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16.07.01

독서/종교 2018. 6. 18. 17:04

 

 

1년 반동안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던 기독교인 학생 하나가 '미움 받을 용기'를 읽고 재밌었다며 심리학 관련된 책을 추천해 달라길래 몇권과 함께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추천했다.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의 경우에는 대학원 들어가기 전에 읽었던 오래된 책이고, 당시에 나는 이 책 덕분에(?) '말씀의 검으로, 잘못된 심리학 지식들에 정면승부 할' 훌륭한 "학자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웠었다. 지금도 궁극적인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책에는 당시처럼 적극적으로 동의하기에는 어려운 전제들이 꽤나 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내가 종종 상담을 통해 만나게 되는 '신실한 기독교인 내담자'들에게서 느끼는 불편감과 매우 비슷하다.


 보통 심리학은 인간의 '선함'과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옹호한다고 한다.(이건 긍정심리학 등 몇에 국한된 부분이지만 그냥 편하게, 직관적으로 그렇다고 치자) 반면에 기독교의 인간관은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이다.

 어린시절부터 엄한 기독교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일 수록, 인간관에 있어서 중요한 명제는 '인간은 죄인이다'라는 문장일 것이다. 이건 믿음과 구원의 여정에 있어 첫 걸음마와도 같다. 그런데 이 명제에서 좀 더 나아가면, 사람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감정들이 '죄악시'되면서, 부정 해야할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특히 욕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부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모습의 경우 더 억압해야 할 것처럼 보여진다. 이 시점부터, 순종적이고 믿음이 좋다고 여겨지는 학생들은 내적 어려움이 심화된다. 그래서 가면을 쓰게 되거나, 아니면 아예 기독교적 가치관들에 대해 반발을 하게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95% 둘 중 하나다. 왜냐? 부정적인 감정이나 모습은 억눌러서 없앨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전자, 즉 가면을 쓰게되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반발 하는 후자는 내적으로는 꽤나 힘이라도 있는 친구들이다. 


 사실 사람이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기 싫어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이다. 이것은 기독교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연약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느껴진다. 모두에게 그렇다. 그런면에서, 오히려 비기독교인들은 '연약함은 숨기는게 자연스럽다'를 비교적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유리한 지점에 있다. 반면 기독교인들은 연약함을 숨기고 싶어하는 욕구 조차도 공격을 받는 불리한 지점에 있다. 그러나 안전함이 뒷받침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자살행위와도 같다. 역설적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연약함을 드러냈을 때 그것이 더 강력한 파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 공동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개의 힘이 나는 이 부분에서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나를 죽이는 것. 내가 무익함을 타인에게 알리는 것. 철저한 복종과 완전한 죽음. 이건 구원과도 연관이 되겠다. 


 그런데 많은 교회공동체에서는 (가장 기본 요건인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 주지 못한 채로) 연약함을 드러내라고 얘기하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연약함 때문에 "거봐~) 너는 죄인"이라고 얘기한다. 어쩌면 연약함과 그로 인한 회개의 관점을 가진 공동체는 차라리 건강한 것일수도 있다. 아예 '장로님 딸이 왜저래' '목사님 아들인데 왜 저래'가 오히려 더 흔한 반응이다. 그런데 나는...그 연약함 자체 때문에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 약함, 혹은 악함은 현상 일 뿐이다. 그리고 인간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부분이다. 이걸 문장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이자 진행형이다.  


 다른 측면에서, 사실 나는 자신이 죄인됨을 인정하는 것이 교육이나 외부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뜻밖의 회심>에서 로자리아 버터필드의 말에 더 공감이 된다. "그 때까지 내가 들어봤던 간증들은 모두 에고와 자만이 가득한 것들이었다. 그리스도를 선택한 내가 정말 장하지 않나요?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한 내 결정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내 삶을 주님께 바치기로 결단했어요. 아직 길을 발견하지 못한 저 이방인들 보다 얼마나 훌륭한지 모르겠어요. (중략) 나는 그리스도를 택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택하실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 뿐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부르시면 나는 응답을 해야 한다. 응답을 할 수 밖에 없다. 그게 이야기의 전부이다."

 

 만약에 나 자신의 죄인됨을 교육이나 일방적인 선생님의 요구에 의해서 인정하게 할 수 없다면, 어린 아이들을 위한 근본적인 기독교 교육은 조금 다른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도 또한 마찬가지다. "당신은 죄인입니다"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이 과연 옳은 접근인지 의문이다. 게다가 그걸 가르치는 본인 자신도 이미 죄인이잖아... 차라리 저는 죄인입니다,가 나을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물론 나는..현재로선 이상적인 교육이나 접근 대안을 제시할 수가 없다ㅋ 그래서 참 어렵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알게되는 하나님은 그리 단편적인 분은 아니시다. 어떤 사안에 대한 태도를 정하고 싶어서 아주 오래전부터 씨름했던 문제들도 있다. 그런데 주님은.. (별로 안 단호해도 될것 같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하시면서도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참 지난하게도 단정 하지 않으신다. 답답하다. 그렇지만.. 그래서. 날마다 더 새롭고, 참 감사하고, 이해할 수 없고 응답이 없으셔서 좀 짜증날 때가 많고. 그래도 여전히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선하신 주님이다.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