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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교수님의 저작, 골든아워 1,2를 읽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주저없이 갈아넣는 영웅의 이야기인데, 수필집이라니.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이런 인물이 현 세대에 같이 공존하고 있다니 신기하다. 어느 시대에나 영웅은 있지만, 사실 영웅은 눈에 잘 보이지 않으니까. 이 교수님은 특별한 분인듯 하다.
본인의 글쓰기를 김훈의 <칼의 노래>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시는 것도 재밌다. 동의가 되면서도, 인간의 자의식이란 흥미로운 기제라는 생각이 든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얼마전 세상을 떠난 윤한덕 센터장에 대한 챕터였다. 난세의 영웅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지만, 동시에 처참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인생은, 사회는, 구조는 왜 이렇게 엉망진창인걸까 싶은 회의감이 짙게 생긴다. 모두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는 기만이라는 마음도.
그러한 기만과 진창 속에서 나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선택이라는 진실만이 남는다. 어느쪽을 선택하든 상관이 없어진 것은 최근이다. 고귀한 영혼들과는 다르게 나는 나이가 들며 비겁해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 또한 그리 비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친구의 죽음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외상이나 상담에 관심을 가지게 된 부분에 많은 기여를 한 친구의 죽음도, 교통사고 후 응급실을 전전하던, 이국종 교수가 말하는 예방 가능한 죽음 중 하나였다.
십년 정도가 지난 지금, 더 이상 감상에 젖지는 않지만
금번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 티비를 보다가 문득 아무렇지 않게 그 친구 이야기를 꺼내는 엄마를 보며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사실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이런 얘기들을 할 수 있구나.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생각보다 너무 가까운 죽음이 오히려 삶을 더 생생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모두 너무 진부한 클리셰이지만
진부함을 넘어설 수 없는 나도 그저 특별할 것 없는 나약한 인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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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얼마전, 레즈비언인 지인과 크게 논쟁이 있었다.
지인은 자주 '너와 대화하는 것이 항상 너무 좋다.'고 표현하던 사람이었는데,
글세, 나와의 대화라는 것이... 절대 유쾌하기만 할 수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건이 터졌다.
여성성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신의 여성적인 모습, 즉 수동적이고 섬세하고 이타적인 감각,이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이며
억지로 바꾸지 않고 싶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레즈비언 커뮤니티 내에서
이성애 성역할 답습(부치-펨)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 마다
그 인식을 바로잡고 싶다는 류의 주장이었다.
나는 그 주장에,
원래부터 그런 것이란 없으며
설령 내 자신이 본래 수동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일지라도
페미니스트로서 공론장에서
이성애 성역할 답습 비판의 목소리에 맞서
공론을 후퇴시키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아무래도 논쟁의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원래 이래."라는 말처럼
상대방을 무력하게 만드는 말은 없다.
원래 그렇다는 말은
발전, 변화, 그리고 심지어는 대화와 사유의 가능성까지 모두를 차단한다.
최근 유명 아이스크림 브랜드 광고의 아동 성적 대상화 논란 때문에 말이 많다.
일각에서는 크게 비판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예쁘기만 한데 뭐 어떠냐"라는 주장도 보인다.
원래부터 예뻐보이는 것은 없다.
미의 기준 또한 사회적 산물임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의 미의 기준이 어디까지 후퇴해 있는지를
오히려 잘 반증하는 반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건강과 신체의 기능을 무시하는 과도한 다이어트
연약하고 어리게보이는 것이 기준이 된 한국의 미인상,
그리고 남성의 기를 죽이지 않는 수동성(반대.적극성)과
나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미덕인 여성성.
이것이 여성의 본능인가?
게다가 이제는 어린여아들에게 까지 다소곳하고 성인의 미의 기준으로 눈에 보기 좋기만을 요구하니..
원래 그런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그래도 되는 (자신을 가꾸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자신을 먼저 생각해도 되는) 사람과
그래서는 안 되는 (나이가 들어도 자기관리라는 이름 하에 자신을 꾸미고, 나대지 않으며, 타인을 배려해야만 그것이 미덕인)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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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여성들끼리 있는 자리에서 과거 성폭행 경험을 듣게 되는 일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얼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경험을 털어놓으신 분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김지영씨의 일생이 꽤 기구하다고 느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정확히 들은 것인지, 혹시 반대로 의미를 이해한 것은 아닌지 한번 더 묻고 싶었지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싶어 그냥 넘어 간다.
82년생 김지영, 논란이 아주 많았던 책이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연예인들이 '메갈' 낙인을 받아야 했으니까.
우습게도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는데, 일단 나는 신파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여성의 불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는 소문(?)이 있는 소설은, 그리 입맛에 당기지 않았다.
근데 실상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었다는 지인들 중에서는 "사실 김지영은 그정도로 나쁜 삶은 아니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쪽이 진짜일지 궁금해서, 그리고 책을 읽고나서 아주 약하게나마 각성하는 여성들과 대화를 좀 더 잘 진행하고 싶어서 회사 도서관을 뒤적여 봤는데, 우습게도 책이 없었다.
분명 예전에 있었던 것 같은데.... 없앤건가?
게다가 이런 베스트 셀러가 도서관에 없다니.. 대한민국 참 투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에 조남주 작가의 이름을 쳐서 찾은 책은 "현남 오빠에게"라는 책이었다.
몇장 읽지 않고도 조작가님의 문체가 느껴지는게...
82년생 김지영의 색깔도 이런 색깔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힘없는 여성, 피해를 당했으나 그게 피해인지 아닌지도 잘 몰랐던 여성이 조금씩 변화하는 그런 모습?
나는 분노도 많고, 힘도 많은 사람이라 아무래도 이런 등장인물과 문체들이
조금 답답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답답한 인물들이 틀을 깨는 모습들도 웃음이 나고.
지은이(화자의 페미친구. 지은이라는 이름, 왠지 작가라는 뜻인것 같아 재밌다)가 교환학생을 갔을 때 저는 오빠 몰래 이메일 계정을 하나 더 만들어 지은이와 계속 메일을 주고받았어요. 방학 때는 제가 캐나다에 가서 보름 동안 함께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네, 이모네 간다고 했던 그 때요. 저는 캐나다에 이모도 사촌도 없습니다. 사진 속의 여학생은 사촌언니가 아니라 지은이의 룸메이트였어요. 저와 똑 닮았다고 했죠? 중국인입니다.
오빠가 권유한 대로 오빠 회사와 가까운 이 동네에 집을 얻은 건 참 잘한 것 같아요. 오빠는 퇴근 시간이 늦어서 데이트하기 부담스러운 날이 많았잖아요. 저한테는 어차피 집에 오는 길이니까 오빠 회사에 들러서 만나기도 편하고, 저희 동네니까 오빠가 저를 굳이 데려다줄 필요도 없고요. 가끔 오빠 야근하는 날은 제 집에서 자기도 했죠. 쓰고 보니 저보다 오빠한테 더 좋았던 것 같지만 뭐 저도 그 때는 신혼부부가 된 것 같고 괜찮았어요. (...) 참, 오빠 저 오늘 이사합니다.
책에는 현남이가 화자에게 했던 가스라이팅이 적나라하게 나와서, 처음에는 좀 비위가 많이 상했다.
확실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결국 화자가 내가 가장 갖고 싶어하는 비출산 동지가 되어(!!)
"저는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유를 물어본다면 너무 많아 여기에 다 적을 수도 없을 정도인데, 무엇보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제 일이 단절되는 것을 원치않아요. 여기까지 오는 게 많이 힘들었습니다.
(...) 오빠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해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습니다. 오빠의 질문은 '아이를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가 아니라 '아이를 몇명이나 낳는게 좋다고 생각해?'였고 '네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가 아니라 '네가 아이를 몇 년 쯤 직접 키울수 있을까?'였으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해본 적 없다고 대답을 피하곤 했고 오빠는 왜 그렇게 계획 없이 사느냐고 저를 한심해했습니다. 하지만 오빠, 오빠가 아이를 직접 낳을 것도 키울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그런 계획을 혼자 세우죠? 한심한 건 제가 아니라 오빠예요"
라고 말하는 모습은 그 답답함을 많이 씻어주었다. 이런걸 카타르시스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어서, 82년생 김지영도 도서관에 신청 해놔야겠다.
이런 베스트셀러를 아직도 안 읽었다니. 안 될 일이다.
자전거 여행 외에는 뭐 특별히 기억에남는 일은 없네요. 평소에는 그냥 그런 데이트들이었죠. 밥 먹고, 영화 보고, 맥주 마시고, 섹스하고. 나랑섹스하려고 만나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오빠가 뭐 잘 하는 것도아니고...
(...)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지만 청혼은 거절합니다. 저는 더 이상 '강현남의 여자'로 살지 않을거예요. 오빠는 그럴듯한 프로포즈가 없어서 제가 망설이는 줄 알지만 아닙니다. 아니라는데 왜 자꾸 그렇렇게말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제 인생을 살고 싶고 너랑 혼하기 싫은겁니다. 본격적으로 결혼 얘기가 나오고서야 꺼림칙하던 모든 게 분명해졌어. 그동안 오빠가 나를 한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애정을 빙자해 나를 가두고 제한하고 무시해 왔다는 것. 그래서 나를 무능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모르는 나를 돌봐줬던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그래, 아무래도 이게. 카타르시스.
다른 작품들도 여성들의 현실이 처참하긴 마찬가지라 마냥 즐기고 이성을 깨워준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만, 그래 눈을 똑바로 뜨고 봐야지. 대중에게 추천하고 이야기 나누기 좋은책. 이런 서적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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