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 2019.01.30

독서/기타 2019. 1. 31. 06:10



[본문 중]

언니, 제가 좋아하는 농담이 하나 있어요. 전에 어떤 일간신문 만화에서 본건데요. 어떤 남자가 교통방송에서 뉴스를 들어요. 고속도로 어느어느 구간에 역주행을 하는 승용차가 있으니 일대를 운행하는 차량들은 모두 주의하라는 거예요. 그는 문득 그 방면으로 출장을 간 친구가 떠올라서 전화를 걸어요. 

야, 그 부근에 역주행을 하는 미친놈이 하나 있대. 조심해.

그 친구가 이렇게 대답하는 거예요. 한둘이 아니야. 얼른 전화 끊어.

다들 충고들을 하지요. 인생의 바른길을 자신만은 알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요. 친구여, 네가 가는 길에 미친놈이 있다니 조심하라.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전화를 받는 친구가 바로 그 미친놈일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미친놈도 언젠가 또 다른 미친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거예요. 인생을 역주행하는 미친놈이 있다는데 너만은 아닐 줄로 믿는다며. 그 농담의 말미처럼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미친놈은 아마 한둘이 아닐 거고 저 역시 그중 하나였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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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는 E는 호기심이 많고 톡톡 튀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자고 일어나니 E가 보낸 메시지가 와 있는데, 
예전부터 내가 얘기하던 미드를 보게되었다고, 골때리게 웃긴다고.

그래서인지 오늘 오후에는 E가 얘기했던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을 읽게 되었다.

나는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데,

아무래도 길을 헤매는 주인공들을 보며 답답한 마음이 가장 많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더더욱 자기 파괴적인 행동들을 하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소설의 목적이라는 것이, 
삶도 자신도 생각대로 되지 않고, 마음먹은 것처럼 모든걸 해낼 수 없는 
모든 이들과 인생을 위로하고, 
더욱이는 평생 이해할 수 없을 듯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아 
공감과 연민의 확장을 불러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나서는
소설을 읽는 것이 이전보다는 즐거워 졌다.

어쩌면 generosity라는 특성이 부족한 내가
더 많이 접해야 할 장르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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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rgeant

오늘은 이 도시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도움을 많이 준 S가 이사를 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자정을 넘긴 오늘 S는 이사를 간다.

처음 만났을 때 S에 대한 인상은 좀 특이했는데, 
갑자기 시간 되냐고 밤에 연락이 와서 우리집에 들러 차를 한잔 하며 오메기떡을 주고갔다(ㅋㅋ). 
오메기떡이.. 한국에서도 흔하지 않은데.. 대도시에 갔다가 사왔다며 (미국 거주인으로 치자면 그 귀한걸!) 전해주었다. 
그 때 받고 몇개 먹다 남은게 냉동실에 얼려둔게 아직도 있다. (아쉽지만 나는 떡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이한 사람이네 (이 귀한걸 나에게 뿌리다니), 라고만 생각했는데 
몇번 만나며 취향도, 취미도, 라이프 스타일도, 생각도 비슷해서
같이 도시 이곳 저곳을 탐방하고 구경하고,
웬만큼 이 도시에 몇년 살았다는 사람들 만큼이나 다양한 곳을 6개월 동안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지만,
S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나는 가끔 내가 이 도시에, 이 특정한 시기에 오게 된 이유가
이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라는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했다.
아직 많은 task들이 남았지만
한 고비 넘어가는 S와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고 보낼 수 있게 되어
자주 가던 밥집에 가서 "매일 먹던걸로 시킬까?" 라고 말했는데,
기분이 묘했다.
친구들이나 배우자와 장난처럼 "매일 먹던걸로" 드립만 쳤었는데,
진짜로 그런말을 하게 되니 좀 우스웠다.

6개월이란 시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
성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게,
꼭 S 에게 뿐만 아니라, 나도 가장 힘들 수 있는 시기에
정말 좋은 사람이 옆에 있어 주어
재밌는 것들도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생일과 졸업을 축하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10년만의 추위라는 오늘의 공기, 어둠, 그리고 허름한 식당 간판의 불빛
사진처럼 박혀서 아주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간단하게 쓴 내 카드를 보고 나서
내가 글을 예쁘게 쓴다는 칭찬도,
헤어져 돌아서는데 핑 눈물이 돌았다는 비하인드 이야기도
아주 오래 기억에 남기고 싶다.
내가 많은 것을 해준 만큼 돌려주지 못했다고 하지만
한번도 내가 무언가를 더 많이 주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런 우정이 정말 오랜만이다.


지금도 나는 자주 분노하지만,

훗날 내가 사람들에게서 배신감을 느끼고, 인생과 신에 대한 환멸이 차 오를 때
6개월간 겸허하게 모든 것들을 온 몸으로 막아내고 버티던
S를 생각하고 싶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혀져서, 이름마저도 잘 생각 안날 수도 있겠지만..
글로 남기고 사진으로 찍고, 그렇게 인생에 몇 안 되는 점들을 찍으면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고

그런 기억들은 내가 다른 이들을 좀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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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rgeant

[01/29/2019] 글쓰기

미국유학/유학생활 2019. 1. 30. 05:50

글을 잘 쓰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여전히 그렇다.

그런데 글쓰기라는 것이 생각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이전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한번에 훌륭한 글을 휘리릭!!! 휘갈길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감동적이고 통찰력 있는 글은, 훌륭한 개인의 통찰력을 있는 그대로 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던 듯 하다.

그런데 읽고 쓰는 것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니 (학생도 직업이라면 말이다)

생각처럼 그리 재능에만 좌우되는 작업이 아닌듯 하다.


여러 날을 모니터 앞에서 지지부진하게 보낸 뒤

고치고 또 고치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그리고 a fresh eye로 다시 보겠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고

이제 좀 그럴듯 한 것 같다 싶어

남에게 퇴고를 부탁하면

고쳐져 온 녀석이 어찌나 만신창이인지 (껄껄)

그래서 또 다시 들여다보고, requirements와 맞추어보면

왜 진작에 이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나 싶고.


그냥 글 쓰기도 이리 어려운데

돈을 벌어다 주는 글쓰기는 더 쉽지 않은게 인지 상정이겠지.

grant proposal을 실컷 잘 쓰다 괜히 의기소침해 져서 또 주절대 본다.


Good luck!

posted by serge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