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재 - 2020. 01. 03

독서/기타 2020. 1. 3. 11:53

 

추천의 말

 무심히 죄를 지은 이는 평생 그 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기꺼이 무게를 나누려던 이는 삶 전체가 불행으로 말려든다. 그리고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던 아이가 있다. 아이의 이름은 '호재'. 행복과 기대가 담긴 거창한 이름을 붙여 준 어른들은 정작 자신의 운명에 허우적대느라 아이를 잊었다.

"호재"는 휘둘리고 뒤틀리느라 자라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 그리고 당신의 변명이고 진심이다. 커다란 몸 안에 웅크린 아이를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니 어떻게 이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한 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였으므로. 이제 그 아이의 눈을 피하는 어른이 되었으므로.

성실과 호의는 성과와 예의로 돌아오지 않고, 행운과 불운은 언제나 가장 부적절한 순간에 찾아온다. 누구에게나 삶은 첫 번째 경험이고 우리는 매 순간 무능하다. 태연한 얼굴로 일상을 살아 내는 평범한 당신, 사실은 가혹하고 냉정한 운명 앞에서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당신, 당신의 눈물과 한숨 끝에 이 소설을 놓아 주고 싶다. - 조남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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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중 특히 소설의 백미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삶에 흠뻑 들어가 결국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철딱서니 없는 인간들,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 때문에 망한다.'고 주구장창 말하고 다니는 내게, 담담한 어조로, 누구보다 어린이자 어른이었던 호재의 태도로, 사람들의 삶을 풀어내 준 작품. 그 누구도 혐오하고 증오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게 해 준 황현진 소설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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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 작가, 현재는 번역가, 미래는 작가라는 14년차 번역가 노지양님의 마음 번역 에세이라고.

 

글을 쓰고 싶다는 글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14년간 해 온 번역에 대한 깊은 애정이 뚝 뚝 묻어나는 책.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빛이 나는 법이다.

posted by sergeant

 

 

작가의 말

우리는 서로를 선택할 수 없었다.

태어나보니 제일 가까이에 복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몹시 너그럽고 다정하여서 나는 유년기 내내 실컷 웃고 울었다.

복희와의 시간은 내가 가장 오래 속해본 관계다. 이 사람과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라왔다. 대화의 교본이 되어준 복희. 그가 일군 작은 세계가 너무 따뜻해서 자꾸만 그에 대해 쓰고 그리게 되었다. 그와 내 역사의 공집합을 기억하며 만든 창작물 중 일부가 이 책에 묶였다.

(...) 나를 낳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오해로 쓰인 책이다.

(...) 그렇지만 엄마의 훌륭한 교본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님을 내내 기억하며 용기를 내어 책을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고를 수 없었던 인연 속에서 어떤 슬픔과 재미가 있었는지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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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어떤 글이나 말도, 깔끔하게 단정짓기가 어려워 지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나는 나의 모친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에게 우리 엄마란, 날 때부터 부모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태어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유년시절은 든든한 산과도 같은 부모 슬하에서 안정감 있게 자라났지만,

모든 일에 양면이 있듯이 내가 부모 또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 오랜 시간이 들었다.

사실은 아직까지도, 나는 부모 울타리 안에서 자라고 있는 자식의 역할이 익숙하다.

나는 부모가 되지 않기로 선택했으니, 아마 나는 영원히 부모됨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이해할 수 없음이 그리 아쉽지 않은 이유는

내가 설령 부모가 된다고 하더라도 내 부모의 마음을 백퍼센트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삶은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내고 이해하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너무 연민하지도 그렇다고 매정하지도 않은 사람이 되고 싶고,

나의 엄마와도 이번 여행에서는 아주 조금 더 친구처럼 지내게 되려나,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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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연말은 한국에서 - 2019.12.26

미국유학/유학생활 2019. 12. 26. 10:18

2년차가 되어도 처음 하는 것이 이것 저것 많다는 감각은 낯설지가 않다.

지난 학기 내내 그런 기분을 느꼈다. '익숙해 진 줄 알았는데 이 것도 처음이군!'

부정적이지만도 긍정적이지만도 않은 그런 느낌이었다.

올해 연말은 한국에서 보내니, 이 또한 처음이다.

 

일주일정도 지나니 드디어 시차적응이 완료되었다.

새벽 5시면 귀신같이 일어나게 되더니, 오늘부터는 아침 9시가 되어서야 눈이 떠진다.

 

지난 해에는 한달이라는 겨울 방학이 너무 짧기도 하고,

적응 과정에 괜히 들어왔다가 마음만 싱숭생숭해 질 것 같아서

미국에서 연말을 보냈었는데,

나름 동기들 그리고 사람들과 재미있게 보냈었지만

그 다음 (두번째) 학기가 힘들었다.

시작하자마자 한국 갈 날짜를 세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올해는 들어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1학년 후배에게도 그렇게 조언해서 그 친구도 한국에 들어왔다.

 

지난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보고 싶었던 독립영화들을 보고, 서울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배우자와 술을 마시고, 가족들과 사람들을 만나고.

일주일을 꽉꽉 채워 보냈다.

한국에서 먹고 싶었던 것도, 생각만큼 어마어마하게 샘솟진 않지만

잔잔하게 열심히 먹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오늘,

조용한 평일 느낌이 오랜만에 들어서

(실은 점심 약속이 오후 2시로 꽤 늦은 편이라)

집에서 평화로운 업무 가능 시간이 확보가 되었다.

 

성적을 확인해 보니 A-가 하나 있다 (-_-)

박사 생활에 성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그리고 괜히 수업시간에 나만 열심히 힘 빼는 것 같아서

이번학기 목표는 적당히 하자였는데

막상 적당히 해서 적당한 성적을 받아들고 나니

처음 받는 A-성적이 괜히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정말로 생각을 해 보면,

이번학기 처음 세웠던 목표에 어느정도 달성을 한 거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않은 일에서 그에 합당한 결과를 받는것은 당연한 일이고

실제로 이번학기에 생각했던 대로

연구에 조금 더 집중해서 새로운 프로젝트 론칭이 가능했단걸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해 줘야 할 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수업은 적당히 하자고 세웠던 목표도 달성했다.

역시, 최선을 다해서 하지 않으면 최상의 결과를 기대하는건 아무래도 욕심이라는 결론도 함께.

게다가 몇몇 수업은 A+성적이 아예 존재하질 않으니

이정도는 선방이구나 싶다.

 

성적이 뭐 별건가 싶다가도,

이렇게 점을 찍어서 점검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학업과 다르게, (실제로는 학업의 많은 부분에서 조차도) 인생에는 성적표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연말, 연초, 생일, 기념일을 점 찍어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점검하고

다시 재정비하는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점을 찍는 이번 방학,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고

푹 쉬고

했던 일들을 점검하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보고

그렇게 정비하는 이 시간들이 아주 행복하다.

 

아무래도 내년 연말도 한국에서 보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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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학기끝

미국유학/유학생활 2019. 12. 14. 00:22

이번 학기는 실습이 있어서 일주일 중 하루가 아예 비워져 있었다. 초반엔 적응하기 쉽지 않았는데 중반이상으로 가며 많이 익숙해 지고, 새로운 자극도 많이 되고 미국인들의 문화적 스피릿도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실습을 많이 즐길 수 있었다. 수퍼바이저에게 참 감사하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운의 영역에 가까운데, 확률적으로 좋은 사람(i.e. 자기 할 일에 신실함을 유지하는 이들이) 더 많은 곳에서 플레이 할 수 있다는게 큰 행운으로 느껴진다.

프로젝트도 수업 과제물들과 연결을 좀 더 지을 수 있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테스크들이었는데 무난하게 잘 끝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학기는 꽤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적응이 많이 되었나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적응이란게 이렇게 무서운거구나 싶다. 보통 가을학기보다 봄학기가 더 긴 편이라고 느껴지는데, 다가올 봄학기는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겨울 방학은 지난 여름 방학만큼 미리 여행을 준비하고 기대하고 날짜를 세진 않았다. 아무래도 4개월만에 다시 방문하는 것이라 그런듯. 중간중간에 이렇게 한국에 다녀올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다행이다.

페이퍼 두개가 남았는데 막판 스퍼트를 내서 잘 마무리 지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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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t-corners

생각 2019. 12. 2. 10:29

좋아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오랫동안 동업을 해 온 건축업자와 부동산 사장이 있었다.

둘은 아주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 했는데, 건축업자가 은퇴를 결심했다.

은퇴를 결심한 건축업자에게, 부동산 사장이 마지막으로 한번만 니가 원하는 가장 멋진 집을 만들어 달라고, 재료값이나 시공비는 자유롭게 쓸 수 있겠다고 부탁/사정을 했다.

건축업자는 부동산 사장이 원하는대로 집을 만들었지만, 자재를 빈약하게 쓰고 모퉁이를 깎아 자신의 이익을 챙겼다 (cut-corners를 한 것이다).

지루했던 공사가 끝나고, 부동산 업자에게 일의 마감을 알린 건축업자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자신이 모퉁이를 깎아 이익을 만들었던 그 집이 사실은 부동산 업자가 건축업자를 위해 마련한 마지막 선물이었다고.

원하던 집이 생겼으니 이제 그 곳에 들어가 살기만 하면 된다고, 열쇠를 쥐어준 것이다.

 

이 이야기는 모퉁이를 깎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기꾼들에게,

결국은 자신이 깎은 모퉁이 만큼 그 손해를 받게 된다는 교훈을 전해 준다.

현실이 동화처럼 권선징악적이거나 납작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위안이 된다.

 

시키는 대로 모두 제대로 다 해내고 싶은 assigned readings, RA works, 그리고 맡겨진 업무들 가운데에서

"뭘 그렇게 까지 하냐." "적당히 해라."라는 메시지가 많았던 이전의 한국사회, 그리고

심지어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 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신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빠르게든, 느리게든 간에 사람들은 서로의 됨됨이를 너무나도 잘 알게 될 수 밖에 없다는 또 하나의 신념과,

모퉁이를 깎는 이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고 존경하고 싶거나 따르고 싶은 성실한 학자들과 가까이 하고 싶어서,

결국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맞물려서.. 오늘도 리딩을 하고 있네.

 

 

수업 시간에 discussion을 하다보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옹호를 해야 할 때가있다.

그럴 때면, 내가 한국에서 상담을 배워서 좀 다른건가 싶긴 한데.

막상 논문들을 읽고 나면, 그리 다르지도 않았어서..

결국 작은 사실이든 (ex. 그 이론에서 단계 순서가 그게 아닌데?)

큰 토론이었든 (ex. 상담사로 training을 받을 때 한국에선 personal therapy가 의무인 곳도 있어. 미국은 이게 완전 이상한 얘기처럼 받아들여 진다고?)

즉시 검증이 되든, 시간이 지나고 나서든 간에 책에서 논문에서 다 평이하게 뒷받침 되는 나의 의견들..

 

제발 책 좀 읽고 오라고 말을 해 줄 수도 없고...

 

여자로서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아무튼간에 나는 좀 더 의견에 자신감을 가지고

또 authoritative information과 citation을 많이 모아야 겠다고,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그런 점에서 오늘 리딩 하다 발견한 공감되는 말들 적어두기.

 

Psychotherapy works (Miller, Hubble, Chow, & Seidel, 2013).

 

Some therapists are more (or less) helpful than others (Miller, Hubble, & Duncan, 2007)

 

What does reliably improve is therapists' confidence in their abilities (Miller et al., 2007).

 

Taking each in order, although nearly 80% of practitioners cite a personal therapy as key to becoming a better therapist-second only to supervision (Orlinksy & Ronnestad, 2005). 

 

In sum, expertise is not inherited nor does it directly follow from mere time spent in a given field or profession. Instead, top performers are made, a result of their "life-long... deliberate effort to improve". 

Erisson and colleagues (1993) found that the best work harder and smarter at improving their craft than the less capable players. Specifically, those at the top spent significantly more time- three times as much- than those at the bottom engaged in solitary activities specifically designed to better their performance. The best were more dedicated in every way. They devoted less time to leisure and more time to music-related activities. Additionally, they knew when they were slacking off, unlike the other subjects in the study who tended to underestimate time spent in recreation and relaxation. 

Since the publication of this initial research, similar results have been found in sports, chess, business, computer programming, teaching, medicine, and surgery. Ericsson et al. (1993) introduced the term deliberate practice to refer to the universal process associated with the development and maintenance of expertise across a variety of pursu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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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가지 소원 -2019.11.10

미국유학/유학생활 2019. 11. 11. 14:31

https://youtu.be/rfHXd2ozVOk

이 노래만 들으면 마음이 뜨거워 지던 시기가 있었다.

​​​주의 아름다움 늘 바라보면서 내가 주님 전에서 주 찬양하리라, 주의 아름다움 늘 바라보면서 내가 주님 전에서 주 찬양하리라.

함께 이 찬양을 하던 우리들은 십년이 지난 지금, 목자 잃은 양 떼처럼 이리저리 흩어졌는데, 단순히 세월이 흘러서라기 보다는 우리가 쏟아부었던 열정과 헌신들이 교회의 위기와 문제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아니 오히려 약자와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두 눈으로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거룩함으로 세상과 구별되라는 교회의 메시지는 보통 삶과 신앙을 이원화 시키는 것에 동원되고, 이러한 이원화는 결국 “우리끼리 행복”한 교회의 자급자족 커뮤니티, 맛을 잃은 소금, 힘을 잃은 빛을 양산해 낸다. 세상에 나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본주의를 배격하라는 외침을 듣고 자란 아이들은 비합리적인, 비이성적인, 심지어는 혐오를 주장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유혹은 너무나도 강력한데, 바로 거짓된 영웅 서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나를 배격하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다. 나만이 다른 이들이 모르는 진실을 알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은 잘못 되었다. 그런 피해자인 동시에 영웅 서사를 가질 수 있는 강력한 유혹. 교회는 이 서사를 열심히 팔고 있다.

이 한국 교회의 문제, 그리고 가나안 성도들을 생각할 때, 목자 잃은 양떼와도 같은 이 무리들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아파하실지를 떠올린다.

사모인 이모는, 유학생활을 하며 ‘다시 신앙을 회복’하고 돌아오라고 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다시 그 분을 모른 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나를 넘어서고 교회를 넘어서 우주 만물을 품으시고 안타까워 하시는, 고아와 창녀의 친구로 죽기까지 주저하지 않았던 예수를 알게 된 이상, 나는 교회의 도그마로, 거룩함이라 포장된 이원론으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래도 요즘은 부쩍,
오래 전 생각들이 난다.
이해 할 수 없었던 사람들.
친구의 말처럼 “망가지고 더럽혀져” 버렸던 것만 같던 우리의 헌신과 추억들.
그 속에서 그래도 행복했던, 재밌었던 기억들을 다시 뒤적이고
먼지들을 털어보고
아 우리 그때 참, 좋았다.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생각들을 이제 조금은 할 수 있을 만큼
괜찮아졌다.
여전히 십년 전과 같은 메시지들의 범람속에서
속이 답답하고 화가 나 심호흡을 하지만
내가 싸울 곳이 어딘지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같은 상처를 가진 내 사람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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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공지사항 2019. 11. 6. 12:29

본 블로그는 개인적인 생활,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 기록의 장입니다.

논쟁을 위한 논쟁, 인신공격성 댓글이나 무례한 의사표현은 예고없이 삭제 및 차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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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 2019. 11. 05

독서/여성주의 2019. 11. 6. 12:16

개인적으로 육아와 출산에 대한 여성주의 담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게 페미니스트로서 시급한 문제는 동일임금/동일노동이나 성폭력 근절과도 같은 것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비 선호가 육아와 출산에 대한 담론을 의미 없게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다못해 비출산/비혼 결심을 하려면 결혼, 육아, 출산이 어떤건지 알고 결심해야 할 것 아닌가.


아무튼간에 개인적인 선호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작품을 딱히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 매력적인 작품이 아니고, 희미한(힘 없는) 주인공들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그러나 조남주 작가의 문체가 평이하고 읽기 쉽다는 점은 다른 작품을 통해 접한 터였다.
굳이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를 떠올려 보자면,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주변 지인들의 반응이 둘로 나뉘는 것이 흥미롭기는 했었다.
어떤 여성들은 김지영이 운이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하고, 어떤 여성들은 그 불행이 너무 안 됐다고..
그 간극 차의 흥미로움.

 

그런데 얼마전 이런 말을 들었다.
"82년생 김지영이 이 정도의 파급력을 가질 만한 작품은 아니지."
한국 남성이 한 말이 아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여성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 계기를 통해 다시금,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여성의 업적이 얼마나 평가 절하 되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읽고 생각해 보고 싶다고 느끼게 되었다.

 

소설의 영화화로 인해 다시금 핫해진 작품.
이 책을 읽었다는 인증만으로도 메갈 낙인이 찍혀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

그러나 이 소설은, 엄청난 통찰력을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주인공의 희미함과 개성없음, 보편적이고 매력없는 그 특성 때문에
너무나도 평범하고 평이하기 때문에 
그 익숙함이 가지는 어마어마한 울림과 파급력 때문에 오히려 문제적이 되어버리는 소설이다.
이 글의 장르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글이 소설인가? 사실 르포르타주에 가깝지 않나?
주변에 김지영이라는 사람을 찾으면,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문체는 드라이하다.
읽기 전 내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신파 소설이라고 생각해서 였기 때문이다.
소설을 둘러싼 너무나도 많고 과장된 남성들의 반응 때문에,
질척이는 신파 소설일 거라 예상했다.
아니다. 조곤조곤 현실의 통계자료들을 인용한다.
이 부분이 그분들의 마음을 심히 불편하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듀나님의 조언 때문에도 읽고 봐야겠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말 그대로 적확한 조언이었다.
왜냐하면, 소설 속의 김지영은 살아 움직이는 한명의 캐릭터가 아니다.
얼굴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김지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보편성은 실제 통계자료를 통해 뒷받침 된다.

영화에 나타난 정유미라는 배우가 그려낸 김지영을 보기 전에,
얼굴 없는 김지영을 만나고 싶었다.


이 작품은 사회학을 전공했다는 작가가 그려 낼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담을 전공하고 나서, 사회학을 전공했어야 하나 가끔 돌이켜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한 개인의 특별함과 스토리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닌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그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보통의 인간을 참 잘 그려냈다.

음악과 미술을 전공하는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며,
과연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누구에 의해 정해질 수 있는지를 계속 도전했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대중이라는 말은 가끔 멸칭으로 쓰이고, 가끔은 모든 것이 된다는 점이다.
이는 소설에서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설은 독자를 염두에 두고 적는 글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나는 이 소설의 평이함,
즉 대중에게 가지는 이 잔잔한 호소력,이 이 소설의 가치를 훼손하는 이유로 쓰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변화에 대한 희망을 주지도 않고,
결국 '다음 직원은 미혼으로 뽑겠다'로 끝내버리는 고구마 백개 먹은 소설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그저 과평가된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 끝마저 메타적으로 이 소설을 읽고 다시금 여성혐오 사회에 갇혀버리는 독자들에 대한 풍자를 잘 그려내 준다.

 

시간이 지나고, 교육자로서 정체성을 더욱 가지게 되면서,
내 서비스를 받을 학생을 생각하는 점이 더욱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이만큼 훌륭한 페미니즘 소설,
즉 대중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여성주의적 작품,을 다시 가질 수 있을지.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페미니즘 소설이 별건가?
싸우고 때려부수는 여주인공이 나와 모두를 계도해야 하는 것만이 페미니즘은 아니다.
여성의 삶에 대한 르포식 보고.
그남들이 발작하는 이유를 더욱 깨달았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햇볕의 힘이 더욱 강력하듯이,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바꾸겠다고 소리치지 않아도
위험하고 불순한 급진여성주의자가 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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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2019] 통계 튜터링

미국유학/유학생활 2019. 10. 31. 08:21

오피스에서 1년차 & 2년차 미국인 친구들한테 통계 튜터링 해주고
사과 도넛과 함께 좋은 선생님이고,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도 들었다.
(ㅋㅋ좋은 사람 까지?....)

미국인들 중에 통계를 꽤나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 통계에 대한 압박감과 힘듦이 교수자에 대한 평가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가장 좋은 교수 중 하나에 꼽힐 수도 있을 것 같은 강의자에 대해
(그리고 실제로 1년차 친구도 처음에는 그 교수 너무 좋다고 말했었지만)
이것 저것 불평하는 모습을 보며 시간을 마무리 했다.

그러고 보면,
각 사람들의 타인과 현상에 대한 평가는 어쩜 이렇게 '엄청나게' 서로 다를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위안이 되는 부분이
나중에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지금의 교수자만큼이나 완벽하게 수업을 준비하더라도
아무튼간에 불만인 학생들이 있을거라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이상하게 놓인다.

잘 배울 수 있도록 빡세게 가이드 해 주는 선생보다는,
쉬운 교수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생각 혹은,
잘 가르치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 통계 내용을 수업에 포함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리고 통계를 친숙하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강의자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생각은
좀 의기소침해 지긴 하지만...

이런 과정들을 보면
It is not my fault라는 깊은 신념이 탑재되는 순간들이다.

피드백에 열려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학생들의 이 수많은 불평불만에 흔들리지 않는 교수자가 되려면
몇 년이나 걸릴지, 설마 평생 다 가도 못 이루는건 아닌지
걱정도 되지만.

그건 일단 좀 먼 이야기이고,
프로그램에 있는 우리 모두들
잘 서바이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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