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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글을 날려먹어서 주옥같은 구구절절을 다 포스팅 할 순 없겠지만... 할수 없고.
이 책은 표지부터 컨셉, 서문까지 모두 다 마음에 들어서 집어들었고 재미있게 읽었다. 평범한 독일 남성이 일년간 여장남자로 살면서 겪은 일과 생각들을 적어둔 책이다. 여러 장면들에서 영화 '대니쉬걸'이 떠올랐으나, 작가는 트랜스젠더가 아니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남자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 꽤 중요한 포인트이다. 아무래도 '평범한 남자의 실험'이라고 보기에는 평범과 거리가 멀지만.. 평범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상인지 아는 사람으로서 그러려니..ㅎㅎ. 다만 중요하고 의미있는 실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
우선,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아래)에서는 잘 드러나 있지만, 본문에서는 여성으로서 살면서 느끼는 위협과 불편감들이 (작가가 여장을 하고 공원에서 성폭행 위협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였다면 이런 방식의 위협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했다. 성정체성이 남성인 이가, 여성으로 산다는 실험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작가의 '여성성에 대한 찬사'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힘이, 실제 체험 과정에서는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의 색채를 바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남자로 사는 동안 '남성으로서 완수해야 하는 기대와 압박'들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이러한 압박들이 남성들의 감수성을 거세시킨다고 느꼈다. 그러나 여자로서의 삶을 통해 압박들로부터 자유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장남자로서의 삶에 대단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여자들은 남성으로서의 완벽주의(약해지지 말라!)로 부터 자유로워 지면서 누군가가 나의 짐을 받아주고 에스코트를 통해 보호받는 대신, 책에서 보여지는 바처럼 '성적 대상화'되고, 나아가서는 동일 임금, 동일 급여가 보장되지 못하고,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이 당연한 것이 되며, 24시간 가사노동의 정당성을 부여받고.. 좀 더 나아가서는 성폭행 및 살해 위협으로 부터 안전하지 못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너무 많아..). 이들은 결코 같은 가치로 교환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여성으로서의 완벽주의도 존재하니까.
더불어 이러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이분법은 그 메시지가 아무리 긍정적인 것이라고 해도 온정적 성차별주의에 불과하다. 작가 역시, 체험기간 동안 많은 감정과 자기 검열과 주변의 불편함을 소화해 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도한 과제들은 우리의 고정관념과 차별주의적인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중요하다고 느껴졌던 이유는, 성차별주의적 사회에서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도 꽤 피해자라는 사실을 남자로서 고백했다는 점에 있다. 나는 이 부분이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매매 하는 보통 남성'의 입장을 지지해줄 마음은 없으나, 차별주의가 두 성별 모두를 좀먹는다고 믿는다.(2018년인 지금은 비록 이 생각이 달라졌지만, 이 글을 적던 당시에는 그랬다.) 그런 점에서 나도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경직된 역할 기대의 모순으로부터, 한걸음에 완전히 자유로워 질 수는 없겠지만.. 오랜 시간 동안 무비판적으로 받아왔던 모든 차별적인 시선들에 대해서 오늘도 조금 더 나를 정화시키고 싶다.
<책발췌>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 중,
여자로 살아보기 체험을 통해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남자와 여자에 대해 무척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성별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나는 처음 여자의 눈으로 여자의 삶을 보았고, 여자를 대하는 남자들의 태도를 경험했다. 여자의 눈에 비친 남자들의 태도는 결코 멋지지 않았다. 처음엔 좋은 남자처럼 보였더라도 순식간에 나쁜 남자로 전락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일까'라는 질문에 몰두하게 되었다.
"당신의 경험이 다른 나라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믿으세요? 아니면 유럽에만 해당된다고 보세요?"
여자로 사는 동안 가장 자주 받은 질문 중 하나이다. ...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본질적인 반응은 어디나 비슷하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사는 실제 우리의 삶은 현대 사회가 내세우는 평등과 크게 모순된다. 나는 이 책에서 그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남자와 여자가 '공존'하는 세상 한 복판에서, 남자와 여자가 내면에 모두 '공존'하는 한 사람으로서.
p.21
사람들은 우주를 서랍에 나누어 넣으려 한다. 아내는 '허영'과 '변태'를 얘기했다. 어떤 행동을 하자마자 나는 규범에서 벗어났고 그 즉시 나를 분류해 넣을 서랍이 마련되었다. 규범으로 가득한 서랍은 무인도나 마찬가지다. 활기도 생기도 없다. 서랍과 서랍은 아무 접촉도 하지 않는다. 인간은 서랍에 적힌 글귀에 따라 깔끔하게 분류된다. 서랍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회 전체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위험에 처한다.
p.34
나는 우리 사회의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대해 점점 더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남자 역할이 더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훨씬 인위적이다. 남자 역할에는 능력과 인정 욕구가 주입되어 있다. 거의 강압에 가까웠다. 반면 여자들은 그런 내적인 강압에서 자유로워 보였다. 여자의 삶이 더 의미 있고 여유로워 보였다. 여자의 세계는 생기 넘치는 신비한 천국 같았다.
p.35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억압받는 건 아닐까. 모두가 여성해방을 얘기한다. 그렇다면 남성해방은 필요 없을까. 남자들이 고장관념의 억압에서 벗어나면 여자들도 좋지 않을까. (좋죠!) 남녀의 갈등과 양극서이 사라지면 성역할도 기능을 잃게 될까. 어떤 사람은 하이힐을 신고 어떤 사람은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또 어떤 사람은 치마를 입고 이사회에 등장한다면(당연히 남자가), 회의 분위기가 어떨까? 복장 때문에 이사회가 쓸데없는 수다 모임으로 바뀔까?
p.48
"트렌스베스타잇(여성의 옷을 입음으로써 성적 만족을 느끼는 남성)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네요."
"고객 중에 트랜스베스타잇은 거의 없어요. 혹시 트랜스베스타잇이세요?"
"아니요."
"트랜스베스타잇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요. 대부분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죠. 의사, 회사원, 리무진을 타고 다니는 기업 간부, 기계 기술자 등등. 도축업자와 제빵사도 있어요."
"멀쩡한 사람들이 이런 걸 왜 산대요?"
"크리스티안 씨는 왜 사세요?"
"내 안의 여자를 알고 싶어서요. 그리고 여자 옷을 입으면 마음이 여유로워져요. 그런 기분을 더 많이 느끼고 싶어서요. 한 번쯤 남자가 아니어도 되는 해방감 같은 걸 거예요."
"바로 그거예요! 다른 손님들도 그런 여유로움을 갈망하는 거예요. 잠깐만요, 가발이 있어야 겠어요. 이거 어때요? 정말 예쁘죠!"
p.51
나는 성전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내가 남자라고 느낀다. 다만, 남자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싫을 뿐.
p. 94
고도로 발달한 우리의 문화와 자유가 끊임없이 남녀평등을 위해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고리타분한 옛날 규칙에 따른 남녀차이는 그대로인 것 같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에게, 혹은 여자가 남자에게 바라는 경직된 역할 기대는 모순에 부딪혔다. 내게 투사되었거나 내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 모든 성역할은,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인정할만한 가치도 없고 삶에 필요하지도 않다. 그것은 가상세계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기대를 채울 수도 없다.
짧은 기간이지만 여자로 살아보니, 남자로 살기가 더 싫어졌다. 남자들은 옛날 부족사회의 남성성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갇혀 신선한 바람을 쐬지 못한 채, 작은 우물에서 물장구만 치는 것 같았다. 반면 여자들은 오래전에 벽을 허물고 주어진 한계를 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낡은 이미지에 갇혀 멍하니 굳어 있지 않았다. 남자들과 얘기를 해보면, 그들은 '해방'이라는 단어를 남자에게 적용하기를 거부한다. 남성해방이란 말이 우스꽝스럽다는 반응이었다. ...
남성성에는 어떤 불가침성이 내포되어 있다. 불운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부터 남자들의 이런 자기이해가 거부할 수 없는 암묵적 규칙이 된 것 같다. 소위 강한 남자! 사나이의 맹세와 끈기! 모든 걸 손에 쥐고 모든 걸 이루고 모든걸 해결하고 언제나 이겨야 한다. 이것은 내게 오만을 넘어 사이비 종교의 광신처럼 느껴졌다. ...
남자들의 나르시시즘은 이렇게 구호를 외친다. 남자는 감수성을 보이지 않는다! 스타킹을 신지 않는다(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그들은 스타킹을 신었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는다! 게다가 빨간색은 말도 안된다! 그런데 오늘날, 고정관념과는 다른 남성성이 자라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문제 없음'이다. "나는 남자로서 아무 문제없다. 문제가 생긴다면 남자처럼 보이지 ㅇ낳을 것이다." 그러니까 남자는 반드시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한다. 문제가 생겨선 안 된다.
p.178
남자는 그냥 살기만 해선 안 되었다. 남자는 늘 뭔가를 성취해야만 했다. 심지어 하느님 앞에서도 뭔가 성과를 보여야 했다. 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반듸 한 여자와!), 아이를 낳고(많이!) 나무를 심어야 한다(제대로!).
어쩌면 그래서 남자들은 탈선을 하고, 바람을 피우고, 거짓말을 하고, 갑자기 우울해하고, 여자들에게서 도망치고, 우스꽝스러운 모험여행을 떠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이 너무 과하기 때문에. 그들 앞에 놓인 장벽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들 중 대부분이 여자들을 섹스, 사랑, 부부, 관계 혹은 노동의 대상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남자로서 인정을 받고자 했다. 특히 여자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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