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뒤에 오는 것들 - 16.09.21

독서/심리 2018. 6. 18. 16:12

 

상실 및 애도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부터 거대담론까지 망라한 책. 차근차근 곱씹어가며 읽었습니다. 상실에 대한 책은 넘쳐나지만, 상실 관련 책 3권을 내리 읽다가 발견한 보석같은 책입니다. 상실과 관련해서 많이 다루는 만큼이나, 크게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책을 찾기란 쉽지가 않기도 합니다.

 쉽게 읽힐거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그랬고.. 그러나 동시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우리 도처에 널린 깊은 상실로 아파했던, 아파하고 있는, 그리고 언젠가는 아파 할.. 그러나 잘 이겨낼 모든 분들께 권합니다.

 




전자책p.142

코미디를 본 뒤의 미소 여부는 별다른 연관성을 찾기 힘들었지만, 슬픈 영화를 보여준 경우에 한해서는 미소 여부와 장기적인 건강 간의 상관관계가 뚜렷이 나타났다. 즉, 재미있는 대상에 대해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하고 바람직한 것이지만, 이것으로는 건강한 정도에 대해서 가늠하기가 어렵다. 장기적으로 보면, 건강에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시련이 닥쳤을 때, 웃어 보일 수 있는 능력이다.


전자책p.157

루이스의 표현에 따르면, "육체적 고통은 1차 대전 당시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몇 시간이나 계속해서 참호 위로 쏟아지던 포화처럼 끝없이 지속될 수도 있다. 하지만 슬픔은 마치 공중에서 빙빙 돌며 저 아래 무엇인가 보일 때마다 폭탄을 투하하는 폭격기와도 같다." 슬픔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것은 슬픔이라는 참호 속에서의 휴식이다. 찰나의 행복과 기쁨을 찾아 내고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놀랄 만한 인간의 능력이다.


전자책p.167

회복력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아마 그것이 얼마나 흔한 것인가 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그에 대해 늘 놀라워한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솔직히, 수년간 상실과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를 해오고 있는 나조차도 인간의 강한 회복력에 종종 놀랄 때가 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그러한 놀라움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먼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문화적인 관점에서 설명 가능하다고 가정해보자. 다시 말해, 회복력에 대한 회의론은 사실 주로 유럽과 북미 지역 대부분의 산업화된 국가들의 소산임에 틀림없다. 서구인, 특히 미국인은 개인주의를 매우 중시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자율과 자유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며 감정에 주목한다. 다른이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알고 싶은 동시에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다른 이들이 알아주기를 바(...)

사별한 이들의 회복력에 대한 반응이 다양하듯, 문화권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경험하는 방식 역시 다양하게 나타난다. 산업화된 서방 세계만 벗어나도-일단, 지구상의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는 이 세계를 "비서구문화"로 단순히 분류하겠다- 사람들이 삶을 경험하는 방식은 결코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비서구 문화권에서는 개개인과 그 감정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느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일언고 있는지에 관해서보다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에 더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비서구 문화에서 사별은 슬픔과 비탄의 대상이기보다는 사람들이 하는 일, 즉 애도하는 사람이 주변에서 예상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지에 관한 문제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비서구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적절한 방식으로 의식을 행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의 회복력이라는 개념이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전자책p.366

 논리는 매우 단순해 보였다. 트라우마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에게 경험 보고가 도움이 된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틀림없이 동무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불행히도 이 논리에는 몇 가지 심각한 오류가 있다. 우선, 보통 사람의 트라우마 경험은 어떠한지 고려하지 않았다. 응급 구호 인력은 고도로 훈련된 이들이기 때문에 트라우마성 사건에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다. 예측할 대상도 알고 있다. 기본적인 트라우마 반응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도 알고 있다. 그리고 트라우마 반응을 겪을 때 어떤 기분인지도 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이를 알지 못한다. (...) 아무리 보아도 해로울 것이 전혀 없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사고 발생 후 3년이 지난 시점에, 1시간짜리 간단한 경험 보고 시간을 가졌던 환자들은 대조군에 속한 환자들에 비해 삶의 여러가지 영역에서 (악화 blah blah). 개입을 받지 않은 환자들은 대체적으로 사고 이후 4개월 이내에 자연적인 회복을 보였다. 반면, 초기에 괴로움을 호소한 환자들 중 경험 보고 시간을 가졌던 이들은 3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사고 후 3년 경과 시점에도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와 거의 동일한 수준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경험 보고가 환자들의 자연적 회복 과정을 방해했던 것이다. 이처럼 심각한 결론이 나오자, 정신의학계에서는 경험 보고에 관한 방침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2004년 쓰나미 참사 이후 수주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험 보고 요법을 시행하고자 자원봉사 치료사들과...[이후 이 경험보고 요법은 금지되었다].


전자책p.405

TMT 이론가들에 따르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잠재울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은 공유하는 문화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TMT 이론가들은 세계관을 "현실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인간들이 만들고 전승해온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믿음"이라 정의한다. 이러한 믿음의 일례로는 개인의 권리가 여타 윤리적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거나, 우리 자신이 속한 국가와 정치 체계가 여타 국가나 정치 체계보다 낫다는 믿음 등이 있다. TMT 이론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믿음이 "우주에 질서, 의미, 가치, 그리고 실질적인 혹은 상징적인 불멸의 존재 가능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공통의 믿음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보다 더 크고 더 영속적인 어떤 집단이나 문화, 더 큰 전체에 속해 있다고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는 영원한 존재가 된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우리가 세계관에 얼만큼 집착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는 우리는 대개 세계관을 일종의 관점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오히려 세계관을 객관적 사실이자 현실로 간주하고, 모든 사람이 그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믿음이 타인과 일치하는 정도를 과대 평가한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이러한 현상을 "허위 합의"효과 라고 한다. 이 효과를 밝혀낸 최초 실험에서는, 대학생들에게 '참회하다'라는 단어가 크게 쓰인 광고판을 앞뒤로 멘 채 캠퍼스 안을 걸어다닐 생각이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 광고판을 걸기로 동의한 학생들은 캠퍼스 내의 학생들 대다수도 그 광고판을 멜 생각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반면, 거절한 학생들은 학생들 대다수도 거절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 밖에도 많은 예가 있다.선거 기간 동안, 유권자들은 대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후보자가 실제보다 더 인기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며, 성적으로 활발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의 성적인 활동 빈도도 실제보다 더 높게 예상한다.

 

'독서 >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려움의 재발견 - 16.09.29  (0) 2018.06.18
위험한 심리학 - 16.09.22  (0) 2018.06.18
파리의 심리학 카페 - 16.08.25  (0) 2018.06.18
문제는 무기력이다 - 16.07.28  (0) 2018.06.18
잠의 사생활 - 16.07.26  (0) 2018.06.18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