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0/2020] 초등학생이던 나

카테고리 없음 2020. 6. 21. 00:10



본가에 내려와 있다.
엄마가 내가 보고 싶고, 같이 차를 마시고 시간도 보내고 싶다고 하셔서.

성인이 된 후 계속해서 느끼던 친숙한 감정이지만
부쩍 요즘 주변 어른들과 대화 하다 보면
다들 나이 드신게 느껴진다.
내가 힘이 생기고, 삶이 통제 가능하다고 느끼게 된 만큼, 딱 그 만큼
그 분들의 손에 힘이 빠지고 그리움이 늘어가신다고 생각하면
세월의 무상함과 그 정확함이 무섭게 느껴진다.

어쨌거나
이번 방문엔 친구들도 보지 않고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식사와 대화를 하고 영화관에 가고
밤마다 엄마와 산책을 한다.

그리고 자기 전에는 어린 내가 써 둔 일기를 읽는다.

초등학생 때, 중학생 때, 그리고 고등학생 때 쓴
일기장도 있고 독후감을 써 둔 글들도 있다.
친구들과 교환일기도 있고
내 독후감에 다른 친구들이 코멘트를 해 둔 것도 있다.

그 중 2002년즈음에는 유난히 일기를 많이 써 두었다.
초등학생 일 때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그 때의 나는 지금처럼
생각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참 많고
다짐도 많이 하고
공부를 좋아 한다.
검도를 하고 싶다며 “취미로 운동 하나쯤은~ 가지는게 좋지 않을까~” 라고 엄마에게 요청할 대사를 미리 생각해 적어둔 어린 나를 생각하면. 내가 아는 나 자신보다 긍정적이고 귀여운 구석도 많았네 싶다.

새로운 모습도 발견한다.
나는 내가 이성에 관심이 많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구나 싶다.
동성인 친구들과 노는 얘기를 많이 적어두었고
친한 언니와 싸우고 또 언니가 이사가서 슬퍼하고,
철 없는 남자애들을 씹고
독신으로 살겠다고 생각했으며 (이부분은 정말 깜짝 놀랐다)
마찬가지로 기억 못 했었지만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시기도 있었다.
의외로 내 자신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고, 여전히 그 부분들이 유효하다.

오늘 밤에 접한 재밌는 부분은 2002년 후반의 일기를 누군가와 교환했던 것 같은 흔적도 있단거다. 화살표 다음의 글씨체가 내것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지금 나는 과거의 그 아이와
얼마나 다른 사람일까 사실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20년 후의 나도 지금의 나와 아주 많이 다른 사람일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성인 초기를 지나면 변화하고 성장하는게 쉽지는 않은 일이니까.
그래도 좋은 쪽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 많이 성장했으면 좋겠고,
삶의 많은 부분을 느끼고 깨달았으면 좋겠고
동시에 나의 핵심적인 어떤 부분은,
변하지 않고 지키고 싶다.

그럼 그 때 지금의 일기들을 보며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싶어질까?
나의 단면들을 꺼내어 보며 지금을 환기하고 추억하게 될까.

어린 나를 만나면 이야기 해 주고 싶다.
미래의 불투명함을 점치고 가늠해 보던 어린 ㅇㅇ야.
언어를 찾지 못해 미처 다 표현 못한듯 하지만..
지금의 가진 것에 감사 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고민하고 늘 궁금해 하던 어린이.

걱정마. 다 잘 될거야. 너는 지금보다 아주 더 많이 단단하고 행복해 질거란다.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