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리더십 논쟁 - 2018.01.22

독서/종교 2018. 6. 18. 17:30

 

이 책은 여성리더십에 대한 평등주의적 관점과 상보주의적 관점으로 나뉜 두 토론에 대한 책이다. 상보주의적 관점이란 전통주의적 관점으로서 여성 리더십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책 이름을 접했을 때, 나는 내게 꼭 필요한 책이 드디어 새물결 플러스에서 발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상보적 관점’을 소개한 책의 내용 일부를 먼저 접하고 약간 화가 났다.  평소 새물결 플러스의 책은 믿고 구매하는 편이지만, 과연 전통주의적 관점을 평등주의적 관점과 나란히 놓은 책이 내게, 그리고 이 책을 읽을 여성들에게 가치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전통주의 관점들은 이미 모두가 다 잘 알고 익숙해져 있기에 지면을 할애하지 않아도 무리가 없지만, 평등주의적 관점들은 가뭄에 콩은커녕 존재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아무래도 논쟁이니까, 필수불가결 하다는 것쯤은 머리로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불쾌했다.


  이러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며 출판사 이벤트에 응모했는데, 내게 책이 배달되었다. 나는 이벤트에 응모할 당시 페미니스트인 몇 지인들에게 내 글을 공공연하게 공유했다. ‘이렇게 응모했는데도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시면, 제가 책임지고 리뷰 하겠습니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나의 지인들은 배달 된 책에 관심을 표했다. 그리고 나는 책을 통해 평등주의적 관점들로부터 얻은 귀한, 양질의 자료들을 그분들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 중 일부는 책이름을 확인하여 구매하기도 했다.) 마치 저자들이 논쟁을 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따뜻한 인사를 잊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그런 인사를 차용한다고 말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게도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표현했으나, 귀한 책을 보내주신 새물결 플러스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평등주의적 관점을 읽으며, 나는 린다와 크레이그의 세련된 유머와, 핵심을 찌르는 주장에 감명 받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사도들 중에 가장 뛰어난 자”인 유니아에 대한 발견이다. 그리고 194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번역본들은 그녀를 시종일관 남성으로 옮겼다는 사실까지도 참으로 주목할 만하다. 그녀가 성별이 바뀐 이유는 “사도”란 용어가 여성에게 사용될 수 없을 것이라는 추정 때문이다. 네 학자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여성’이었던 유니아의 발견은 그러한 만연한 삭제들에서도 살아남은 기록일 수 있겠다. 이 시점에서 나는 유니아가 마치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유관순열사처럼 느껴졌다. 지우고 지워냈지만 결국 하나만 남겨져 있는 유명한 여성운동가처럼. 그마저 없어지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걸까, 그런 존재. 그리고 더 다행히도 린다와 크레이그는 유니아 외에도 다양한 여성 리더십의 대표들을 제시해 낸다. 미리암, 드보라, 훌다, 브리스길라... 특히 마리아에 대한 크레이그의 <마리아는 제자의 자세를 취했다> 해석은 만약 현대에 예수님이 활동하셨다면 그의 가장 수제자가 마리아가 아니었겠냐는 동료들의 의견을 다시금 곱씹게 해준다.
  지워지는 여성에 대한 문제는 비단 성경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여성의 역사는 지워진다. 세탁기를 발명한 이는 여성이었으나(마가렛 플렁켓 콜빈) 얼마전 나는 유투브 Prager University에서 발간한 feminism 동영상에서 “세탁기를 발명한 것은 남자였다”고 말하며 현대 페미니즘에 대해 비판하는 여성인 교수를 보고 경악했다.(4분11초_https://www.youtube.com/watch?v=ZR9FHKKbMZo) 그 뿐일까,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에서 지워졌다는 수많은 여성운동가들의 존재는? 이러한 예는 굳이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겠다. 얼마 전 영화<1987>만 해도, 고문가해자 미화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여성의 존재를 축소하고 왜곡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예시들은 끝도 없으니 이 정도에서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
  여성에 대한 억압은 아주 오래된 역사이다. 나는 책에서 자신들을 상보주의자라 부르는 전통주의자들을 통해 그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시각에서는 아주 관대해 봤자, 여성을 여전히 도움을 주어야 할 시혜적인 대상으로 보는 태도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굳이 지적하고 싶지 않다.

  평등주의 관점을 통해 많은 쾌감을 얻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도 있었다. 두 평등주의자들은 여성의 안수권과 리더십에 대한 내용은 적절하게 옹호하면서도 ‘세속 페미니스트’와 ‘동성애’를 자신들과 구분하는 의견을 공공연하게 표현한다. 실상은 세속 페미니스트들의 투쟁 덕분에 1918년에는 영국에서, 1920년에는 미국에서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게 되었는데도 말이다. 또한, 그들이 강하게 반대하는 동성애자들의 경우에는 일부의 목사님들께서 이미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한 해석을 곁들여 동성애를 죄로 치부하는 것에 대해 반대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다만 나는, 평등주의자들이 배제하는 동성애자들이 예수님 안에서 수용되어야 할 존재라는 것에 강하게 동의하면서도, 결국에는 그들이 오랜 시간 후에 모두 교회에서 환대받게 되었을 때에조차 여전히 교회의 허드렛일과 식당일과 온갖 잡무들을 다 맡아 하면서도 최종 리더십 자리에는 절대 오를 수 없다는 소릴 듣고 있을 것 같은 자매들을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많은 이들에게 추천할 것이다. 지워진 역사에 대한 발굴과, 맥락과 역사를 통해 성경을 읽어내는 통찰을 함께 하고 싶으니까. 각종 혐오의 선봉에 서 있는 기독교를 정화하고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할 건전한 논쟁의 내용들이 이 책에 담겨 있으니까.

   다시 한번 좋은 자료들을 책으로 였어 주신 새물결 플러스에 감사를 드린다.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