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오우, 제목부터 불경스러워서 예전같으면 빌려올 엄두도 내지 못했을텐데 가져와서 재밌게 읽었다.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하게 삶을 들여다 본다는 점이 좋았다.
모든 정신병리의 시작은 자기기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 모습보다 과장된 자기 모습, 이상화된 자기 모습을 더 사랑하면서
헤어나올 수 없는 간극에 붙잡혀 있을 때 사람은 정신의 건강함과 진정한 행복으로부터 멀어진다고.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솔직한 선구자들이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나누는 이야기들은, 얼마나 솔직하고 행복한지.
멋지다.
p.6
오늘의 질문: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이 있나요?
친애하는 누군가가 내 페이스북에 이 질문을 남겼고, 나는 모두가 볼 수 있게 대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간단하게 대답하자면, 다행히도 '아니요'다.
더 길게 대답하자면, 나는 어머니가 되는 문제에 관해서 세상에는 세 부류의 여성들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어머니의 운명을 타고난 여자, 이모의 운명을 타고난 여자, 아이로부터 반경 3미터 내에 있어서는 안 되는 여자. 진정한 본성을 고려했을 때 잘못된 범주에 속한다면 이는 (개인적으로나, 가족에게나, 더 크게 보면 지역사회 전체에) 비극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를 갈망하지만 가지지 못하는 여자들은 우리도 알다시피 굉장한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적절하지 않은,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또한 굉장히 고통받는다. (스스로 충족시킬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는 책임감에 갇힌 그 어머니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모로 타고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우리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와 즐겁게 있을 줄 알지만, 내 자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알고 있다. 역사상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 그런 생각은 절대적으로 괜찮은 것이다. 자, 보자. 내 앞에 아기가 놓여 있을 때면 안심해도 좋다. 나는 그 아기를 잘 어르고 놀아주며 사랑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아이를 사랑해 주면서도 나는 가슴으로 알 수 있다. 이건 내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결코 운명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이것이 진심임을 알기에 나는 묘한 환희를 느낀다.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만큼이나 내가 무엇이 될 수 없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엄마는 아니다.
- 엘리자베스 길버트
도대체 어머니의 운명을 타고나는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 회음부절개를 비롯하여 출산 굴욕3종세트를 모두 정확히 알고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는 여성의 비율이 과연 몇프로나 될까?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여성은 이모의 운명을 타고나는 것 아닌가? 정부와 교회와 각종 권위적인 단체들이 입을 모아 '출산의 신성함과 당위성'을 압박하고 있고 성욕이라는 생물학적 기제도 한 몫 하는 덕분에, 인류가 출산률 저하로 멸종할거란 걱정은 하지 않고 있지만..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에 가지는 이 수많은 여성들의 죄책감은 어떻게 해야할까 싶었다. 그런 점에서 숨을 탁 틔워주는 구구절절이다.
p.9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는 어떤 선택도 판단하지 않는다. 이 책은 그저 60년대에 성인이 되어 이제 모두 60대가 된 여성들에게 앞으로 나와서 개인적인 경험, 구체적으로는 선택한 것이든 아니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든 아이 없는 삶을 살게 된 원인을 공유해 달라고 내가 부탁한 결과다.
실제로 예전같았으면 제목부터가 불경해서(?) 읽을 생각도 못했을 책인데 이 책은 어떤 선택을 강요하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때, 여자들이 출산으로 인해 가지게 되는 기회비용이 점점 어마어마해지는 사회에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꽤 정당해 보인다. 생명의 존엄함과 가치를 비용과 효율로 산출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아이에게는 성장과 삶이 그 부모에게는 수많은 비용과 생명을 갈아넣는 것임을 감안할 때.. 저자들이 자신의 선택에 더 "확신"을 가지고 "추천"하지 못하는 모습이 의아하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아무래도 60년대를 지나온 60대 여성들이라서 그런걸까? 어쨋거나 어르신들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조국의 지인들보다도 진보적이고, 그럴듯하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깊다.
p.23
나는 스물한살에 젊은 군인과 결혼했다. 결혼하기 무섭게 부모님과 친구들은 첫 아이를 언제 볼 것인지, 아이는 몇 명 낳을 계획인지 물었다. 그리고 내가 전업주부가 되겠다는 확답을 하길 원했다. 대체로 내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에서는 드러나게든 암묵적으로든, 순결, 결혼, 엄마 노릇(성 삼위 일체)이 어떤 여자에게든 허락된, 지상낙원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믿었다. ...
우리 사이는 절대 안정되지 않았다. 내게는 결혼이 사람들 말처럼 좋지 않았다. 순결, 결혼, 아이라는 삼위 일체 속에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들은 나로서는 불량품을 속아서 산 기분, 사탕발림에 넘어간 기분이었다. 아이를 가지자는 말에 계속 '아니요'를 내세우면서 9년이 흘렀고, 남편은 이혼을 청구했다. 나는 우리 둘을 영원히 이어줄 아이가 없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아이가 있으면 결혼생활이 단단해지고 부부사이가 좋아진다는 말도안되는 얘기는 더이상 사람들이 많이 믿지 않는 것 같은데 (이 정도 조차도 내 생각이지만), 어쨋거나 생명 자체를 도구화 하는 것이 너무너무 싫음에도 삶이라는 것이 내 생각처럼만 딱딱 떨어지는것은 아니니까. 이런 모든 사실들을 감안하고서라도 불행한 결혼생활을 지탱해줄 끈으로,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하다. 오히려 부부관계가 불행하다면, '아이가 없으니 다행' 일텐데?
p.36
1960년대 초에 혼전임신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치욕적이었는지를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 설명할 길은 없다. 피임약을 구하기 쉬워진 6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성의 혁명'이 일어났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 전까지 혼외임신을 해결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결혼이었다. 열여섯 살에 임신한 친구에게도 이것이 해결책이었다. 흔히 그럿듯이, 이런 경우에는 발표하기 몇 개월 전에 이미 결혼을 비밀스럽게 진행한 것처럼 꾸몄다. 하짐나 이렇게 허울 좋게 해놔도 예비엄마는 다른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다. 물론 인기 많은 미식축구선수인 예비아빠가 전학을 가서 연승기록이 깨지는 일은 없었다.
p.38
우리 부모님은 나를 능력에 한계가 없으며 마음 먹은 것은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도록 키우셨다. 나는 어릴 때 주로 여성에 관한 책을 탐독했다. 마리 퀴리, 나이팅게일, 잔다르크, 클레오파트라... 감탄을 자아ㅐ는 이 모든 이야기들은 내게 독립심을 불어넣어 남들이 덜 밟은 길을 따르고 싶게끔 했다. 그리고 그 길에는 아이가 없었다.
p.60
"젠장, 아이 낳는 걸 깜빡했네!"
진정한 힙스터
p.66
아이 낳지 않은 걸 후회하느냐고?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가끔은 성인 자녀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쨋든, 내가 아흔다섯 살 어머니를 돌봐드리듯이 나를 돌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아이가 있다고 나를 돌봐줄 사람이 확실히 보장되는 건 아니다. 선천적으로 큰 결함이 있을수도 있고, 마약중독자일 수도 있으며, 외국 전쟁에 나갔다가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내가 늙으나 마나 신경쓰지 않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놈일 수도 있으니까.
메디아의 마지막 코러스들의 대사가 생각났다. 코러스들은 신을 원망한다. 신은 여성으로 하여금 아이를 낳고 기르게 하지만, 결국 그 아이를 행복하게, 내 마음대로 기를 수도 없다는 푸념들. 결국 자식을 수단화 하는 것도 못마땅한데, 한걸음 물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키우는 것조차도 너무너무 어려운게 세상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참 머리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결정하여 자녀를 낳고 기른다는게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ㅋㅋ
p.94
나는 신의와 영원함이라는 전통을 원하면서도 내 앞길을 막지 않으려는 남자를 찾아낸 것이다. 프레드는 내 꿈을 존경했고, 우리가 있을 시간을 빼앗아가는 대외활동도 지지해줬다. 그리고 믿고 있는 대의에 강박적으로 헌신하려는 내 모습도 받아들였다.
내 소개인줄 ㅋㅋ
p.95
"너랑 프레드가 왜 그렇게 행복한 지 알 것 같아. 너희 부부는 아이가 없잖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여러 프로젝트를 하고, 여행을 다니고, 책을 읽은 후 공유하고, 우리 뿐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요리를 해 주고, 대의를 지지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아이 있는 삶이 아닌 서로와의 관계로 정의된다.
p.165
"많을수록 좋다. 선택도, 시간도, 자유도, 그리고 독립도"
'독서 > 여성주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괜찮지 않습니다- 2017.10.04 (0) | 2018.06.18 |
---|---|
[책]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2017.09.24 (0) | 2018.06.18 |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2017. 03. 17 (0) | 2018.06.18 |
절망너머 희망으로 - 2017. 03. 16 (0) | 2018.06.18 |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2017.03.06 (0) | 2018.06.18 |
글
아무래도 전자책은 쉽게 읽히는 책들을 고르게 되고, 그만큼 후루룩 넘겨 읽게 된다.
차분히 숨고르기 하는 기분으로, 오후를 함께 보낼 좋은 친구같았던 책.
빨강머리 앤이 스웨덴 작가의 소설인데 일본인들이 애니메이션화 했다는 말 덕분에
오후에는 급 생각난 하울의 움직이는 성까지 다시 찾아서 보게 되었고..ㅎㅎ
이렇게 작품은 작품을 낳고 연결 되고
또 마음의 평온함과 따뜻함을 찾아 준다.
마지막 부분에 "앤의 말이 다 맞는건 아니야"라고 하신 작가님, 하하
책들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은데
나도 조각조각 부스러져있는 나의 내적 세계를 구축해서 짠하게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냥 ...이 역시도 너무 에너지 드는 일이며.. '내 세계에 대한 심각하게 받아들임'은 이정도에서 멈추자 싶다.
전자책
p.22
희망이란 말은 희망 속에 있지 않다는 걸.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걸. 그 꽃에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일 거라고.
p.35
"인간의 행동 중 일부는 감정 없이, 의식적인 목적 없이, 자아와 목표 사이의 진정한 동화 없이 그저 습관처럼 이루어진다. 의미 없는 행동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진심을 갖고 행동할 때 행복을 경험하고, 감각을 깨울 수 있다."
이런 저런 행복학 관련 책들을 읽다가 내가 느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나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직업적 성공, 발전적 진화, 자아 성장에 과도하게 관심이 큰 탓에, 나 이외에 다른 사람과의 진정한 관계에 투자하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심지어 잠 역시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대다수의 사람은 '내'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공감'을 구축해 낸 사람들이다.
p.38
(노인들의) 시간 시야가 좁아진다는건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은 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과거와 미래에서 자유로워지면, 자신에게 주어진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된다.
그러나 역시 이러한 말들은 젊은이들에게만 완벽하게 적용되기 어려운 구문이란게 아쉬웠다. 여전히 의미는 있다. 게으른 내가 요즘 실천하는 모토이기도 하다.
p.53
사실 쾌락주의는 절제를 통해 그것을 깊게 체험하라는 말과 같다. 꿀을 좋아하는 곰돌이 푸우가 가장 행복해 하는 시간은 사실 '꿀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꿀을 기대하는 시간'이다. 꽃은 활짝 피기 전이, 꿀은 먹기 전이 가장 달콤하다.
우리는 너무 즉각적인 만족의 세계에 사는 건 아닐까? 기다림은 우리에게 결과를 떠나 과정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히려 만끽이라는 말은 이 설렘 뒤에만 따라오는 충만일지도 모른다.
p.82
부당함에 대응해 화를 낸다는게 요즘 같은 세상에서 얼마나 어려운가. 화를 내지 않는 게 매너를 넘어 약자들에게만 요구되는 부당한 감정 노동이 된 세상이다. 별것도 아닌 것에 참았던 화가 폭발하는 '분노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제대로 화를 낼 수 없는 세상이 만든 부작용이다.
이젠 개인을 넘어서 사회 구조를 볼 수 있는 통찰들이 좋다.
p.86
"체 게바라의 혁명 정신도 스타벅스의 카페라테처럼 테이크아웃 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시대에 혁명이란 몸사이즈가 66에서 44로 줄어들거나, 키가 160에서 170으로 늘어나는 일 뿐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없다고 친구가 얘기했는데, 말과 뇌가 일치하는 사람도 보기 힘든 세상이다.
p.89
요즘같이 외모가 중요한 시대에 겉모습은 상관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건 사실도 아니고, 솔직한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 같은 사람에게 스타일에 대해 묻는다면, 가장 쉬운 방법을 말해주고 싶긴 하다.
"그냥 계속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그걸'입으세요. 가장 중요한 건 '자주'보다 조금 더 '자주' 입어서 마치 '매일' 입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p.91
나는 한 때, 미인이 되는 건 예쁜 꽃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중요한 건 할미꽃이든 호박꽃이든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p.106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는 말은, 같이 있음을 전제하기에 가능한 말이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도 해봄직하다. 우리에겐 대체 몇 명의 진짜 친구가 필요한 걸까? 흥미롭게도 마지막 질문에 숫자로 대답한 살마이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진화생물학 교수인 로빈 던바는 진짜 친구의 수는 최대 150명이라고 여러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던바의 수'다.
...예상보다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ㅋ
p.108
사랑을 가장한 욕망, 우정으로 포장된 필요가 아니라 진짜 감정 말이다. 나는 종종 그런 관계를 꿈꾼다. 모든 곳에 있고, 어디에도 없는 관계. 그리하여 우리 각자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관계를.
p.178
"데제생트는 짐 16개와 하인 2명을 거느리고 네덜란드 자체를 여행했을 때보다 박물관에서 골라놓은 네덜란드의 이미지들을 볼 때 네덜란드 안에 더 깊이 들어가 있다."
내게 있어 여행이란 끝없이 집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끝없이 집으로 되돌아오는 일이다. 내게 떠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되돌아오는 일이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이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집에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라면,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일.
p.202
누군가의 성공담에는 교훈이 있지만 위안은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실패에서 위로받는다.
역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는 민족다운 구절이라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보편적인 현상이려니.
p.210
돈을 버는 이유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 시니컬한 후배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그녀에게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사는 건 100퍼센트의 삶이 아니며, 또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인생의 목표를 행복에 맞추면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해지기 힘들다는걸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바꾸셔서 반가웠다.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나 지향점은 아닐테니까. 그다시 시니컬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후배 생각이랑 내 생각이 너무 비슷해서 그런가........어쨋거나 우리사회는 피로도가 높은 사회다.
p.428
이제 나는 종종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가 아니라, '해야 하지만 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 말하게 된다. 앤과 함께 3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 온 나는 이제 '결핍'을 채우는 일 보다 더 중요한 건, 어쩌면 '과잉'을 덜어내는 쪽이 아닐까란 생각도 한다.
그래, 우리 세대는 아무래도 과잉의 세대이다. 그리고 그 과잉은 쓸데없는 것들의 과잉이기 때문에 진정한 결핍을 낳는다.
'독서 >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동주 시집 - 2018.02.21 (0) | 2018.06.18 |
---|---|
국가란 무엇인가 - 2017. 05. 29 (0) | 2018.06.18 |
게으를 수 있는 권리 - 2017.03.03 (0) | 2018.06.18 |
학력파괴자들 - 2017.01.26 (0) | 2018.06.18 |
커피 상식사전 - 2017.01.09 (0) | 2018.06.18 |
글
이번주는 길이가 짧고 무게가 가벼운 책들로 준비해 보았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용까지 깊이가 없거나 지나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 책은 성평등교육이 가장 잘 이루어졌다고 여겨지는 스웨덴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필독서로 일컬어지는데,
막상 스웨덴에서는 페미니즘의 기치를 교육받고 자란 학생들에게 내용 자체가 좀 구식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한 칼럼니스트가 가벼운 불평을 했다는 얘기도 참 흥미로웠다.
남자만 혹은 여자만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좀 더 나아져야 한다'는 그녀.
따뜻한 시각으로 자신의 이야기기와 생각을 쉽고 담담하게 풀어가는 아디치에는 분명 매력적인 작가이다.
p.13
그는 내게 사람들이 내 소설을 두고 페미니즘적이라고 수군거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충고하기를,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슬픈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요, 나더러 절대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란 남편을 얻지 못해서 불행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이지리아 여성인 웬 학자가 나더러 페미니즘은 나이지리아 문화가 아닌 비아프리카적인 것이며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서구의 책에 영향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지적은 퍽 흥미로웠는데, 왜냐하면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 대부분이 분명 반페미니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열여섯까지 나는 당시 출간되었던 밀스앤분의 로맨스 소설을 아마 한권도 안 빼고 다 읽었을 걸요. 그리고 페미니즘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시도할 때마다 따분해져서 끝까지 읽으려면 안간힘을 써야만 했습니다.)
아무튼 페미니즘이 비아프리카적이라고 하니까, 나는 이제 스스로를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 하나가 나더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이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더 나중에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남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농담이었지만, 이것만 보아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깔려 있는가, 그것도 부정적인 함의가 깔려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브래지어도 싫어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싫어하고, 늘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고, 유머감각이 없고, 심지어 데오도란트도 안 쓴다는 거지요.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루어진 세상..오늘도 뉴스를 보며 역시,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며, 명불허전..!!
p.20
남자와 여자는 다릅니다. 호르몬이 다르고, 성기가 다르고, 생물학적 능력이 다릅니다. 여자는 아기를 낳을 수 있지만 남자는 못 낳습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테스토스테론을 더 많이 갖고 있고 일반적으로 여자보다 육체적으로 더 강합니다. 세상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약간 더 많습니다. 세계 인구의 52퍼센트가 여성입니다. 하지만 권력과 명예가 따르는 지위의 대부분은 남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작고한 케냐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는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묘사했지요. "높이 올라갈수록 여자가 적어진다."
... 남자들은 말 그대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합리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에는요. 당시에는 육체적 힘이 생존에 가장 중요한 자질이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남자가 육체적으로 더 강합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혀 다릅니다. 오늘날 지도자가 되기에 알맞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더 강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더 지적이고, 더 많이 알고, 더 창의적이고 더 혁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질들을 좌우하는 호르몬은 없습니다. 남자 못지 않게 여자도 지적일 수 있고, 혁신적일 수 있고,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요즘 육사든 어디든 여자들이 휩쓸고 있는걸 보면........ 오히려 에스트로겐이 자질을 좌우하는 호르몬인거 아닐까... 아무말...
p.23
얼마 전에 나는 라고스에서 젊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관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 하나가 그 글을 읽고는 성난 글이었다며, 그렇게 성난 투로 이야기해서는 안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성이 나니까요. 오늘날 젠더가 기능하는 방식은 대단히 불공평합니다. 나는 화가 납니다. 우리는 모두 화내야 합니다. 분노는 예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노에 더해 내게는 희망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더 나은 자신으로 변하는 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p.30
우리는 아이들의 인간성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남성성을 대단히 협소한 의미로만 정의합니다. 남성성은 좁고 딱딱한 우리와 같고, 우리는 그 속에 남자아이들을 밀어넣습니다.
우리는 남자아이들에게 두려움, 나약함, 결점을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칩니다.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감추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남자아이는, 나이지리아 표현으로, 단단한 남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중학생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함께 외출하면, 둘 다 십대라서 용돈이 몇푼 없는 것은 똑같지만 늘 남자아이가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돈을 다 내야 한다고들 여깁니다. (그러고서는 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부모의 돈을 슬쩍하는 경우가 더 많을까 의아해하지요.)
만일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남성서오가 돈을 연결 짓지 않도록 배운다면 어떨까요? "원래 남자애가 내는 거야" 대신 "남자든 여자든 돈이 더 있는 사람이 내는거야"라는 태도를 취한다면 어떨까요? 물론, 지금까지 누려온 이점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실제로 돈이 더 많은 사람은 대체로 남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부터 아이들을 다르게 키운다면, 앞으로 오십년 혹은 백년 뒤에는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물질적 수단으로 증명해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더는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사실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또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대단히 몹쓸 짓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 요령껏 맞춰주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자신을 움추리라고, 자신을 위축시키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망을 품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크게 품으면 안 돼. 성공을 목표로 삼아도 괜찮지만 너무 성공해서는 안 돼. 그러면 남자들이 위협을 느낄 테니까. 설령 남자와의 관계에서 네가 가장 노릇을 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는 특히 그렇지 않은 척 해야 해. 안 그러면 남자가 기가 죽을 테니까.
p.33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여성이라서, 사람들은 늘 내가 결혼을 갈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삶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서 행동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은 물론 좋을 수 있습니다. 결혼은 즐거움, 사랑, 서로에 대한 지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는 결혼을 갈구하도록 가르치면서 남자아이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요?
내가 아는 한 나이지리아 여성은 자신과 결혼하고 싶어할지도 모르는 남자의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갖고 있던 집을 팔았습니다.
p.35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어"라는 말은 남자든 여자든 공히 자주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그 말을 할 때는 보통 어차피 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포기한 경우입니다. 남자들은 짐짓 부아가 난 척하면서, 사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 우리 마누라가 매일 밤 클럽에 가는건 안 된다고 하잖아. 그래서 이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주말에만 가기로 했어."
반면에 여자들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말할때는 보통 직장이나 경력이나 꿈을 포기한 경우입니다.
우리는 여자들에게 남녀 관계에서는 원래 여자가 더 많이 타협하는 거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도록 가르칩니다. 일자리나 성취에 대한 경쟁이라면 좋을 수도 있다고 보지만, 그게 아니라 남자들의 관심을 놓고 경쟁하도록 가르칩니다.
,,,전 세계 남자들이 다 이런거였구나..
p.43
젠더는 대화하기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주제를 불편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짜증스럽게 여깁니다. 남자도 여자도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리며, 혹은 젠더 문제를 성급히 부정해버리려고 합니다. 현 상태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란 늘 불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p.44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되나요?" 왜 안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p.45
또 어떤 남자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좋아요, 이건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는 젠더를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고요." 어쩌면 정말 의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문제의 일부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젠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거나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내 친구 루이스처럼, 옛날에는 상황이 나빴을지 몰라도 지금은 다 좋아졌다고 말한다는 점 말입니다. 그리고 많은 남자들이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만일 당신이 남자인데 식당에 갔더니 웨이터가 당신에게만 인사를 건넨다면, 웨이터에게 "왜 이 여자분에게는 인사를 안 합니까?" 라고 물어볼 생각이 들까요? 이렇듯 겉보기에는 사소한 상황들에서, 남자들이 나서서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문화를 만듭니다. 만일 여자도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우리 문화에 없던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문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p.90
나는 요즘 나이지리아를 휩쓰는 오순절주의를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 ㅇ낳습니다. 나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는데, 내가 어렸을 때는 대부분의 나이지리아인들이 온화하고 중도적인 기독교인이었지요. 영국성공회 교회에 나가거나 가톨릭 성당에 나가거나 둘 중 하나였지요. 요즘은 어디에나 극단주의가 만연해 삶의 모든 측면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극단주의에는 미신이 어느정도 뒤따르기 때문에, 그들과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정신을 둔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이 오순절주의는 몹시 자기 중심적이고, 물질적 풍요에 집중합니다. 이 새로운 종교를 믿는 사람은 세상 무엇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종교는 전통지식에 적대적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전통 지식을 파괴하고 있어요. 그들이 파괴한 지식, 우리가 기독교 이전에 어떤 사람들이었나 하는 지식은 우리가 되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독서 > 여성주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2017.09.24 (0) | 2018.06.18 |
---|---|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2017.03.27 (0) | 2018.06.18 |
절망너머 희망으로 - 2017. 03. 16 (0) | 2018.06.18 |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2017.03.06 (0) | 2018.06.18 |
Mansplain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16.09.28 (0) | 2018.06.18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