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는다는 것 - 2019. 6. 28

생각 2019. 6. 28. 10:30

https://ppss.kr/archives/197847?fbclid=IwAR3eK0EwZOsKJz_SF0THXA4-pmQB8aSUiKC1VvA7WToEXhKKdSSNi1JLuNg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은 집안의 죄인이 되고, 아이를 낳은 여성은 사회의 죄인이 된다

아이 옷에 녹음기를 달아 유치원에 보낸 한 여성의 이야기가 논란이 된 듯하다. 우연히 관련 기사를 보았는데, 댓글의 대부분은 아이의 엄마를 비난했다. 일단 불법적인 행위이기도 하고, 유치원 교사의 인권이나 기분은 어떻겠냐는 말들은 대체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장 공감을 많이 받은 댓글 중 '그러니 맘충소리 듣지.' '이러니 맘충이라는 비속어가 생기고, 노키즈존 생기는 거 아니냐.'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만약 녹음기를 달게 한 게 아빠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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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배우자의 외도로 고통받던 사려 깊은 남성 지인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결국 자신은 배우자를 용서하고 싶으니, 그 대가로 자신이 원했던 셋째 아이를 가지자고 해볼까 싶다는. 이것은 아내에게 주는 복수나 형벌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증표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며 그를 말렸고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비록 그는 친절한 페미니스트였으나 나는 더 이상 그를 똑바로 볼 수 없어졌다. 비위가 상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진실의 입'이 열린 현장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자신을 여성주의자라 생각하는 남성이라도, 어쩌면 그 자신이 여성의 삶을 너무나도 잘 아는 여성해방운동 지지자이기 때문에 그는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 마음에, 인생과 경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 않는 일이지만,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자신의 배우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사실 더 정확하게는 잘 모른다고 두 눈을 감고 싶을지도 모른다. 내 배를 찢고 내 경력을 단절시켜야 하는 일은 아니니까. 사람이니 그럴수도 있다. 그런데 그 무관심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의 무관심이야 그렇다 쳐도, 왜 여성들은 관심이 없는건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자신의 몸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적 지위 및 경력 단절까지도, 왜 "이럴 줄 몰랐다"고 말하는 걸까. 수많은 여성들이 말하는 증언을 왜 듣지 않는건가. 그동안 남성 중심주의 시각에 너무나도 동화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모든 어려움이 "직접적인 내 일은 아니"라는 그 시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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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 2019.06.27

생각 2019. 6. 28. 10:16

누군가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준다면
그것은 내가 '좋고 괜찮은 사람'이라서 라기 보다는
나를 좋게 봐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어서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만남을 통해 항상 다시금 깨닫는다.

배려가 깃들어 있는 사려 깊은 우정은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고
얼굴 보고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은
서로가 서로에게 줄 수 잇는 가장 큰 선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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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2019] 나를 시험에 들게 하시옵는

생각 2019. 6. 26. 22:12

예전에 처음 기독교 여성주의 역사를 읽었을 때 Mary Daly는 내게 매우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급진적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라 정의하는 사람이었으며, 보스턴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여성주의 기초과정(introductory)에선 남학생들의 출입을 허용했으나 advanced 과정에서 여학생들만을 수강 허용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의 학술적인 활동들은 기독교 여성주의 신학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정작 그는 이 후에 기독교가 “가망없게 가부장적(hopelessly patriarchal)”이라며 신학을 포기하고 남은 학술 활동을 여성주의 철학에 헌신했다.

가부장제내에서 여성들만의 공간은 여성들의 안전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 여성의 공간에 남성이 단 한명만 있어도, 일부 여성은 자신의 발언을 검열하고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털어놓기 어려워 하게 된다. 과거 의식고양 집단이 여성들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거기서 숱한 성폭력과 억압의 사례들을 밝혀냄을 통해 여성주의 물결이 일어났음을 돌이켜볼 때, 이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간파하고 고급 여성학 수업 시간을 여성들만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녀를 나는 매우 존경했다.

그녀에 대한 존경심은 나의 현재의 고민과도 이어진다. 과연 기독교는 근본적인 여성주의를 끌어안고 갈 수 있을까? 내가 처음으로 기독교 여성주의에 대한 세미나를 참석했을 때, 마이크를 잡은 남성 질문자는 강사를 가르치려 했고 토론하던 여성 패널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여성혐오적 발언을 했다. 그 여성 패널의 발언에 다른 남성 질문자가 ‘진짜로 여성의 적은 여성이냐’는 질문을 하고 있는 꼴을 보고 나는 부들부들 떨며 “내가 여성주의 세미나에 와서 이런 여성혐오적 발언을 들을거라고 상상도 못했었다.”고 거의 토를하며 왜 그 발언이 여성혐오적인지를 설명하고 나왔던 쓴 기억이 있다.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고, 나는 기독교내 훌륭한 젊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과 예술가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는 떠나고 일부는 여전히 힘겨워하는 그들을 보며, 다시금 질문하게 된다. “과연 기독교는 이론이 아닌 현실의 급진 페미니스트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을까?” 오래 전 Mary Daly가 백기를 들고 기독교를 떠났던 것처럼,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기독교를 떠나게 될까. 예수까지 져버리게 될까? 내가 아는 예수가 더 이상 예전의 그 예수가 아닐때조차도, 여전히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나는 비록 괄목할만한 학문적인 업적과 영향력은 없지만, 그동안 내가 해 왔던 고민들이 모두 쓸모없는 것은 아닐텐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의 끝은 정해져 있는걸까. 도대체 나는 왜 여기 이러고 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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