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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를 한잔 하면서 오늘 하루를 돌아보는 매일의 마무리 시간이 되면, 어떤 날은 오늘 참 많은 일을 했다 싶고 어떤 날은 오늘 왜 이렇게 한게 없나 싶을 때가 있다.
지난 학기부터 좋은 사람이 후배로 들어와서, 같이 수업도 듣고 밥도 먹고 이런 저런 속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은데, 이 이야기도 그 친구와 나눈 이야기 중 하나였다.
어쩌면 일을 많이 한 날은 한 게 없다고 느껴지는 날이고, 일을 많이 못 한 날이 한게 많다고 느껴지는 날일 수도 있다고.
합리적인 이유는 없지만, 맞는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오늘(수요일)은 이번 학기 중 가장 바쁜 날이다.
10시30분에 성범죄 학생 자문위원회 회의가 있고,
수업이 두개가 있어서 도시락을 싸오는게 좋은 날 (밥 사러 갈 시간도 촉박함).
게다가 오늘은 9시30분에 학과장이랑 회의도 있고 점심 먹을 시간에는 workshop을 신청해 놔서, 하루종일 풀이었다.
좋았던 건, 워크샵에서 주문 된 샌드위치가 너무 많아서 남은거 다 가져가라길래 저녁으로도 먹으려고 한개 더 집어왔더니 저녁 수업을 하며 밥을 든든하게 먹은 탓에 오피스로 다시 돌아가 10시까지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 하루 열두시간 이상을 정말 열심히 일을 했는데, 막상 집에 와 보니 오늘 왜 이렇게 한 것이 없나 싶은 기분이 드는거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생각해 보니,
해야 할 일들을 많이 하는 날이 좋은 날 (“오늘 많은 일을 했군!”)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있었던 날이 좋은날 인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날들 마저도 가끔은, 오늘은 성과가 많지는 않았네 싶은 마음도 든다는 사실 까지도.
그러나 매일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만 살 수는 없으니, 이렇게 하루종일 다른 의무들로 바쁜 날도 그럭저럭 잘 보낸 날이라고. 오늘 하루도 참 많이 수고 했다고 나 자신에게 이야기 해 주고 싶다.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모여 한달이 된 후에,
그렇게 일년 이년 삼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조금 더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을 닮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그렇게 오늘 내게 주어진 이 하루를 성실하게 채워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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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도서관에 가서 마음껏 한국 작가들의 책을 빌릴 수 있는 것, 독립 영화를 큰 화면의 영화관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방학의 큰 기쁨이다. 지난 해 한국 여성 감독들과 작가들의 활약이 특히 어마무시했다. 그래서 짧은 한달의 겨울 방학 동안 지워야 할 리스트가 아주 길었다. 행복한 부담감이었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요즘은 더욱이 독립영화의 상영관 확보가 쉽지 않은 일이라, 대학가 근처에 더 자주 오게 된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어떤 것들이 친숙하면서도 생경하다. 그리고 오고가는 대학생들의 대화들 속에서 혈기만 넘치던, 부끄러운, 20대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싸움과 욕심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우리의 어린 시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린 시절에 부모나 형제나 친구와 싸웠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시간이 지나 그 때의 기록들을 보면 어리둥절해지는 경우를 만난다. 일기 같은 것에 써 있는 스스로의 생각이 잘 이해가 안 되고, 뭘 그런 사소한 것 때문에 섭섭해하고 분노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어린 아이가 인지한 좁은 세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었다. -강국진>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 지금과 나중을 가늠해 보게 된다. 지금의 내 좁은 세계는 얼마나 더 확장 되고 바뀔 수 있을까. 아니, 이미 쪼그라들고 있은지 오래인 것은 아닐까. 확장 되는 것만이 좋은 것일까. 어쨌거나 부끄러운 과거를 마주하는 것만큼 싫은 일도 없는데, 최근에는 그마저도 그러려니 해야지 마음먹게 되었다. 부끄럽다는 것은 그 전보다, 그 때보다 나아졌다는 신호일 것이라고. 그 세계에 멈춰있지 않았다는, 그 때보다 나아졌다는 증거라고 다독이게 된다.
좋은 작품의 힘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삶으로 걸어 들어가,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여성 감독들과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읽으며, 애초에 절대 이해할 수 없던 인물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삶을 당연히 이해하고 나의 한조각을 발견하는 동시에 그 주변의 짜증나는 타인들을 미워하고 증오하지만은 않을 수 있는 경험을 한다.
그렇게 이번 겨울, 내 세계도 조금이나마 더 넓어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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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kakaocdn.net/dn/bjnHt2/btqAQmu37ra/Kc2TidrZEghB0vQWO8CENk/img.jpg)
오랫동안 머리에 남는 장면들과 메시지.
긴 러닝타임이 무색한 영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 하던데, 그래서일까.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만 같은 은희와 영지쌤.
하이퍼리얼리즘의 역기능적 가족, 그리고 우리가 성장하던 그 때 그 시절.
트라우마, 그리고 그럼에도 지속되는 삶.
아니 우리 삶의 일부인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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