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길이가 짧고 무게가 가벼운 책들로 준비해 보았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용까지 깊이가 없거나 지나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 책은 성평등교육이 가장 잘 이루어졌다고 여겨지는 스웨덴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필독서로 일컬어지는데,

막상 스웨덴에서는 페미니즘의 기치를 교육받고 자란 학생들에게 내용 자체가 좀 구식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한 칼럼니스트가 가벼운 불평을 했다는 얘기도 참 흥미로웠다.


남자만 혹은 여자만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좀 더 나아져야 한다'는 그녀.

따뜻한 시각으로 자신의 이야기기와 생각을 쉽고 담담하게 풀어가는 아디치에는 분명 매력적인 작가이다.

 

 


 

p.13

그는 내게 사람들이 내 소설을 두고 페미니즘적이라고 수군거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충고하기를,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슬픈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요, 나더러 절대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란 남편을 얻지 못해서 불행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이지리아 여성인 웬 학자가 나더러 페미니즘은 나이지리아 문화가 아닌 비아프리카적인 것이며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서구의 책에 영향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지적은 퍽 흥미로웠는데, 왜냐하면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 대부분이 분명 반페미니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열여섯까지 나는 당시 출간되었던 밀스앤분의 로맨스 소설을 아마 한권도 안 빼고 다 읽었을 걸요. 그리고 페미니즘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시도할 때마다 따분해져서 끝까지 읽으려면 안간힘을 써야만 했습니다.)

 아무튼 페미니즘이 비아프리카적이라고 하니까, 나는 이제 스스로를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 하나가 나더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이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더 나중에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남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농담이었지만, 이것만 보아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깔려 있는가, 그것도 부정적인 함의가 깔려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브래지어도 싫어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싫어하고, 늘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고, 유머감각이 없고, 심지어 데오도란트도 안 쓴다는 거지요.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루어진 세상..오늘도 뉴스를 보며 역시,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며, 명불허전..!!


p.20

남자와 여자는 다릅니다. 호르몬이 다르고, 성기가 다르고, 생물학적 능력이 다릅니다. 여자는 아기를 낳을 수 있지만 남자는 못 낳습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테스토스테론을 더 많이 갖고 있고 일반적으로 여자보다 육체적으로 더 강합니다. 세상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약간 더 많습니다. 세계 인구의 52퍼센트가 여성입니다. 하지만 권력과 명예가 따르는 지위의 대부분은 남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작고한 케냐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는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묘사했지요. "높이 올라갈수록 여자가 적어진다." 

... 남자들은 말 그대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합리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에는요. 당시에는 육체적 힘이 생존에 가장 중요한 자질이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남자가 육체적으로 더 강합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혀 다릅니다. 오늘날 지도자가 되기에 알맞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더 강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더 지적이고, 더 많이 알고, 더 창의적이고 더 혁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질들을 좌우하는 호르몬은 없습니다. 남자 못지 않게 여자도 지적일 수 있고, 혁신적일 수 있고,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요즘 육사든 어디든 여자들이 휩쓸고 있는걸 보면........ 오히려 에스트로겐이 자질을 좌우하는 호르몬인거 아닐까... 아무말...


p.23

 얼마 전에 나는 라고스에서 젊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관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 하나가 그 글을 읽고는 성난 글이었다며, 그렇게 성난 투로 이야기해서는 안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성이 나니까요. 오늘날 젠더가 기능하는 방식은 대단히 불공평합니다. 나는 화가 납니다. 우리는 모두 화내야 합니다. 분노는 예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노에 더해 내게는 희망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더 나은 자신으로 변하는 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p.30

 우리는 아이들의 인간성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남성성을 대단히 협소한 의미로만 정의합니다. 남성성은 좁고 딱딱한 우리와 같고, 우리는 그 속에 남자아이들을 밀어넣습니다.

 우리는 남자아이들에게 두려움, 나약함, 결점을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칩니다.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감추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남자아이는, 나이지리아 표현으로, 단단한 남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중학생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함께 외출하면, 둘 다 십대라서 용돈이 몇푼 없는 것은 똑같지만 늘 남자아이가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돈을 다 내야 한다고들 여깁니다. (그러고서는 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부모의 돈을 슬쩍하는 경우가 더 많을까 의아해하지요.)

 만일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남성서오가 돈을 연결 짓지 않도록 배운다면 어떨까요? "원래 남자애가 내는 거야" 대신 "남자든 여자든 돈이 더 있는 사람이 내는거야"라는 태도를 취한다면 어떨까요? 물론, 지금까지 누려온 이점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실제로 돈이 더 많은 사람은 대체로 남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부터 아이들을 다르게 키운다면, 앞으로 오십년 혹은 백년 뒤에는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물질적 수단으로 증명해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더는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사실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또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대단히 몹쓸 짓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 요령껏 맞춰주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자신을 움추리라고, 자신을 위축시키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망을 품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크게 품으면 안 돼. 성공을 목표로 삼아도 괜찮지만 너무 성공해서는 안 돼. 그러면 남자들이 위협을 느낄 테니까. 설령 남자와의 관계에서 네가 가장 노릇을 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는 특히 그렇지 않은 척 해야 해. 안 그러면 남자가 기가 죽을 테니까.


p.33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여성이라서, 사람들은 늘 내가 결혼을 갈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삶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서 행동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은 물론 좋을 수 있습니다. 결혼은 즐거움, 사랑, 서로에 대한 지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는 결혼을 갈구하도록 가르치면서 남자아이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요?

 내가 아는 한 나이지리아 여성은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할지도 모르는 남자의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갖고 있던 집을 팔았습니다.


p.35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어"라는 말은 남자든 여자든 공히 자주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그 말을 할 때는 보통 어차피 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포기한 경우입니다. 남자들은 짐짓 부아가 난 척하면서, 사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 우리 마누라가 매일 밤 클럽에 가는건 안 된다고 하잖아. 그래서 이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주말에만 가기로 했어."

 반면에 여자들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말할때는 보통 직장이나 경력이나 꿈을 포기한 경우입니다.

 우리는 여자들에게 남녀 관계에서는 원래 여자가 더 많이 타협하는 거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도록 가르칩니다. 일자리나 성취에 대한 경쟁이라면 좋을 수도 있다고 보지만, 그게 아니라 남자들의 관심을 놓고 경쟁하도록 가르칩니다.


,,,전 세계 남자들이 다 이런거였구나..


p.43

젠더는 대화하기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주제를 불편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짜증스럽게 여깁니다. 남자도 여자도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리며, 혹은 젠더 문제를 성급히 부정해버리려고 합니다. 현 상태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란 늘 불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p.44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되나요?" 왜 안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p.45

 또 어떤 남자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좋아요, 이건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는 젠더를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고요." 어쩌면 정말 의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문제의 일부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젠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거나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내 친구 루이스처럼, 옛날에는 상황이 나빴을지 몰라도 지금은 다 좋아졌다고 말한다는 점 말입니다. 그리고 많은 남자들이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만일 당신이 남자인데 식당에 갔더니 웨이터가 당신에게만 인사를 건넨다면, 웨이터에게 "왜 이 여자분에게는 인사를 안 합니까?" 라고 물어볼 생각이 들까요? 이렇듯 겉보기에는 사소한 상황들에서, 남자들이 나서서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문화를 만듭니다. 만일 여자도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우리 문화에 없던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문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p.90

 나는 요즘 나이지리아를 휩쓰는 오순절주의를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 ㅇ낳습니다. 나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는데, 내가 어렸을 때는 대부분의 나이지리아인들이 온화하고 중도적인 기독교인이었지요. 영국성공회 교회에 나가거나 가톨릭 성당에 나가거나 둘 중 하나였지요. 요즘은 어디에나 극단주의가 만연해 삶의 모든 측면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극단주의에는 미신이 어느정도 뒤따르기 때문에, 그들과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정신을 둔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이 오순절주의는 몹시 자기 중심적이고, 물질적 풍요에 집중합니다. 이 새로운 종교를 믿는 사람은 세상 무엇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종교는 전통지식에 적대적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전통 지식을 파괴하고 있어요. 그들이 파괴한 지식, 우리가 기독교 이전에 어떤 사람들이었나 하는 지식은 우리가 되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