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무의식 - 대학원 스페셜 1

독서/심리 2018. 6. 18. 16:51

대학원 시절 읽었던 책 중에 몇권을 정리해 둔 파일들을 발견했다.

읽었던 모든 책들을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던 책 몇 권을 정리해 둔 것이라 현재 블로그에도 옮겨 둔다.

 


<책발췌>

 

누구나 살면서 개인적, 금전적, 사업적 결정을 내리며, 자신은 중요한 요인들을 모두 적절히 가늠하고 그에 따라서 행동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어떻게 결정에 도달했는지를 잘 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의식적 영향력만을 지각하고, 우리가 아는 정보는 부분적이다. 따라서 우리가 자신과 자신이 동기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흡사 대부분의 조각들이 사라진 퍼즐과 같다. 우리는 추측으로 그 빈칸을 메우지만, 사실 우리를 둘러싼 진실은 우리가 의식적, 합리적 마음의 단순한 계산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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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식한다. 경험을 기억한다. 판단한다. 행동한다. 그리고 이런 행위를 할 때, 지각하지 못하는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다. 앞으로 나는 무의식의 여러 측면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사례를 더 많이 소개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뇌가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 평행한 층위를 통해서 정보를 처리한다는 것을 살펴보자. 당신은 무의식의 힘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무의식은 정말로 활동적이고, 목적적이고, 독립적이다. 비록 숨어 있지만, 그 효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무의식은 의식이 세상을 경험하고 반응하는 방식에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마음의 숨은 영역을 둘러보는 첫 단계로, 우리가 어떻게 감각신호를 받아들이는지부터 살펴보자. 우리가 물리적 세상에 관한 정보를 흡수하는 경로에는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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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단순한 물리적 기관이 아니라 그 소유자가 양육된 전통에 따라서 조건화된 인식 수단이다.- 루스 베네딕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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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 또다른 독일 생리학자 빌헬름 분트는 작센 왕국 교육부에 세계 최초의 심리학 연구소를 세울 자금을 요청했다. 청원은 거절당했지만, 분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1875년부터 이미 비공식적으로 사용해왔던 작은 교실 하나를 연구소로 삼기로 했다. 같은 해, 하버드 대학교의 의학박사 출신으로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비교해부학 및 생리학을 가르치던 윌리엄 제임스는 생리학과 심리학의 관계라는 새로운 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또 로런스 홀 지하의 방 두 개에 비공식 심리학 연구소를 차렸는데, 그곳은 1891년에 하버드 심리학 연구소라는 공식 지위를 얻었다. 베를린의 한 신문은 두 사람의 선구적 노력을 기리는 의미에서 분트를 구세계의 심리학 교황으로, 제임스를 신세계의 심리학 교황으로 명명했다. 심리학이 과학적 발판을 딛게 된 것은 이 두 사람의 실험과 베버에게서(분동의 무게차를 느끼는 실험을 통해 정신적 과정의 수학적, 과학적 법칙을 밝혀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람) 영감을 받은 다른 연구자들의 실험 덕분이었다. 신생 분야는 새로운 심리학이라고 불렸고, 한동안 과학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분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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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확실한 점은, 이 이중체계에서 무의식이 더 근본적인 층위라는 것이다. 무의식은 진화의 역사에서 일찌감치 발달했다. 생물이 외부세계를 느끼고 안전하게 반응함으로써 기능과 생존의 기초적인 요구들을 잘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무의식은 모든 척추동물의 뇌에 표준으로 갖추어진 하부구조이지만, 의식은 선택사항에 가깝다. 인간이 아닌 대부분의 다른 동물들은 의식적, 기호적 사고력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산다. 반면에 무의식이 없다면 어떤 동물도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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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이 보여준 현상- 눈이 온전한 사람은 의식적인 시각적 감각이 없어도 어떻게든 눈에 접수된 자극에 반응하는 현상- 맹시(blindsight)”라고 불린다. 이 중대한 발견은 처음 발표되었을 때 불신과 조롱의 빙수음을 일으켰고”, 최근에서야 사실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어찌보면 이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의식적 시각계는 기능을 잃었으나 눈과 무의식 체계는 온전한 상황이라고 보면, 맹시는 완벽하게 말이 된다. 맹시라는 이 희한한 중후군은 뇌의 두 층위가 독립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유독 극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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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아이들에게 언제나처럼 지나친 포옹과 키스를 퍼부을 때, 나는 이 순간이 아이들의 기억에 남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아이들은 잊을 것이다. 정당한 이유에서. 나도 아이들이 셰레솁스키처럼 잊지 못하는 인생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포옹과 키스는 종적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뭉뚱그려져서나마 다정한 감정과 정서적 유대가 되어 남는다. 부모님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의식이 알고 있는 구체적인 일화들로 만들어진 작디작은 그릇에서 철철 흘러넘친다. 나는 나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이기를 바란다. 순간은 영원히 잊힐지도 모르고, 뿌옇거나 왜곡된 렌즈를 통해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순간의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남고, 무의식에 스며든다. 그것들은 무의식에 존재하면서, 우리가 소중한 사람을 떠올릴 때 풍성한 감정이 퐁퐁 샘솟도록 한다. 우리가 한두 번 만나본 사람들을 떠올릴 때, 한때 살았거나 방문했던 이국적인 장소들과 평버한 장소들을 떠올릴 때, 자아를 형성했던 사건들을 떠올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뇌는 우리가 겪은 인생 경험에 대해서 그럭저럭 일관된 경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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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과정에서 완벽함은 포기되어도 괜찮지만, 충분함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겸손과 감사의 교훈을 배운다.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제아무리 굳게 믿는 기억이라도 충분히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기억을 보유할 수 있다는 점을, 또한 모든 기억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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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고통과 물리적 통증의 연관성은 우리의 정서와 몸의 생리적 과정들 사이에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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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과학자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요구가 인간의 뛰어난 지능을 진화시킨 동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뛰어난 지적 능력 덕택에 이 세상이 굽은 시차원 시공간 다양체임을 깨달은 것은, 그야 물론 멋진 일이다. 그러나 초기 인류의 생존이 GPS기기로 가까운 초밥집을 잘 찾아가는 것에 좌우되지 않았던 이상, 그런 지식을 발달시키는 능력은 종의 생존에 중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뇌의 진화를 이끈 동인일 수 없었다. 반면에 사회적 협동에 필요한 사회적 지능은 인간의 생존에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다른 영장류도 사회적 지능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 수준은 인간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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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개나 고양이 혹은 원숭이와 비교할 때, 아이큐가 인간과 그들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하다. 그러나 지능이 정말로 사회적인 목적에서 진화했다면,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하는 주된 특징은 사회적 아이큐인 셈이다. 특히 인간에게는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려는 욕구와 능력이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마음의 이론이라고 불리는 이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타인의 과거 행동을 이해하고 현재나 미래에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는 기량이 뛰어나다. 물론 마음의 이론에는 의식적, 이성적으로 따지는 요소도 있다. 그러나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이론화하는과정은 대체로 의식 아래의 활동으로서, 민첩하고 자동적인 무의식적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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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수컷의 생식적 성공은 다른 수컷들과 경쟁하여 가급적 많은 암컷들과 짝짓기 하는 데에 달려 있다. 따라서 수컷들은 좀처럼 강한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지 않는다. 수컷들의 연합은 친화적 행동보다는 공격적 행동이 강조되는 위계적 관계일 때가 많다. - 모자 유대와 포유류의 사회관계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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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수립에서 흔히 보는 장면을 묘사한 것처럼 들리지만, 이 논문은 사실 비인간 포유류들의 행동을 논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 남성과 수소, 수고양이, 숫양의 차이는 다른 포유류들에게는 술집이 없다는 점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온 세상이 술집이라는 점일지도 모른다. 논문에서 여성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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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의 생식 전략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자손 생산에 투자하는 것이고... 그 성공은 보살핌의 질과 젖을 뗄 때까지 새끼를 살려두는 능력에 달려 있다. 따라서 암컷들은 새끼들과 강한 사회적 유대를 맺고, 암컷들끼리도 강한 친화적 관계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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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친숙한 이야기이다. 물론 포유류의 행동에 대해서 일반적으로지나친 해석을 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지만, 위의 사실을 알면 어째서 파자마 파티를 열거나 독서 클럽을 조직하는 것이 대체로 여성들인지, 그리고 어째서 내가 공격적이지 않고 친화적으로 행동하겠노라고 굳게 맹세해도 그들이 나를 어느 모임에도 끼워주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다만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더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인간 행동의 진화적 뿌리는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똑같이 발겨되고, 따라서 동물들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에 대해서 조금쯤 알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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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포유류 중에서도 일부일처를 지키는 종들은 뇌의 그 영역에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 수용기가 많다. 반면에 난교성 밭쥐는 그 수용기가 적다. 과학자들이 초원 밭쥐의 뇌를 조작하여 수용기를 늘렸더니, 혼자 다니던 초원 밭쥐가 갑자기 사촌 프레리 밭쥐처럼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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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신경과학자들은 흔히 뇌를 세 영역으로 나누는데, 기능, 생리, 진화적 발달을 기준으로 삼아서 거칠게 나누는 것이다. 그중 가장 원시적인 영역은 파충류 뇌(reptilian brain)"이다. 파충류 뇌는 먹기, 숨 쉬기, 심장박동과 같은 기초적인 생존 기능을 담당하고, 싸움 혹은 도주(flight-or-fight)본능을 끌어내는 두려움이나 공격성과 같은 원시적 감정들도 담당한다. 모든 척추동물-조류,파충류,양서류,어류,포유류-에게는 파충류 뇌가 있다.

두 번째 영역인 변연계(limbic system)는 좀 더 세련된 구조로, 무의식적인 사회적 인식의 근원이다. 이 복잡한 체계에 대한 정의는 연구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원래는 해부학적으로 규정되었지만 이 후에는 기능적으로, 즉 사회적 감정 형성에 필수적인 뇌 체계를 가리키는 말로 정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변연계는 동그란 고리형 구조로 정의될 때가 많은데, m 중 일부는 앞에서 이미 이야기했다. 복내측 전전두엽피질, 배측전방 대상피질, 편도, 해마, 시상하부, 바닥핵 구성 요소들, 그리고 가끔 안와전두엽피질까지 포함된다. 변연계는 반사적인 파충류적 감정을 강화하고, 사회적 행동의 타냉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변연계의 여러 구조를 이따금 오래된 포유류 뇌라고도 통칭하는데, 모든 포유류가 가지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세 번째 영역인 신피질(neocortex), 새로운 포유류 뇌는 그렇지 않다. 원시적인 포유류에게는 보통 신피질이 없다.

신피질은 변연계의 대부분을 위에서 덮고 있다. 2장에서 설명했듯이, 신피질은 여러 엽으로 나뉘고 인간은 그 크기가 매우 크다. 우리가 뇌라고 하면 보통 떠올리는 것이 바로 이 신피질의 회색질이다. 2장에서 나는 후두엽을 언급하면서 머리 뒤쪽의 그곳에 주 시각처리 중추가 들어 있다고 말했고, 이번 장에서는 이름 그대로 머리 앞쪽에 있는 전두엽을 언급했다.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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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하버드의 세 연구자가 아시아계 미국인 여학생 수십 명에게 까다로운 수학시험을 실시했다. 시작하기 전에 피험자들은 자신에 대한 설문지를 작성해야 했다.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은 서로 대립하는 규범을 가진 두 내집단에 소속되어 있다. 아시아계라는 집단은 수학을 잘 하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여성이라는 집단은 수학을 못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피험자들 중 한 무리는 자신과 부모와 조부모가 어떤 언어를 쓰는지, 가족이 미국에서 몇 대째 살고 있는지 묻는 설문지를 받았다. 이것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떠올리도록 설계된 질문들이었다. 다른 피험자들은 남녀공동 기숙사 정책에 대한 설문에 답했다. 이것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떠올리도록 설계된 질문지였다. 세 번째 대조군은 전화와 케이블 TV 서비스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피험자들은 수학시험이 끝난 뒤에 출구조사도 받았다. 피험자들이 출구조사 설문지에서 스스로 보고한 바에 따르면, 최초의 설문이 그들의 능력이나 시험에 대한 의식적 평가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의 무의식은 분명히 영향을 받았다. 자신을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생각하도록 조작된 여성들은 통제군에 비해서 수학시험 성적이 더 좋았고, 통제군은 자신이 여성 내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떠올린 여성들에 비해서 성적이 더 좋았다. 내집단 정체성은 타인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요, 스스로에 대한 느낌, 행동방식, 가끔은 성과에조차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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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 더 우월하다고- 느끼기 위해 기꺼이 투자한다. 우월감의 근거가 제아무리 박약하더라도, 심지어 그럼으로써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는 결과가 되더라도 말이다.

더 없이 사소한 근거로도 집단 차별이 구축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각보다 작은 노력으로 그 근거를 없앨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로버스 케이브 실험으로 돌아가보자. 셰리프는 단순한 접촉만으로는 독수리들과 방울뱀들의 상호 부정적 태도를 누그러뜨릴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다른 전략을 쓰면 가능했다. 셰리프는 두 집단이 힘을 합쳐서 극복해야만 하는 난관들을 마련했다. ...

이처럼 공통의 목표를 부여하고 집단 간의 협동을 요구하는 여러 시나리오를 주자, 갈등은 급격히 줄었다. 셰리프는 집단 간 상호작용의 패턴이 놀랍게 변했다.”고 썼다. 인종, 민족, 계급, 성별, 종교처럼 전통적인 내집단에서도 구성원들이 협동을 유익하게 여길수록 서로에 대한 차별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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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험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해보라고 묻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기는 하겠지만, 어떤 깊은 감정들은 아무리 심오한 내성법으로도 그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감정에 대한 심리학의 전통적 가정들 중에는 유효하지 않은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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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명한 신경과학자가 내게 말했다. “나는 심리 치료를 몇 년이나 받았습니다. 내가 왜 이런저런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알고 싶어서요. 나는 내 감정과 동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을 치료사에게 말했고, 마침내 합리적인 듯한 이야기를 얻었고, 만족스러웠습니다. 나에게는 스스로 믿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일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진정한 진리는 내 시상, 시상하부, 편도, 이런 구조들에 있겠지요. 그러나 내가 내성법으로 아무리 나를 들여다보아도 그것들에 의식적으로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려면, 그럼으로써 자신이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려면, 먼저 자신이 내리는 결정과 행동의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그 기원을 알아야 한다. 대체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할까?

단순한 것부터 시작하자. 통증이라는 감정은 어떨까? 통증이라는 감각적, 정서적 감정은 특징적인 신경 신호에서 생겨나며, 삶에서 확실하고 명백한 역할을 수행한다. 통증은 우리에게 벌겋게 달아오른 프라이팬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망치로 엄지를 찧은 것을 벌하며, 6가지 상표의 싱글몰트 스카치를 조금씩 맛볼 때는 더블로 만들지 말라고 일깨운다. 당신은 간밤에 당신을 와인 바로 데려간 재무분석가에 대한 감정을 친구가 옆에서 끌어내기 전에는 미처 몰랐을 수도 있지만, 지끈거리는 두통은 남의 도움 없이도 당신이 스스로 접촉할 수 있는 감정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문제가 언제나 이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유명한 플라세보 효과가 그 증거이다.

플라세보 효과라고 하면, 설탕으로 만들어져 아무런 효능이 없는 가짜 알약이 떠오르고, 사람들이 그 약효를 믿는 한 가짜 알약도 타이레놀 못지 않게 가벼운 두통을 잘 덜어준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러나 플라세보 효과는 그 이상으로 훨씬 강력하다. 예를 들어보자. 협심증은 심장벽 근육에 혈액 공급이 충분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만성 질병으로, 대개 극심한 통증을 일으킨다. ... 1950년대에 의사들은 통증이 심한 환자들에게 치료법으로 가슴 안에서 일부 동맥을 묶어버리는 수술을 적용했다. 그러면 근처의 근육에서 새로운 통로가 생겨나서 순환이 개선된다고 했다. 많은 환자가 수술을 받고 성공적으로 치료된 듯 보였다. 그러나 의사들이 놓친 점이 있었다. 나중에 병리학자들이 그런 환자들의 사체를 검사했더니, 새로 생겼으리라고 예상되었던 혈관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수술은 환자들의 증상 완화에는 성공했지만 원인 치료에는 실패했던 셈이다. ... 자신이 적절한 외과적 치리를 받았다고 믿은 두 집단 모두가 수술 전에 비해서 통증이 크게 줄었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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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6

감정에 대한 오늘날의 지배적 견해는 프로이트가 아니라- 그는 우리가 억압기제 때문에 무의식의 내용을 자각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윌리엄 제임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에서도 여러 맥락에서 언급했던 이름이다. 제임스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1842년에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대단한 부자로, 막대한 재산 중 일부를 써서 가족과 두루 여행을 다녔다. 제임스는 열여덟 살 때까지 유럽과 미국, 즉 뉴욕, 로드아일랜드의 뉴포트, 런던, 파리, 프랑스 북부의 불로뉴쉬르메르, 제네바, 본 등 최소한 15군데의 학교를 전전했다. 그의 관심사도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휙휙 바뀌었다. 그는 미술, 화학, 군사학, 해부학, 의학에 잠깐씩 손을 대면서 15년을 보냈다. 한번은 하버드의 유명 생물학자 루이 아가시의 초청으로 브라질 아마존 강 유역으로 원정을 떠났는데, 그곳에서 제임스는 내내 뱃멀미를 했고 천연두까지 걸렸다. 결국 그가 끝까지 마친 공부는 의학뿐이었다. 그는 1869년에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하버드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평생 한버도 개업을 하거나 의학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제임스가 심리학에 끌린 것은 1867년 독일의 어느 광천수 지역을 방문한 때였다. 아마존 여행에서 얻은 건강 문제 때문에 요양차 간 곳 이었다. 16년 뒤에 뮌스터베르크가 그랬듯이, 제임스는 빌헬름 분트의 강의를 듣고서 이 주제에, 특히 심리학을 과학으로 정립하는 과제에 매료되었다. 그는 독일의 심리학, 철학 문헌을 읽기 시작했으나 일단 하버드로 돌아와서 의학 학위를 마무리해야 했다. 그러나 하버드를 졸업한 뒤에 그는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 당시 그의 일기에는 비참함과 자기 혐오가 가득하다.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제 발로 매사추세츠 주 서머빌의 정신병원에 들어갈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회복된 것은 그곳에서 받은 치료가 아니라 프랑스 철학자 샤를 르누비에가 쓴 자유의지에 대한 에세이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그 글을 읽고서 자신도 자유의지로 우울증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그는 이후에도 18개월동안 무력한 상태에 빠져 있었고, 남은 평생 만성 우울증에 시달렸다.

1872년 무렵에 제임스는 하버드에서 심리학 강의를 맡을 정도로 회복했다. 1875년에는 생리학과 심리학의 관계라는 과목을 가르침으롰 하버드를 미국 최초의 실험심리학 교육기관으로 만들었다. 제임스가 자신의 감정 이론을 발표한 것은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후였다. 그는 1884년에 감정이란 무엇인가?(What is an Emotion?)"라는 논문을 썼느넫, 이것은 심리학 학술지가 아니라 마인드(Ming)라는 철학 학술지에 실렸다. 심리학 연구를 다루는 최초의 영문 학술지는 1887년에서야 창간되었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논문에서 놀람, 호기심, 환희, 두려움, 분노, 욕정, 탐욕 등등의 감정을 다루었다. 이런 감정에는 빨라진 호흡이나 맥박, 몸과 얼굴의 움직임과 같은 신체적 변화가 동반된다. 어릿 보면 문제의 감정 때문에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지만, 제임스는 그런 해석이 정확히 거꾸로라고 주장했다. “내 논지는 그와 반대이다. 신체적 변화는 자극적 사실에 대한 인식에 직접적으로 뒤따르고, 그런 변화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 곧 감정이다. ... 인식에 뒤따르는 신체적 상태가 없다면 인식은 그저 인지적 형태에 머무를 것이다. 창백하고, 색깔 없고, 감정적 온기가 결여된 상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화나서 떨거나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다. 떨기 때문에 화를 깨닫고, 우리 때문에 슬픔을 느낀다. 제임스는 감정에 생리적 기반이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감정을 느낄 때 뇌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과정을 뇌 영상 기술로 볼 수 있게 된 오늘날, 제임스의 생각은 사실로 통한다.

오늘날 신()제임스적 시각에서는 감정도 인식이나 기억처럼 주어진 데이터로부터 재구성되는 것으로 본다. 데이터의 많은 부분은 무의식에서 온다. 감각이 포착한 환경적 자극을 처리하여 생리적 반응을 구성하는 것이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뇌는 또 기존에 품고 있었던 신념과 기대,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 등 다른 데이터도 동원한다. 그 모든 정보가 처리됨으로써 비로소 의식적인 정서적 감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은 협심증 연구를 설명해주고, 더 일반적으로 통증에 대한 플라세보 효과를 설명해 준다. 통증이라는 주관적 경험이 생리적 상태와 맥락적 데이터 양쪽으로부터 구성되는 것이라면, 마음이 똑같은 생리적 데이터- 통증을 뜻하는 신경 자극-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신경세포가 뇌의 통증 중추로 보낸 신호는 같더라도 통증에 대한 경험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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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원리’...

아이러니하게도, 분트와 제임스는 둘 다 그 책에 만족하지 못했다. 분트는 제임스의 혁신이 분트식 실험심리학에서 벗어난 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분트의 심리학은 매사를 측정하는 심리학이었다. 그러나 감정을 어떻게 정량화하고 측정하겠는가? 1890년에 제임스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결론짓고, 따라서 심리학은 실험에만 몰두하는 관행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트는 연구를 놋쇠 도구 심리학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한편 분트는 제임스의 책이 문학이고, 아름답지만, 심리학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윌리엄 제임스가 스스로에게 가한 비판은 훨씬 더 신랄했다. 그는 이렇게 ᄊᅠᆻ다. “이 책의 꼬락서니를 나보다 더 역겹게 느끼는 사람은 없으리라. 세상에 1,000쪽을 들여서 다룰 만한 주제란 없다. 나에게 10년만 더 있다면, 이 책을 500쪽으로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상태로는 메스껍고, 팽창되고, 붓고, 부풀고, 팽팽해진 덩어리에 불과하며, 오직 두 가지 사실만을 입증할 뿐이다. 첫째, 심리학의 과학 따위는 없다는 것. 둘째, W.J.는 무능하다는 것.” 이 책의 출간 후, 제임스는 심리학을 버리고 철학을 추구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독일에서 뮌스터베르크를 꾀어, 자기 대신 연구소를 맡게 했다. 이 때 제임스는 마흔여덟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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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의 감정 이론은 한동안 심리학을 지배하다가 다른 접근법들에 밀려났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심리학이 인지적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그의 생각-요즘은 제임스-랑에 이론이라고 물린다-이 새로이 인기를 끌었다. 뇌에서 다른 종류의 데이터가 처리됨으로써 다른 감정이 생겨난다는 개념은 제임스의 사고 틀에 보기 좋게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