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 2019.01.30

독서/기타 2019. 1. 31. 11:38



본문

몽테뉴의 수상록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


카그라스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뇌의 친밀감을 관장하는 부위에 이상이 생길 때 발생하는 질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가까운 사람을 알아보기는 하지만 더이상 친밀감을 느낄수가 없게 된다.

니체의 차라우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쓰인 모든 글들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리라. 타인의 피를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책 읽는 게으름뱅이들을 증오한다.

김경주의 비정성시
내 고통은 자막이 없다 읽히지 않는다
내가 살았던 시간은 아무도 맛본 적 없는 밀주였다. 나는 그 시간의 이름으로 쉽게 취했다.

나는 그 뒤로 시인으로 불렸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옶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인) 그놈들이 다 밤잠을 설치고 있을까? 아닐거다. 죄책감은 본질적으로 약한 감정이다. 공포나 분노, 질투 같은 게 강한 감정이다. 공포와 분노 속에서는 잠이 안 온다. 죄책감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인물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나는 웃는다. 인생도 모르는 작자들이 어디서 약을 팔고 있나.

내 명예를 걸고 말하건대 친구여, 차라우스트라가 대답했다. 당신이 말한 것 따위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악마도 없고 지옥도 없다. 당신의 영혼이 당신의 육신보다 더 빨리 죽을 것이다. 그러니 더이상 두려워하지 마라.

꽃을 오래 보고 있으면 무서웠다. 사나운 개는 작대기로 쫓지만 꽃은 그럴 수가 없다. 꽃은 맹렬하고 적아라하다. 그 벚꽃길, 자꾸 생각난다.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 그저 꽃인 것을.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

세이렌과 칼립소가 원했던 것은 오디세우스가 미래를 잊고 현재에 못박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끝까지 망각과 싸우며 귀환을 도모했다. 왜냐하면 현재에만 머무른다는 것은 짐승의 삶으로 추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점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오니 밤하늘에 별들이 찬란하다. 다음 생에는 천문학자나 등대지기로 태어나고 싶다. 돌이켜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상대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


너는 너 자신이 “빈말을 일삼는 놈들이 싫어” 하고 그래서 한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너는 마지막 희생자, 은희 엄마의 소원에 따라 그녀의 딸을 살려줬고 입양했으며 지금은 새로운 연쇄살인범 박주태로부터 보호하고자 한다. 그러나 네가 생각하는, 약속을 지키는 너는 없다.

없고, 없고, 없으니 그것은 평온이며 무아의 경지인가?

이것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공포의 기록이다.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악마적 연쇄살인범조차도 감당할 수 없었던 공포. 우리 가운데 누구도 이겨낼 수 없는, 인생이 던진 악마적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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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