좋아하는 반면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과 같이 흔히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성차별이 위험한 수준에 있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1억명 이상의 여성이 사라지고 있다." 센은 1990년 <뉴욕 서평> 기고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센은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오래 살기 때문에, 거의 모든 곳에서 여성의 수가 남성의 수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 그러나 남녀 불평등이 상당히 심각한 지역에서 이런 비율은 사라진다. 중국에서는 여성 100명당 남성 107명의 인구비율을 보이며, 이러한 격차는 신생아 성비에서 더욱 벌어진다. 여성 100명당 남성 비율은 인도의 경우 108명, 파키스탄은 111명을 차지한다. 이런 성비 불균형은 생태학적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 사실, 인도에서 여성 교육 수준과 남성평등 수준이 가장 높은 남서부의 케랄라 주는 미국과 같은 남녀 성비를 보인다.

 센 교수는 오늘날의 남녀 성비를 근거로 여성 1억 700만 명가량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서구 세계에도 나름의 성차별 문제가 퍼져 있지만, 이 부유한 세상에서 성차별이란 주로 임금 차이나 스포츠 팀의 지원 차이, 직장 상사의 성희롱 등을 의미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은 굉장히 치명적이다. 예컨대 인도에서 여아들은 남아들에 비해 예방접종을 제대로 받지 못할 뿐더러(예방 접종을 제대로 받지 못해 사망하는 여아들의 수는 인도의 '사라지는 여성들' 중 5분의 1을 차지한다), 대부분 아파도 병원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다.  ... 가장 이해하기 쉬운 수치를 제시하자면, 인도에서는 성차별로 4분마다 한 명씩 여아가 죽는다.


p.15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학대받는 수준을 수치로 나타낸 결과는 실로 우리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지난 50년 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어간 이들의 수가 20세기에 인종 간, 지역 간 갈등으로 벌어진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남성들을 모두 합친 수보다 많았다. 10년간의 수치를 봐도 일상적인 젠더사이드로 희생당한 여성들의 수가 20세기에 '인종학살'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모두 합한 수를 넘어섰다.


p.16

 19세기에는 노예제도, 20세기에는 전체주의를 타파하는 것이 주요한 도덕적 목표였지만, 현시대에 가장 우선시해야 할 도덕적 목표는 전 세계에 양성평등을 실현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p.23

명예 살인, 여성 인신매매, 여성 성기 절제 등은 현재의 서방세계 사람들에게 비극적인 일로 보이겠지만, 이는 먼 과거에 서방세계에서도 자행되던 일이다. ... 수천년 동안 인류는 노예제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1780년대에 윌리엄 윌버포스를 위시한 브리튼 사람들이 노예제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노예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들은 뜻대로 노예제를 폐지했다. 오늘날에도 해야 할 일이 있다. 학대받는 여성들과 소녀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범세계적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p.31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인도, 파키스탄, 이란과 같이 엄격하고 성적으로 보수적인 사회에서 상당히 많은 여성들이 매춘에 강제로 동원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젊은 남성들이 애인과 잠자리를 거의 갖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매춘을 통해 성적 욕구를 해소한다. (이게 뭔 씨발스러운 내용이지)

 젊은 남성들이 매춘을 통해 욕구를 해소하는 것과 달리 상류층 여성들은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암묵적인 인식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으며, 집장촌에서는 대개 네팔이나 방글라데시, 인도의 가난한 마을에서 팔려온 여성들이 몸을 팔고 있다. 그런 여성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하층계급 출신인 경우 사회는 그런 여성들의 고통을 외면한다. 미국에서 남북전쟁 전에 사람들이 노예들을 자신들과는 다른 부류로 취급하여 노예제 폐지에 무관심했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p.36

여러 해 동안 미나와 같은 여성들을 인터뷰하면서 우리는 다른 관점으로 성매매를 바라보게 되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중국과 일본에서 생활한 우리는 매춘을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이나 경제적 고통에 못 이겨 뛰어드는 일쯤으로 여겼다. ... 미국, 중국, 일본에서 활동하는 매춘부들이 대부분 자발적으로 매춘을 하고 있기에 우리는 매춘부들이 노예나 다름없이 강제로 매춘에 동원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노예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노예제도가 횡행했던 19세기와 달리 오늘날에는 많은 매춘부들이 에이즈에 감염되어 20대 후반에 사망한다.) 이런 일을 흔히 '성매매'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성도 매춘도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p.57

노예 제도가 아주 대단한 것이라고 증명하는 책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지만, 직접 노예가 되어 노예제도의 혜택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 에이브라함 링컨


p.58

"주로 테러리스트들의 동태를 감시합니다." 인도인 관리는 트럭이 연달아 지나간 이후로 주위를 전혀 감시하지 않았다. "9.11 사태 이후로 이 곳 감시를 강화했습니다. 밀입국이나 밀수에 대해서도 감시하고 있습니다. 밀수품을 발견하면 즉시 압수합니다."

"윤락가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어떻게 하나요?" 닉이 물었다. "성매매단의 동태도 감시하고 있나요? 엄청나게 많은 여성들이 팔려가고 있습니다."

"그럼요 많은 여성들이 팔려가고 있죠. 하지만 그들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손을 쓸 방법도 없습니다."

"글쎄요, 당신들은 성매매단을 체포할 수 있습니다. 납치당하는 여성들이 밀수되는 DVD보다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닉이 물었다.

"매춘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인도 관리가 낄낄거렸다. "어느 나라에서든 언제나 매춘이 성행합니다. 그러면 18살이 된 남자가 30살에 결혼할 때까지 욕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어디서 존나 많이 듣던 소리를 여기서도...)

"그렇다면, 네팔 여성들을 납치해서 인도의 윤락가에 팔아넘기는 행위가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말씀인가요?" 닉이 반문했다.

인도 관리는 잠시 말을 잃었지만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불행한 일이죠. 하지만 그런 여성들이 희생함으로써 사회가 잘 돌아가고, 선량한 여성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잖아요."

"윤락가로 팔려가는 여성 대부분은 선량합니다."

"아, 그래요.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빈농 출신입니다. 글도 읽지 못합니다. 대부분 촌구석에 처박혀 있던 여성들이에요. 선량한 중간 계급 여성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를 부득부득 갈던 닉이 폭발했다. "무슨말인지 알겠소! 당신이 알다시피 미국 사회도 수많은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습니다. 인도 중간 계급 여성들을 납치해서 미국의 윤락가에 팔아넘겨야겠어요! 그러면 미국의 젊은 남성들이 재미를 보겠죠, 그렇죠? 미국 사회가 참 잘 돌아갈 겁니다!"

 불길한 침묵이 흘렀지만 이내 인도 관리가 폭소를 터뜨렸다. "농담도 잘 하시는군요! 우스워 죽겠어요!"


2백년 전 사람들이 흑인들을 거리낌 없이 사고팔았듯이, 오늘날 사람들은 빈농 출신의 여성들을 사고판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사고파는 목적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팔려가는 여성들의 인권은 철저하게 짓밟힌다. 미국이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려고 애쓴다는 사실을 알기에 인도 정부는 정보부 관리를 파견하여 밀수를 감시하고 있다. 서구 세계가 밀수되는 DVD만큼 성 노예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안다면 인도 정부는 당장에 인신매매를 단속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p.73

'숫처녀 성매매'에 대해서는 특히 더 강경한 단속을 펼쳐야 한다. 특히 아시아에서 인신매매단은 미성년자를 납치하여 성매매를 시킴으로써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 그리고 일단 강간당한 소녀들은 대개 삶을 포기한 채 평생을 매춘부로 살아간다. 대개 부유한 아시아 사람들, 특히 해외에 나간 중국 사람들이 그런 파렴치한 짓을 많이 저지른다. (이봐요 저자님, 최근 보고서들에 따르면 수요자 1위는 한국남자들이라구요. 저희 중국사람들 아닙니다. 설마 저희나라를 중국으로 퉁쳐서 얘기하시는건 아니죠?.. 적다보니 더 열받네) 그들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 즉, 그들을 엄정히 처벌해야 숫처녀 성매매가 일시에 줄어들어 거래 가격도 떨어질 것이고, 결국 인신매매단이 위험부담이 적으면서 수익이 나는 유형의 일을 찾을 것이다.  


p.93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춘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계를 자신에게 맞추기 위해 애쓴다. 그러므로 모든 진보는 비합리적인 사람에게 달려 있다. - 조지 버나드 쇼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납치당하고 팔려가고 강간당하거나 학대당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들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성들이 저항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데에 있다. 세계 각지에서 여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순종해야 한다고, 특히 남성들의 말에 잘 따라야 한다고 세뇌당하며 자란다. 그래서 대개는 배운 대로, 심지어 하루에 스무 번 강간을 당하더라도 웃어야 한다고 배웠다면, 그대로 행한다.

 그런 여성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뜻은 없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하기보다는 학대를 순순히 용인하는 이유를 문화적 측면에서 찾아보고 그에 대한 실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과 어린 소녀들이 폭력에 굴복하고 시키는 대로 매춘을 하는 한, 결코 학대를 이겨낼 수 없다. 더 많은 여성들이 소리치고 저항해야, 그리고 더욱 많은 여성들이 사창가에서 탈출해야 인신매매와 성매매를 뿌리 뽑을 수 있다. 인신매매단은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주로 시골 여성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시골 여성들이 말을 잘 듣고 자신들의 운명에 순응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흑인 인권 운동을 벌인 마틴 루터 킹이 남긴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우리의 등을 똑바로 펴고 자유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네 등을 구부리지 않는 한 아무도 네 등 위에 올라타지 못한다."


p.118

 레이펙스의 탄생은 개발도상국에서 강간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강간 희생자가 전쟁 희생자들보다 많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전 세계 여성들 중 3분의 1가량이 가정 폭력을 경험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또 15세에서 40세 사이의 여성들이 암, 말라리아, 교통사고, 전쟁보다 남성의 폭력으로 인해 더 많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WHO는 대다수의 국가에서 여성들이 30~60%가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육체적 또는 성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전 WHO사무총장 이종욱은 이런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여성들이 건강을 헤치는 주요 요인은 남편이나 남자친구의 폭행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고도 수치심에 강간당한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그래서 성폭행 관련 범죄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근거들을 통해 성폭행 범죄가 급속히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나 여성들의 21%가 강간을 당하면서 첫 성 경험을 하고, 나이지리아 여성들의 17%는 19살에 강간이나 강간 미술ㄹ 견뎌냈다고 말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여성들의 21%는 15살에 강간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여성들은 온갖 유형의 테러를 당하며 지금도 학대당하고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염산 테러는 1967년 방글라데시에서 최초로 발생했다. 지금도 동남아시아에서는 남성들이 자신들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들이나 소녀들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는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염산은 살을 태우고 뼛속 깊이 파고들어 눈에 들어가면 실명하고 만다. 여성을 혐오하는 세계에서 염산테러는 기술적 혁신으로 통한다.

 그런 악행을 자행하는 것은 주로 여성을 억압하고 굴복시키기 위해서이다. 케냐에서 여성 선거 후보자들에게는 24시간 내내 선거 사무실의 보안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치적 적들에게 성폭행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여성 후보자들이 수치심을 느끼고 명성에 손상을 입도록 폭력단은 여성후보자들을 강간하려 한다. 급기야 케냐의 여성 후보자들은 이런 위험에 대비하고 위험에 처했을 경우 시간을 벌기 위해 옷을 몇 겹으로 껴입고 칼을 품고 다닌다.


p.126

 전 세계에 걸쳐 성폭행, 가정 폭력 등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학대의 배후에는 성적 충동과 성적 타락보다 훨씬 사악한 것이 깔려있다. 이른바 성차별주의와 여성혐오증이다.

 왜 유독 마법사들보다 마녀들이 훨씬 많이 화형을 당했을까? 왜 유독 여성들만이 염산 태러를 당하고 있는가? 왜 유독 여성들이 더 많이 발가벗겨진 채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고 있는가?


p.130

 요컨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여성들도 스스로 여성 혐오적인 관념을 체득하고 물려준다. 이런 문제는 폭압을 휘두르는 남성들과 흿애당하는 여성들이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남성들과 여성들이 똑같이 고수하는 가혹한 사회적 악습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법의 도움을 받을 순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사고의 틀을 반드시 전환시켜야만 한다. 그런 악습을 철폐하는데 교육만큼 훌륭한 수단은 없다. 그런 이로한으로 여러 구호단체들이 시골 지역에 학교를 세우고 있다.


p.132

"강간 당한 여성들이 수치심에 못 이겨 대부분 자살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죠." 이후에 무크타르가 우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혔다. "무기는 사용할 필요도 없어요. 강간이 곧 살인이니까요."


p.150

 세상은 유난히 처녀성을 숭배한다. 성서에도 신부가 처녀라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 신부를 돌로 쳐 죽이라는 말이 나오며, 중국 송나라 시대에 발달한 성리학에서는 "여자가 굶어 죽는것은 극히 작은 일이고, 절개를 잃는 것은 극히 큰일이다."고 말한다.

 이런 가혹한 관념은 이제 세상에서 거의 사라졌으나 중동에서는 여전히 존재하며, 특히 오늘날 이러한 관념은 여성ㅇ르 학대하는 ㅈ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정조 관념은, 성폭행의 형태로 변질되기도 하는데, 적대 가문을 응징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그 가문의 딸을 강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152

 간단히 말해서 강간은 보수적인 사회에서 전쟁의 도구가 되는데, 이는 정확히 여성의 순결을 신성시하는 관념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순결을 중요시하는 정조 관념 아래에서 표면적으로 여성들이 보호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정조 관념으로 인해 조직적으로 여성들에게 불명예를 덮어씌우려는 환경이 조성된다.


p.163

 아프리카에서 미국 여성들, 특히 금발을 가진 여성들이 원치 않는 시선에 당황할 때도 많지만, 이는 위험이나 위협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여성들은 대개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생각외로 안전하가도 느끼게 된다. 아프리카 현지 남성들은 서구 여성들을 섣불리 건드렸다간 큰코다친다는 사실을 알기에 서구 여성들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역시, 학대는 권력의 문제이다.




p.171

 이 책을 읽는 이들 중에 다이나의 몸 안으로 꼬챙이를 쑤셔넣은 민병대의 가학적인 잔인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덜하지만 무관심이라는 잔혹함이 우리 사회에 널리 확산되었다. 다잉나처럼 피스툴라로 고통을 겪는 3백만의 여성들에 대한 세계적인 무관심이 바로 그것이다. ... 피스툴라에 걸린 여성들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고 출산으로 인한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그다지 중요치 않은 일로 바라보는 인식 탓이다.


p.179

 WHO는 2005년에 임신이나 출산 중 사망한 여성들이 53만 6000명이라고 발표했다. 이 사망률은 30년 동안 거의 변함이 없었다. 임신이나 분만 사망률이 감소하고 수명이 늘었지만, 1분에 여성 한 명이 출산 중에 사망하고 있듯, 출산은 예나 지금이나 아주 위험스러운 일로 취급된다.


p.187

 의료 시술만이 최선의 대안은 아니다. 이를테면, 여학생들에게 교복만 지원해도 여학생들의 이신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여학생들을 학교에 묶어두게 되고 결국 좀 더 안전하게 아기를 낳을 나이가 될 때까지 결혼을 늦추거나 임신을 하지 ㅇ낳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남부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18개월마다 여학생들에게 6달러짜리 교복을 지원했더니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학생들이 늘어났고...


p.197

그저 생식기능을 다하다가 죽어가는 이들이 남성들이라면, 세상은 그들의 고통을 지켜만 볼까? - 아사 로즈 미기로, 유엔 사무부총장


p.209

 대다수의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산고를 겪어야만 하는 이유를 신화 또는 신학에 입각해 설명함으로써 안전하게 출산하려는 노력을 불식시킨다. 마취를 개발한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여성들은 통상적으로 마취를 하지 않고 출산을 했다. 출산에는 당연히 고통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소수종족 후이촐족은 이와는 반대의 관점을 가진 대표적인 사회집단으로 꼽힌다. 후이촐족은 산모가 겪는 산고는 분담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남편의 고환에 매단 실을 아내가 출산 중에 부여잡게 했다. 산모는 질이 수축되어 고통이 올 때마다 그 줄을 홱 잡아당겼다. 그렇게 남성들도 출산의 고통을 분담했다. 이런 풍속이 널리 확산되었다면 세상도 여성들의 출산으로 입는 상처에 더욱 많은 관심을 쏟았을 것이다.


p.233

식인종들이 아사 직전에 처할 때면 하느님은 항상 무한한 자비심을 베풀어 그들에게 포동포동 살이 찐 선교사를 보내주신다. - 오스카 와일드


p.241

지난 30년간 에이즈는 무관심 속에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무관심은 도덕적 결백을 강조하는 태도에서 불거져 나왔다. 에이즈를 두고 침례교 목사 제리 파웰은 '난잡한 성행위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 표현했고, 상원의원 제시 헬름스는 '의도적이고 여겹고 혐오스러운 행위'라고 규정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를 마칠 때까지 '에이즈'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 독선적인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확산되는 에이즈에 냉담했다. (마치 율법주의자들이 나병환자들을 신의 저주에 걸렸다는 이유로 핍박했던 일화가 떠오른다)

 오늘날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이 동정심을 회복하고 에이즈 퇴치에 탁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콘돔에 대한 이들의 의심은 에이즈 퇴치에 여전히 크나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보수주의자드은 대개 성행위를 안전하게 하는 법을 논의하고 알려나가면 오히려 에이즈가 더 확산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만, 콘돔은 명백히 생명을 구하는 도구이다. 오늘날 콘돔은 개당 2센트 꼴로 아주 저렴하고 에이즈 감염을 줄이는 데에도 비용 대비 효율이 상당히 높다. 캘리포니아 대학이 조사한 결과, 콘돔을 배급하여 1년간 에이즈 감염을 방지하는데 드는 비용은 3달러 50센트에 불과하지만, 에이즈를 치료하는데 드는 비용은 천달러 33센트나 된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콘돔 배급에 백만 달러를 투자하면 에이즈와 관련된 비용을 4억 6600만 달러나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피임약 광고는 판을 치지만 콘돔광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조국의 현실에 눈물을 흘리기 보단 깊은 빡침을 느낀다. 아, 요즘 피임약 광고들은 심지어 임신에 대한 성화까지 보여주던데.... 엄마가 되는 것은 중요하지만 미룬다는 둥.... 꼭 그렇게 모성 찬양을 안하고는 못 참는 걸까? 그냥 차라리 피임 계속 열심히 하라고 얘기해 새끼들아..

콘돔이 그렇게 비용 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배급은 너무도 인색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 언젠가 사람들은 지금을 되돌아 보며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의아해 할 것이다.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은 콘돔의 결함을 과장해 말하면서 콘돔의 가치를 떨어뜨리려고 애쓴다. .. 보수적 기독교주의자들 중 며몇은 에이즈 바이러스가 지름 10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데 콘돔에 지름 10마이크로미터인 구멍이 뚫려있다는 엉터리 과학을 퍼뜨리기도 한다. 이는 명백히 거짓이며, 에이즈 양성반응자와 음성반응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금욕보다야 못하겠지만 콘돔이 에이즈 감염을 방지하는 데 꽤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도 나왔다.

 엘살바도르에서는 콘돔이 에이즈 감염을 막지 못한다는 경고 문구를 콘돔 포장에 삽입하도록 가톨릭교회가 법안 상정을 부추겼다. 법안을 상정하기 전까지 엘살바도르 여성들 중 첫 성경험을 할 때 콘돔을 사용한 여성은 4%도 되지 않았다.

 바티칸 교황청은 부부 중 한 명이 에이즈에 감염되었을 때 콘돔을 사용하는 것도 비난했다. 이에 한 케냐 출신의 국회의원은 가톨릭교회를 가리켜 '에이즈를 퇴치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표현했다. 브라지 소재 에이즈 관련 언론사의 편집장이자 가톨릭 신자인 어떤 이는 우리를 붙잡고 한탄했다. "가톨릭교회가 전 세계에 에이즈를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잘모 된 일입니다. 신이 그것을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p.245

 여하튼 여성들에게 치명적인 위험 요인은 대개 난잡한 성행위가 아니라 결혼이다. 대체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성들은 결혼하기 전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다가 결혼 후 남편에게서 에이즈에 감염된다. ...??...


p.253

 사회적 약자를 챙기는 사람들은 종교와 관계가 있든 없든 공동의 전선을 수립해야 한다. 2백년 전에 일어난 노예제 폐지 운동이 훌륭한 본보기이다. 당시 자유주의적 이신론자들과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힘을 합쳐 노예제를 철폐했다.


p.270

 성을 둘러싼 문제들과 관련해서 무함마드는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제2대 칼리프 오마르와 같은 무함마드의 후계자들은 남성 우월적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 그들이 강인한 여성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게 된 데에는 무함마드의 가장 어린 애첩이자 이슬람 최초의 페미니스트였던 아이샤와 성격 충돌을 일으킨 이유도 있었다.


p.272

 신학자 알티르미디는 '후리'가 월경을 하지 않고 대소변을 보지도 않으며 축 쳐지지 않은 큰 가슴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살 폭탄 테러범들은 모두 자신드이 천국에서 후리들과 결혼하리라는 기대를 글로 적었고, 무함마드 아타는 9.11 테러 전날에 테러범들에게 후리들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확신을 주기도 했다.

 천국에 도차갛ㄴ 테러범들은 충격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아랍어는 본래 코란에서만 사용한 문어체이고 문장 또한 상당히 복잡하다. 학자들은 학문적 엄격함 속에서 코란의 초기 사본을 분석하고 있는데, 이처럼 복잡한 아랍어가 시리아어나 아람어에서 유래했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나왔다. 신변의 위험을 우려해 크리스토프 룩센버그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한 학자는 '후리'가 '하얀 포도'를 뜻하는 아람어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코란에서는 후리를 진주와 크리스털에 비유했고, 천국에 관해서는 아낌없이 주는 과일, 특히 피로를 풀어주는 포도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천국의 문' 앞에 도착한 순교자들이 받는 게 고작 하얀 포도 한 바구니라면, 자살 테러를 시도할 사람은 과연 얼마나 생길까?


p.278

 특히, 젊은 층에서 남성 인구가 여성 인구보다 많은 사회는 대개 폭력과 범죄가 얼룩진 양상을 보인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커트라이트는 유럽과 비교해 미국에서 폭력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것도 대대로 남성의 수가 많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은 불균형적으로 남성 인구가 여성 인구보다 많았고, 그래서 미국 사회가 폭력과 공격성,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얼룩져 여전히 높은 살인 사건 발생률을 기록하고 잇따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이러한 분석은 남성 중심 문화가 지배하는 모슬렘 사회가 왜 자기신뢰, 명예, 용기, 폭력을 중요시하게 되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p.281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다스리는 정부는 결국 모든 대중을 억압한다는 사실이 여러 근거에서 드러난다. 종교학자 스티븐 피시는 논문에서 "서구인들이 주요한 원인으로 보는 종교 제도나 정치보다는, 여성들의 지위가 이슬람 민주주의의 결핍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 환겨이 정치 시스템에ㅗ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p.293

배움이 돈만 들어가는 일이라 생각한다면, 무지해져 보라 - 데릭 복


이런 글도 본적이 있다.

당신이 죽어 있는 장례식에서, 당신은 그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슬퍼할겁니다.

당신이 멍청해도 마찬가지입니다.


 p.351

 성매매, 여성할례, 명예 살인 등의 악습은 불가피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 ㄴ악습을 철폐하려는 노력은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의견도 여전히 제기된다.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악습을 없애려는 우리의 선의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답을 말하자면 바로 '중국'이다. 한 세기 전이라면 중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느니 죽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전족, 조혼, 축첩, 여아 살해가 전통 문화로 사회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에 시골 지역에서 태어난 여성들은 실제 이름도 가지지 못하고 '두번째누이' 또는 '네번째 누이'와 같은 식으로 불리기도 했다.  ...  지금의 중동에서처럼 중국에서도 여성의 권리를 위한 싸움은 치열하게 벌어졌고, 잔인한 방해 공작도 있었다. 중국의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은 남자들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에 분개했다. 1920년대 말에는 흉악범들이 짧은 머리를 한 여성을 사로잡아서 머리카락을 다 뽑아버리거나 가슴을 잘라버리기도 했다. 흉악범들의 잔인산 대사가 소름을 끼치게 한다. "남자처럼 보이고 싶다면 이렇게 해주지."

 1949년 중국 혁명 이후 중국의 공산주의는 그 잔인한 속성을 드러냈다. 수천만 명이 기근에 시달리고 핍박을 받다가 죽어간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 남아있는 바람직한 유산이 있었다. 여성의 지위 향상이었다. 권력을 쥔 마오는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여성들을 기용했고, 조혼, 매춘, 축첩과 같은 악습을 철폐했다. 마오는 선언했다. "여성들은 세상의 반을 차지합니다."


p.393

 수십년 동안 미국인들은 인종차별의 부당함을 느끼며 살아왔지만, 인종차별은 남부의 문화와 역사에 깊이 뿌리박혀 잇는 복합적 문제로 보이며, 대다수 정의로운 사람들도 그런 부당함에 맞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때 로자 파크스와 마틴 루터 킹, '자유의 기수들'이 나타났고, 하워드 그리핀이 <블랙 라이크 미>을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어느새 불평등은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으며, 동시에 경제가 발전하면서 흑인 차별 정책의 토대는 부괴되어 갔다. 이어서 시민 권리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 서로 결집했고 인종 차별의 실상을 조명했으며 선량한 사람들로 하여금 인종차별을 묵인하게 했던 '눈가리개'를 찢어버렸다.

 마찬가지로 20세기 내내 대기가 오염되고 강물이 기름으로 얼룩지고 동물들이 멸종되었지만, 우리는 환경오염을 막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고 방관자의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 우리는 슬픈 일이지만 필연적인 대가를 치루고 있는 셈이다. 1962년에 레이첼 칼슨이 <침묵의 봄>을 발표하면서 환경 운동에 불이 붙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사창가에 갇힌 여성들과 피스툴라에 걸려 외딴 움막에서 웅크리고 지니는 십 대 소녀들에게 세상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성차별 철폐 운동이 일어나고 빈곤국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기를 고대한다.


도대체 왜 여성은 대기오염보다도 다음순위로 밀려나게 된것인가


p.395

역사를 돌이켜 보면 노예제는 부당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제도로 인식되었다. 걸출한 문학가와 철학자가 많이 탄생했듯, 아테네 사람들은 철학적 사유를 실천하면서도 노예제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토론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를 인정했다. 유대교와 이슬람 신학자들은 노예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노예제 자체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p.396

1790년대에 이르자 노예제 폐지론자들을 경제의 중대성을 모르거나 프랑스의 위협과 같은 지정학적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적 도덕주의자로 보는 시각은 사라졌다. 오늘날에도 대체로 테러나 경제 문제를 '심각한 문제로 바라보듯, 성 노예 문제는 1790년대의 노예제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몇 십년이 흐른 뒤에 사람들은 오늘날을 되돌아 보고 사회가 '성 노예'의 매매를 왜 그리 묵인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21세기에 벌어지는 성매매가 19세기에 성행한 노예무역보다 규모 면에서도 훨씬 심각한 문제였음을 인식하고 잇는데도 말이다. 또 장래에 사람들은 모성 보건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아서 해마다 여성 50만명이 출산 중에 사망하는 사실 앞에서 무척 당황할 것이다.


p.401

국가 인적 자원의 절반이 방치되고 있다면 손실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해 보라.

p.407

여성 해방운동은 다음 네가지 원칙을 따라야 한다.

​1. 진보와 보수를 떠나 광범위한 연대를 구축하라. 이는 좀 더 빠르게 실질적 결과를 얻는 방법이다.

2. 과대 선전을 하지 말라. 인권 단체들은 과장된 예측으로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기자들은 구호단체들이 지난 세번의 기근을 열번이나 예측했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또한 정의와 성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여성에 관한 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고 연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결론을 내는 경향이 있다. 신중하게 조사하고 연구하라. 과장된 예측으로 얻을건 하나도 없다.

3. 남성들을 배제하지 말라. 우리 모두 남성들과 함께 에이즈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에이즈 확산을 막고 남성이 상대 여성에게 에이즈를 전염시킬 가능성이 줄어든다.

4. 여권 운동가들은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 성차별을 금지하는 Title IX법은 체육 활동과 스포츠에서 남녀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성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리라 기대했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체육 수업에서 성차별 금지가 성 형평성의 달성을 의미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성 노예'문제를 다룰 때, 이런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이 방면에서 많은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여권운동가들은 아프리카 임산부들의 목숨과 태아의 목숨을 동시에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요컨대 넓은 시야를 가지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성차별과 폭력을 인지해야 한다.

 

 여기에 다섯번째 원칙을 덧붙이자면, 네가지 원칙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느 유형의 운동에도 유연성이 필요하다.


p.416

"대개 다른 이들을 돕고자 할 때 자기 계발이 된다". 최근 들어 사회심리학자들이 행복에 관한 연구에 집중적으로 몰두했는데, 사람들이 행복이라 생각하는 것들이 행복이 아니라는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 행복 수준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받아서가 아니라 타고나는 것처럼 보인다. ... 한편 헤이트 교수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행복 수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요인을 소개했다. 그 하나는 대의나 인도적 목적과 같이 '큰 의미가 있는 무언가'와 연관이 있다.' 대체로 이런 요인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나 종교 단체를 찾지만, 여성 해방 운동이나 인권운동은 목적의식을 고취하여 행복 지수를 상승시킨다.



<이 책을 읽고 10분간 해야 할 네가지 일>

1. www. womensenews.org나 www.worldpulse.com에 접속해 이메일 등록. 두 사이트 모두 여성 인권 침해 사례와 대처방안 소개한다.

2. www.globalgiving.org이나 www.kiva.org에 접속해 계정을 만들라. 사이트를 둘러보며 단체 활동이나 운영 방식을 파악한 후 기부 대상을 정해 기부를 하라.

3.  Women for Women International, Plan International, World Vision, American Jewish World Service를 통해 빈곤 지역의 소녀들을 후원하라.

4. 빈곤 지역 여성들의 교육을 확대하고 모성 사망을 줄이는 정책을 세울 것을 정부 당국과 국회의원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라. 앞서 이야기 했듯,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여성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지는 않는 실정이지만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하면 태도를 바꿀 것이다. 정부는 국가적 이익이 걸려 있는 ㅇ리에 관심을 보이지만, 지나온 역사가 증명하듯, 가치가 걸려 있는 일에는 항상 이 책의 독자들이라 할 수 있는 일반 시민들이 앞장섰다.



<부록> 중


American Assistance for Cambodia- www.cambodiaschools.com

인신매매를 종식시키기 위한 활동을 벌였으며 현재 빈곤지역 소녀들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 장학금 지원 프로그램 운영


BRAC - www.brac.net

방글라데시 속한 구호단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활도을 확대하고 있다. 뉴욕에 지부가 있고 인턴 환영


Center for Development and Population Activities - www.cedpa.org

여성 교육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ECPAT- www. ecpat.net

동남아시아에서 아동 매춘 퇴치 활동을 벌이는 구호단체 네트워크


Equality Now  www.equalitynow.org

전 세계 성매매와 성별 억압을 종식하기 위한 활동을 벌인다.

Girls Helping Grils- www.empoweragirl.org

2007​년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15세 소녀 세잘 하티가 설립.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구축하고  15개국에서 교육 및 보건프로그램 운영


International Justice Mission - www.ijm.org

성매매 퇴치 활동 벌이는 기독교 단체​


Women's Learning Partnership- www.learningpartnership.org

개발도상국 여성들의 지위 향상과 리더십 증진에 힘쓴다.

posted by sergeant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2017.03.06

독서/여성주의 2018. 6. 18. 18:14

 

맙소사, 글을 날려먹어서 주옥같은 구구절절을 다 포스팅 할 순 없겠지만... 할수 없고.


이 책은 표지부터 컨셉, 서문까지 모두 다 마음에 들어서 집어들었고 재미있게 읽었다. 평범한 독일 남성이 일년간 여장남자로 살면서 겪은 일과 생각들을 적어둔 책이다. 여러 장면들에서 영화 '대니쉬걸'이 떠올랐으나, 작가는 트랜스젠더가 아니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남자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 꽤 중요한 포인트이다. 아무래도 '평범한 남자의 실험'이라고 보기에는 평범과 거리가 멀지만.. 평범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상인지 아는 사람으로서 그러려니..ㅎㅎ. 다만 중요하고 의미있는 실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


 우선,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아래)에서는 잘 드러나 있지만, 본문에서는 여성으로서 살면서 느끼는 위협과 불편감들이 (작가가 여장을 하고 공원에서 성폭행 위협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였다면 이런 방식의 위협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했다. 성정체성이 남성인 이가, 여성으로 산다는 실험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작가의 '여성성에 대한 찬사'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힘이, 실제 체험 과정에서는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의 색채를 바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남자로 사는 동안 '남성으로서 완수해야 하는 기대와 압박'들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이러한 압박들이 남성들의 감수성을 거세시킨다고 느꼈다. 그러나 여자로서의 삶을 통해 압박들로부터 자유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장남자로서의 삶에 대단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여자들은 남성으로서의 완벽주의(약해지지 말라!)로 부터 자유로워 지면서 누군가가 나의 짐을 받아주고 에스코트를 통해 보호받는 대신, 책에서 보여지는 바처럼 '성적 대상화'되고, 나아가서는 동일 임금, 동일 급여가 보장되지 못하고,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이 당연한 것이 되며, 24시간 가사노동의 정당성을 부여받고.. 좀 더 나아가서는 성폭행 및 살해 위협으로 부터 안전하지 못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너무 많아..). 이들은 결코 같은 가치로 교환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여성으로서의 완벽주의도 존재하니까.

 더불어 이러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이분법은 그 메시지가 아무리 긍정적인 것이라고 해도 온정적 성차별주의에 불과하다. 작가 역시, 체험기간 동안 많은 감정과 자기 검열과 주변의 불편함을 소화해 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도한 과제들은 우리의 고정관념과 차별주의적인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중요하다고 느껴졌던 이유는, 성차별주의적 사회에서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도 꽤 피해자라는 사실을 남자로서 고백했다는 점에 있다. 나는 이 부분이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매매 하는 보통 남성'의 입장을 지지해줄 마음은 없으나, 차별주의가 두 성별 모두를 좀먹는다고 믿는다.(2018년인 지금은 비록 이 생각이 달라졌지만, 이 글을 적던 당시에는 그랬다.) 그런 점에서 나도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경직된 역할 기대의 모순으로부터, 한걸음에 완전히 자유로워 질 수는 없겠지만.. 오랜 시간 동안 무비판적으로 받아왔던 모든 차별적인 시선들에 대해서 오늘도 조금 더 나를 정화시키고 싶다.

 

 


<책발췌>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 중,


여자로 살아보기 체험을 통해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남자와 여자에 대해 무척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성별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나는 처음 여자의 눈으로 여자의 삶을 보았고, 여자를 대하는 남자들의 태도를 경험했다. 여자의 눈에 비친 남자들의 태도는 결코 멋지지 않았다. 처음엔 좋은 남자처럼 보였더라도 순식간에 나쁜 남자로 전락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일까'라는 질문에 몰두하게 되었다.

"당신의 경험이 다른 나라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믿으세요? 아니면 유럽에만 해당된다고 보세요?"

여자로 사는 동안 가장 자주 받은 질문 중 하나이다. ...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본질적인 반응은 어디나 비슷하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사는 실제 우리의 삶은 현대 사회가 내세우는 평등과 크게 모순된다. 나는 이 책에서 그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남자와 여자가 '공존'하는 세상 한 복판에서, 남자와 여자가 내면에 모두 '공존'하는 한 사람으로서.


p.21

사람들은 우주를 서랍에 나누어 넣으려 한다. 아내는 '허영'과 '변태'를 얘기했다. 어떤 행동을 하자마자 나는 규범에서 벗어났고 그 즉시 나를 분류해 넣을 서랍이 마련되었다. 규범으로 가득한 서랍은 무인도나 마찬가지다. 활기도 생기도 없다. 서랍과 서랍은 아무 접촉도 하지 않는다. 인간은 서랍에 적힌 글귀에 따라 깔끔하게 분류된다. 서랍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회 전체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위험에 처한다.


p.34

나는 우리 사회의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대해 점점 더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남자 역할이 더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훨씬 인위적이다. 남자 역할에는 능력과 인정 욕구가 주입되어 있다. 거의 강압에 가까웠다. 반면 여자들은 그런 내적인 강압에서 자유로워 보였다. 여자의 삶이 더 의미 있고 여유로워 보였다. 여자의 세계는 생기 넘치는 신비한 천국 같았다.


 p.35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억압받는 건 아닐까. 모두가 여성해방을 얘기한다. 그렇다면 남성해방은 필요 없을까. 남자들이 고장관념의 억압에서 벗어나면 여자들도 좋지 않을까. (좋죠!) 남녀의 갈등과 양극서이 사라지면 성역할도 기능을 잃게 될까. 어떤 사람은 하이힐을 신고 어떤 사람은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또 어떤 사람은 치마를 입고 이사회에 등장한다면(당연히 남자가), 회의 분위기가 어떨까? 복장 때문에 이사회가 쓸데없는 수다 모임으로 바뀔까?


p.48

"트렌스베스타잇(여성의 옷을 입음으로써 성적 만족을 느끼는 남성)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네요."

"고객 중에 트랜스베스타잇은 거의 없어요. 혹시 트랜스베스타잇이세요?"

"아니요."

"트랜스베스타잇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요. 대부분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죠. 의사, 회사원, 리무진을 타고 다니는 기업 간부, 기계 기술자 등등. 도축업자와 제빵사도 있어요."

"멀쩡한 사람들이 이런 걸 왜 산대요?"

"크리스티안 씨는 왜 사세요?"

"내 안의 여자를 알고 싶어서요. 그리고 여자 옷을 입으면 마음이 여유로워져요. 그런 기분을 더 많이 느끼고 싶어서요. 한 번쯤 남자가 아니어도 되는 해방감 같은 걸 거예요."

"바로 그거예요! 다른 손님들도 그런 여유로움을 갈망하는 거예요. 잠깐만요, 가발이 있어야 겠어요. 이거 어때요? 정말 예쁘죠!"


p.51

나는 성전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내가 남자라고 느낀다. 다만, 남자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싫을 뿐.


p. 94

 고도로 발달한 우리의 문화와 자유가 끊임없이 남녀평등을 위해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고리타분한 옛날 규칙에 따른 남녀차이는 그대로인 것 같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에게, 혹은 여자가 남자에게 바라는 경직된 역할 기대는 모순에 부딪혔다. 내게 투사되었거나 내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 모든 성역할은,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인정할만한 가치도 없고 삶에 필요하지도 않다. 그것은 가상세계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기대를 채울 수도 없다.

 짧은 기간이지만 여자로 살아보니, 남자로 살기가 더 싫어졌다. 남자들은 옛날 부족사회의 남성성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갇혀 신선한 바람을 쐬지 못한 채, 작은 우물에서 물장구만 치는 것 같았다. 반면 여자들은 오래전에 벽을 허물고 주어진 한계를 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낡은 이미지에 갇혀 멍하니 굳어 있지 않았다. 남자들과 얘기를 해보면, 그들은 '해방'이라는 단어를 남자에게 적용하기를 거부한다. 남성해방이란 말이 우스꽝스럽다는 반응이었다. ...

남성성에는 어떤 불가침성이 내포되어 있다. 불운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부터 남자들의 이런 자기이해가 거부할 수 없는 암묵적 규칙이 된 것 같다. 소위 강한 남자! 사나이의 맹세와 끈기! 모든 걸 손에 쥐고 모든 걸 이루고 모든걸 해결하고 언제나 이겨야 한다. 이것은 내게 오만을 넘어 사이비 종교의 광신처럼 느껴졌다.  ...

 남자들의 나르시시즘은 이렇게 구호를 외친다. 남자는 감수성을 보이지 않는다! 스타킹을 신지 않는다(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그들은 스타킹을 신었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는다! 게다가 빨간색은 말도 안된다! 그런데 오늘날, 고정관념과는 다른 남성성이 자라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문제 없음'이다. "나는 남자로서 아무 문제없다. 문제가 생긴다면 남자처럼 보이지 ㅇ낳을 것이다." 그러니까 남자는 반드시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한다. 문제가 생겨선 안 된다.


p.178

 남자는 그냥 살기만 해선 안 되었다. 남자는 늘 뭔가를 성취해야만 했다. 심지어 하느님 앞에서도 뭔가 성과를 보여야 했다. 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반듸 한 여자와!), 아이를 낳고(많이!) 나무를 심어야 한다(제대로!).

 어쩌면 그래서 남자들은 탈선을 하고, 바람을 피우고, 거짓말을 하고, 갑자기 우울해하고, 여자들에게서 도망치고, 우스꽝스러운 모험여행을 떠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이 너무 과하기 때문에. 그들 앞에 놓인 장벽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들 중 대부분이 여자들을 섹스, 사랑, 부부, 관계 혹은 노동의 대상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남자로서 인정을 받고자 했다. 특히 여자들에게. ... 

 

posted by sergeant

 

'미국에서는 6.2분마다 한번씩 경찰에 신고되는 강간이 벌어지고, 여성 다섯명 중 한명은 살면서 강간을 당한'다는 내용은 물론, '하도 많은 남자들이 현 배우자나 옛 배우자를 살해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살인이 매년 1000건을 훌쩍 넘'고, '그 희생자 수가 매 3년마다 9.11 사건의 사망자수를 넘'지만 '이런 종류의 테러에 대해서는 누구도 전쟁을 선포하지 않는다'는 글의 내용을 곱씹으며
과연 대한민국은 천조국보다 더 살기좋고 안전한 나라이기 때문에 제대로 정비된 통계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걸까 의문이 든다.

토론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표정, 말투, 사상까지도 대단히 우월하다고 느껴지는 한 대통령 후보가, 객관적으로 봤을때 대적이라고 도저히 믿기 어려운 다른 후보로부터 가르침을 당하는 현상. 이 현상은 젠더문제와 합하여 질 때 더 분명히 이해되고,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로 다시금 명명된다. 그 맨스플레인을 만들어내는데 굉장한 역할을 한 작가 ...rebecca solnit의 책. 페미니즘의 좋은 입문서.

미국도 이 모든 진통을 다 겪어왔다. 판박이처럼 닮아있는 이 모든 현상들이 신기하고 놀라워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그나마 큰 위로가 된다. 이 모든 것들이 분명항 시대의 흐름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우리도 잘 해낼 수 있을거란 기대에.

 


 

 

 "6년 전에 내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라는 제목의 글을 쓰려고 앉았을때, 나 스스로 놀란 점이 있었다. 웬 남자가 나를 가르치려 든 우스꽝스러운 사례로 글을 시작했건만 결국에는 강간과 살인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맺게 된 점이다." P.197 "폭력은 무엇보다도 일단 권위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폭력은 내게 상대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살인은 그런 권위주의의 극단적 형태다. 살인자는 당신이 죽을지 살지 결정할 권리는 자신에게 있다고 살인을 통해서 단언하는 셈이다. 이것은 타인을 통제하는 궁극의 수단이다." P.45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