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2016. 10. 31

독서/심리 2018. 6. 18. 16:19

 

 

다시 읽어도 주옥같고, 몇 번을 읽어도 훌륭하다고 느껴지네요.

흔들리는 현대사회와 어지러운 시국에, 중심을 꼿꼿이 잡고 싶다면 다시금 뒤적거리고 싶은 책.

가벼운 자존감에 대한 논의들보다 훨씬 깊은 통찰을 주는 책.

우리가 불안해 하는 이유, 우리의 자존감의 기반이 이토록 약한 이유는

우리의 기질 탓이나 성격 탓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정립되어 온 사회적 정치적 경제 문화적 메시지들 때문이라는 사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책발췌>

 


 

p.22~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 농담에 즐거워 하면, 우리는 나에게 남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을 갖게 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면, 나에게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방에 들어갔을 때 눈길을 피하거나 직업을 밝혔을 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이렇게 남들의 반응에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시를 당하든 주목을 받든, 칭찬을 바든 조롱을 당하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누가 엉터리로 우리를 칭찬하는 소리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여, 다른 사람이 우리가 못났다고 넌지시 암시한다 해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아주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무시를 당하면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고개를 쳐들며, 미소나 칭찬과 마주치면 어느새 역전이 이루어 진다.


p.27

어렸을 때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아무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으며,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무조건적인 애정을 얻을 수 있다. 식사를 하다 트림을 할 수도 있고, 목청껏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 돈을 못 벌어도 되고, 중요한 친구가 없어도 된다. 그래도 귀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냉담한 인물들,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인물들의 행동은 지위에 대한 우리의 불안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친구나 연인은 우리가 파산을 하거나 수모를 당해도 우리를 모른 체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가끔은 그 말을 믿어볼 수도 있겠지), 우리가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속물들의 매우 조건적인 관심이다.


p.35

 두려움은 세대를 따라 전해진다. 모든 학대 행위에 적용되는 패턴이지만, 속물도 속물을 낳는다.


p.56

그러나 어떤 것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심리를 생각해보면 이런 박탈감도 그렇게 이상할 것은 없다. 어떤 것- 예를 들어 부나 존중-의 적절한 수준은 결코 독립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준거집단, 즉 우리와 가타고 여기는 사람들의 조건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여 결정된다. 우리가 가진 것은 그 자체만으로 평가할 수도 없고, 중세 조상의 생화로가 비교하여 판단할 수도 없다. 역사적 맥락에서 우리가 놀라운 번영을 이룩했다고 강조하는 소리를 들어봤자 전혀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오직 우리가 함께 자라고, 함께 일하고, 친구로 사귀고, 공적인 영역에서 동일시하는 사람들만큼 가졌을 때, 또는 그보다 약간 더 가졌을 때만 우리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


-철학과 약점의 극복 (부제)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진정한 행복이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초라한 곳이다." - 쇼펜하우어, 소품과 단편집

 "자연은 나에게 '가난해지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또 '부자가 되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자연은 나에게 '독립적으로 살라'고 간청할 뿐이다." -샹포르, 격언집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 판단은 내가 가지고 다닐 수 있다.... 판단만이 나의 것이며, 누구도 나에게서 떼어낼 수 없다." - 에픽테토스, 어록Discourses 100년경


p.153

 "여론은 모든 의견 가운데 최악의 의견이다." 이렇게 여론에 결함이 있는 것은 공중이 이성으로 자신의 생각을 엄격하게 검토하지 않고, 직관, 감정, 관습에 의존해버리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생각, 어디서나 받아들여지는 관념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다수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샹포르는 그렇게 말하면서 흔히 아첨을 하듯이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언어도단에 가깝다고 덧붙인다. 단순화와 비논리, 편견과 천박함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가장 터무니없는 관습과 가장 어처구니없는 의식들이 '하지만 그것은 전통이야'라는 말로 용인되고 있다. 유럽인이 남아프리카 호텐토트 사람들에게 왜 메뚜기를 먹고 몸에 붙은 이를 삼키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도 바로 그런 말을 했다. '그것이 전통이오."


 여론의 빈곤을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 깨달음은 지위로 인한 우리의 불안, 다른 사람들에게 훌륭하게 보이고 싶은 피곤한 욕망, 사랑의 표시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갈망을 다독이는데 도움이 된다. (...)

 쇼펜하우어는 이런 식으로 묻는다. "만일 청중이 한 두 사람만 빼고는 모두 귀머거리라면 그들의 우렁찬 박수갈채를 받는다 해서 연주가가 기분이 좋을까?"


 이렇게 인간성을 통찰력 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유용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불리한 점은 이런 관점이 따를 경우 친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와 마찬가지로 철학적 염세주의자였던 샹포르는 그런 문제를 넌지시 드러냈다. "도덕적이고 고결한 태도로, 합리성과 진실한 마음을 갖추고, 관습이나 허영이나 격식 같은 상류사회의 소도구 없이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만 만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렇게 결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멍청하고 허약하고 흉물스러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우리는 결국 혼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선선히 그 가능성을 받아들였다. "이 세상에서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는 곧이어 모든 젊은이들이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만날 일이 줄어들수록 더 낫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p.164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보라. 아널드는 제안한다. 거기에서 (직접적이든 아니든) "인간의 잘못을 없애고, 인간의 혼돈을 정리하고, 인간의 곤궁을 줄이고자 하는 욕망"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은 "세상을 자신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 예술가들이 이런 갈망을 늘 노골적인 정치적 메시지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스스로 그런 갈망을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항의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고, 아름다움을 인식하도록 교육하고, 고통을 이해하거나 감수성에 다시 불을 붙이도록 돕고, 감정이입 능력을 길러주고, 슬픔이나 웃음을 통하여 도덕적인 균형을 다시 잡아주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아널드는 이런 태도의 핵심을 이루는 선언으로 자신의 주장을 마무리한다- 예술은 "삶의 비평"이다.



전자책p.417

카를 마르크스의 유용한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믿음들은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적 진술이란 중립적으로 말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어떤 편파적인 노선을 밀어붙이는 진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데올로기적인 믿음을 주로 퍼뜨리는 사람들은 사회의 지배계급들이다. 그래서 지주 계급이 결정권을 쥔 사회에서는 토지에서 나오는 부가 본래 고귀하다는 개념을 주민 다수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심지어 이런 체제에서 손해를 보는 많은 사람들도 그런 개념을 받아들인다). 반면 중상주의 사회에서는 기업가의 성취가 사회 구성원의 성공의 꿈을 지배한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그러나 이런 관념들은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면 결코 지배를 할 수가 없다. 이데올로기적인 진술의 핵심은 높은 수준의 정치적 감각이 없으면 그 편파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무색무취의 가스처럼 사회에 방출된다. 그것은 신문, 광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교과서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이데올로기는 자신이 편파적인, 어쩌면 비논리적이고 부당할 수도 있는 방식으로 세상에 접근한다는 사실을 감추면서, 자신은 그저 오래된 진실을 이야기할 뿐이며, 오직 바보나 미치광이만이 여기에 반대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p. 425

울프는 케임브리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이 받은 상처로부터 바깥으로 눈을 돌려 여성의 일반적 지위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가난이 정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또 부가 정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생각해보았다.(...)".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도 질문은 계속되었다. "왜 남자는 술을 마시고 여자는 물을 마실까? 왜 한쪽 성은 그렇게 부유해지고 다른 성은 그렇게 가난해질까?" 울프는 여성의 예속에 대한 "이런 인상들 가운데 개인적이고 우연적인 것들을 걸러 내려고" 대영박물관으로 가서 남자가 여자를 대하는 태도의 역사를 연구했다. 그녀는 사제, 과학자, 철학자들이 권위를 실어 특정한 편견과 설익은 진실을 전파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여자들은 신의 명려에 따라 열등해진 존재이며, 체질적으로 정치를 하거나 사업을 할 수 없고, 너무 몸이 약해 의사가 될 수 없으며, 생리를 할 때는 기계 조작이 불안해 지고 재판에서 공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도 없었다. 이런 비난을 들으며 울프는 문제가 돈임을 인식했다. 여자는 영의 자유를 포함한 어떤 자유도 없었다. 자신의 소득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늘 가난했다. 단지 200년 동안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랬다. 여자는 아테네의 노예의 아들보다 지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울프의 책은 구체적인 정치적 요구에서 절정에 이른다. 여자에게는 존엄만이 아니라,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1년에 500파운드의 소득"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p.538

모든 고귀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금언을 따라야 한다. "나는 내가 관심을 가지는 일을 하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에머슨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제 순응이니 조화니 하는 이야기는 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그런 말들을 관보에 실어 조롱하도록 하자 ...... 이제 결코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지 말자 ...... 이 시대의 매끈한 평범함과 비열한 만족을 모욕하고 질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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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재발견 - 16.09.29

독서/심리 2018. 6. 18. 16:17

 

아마 UCLA에 가진 개인적인 관심이 판단을 왜곡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름 목차를 통해 책의 내용을 잘 짐작하고, 그럴듯한 것들 골라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서 읽고 나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스트레스를 두려움으로 재명명하라는 내용은 신박하고 좋았지만, 그 이상은 다소 진부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후에 두려움에 대한 실험연구를 진행하게 된다면 다시금 참고해 보고 싶습니다.

 

posted by sergeant

위험한 심리학 - 16.09.22

독서/심리 2018. 6. 18. 16:15

 

홍보를 상당히 상업적으로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속마음을 알고 있다라니..^^; 심리학 공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이 들어간 홍보내용..!!

 

 대중적인 심리학 책들에 흥미를 못느끼지만, 그래도 어떤 내용들이 있나 궁금해서 심심풀이로 집었습니다. 게다가 자격증 시험기간 피크라 시험범위 외의 내용은 뭐라도 읽고싶어서 몸이 근지근질했거든요.

예상치 못하게 나름 자격증 시험에 도움이 되었던게, DSM-5의 성격장애 내용들을 나름 재미있게 풀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성격장애들 공부하면서 저의 심리학 공부에 도움을 주었던 2인의 성격장애인에게 다시금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했구요..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분명해서, 너무 이해가 잘 돼..

 

역시 공부는 뭐니뭐니해도 사람공부가 제일 재밌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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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뒤에 오는 것들 - 16.09.21

독서/심리 2018. 6. 18. 16:12

 

상실 및 애도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부터 거대담론까지 망라한 책. 차근차근 곱씹어가며 읽었습니다. 상실에 대한 책은 넘쳐나지만, 상실 관련 책 3권을 내리 읽다가 발견한 보석같은 책입니다. 상실과 관련해서 많이 다루는 만큼이나, 크게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책을 찾기란 쉽지가 않기도 합니다.

 쉽게 읽힐거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그랬고.. 그러나 동시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우리 도처에 널린 깊은 상실로 아파했던, 아파하고 있는, 그리고 언젠가는 아파 할.. 그러나 잘 이겨낼 모든 분들께 권합니다.

 




전자책p.142

코미디를 본 뒤의 미소 여부는 별다른 연관성을 찾기 힘들었지만, 슬픈 영화를 보여준 경우에 한해서는 미소 여부와 장기적인 건강 간의 상관관계가 뚜렷이 나타났다. 즉, 재미있는 대상에 대해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하고 바람직한 것이지만, 이것으로는 건강한 정도에 대해서 가늠하기가 어렵다. 장기적으로 보면, 건강에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시련이 닥쳤을 때, 웃어 보일 수 있는 능력이다.


전자책p.157

루이스의 표현에 따르면, "육체적 고통은 1차 대전 당시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몇 시간이나 계속해서 참호 위로 쏟아지던 포화처럼 끝없이 지속될 수도 있다. 하지만 슬픔은 마치 공중에서 빙빙 돌며 저 아래 무엇인가 보일 때마다 폭탄을 투하하는 폭격기와도 같다." 슬픔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것은 슬픔이라는 참호 속에서의 휴식이다. 찰나의 행복과 기쁨을 찾아 내고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놀랄 만한 인간의 능력이다.


전자책p.167

회복력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아마 그것이 얼마나 흔한 것인가 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그에 대해 늘 놀라워한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솔직히, 수년간 상실과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를 해오고 있는 나조차도 인간의 강한 회복력에 종종 놀랄 때가 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그러한 놀라움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먼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문화적인 관점에서 설명 가능하다고 가정해보자. 다시 말해, 회복력에 대한 회의론은 사실 주로 유럽과 북미 지역 대부분의 산업화된 국가들의 소산임에 틀림없다. 서구인, 특히 미국인은 개인주의를 매우 중시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자율과 자유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며 감정에 주목한다. 다른이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알고 싶은 동시에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다른 이들이 알아주기를 바(...)

사별한 이들의 회복력에 대한 반응이 다양하듯, 문화권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경험하는 방식 역시 다양하게 나타난다. 산업화된 서방 세계만 벗어나도-일단, 지구상의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는 이 세계를 "비서구문화"로 단순히 분류하겠다- 사람들이 삶을 경험하는 방식은 결코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비서구 문화권에서는 개개인과 그 감정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느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일언고 있는지에 관해서보다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에 더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비서구 문화에서 사별은 슬픔과 비탄의 대상이기보다는 사람들이 하는 일, 즉 애도하는 사람이 주변에서 예상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지에 관한 문제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비서구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적절한 방식으로 의식을 행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의 회복력이라는 개념이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전자책p.366

 논리는 매우 단순해 보였다. 트라우마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에게 경험 보고가 도움이 된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틀림없이 동무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불행히도 이 논리에는 몇 가지 심각한 오류가 있다. 우선, 보통 사람의 트라우마 경험은 어떠한지 고려하지 않았다. 응급 구호 인력은 고도로 훈련된 이들이기 때문에 트라우마성 사건에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다. 예측할 대상도 알고 있다. 기본적인 트라우마 반응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도 알고 있다. 그리고 트라우마 반응을 겪을 때 어떤 기분인지도 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이를 알지 못한다. (...) 아무리 보아도 해로울 것이 전혀 없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사고 발생 후 3년이 지난 시점에, 1시간짜리 간단한 경험 보고 시간을 가졌던 환자들은 대조군에 속한 환자들에 비해 삶의 여러가지 영역에서 (악화 blah blah). 개입을 받지 않은 환자들은 대체적으로 사고 이후 4개월 이내에 자연적인 회복을 보였다. 반면, 초기에 괴로움을 호소한 환자들 중 경험 보고 시간을 가졌던 이들은 3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사고 후 3년 경과 시점에도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와 거의 동일한 수준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경험 보고가 환자들의 자연적 회복 과정을 방해했던 것이다. 이처럼 심각한 결론이 나오자, 정신의학계에서는 경험 보고에 관한 방침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2004년 쓰나미 참사 이후 수주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험 보고 요법을 시행하고자 자원봉사 치료사들과...[이후 이 경험보고 요법은 금지되었다].


전자책p.405

TMT 이론가들에 따르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잠재울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은 공유하는 문화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TMT 이론가들은 세계관을 "현실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인간들이 만들고 전승해온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믿음"이라 정의한다. 이러한 믿음의 일례로는 개인의 권리가 여타 윤리적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거나, 우리 자신이 속한 국가와 정치 체계가 여타 국가나 정치 체계보다 낫다는 믿음 등이 있다. TMT 이론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믿음이 "우주에 질서, 의미, 가치, 그리고 실질적인 혹은 상징적인 불멸의 존재 가능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공통의 믿음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보다 더 크고 더 영속적인 어떤 집단이나 문화, 더 큰 전체에 속해 있다고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는 영원한 존재가 된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우리가 세계관에 얼만큼 집착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는 우리는 대개 세계관을 일종의 관점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오히려 세계관을 객관적 사실이자 현실로 간주하고, 모든 사람이 그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믿음이 타인과 일치하는 정도를 과대 평가한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이러한 현상을 "허위 합의"효과 라고 한다. 이 효과를 밝혀낸 최초 실험에서는, 대학생들에게 '참회하다'라는 단어가 크게 쓰인 광고판을 앞뒤로 멘 채 캠퍼스 안을 걸어다닐 생각이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 광고판을 걸기로 동의한 학생들은 캠퍼스 내의 학생들 대다수도 그 광고판을 멜 생각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반면, 거절한 학생들은 학생들 대다수도 거절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 밖에도 많은 예가 있다.선거 기간 동안, 유권자들은 대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후보자가 실제보다 더 인기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며, 성적으로 활발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의 성적인 활동 빈도도 실제보다 더 높게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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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리학 카페 - 16.08.25

독서/심리 2018. 6. 18. 16:06

 

의외로 수퍼비전이나 심리교육을 가도, 본인이 배웠던 마음의 원리와 전혀 다른 식의 조언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ex. 화를 좀 잘 참아야죠.)

 그러나 파리의 심리학 카페에서는 마음의 매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고 얻어진 깊은 통찰을 재밌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따뜻한 작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내담자들과 좀 더 심리교육을 꼭꼭 다지고 싶을 때, 주로 추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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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무기력이다 - 16.07.28

독서/심리 2018. 6. 18. 16:03

 

박사 선생님의 추천으로, 애정이 많이 있는 내담자와 함께 읽은 책이었습니다. 특별히 대학생 그룹의 경미한 우울증 내담자들과 함께 읽으며 자신과 어떤점이 비슷한지, 다른 부분은 어떤 부분인지 점검하면 좋습니다. 내담자들이 많이 공감해 하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고, 상담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조장하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후반부에 나오는 상담치료관련 내용이 와닿지는 않습니다만, 무기력에 대한 깊은 경험담과 따뜻한 격려가 참 좋기도 합니다.


한명의 직장인으로서 문득, 한국 직장인들의 90퍼센트가 책에서 말하는 무기력을 경험하지 않나 싶은 슬픈 생각도 듭니다.

우울증과 무기력은 아주 같은 것으로 치부하기엔 증상도 정도도, 치료 방법도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본인이 중증 우울이라는 생각이 드시는 분들은 꼭 전문 기관에 내방하셔서 상담과 진료, 약 처방을 받아 보시길 권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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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사생활 - 16.07.26

독서/심리 2018. 6. 18. 15:58

 

 

 얼마전에 수면제의 일종인 '졸피뎀' 복용의 부작용에 대해 끔찍한 글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서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수면 유도제를 복용하는 경우도 왕왕 있어왔구요. 머리 뒤쪽만 어딘가에 대면 정신을 잃어버리는 저같은 사람은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느 순간에는 저도 불면으로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건 제 내담자들도 마찬가지구요.

 최근 저는 수면의 질을 높이고 싶어서 '잠의 사생활'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습니다. 소개하고 싶은 내용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인공빛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이 엄청나고 이것이 생체리듬에 치명적일 정도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희집은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완벽하게 인공빛을 차단하진 못하더라도 늦은 밤이되면 최대한 인공빛에 노출을 줄이기 위해 영화도 두 편 볼것을 한 편으로 줄여서 보기, 스마트폰 사용 자제, 전구를 촛불로 대체 등..


두번째가 바로 침대의 형태인데요. 보통 해외 호텔이나 리조트에 가면 더블베드 하나만 놓여있는 방보다는 더블베드만한 크기의 침대가 트윈으로 놓여있는게 대부분인데, 저는 그게 2인실을 4인실로도 사용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게 아니라 서양에서는 더블베드와 트윈베드에 대한 선호가 (길지 않은 시간 내에서) 역사적으로 경쟁을 해왔고 본래 트윈이 유행했다가, 더블이 유행했다가 다시 트윈이 유행하기 시작한거랍니다. 건강상의 이유나 중산층의 경제적 과시의 이유 등 다양한 원인이 있었구요ㅎㅎㅎ 더블이 경제적 과시용이었다니!!! 흥미롭더군요.

문제를 일으키기 전까지는 거의 존중받지 못하는 현대 우리 수면 생활에 비추어 볼 때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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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팩터의 심리학- 16.05.27

독서/심리 2018. 6. 18. 15:53

 

근1~2년간 흥미롭다고 느껴지는 연구주제를 찾기 어려웠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 여러가지 생각들과 함께 흥미로운 주제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비단 연구뿐 아니라 삶에 대한 통찰도 많은 부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되어 추천합니다.

 

1. '유유상종'에 대한 심리학적 대답
우리는 보통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게 된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서로의 다른 특성 때문에 끌린다는 정반대의 명제에 대해서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외향적인 사람의 열정은 내성적인 사람이고 진중함을, 혹은 그 역으로 서로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이구요.
그렇지만 만약 '이 특성'이 비슷하지 않은 사람끼린 친구가 되기 어렵다면 어떨까요. '이 특성'이 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 책은 그 특성을 H팩터라고 명하며 한국말로는 '정직겸손성', 줄여서는 '정직성'이라 말합니다. (세부 내용으로, 개방성이라는 요소 또한 유유상종을 가르는 중요한 부분이라더군요. 정확히 말하면 총 두가지가 되겠네요) 정직성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말에 저는 좀 감동 받았었습니다.

저는 정직한 사람이라, 항상 굳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선택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 때가 종종 있었거든요. 당신의 친구들은 얼마나 정직함과 겸손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인가요?

 

2. 정직함이라는 가치에 대한 우리 한국사회
 책에서는 여러가지 특성(factor)들의 한쪽 극단적면에 대해 '더 좋은 것'이라고 단정짓기를 꺼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때, 한가지 특성의 모습만이 생존에 유리했다면, 우리는 이것을 성격이라는 기준으로 세우기 힘들었을거란 말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해, 만약 도덕적인 사람들이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다면 우리 사회는 도덕적인 사람들만 살아남았을테고 도덕성의 정도를 측정하기 어려웠을거란 얘기예요. 도덕적인 사람과 도덕적이지 않은사람이 혼재해 있으니 도덕성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겠죠.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성격의 어떤 면이, 특정 상황에서는 유리하고 다른 상황에서는 불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한가지의 성격 기준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뒤섞여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한국사회 모습은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흔히 몇포세대라고 불리는 청년층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나라의 큰 영향력이 있는 자리의 많은 사람들은 정직성이 낮고 존경할 수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그 말인즉 우리 사회는 그런 사람들이 생존하고 영향력을 미치기에 좋은 사회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왜 교과서에서 배워왔고 대학에서 배웠던 정의로운 가치들이 이렇게 무력한 것인가 많이 생각했었습니다. 단순히 사회생활이 배움의 이상과 달라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직성을 추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살아남기 힘든 사회에 살고있다고 여겨져서, 저 자신에게 스스로 위로를 보냅니다. 그리고 정직함을 추구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요.

이 밖에도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주는 좋은 책이니 여러분도 읽어 보세요:)


 참고로 책의 저자들은 ..참..정직하게도 자신들이 부정직한 면을 많이 가지고 있고 그부분이 공감된다고 하던데... 저는 제 자신이 정직하다고 생각하는걸 보면 실제 그런 사람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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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2014.04.04

독서/심리 2018. 6. 18. 15:46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858823

 

 

"활동하는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상담학을 공부하다 보면 종종 정신건강의 이유를 개인의 수준에서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개인의 성격과 환경, 어린 시절, 적응 패턴, 반응 방식..

그러나 어쩌면 개인이 자기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의 책임이 사회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2014년 한창 상담학을 공부하고 실습하며, 이전에는 흥미가 없던 사회학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아마 이런 부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은 모여서 구조와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는 다시 개인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겠지요.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대한 의무를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본문 발췌>

 

알렝 에렝베르 Alain Ehrenberg는 우울증을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이행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규정한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권위적 강제와 금지를 통해 인간에게 사회 계급과 서열에 따른 역할을 부여하는 규율적 행위 조종의 모델이 만인에게 자기 주도적으로 될 것, 자기 자신이 될 것을 요구하는 새로운 규범으로 대체되는 순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 우울한 자는 컨디션이 완전히 정상이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부응하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리고 만다.” 알랭 에랭베르의 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우울증을 단지 자아의 경제라는 관점에서만 관찰하는데 있다. ... 그러나 우울증을 초래하는 요인 가운데는 사회의 원자화와 파편화로 인한 인간적 유대의 결핍도 있다. 우울증의 이러한 측면은 에랭베르의 논의에서 빠져 있다. 그는 성과사회에 내재하는 시스템의 폭력을 간과하고 이러한 폭력이 심리적 경색을 야기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오직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이 아니라 성과를 향한 압박이 탈진 우울증을 초래한다. 그렇게 본다면 소진증후군은 탈진한 자아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다 타서 꺼져버린 탈진한 영혼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실제로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은 과도한 책임과 주도권이 아니라 후기근대적 노동사회의 새로운 계율이 된 성과주의의 명령이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 우울증 환자는 이러한 내면화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p.30 멀티태스킹이라는 시간 및 주의 관리 기법은 문명의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멀티태스킹은 후기근대의 노동 및 정보사회를 사는 인간만이 갖추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퇴화라고 할 수 있다. 멀티태스킹은 수렵자유구역의 동물들 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습성이다. 야생에서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기법이 멀티태스킹인 것이다.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주의는 과잉주의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가고 있다. 다양한 과업, 정보 원천과 처리 과정 사이에서 빠르게 초점을 이동하는 것이 이러한 산만한 주의의 특징이다. 그것은 심심한 것에 대해 거의 참을성이 없는 까닭에 창조적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저 깊은 심심함도 허용하지 못한다.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부른 바 있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다. 벤야민은 꿈의 새가 깃드는 이완과 시간의 둥지가 현대에 와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그런 것을 짜지도, 잣지도않는다. 심심함이란 속에 가장 열정적이고 화려한 안감을 댄 따뜻한 잿빛 수건이다.” 그리고 우리는 꿈꿀 때 이 수건으로 몸을 감싼다.” 우리는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 속에서 안식한다.” 이완의 소멸과 더불어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이 소실되고 귀 기울여 듣는 자의 공동체도 사라진다. 이 공동체의 정반대편에 있는 것이 우리의 활동 공동체이다.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은 깊은 사색적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에 바탕을 둔다. 지나치게 활동적인 자아에게 그런 능력은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성격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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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건강검진

미국유학/유학준비 2018. 6. 18. 15:28

 

 

보통 유학을 위한 건강검진이라 하면, 마치 미국 비자를 위해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모르겠고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비자 자체를 위해 건강검진이 필요한 건 아니고, 유학생들은 학교에서 검사를 요구합니다. 이해를 돕자면 이 건강검진의 목적은 "전염병 예방"을 위함이예요. 즉, 예방 접종 백신을 맞았는지 기록의 여부와,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다면 하고 오라는게 목적이죠. 학교마다 요구하는 양식이 다르고 따라서 요구하는 백신도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식을 보고 어떤 백신이 필요한지 미리 파악하시고, 병원에 전화해 상담을 해 보셔도 되구요. 그냥 양식을 들고가서 뭘 맞아야 하는지 의사선생님과 상담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건강염려가 좀 있는 사람이라,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에 종합 검진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종합검진을 받으면 어차피 피를 뽑을테니까, 학교에서 요구하는 양식도 함께 작성할 수 있으면 효율적일것이라 생각하고 좀 알아봤었는데, 유학생 검진은 완전히 다른거라고. 아예 따로 신청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병원 산업... 흠흠

저는 병원을 이용할 때 주로 신촌세브란스로 가서, 세브란스 기준으로 (가장 중요한!!) 금액을 알아봤을 때.. 세브란스 내에서 더 저렴한 종합검진도 있지만, 보통은 80만원에서 150만원즈음 되는 검진을 추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유학생검진은 29만원부터 시작하고, 백신 비용은 아마 따로일 거라고, 자세한건 관련부서로 전화하라고 하시더군요..

 유학생 검진을 위해 대사관에서 세 병원을 추천한다고 해요. 신촌세브란스와 여의도성모병원.. 한군데는 기억 안나네요. 이 곳들은 블로그 찾아보면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씀드렸다시피 너무 비싸고, 가격도 조금씩이지만 차이가 있어서.. 저는 하나로의료재단서울배내과에도 문의전화를 드렸어요.

저희 학교는 MMR을 기본으로 요구하고, 결핵 검사는 학교에서 직접 실시할테니 테스트 하지 말고 오라고 했어요. 그 외에 Tdap(파상풍 디프테리아 등), 뇌수막염, A형, B형 간염, HPV, 수두 백신 예방접종은 선택사항이었어요.

전화 상담을 종합해보니 저는 서울 배내과가 가장 저렴하다고 느꼈어요. MMR 항체검사 6만원, 백신접종비용 3만원, 서류작성비 3만원에 뇌수막염백신은 다른 병원들보다 적어도 만원은 싼 12만원, Tdap은 5만5천원이었습니다.

저는 MMR의 경우는 항체검사 없이 그냥 백신접종 부탁드렸기 때문에 총 23만 5천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접종을 마칠 수 있었구요.

그 외에 A형, B형, HPV 예방 접종 등도 이전에 해 둔 기록을 미리 다 찾아서 예방접종 백신 시스템에 올려 주시도록 과거 방문했던 의사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접종 기록을 빼곡히 적어서 도장을 받아 돌아왔습니다.

병원에 방문할 때 아기수첩을 지참하시는 게 좋구요(오래 전에는 시스템이 잘 구축되지 않고 수첩에 적어 두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학교에서 요구한 양식 뽑아가시면 원장님이 알아서 잘 작성해 주십니다. 접수 도와주셨던 간호사 선생님들도 친절하셔서 감사드렸었구요!!^^

작성해 온 서류를 스캔해 학교 관련 부처에 메일로 보내두었습니다.

예방접종과 별개로, 한 주 전에 종합검진도 잘 마쳐서.. 건강한 몸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와야겠다고 다짐하고 지내고 있어요!!!

먼저 가 있는 동기가 미국 오기전에 종합검진 꼭 하고 오라고 조언해 줬는데, 저도 한번쯤 검진 하고 오시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학 출발의 길은 멀고도 험난합니다. 가서는 더 산너머 산이겠지만.. 잘 할 수 있겠죠. 화이팅!!!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